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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남정맥 11] 지리(智異)의 품에 안기다 - 영신봉

月波 2010. 8. 25. 22:25

 

[낙남정맥 11] 지리(智異)의 품에 안기다 - 영신봉

  

1. 산행 개요

 

  1) 일 시 : 2010년 8월 22일(일) 무박산행

  2) 구 간 : 낙남정맥 제 11구간(고운동재-삼신봉-영신봉) 도상 12.9Km(진출 백무동 8.0km 별도), 누적 239.9/239.9Km

  3) 시 간 : 6시간 50분(식사, 휴식 50분포함), 영신봉 종산제 30분별도, 세석-백무동 진출 2시간30분별도

  4) 참 가 : 좋은 사람들 30인 (3인의 동행자 : 성원, 오리, 월파)

 

2. 산행 후기 - 지리(智異)의 품에 안기다

 

 (1) 지리(智異)에 붉은 해 떠오르다

 

새벽 3시 30분의 고운동재는 칠흑이다. 그 어둠을 뚫고 영신봉을 향해 낙남 마지막 구간을 시작한다. 첫 걸음에 산죽(山竹)과 대면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산죽 터널이다. 무상한 세월에 지리(智異)의 산죽도 키가 큰 것일까? 그 키가 어른 키를 훨씬 넘는다. 그 악명(惡名)을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예상 못했다. 높은 키만이 아니라 촘촘하기조차 하니 발 딛고 헤쳐 나가기도 벅차다.

 

낮은 포복과 스틱으로 양손 후려치기를 번갈아하지만 별무소용이다. 그 사이 조릿대 날카로운 잎이 얼굴을 후려친다. 연이어 왼쪽 눈을 강타하는데 순간적으로 눈동자가 따끔하다. 한 방 먹은 게 분명하다.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이 일을 어찌 할거나? 달리 방법이 없다. 이 구간에서는 눈 보호용 안경을 필히 사용해야한다는 얘기는 나중에 들었다. 사후약방문이다.

 

두 시간 남짓 걸었을까? 조금씩 먼동이 밝아온다. 산죽지대는 끝나고 대신 암릉 지대가 나타난다. 외삼신봉이 멀지 않은 것이다. 일출에 대한 기대로 눈이 아픈 것도 있고 부지런히 암벽을 오른다. 앞서가는 풀초롱 님의 로프 타는 솜씨가 잽싸다. 여기저기 함성이 들려온다. 먼저 도착한 이들이 외치는 일출에 대한 함성이다. 그 장엄함이 지난 주 일본 호다카다케(穗高岳) 산장의 일출에 비하랴만 가슴을 울렁이기에 족하다.

 

 이어지는 산죽터널

 

지리는 서서히 분홍빛에 물든다

 

 외삼신봉의 일출, 조금 늦었다

일출을 카메라에 담기 바쁜 낙남의 동지들

 

셋이서 외삼신봉에 포즈를 취했다

 

삼신봉 갈림길의 고사목, 새잎에 가렸다

 

삼신봉 표지목에 무지개 뜨다

 

삼신봉, 하늘은 우리 마음처럼 푸르다

 

삼신봉에서 본 지리의 능선, 달려갈 그 길이다

 

 

(2) 여름 숲이 농염(濃艶)하다

 

삼신봉에 올라 지리의 주능선을 좌우로 살핀다. 반야봉에서 천왕봉까지 좌우 일렬로 도열한 그 모습이 과히 인상적이다. 여기 이 자리가 아니고서는 이런 모습을 볼 수 없다. 수없이 지리를 드나들었어도 이런 모습 처음이다. 삼신봉만이 그 모습을 연출한다. 마침 어느 산객이 친절히 삼신봉의 정북에 위치한 어느 봉우리를 설명하는데 귀에 솔깃하다. 세석의 오른쪽 촛대봉과 연하봉 사이, 북삼신봉이란다.

 

영신봉을 향해 길을 나선다. 숲이 우거진 길이다. 여름의 지리(智異)는 그 숲향이 싱그럽다. 울창한 숲은 찬란한 초록빛으로 빛나고 있다. 능선의 숲에는 진초록이 안겨주는 청량감이 머리를 맑게 한다. 한 줄기 바람이 숲을 스치고 지나간다. 나무 이파리가 바람개비마냥 팔랑이니 숲향이 진동한다. 아침나절이라 더욱 그렇다. 흘러가는 흰 구름이 산새들과 친구하자며 낮게 드리운다. 바람이 그들을 맺어주고 있다.


그래서 지리(智異)의 숲은 정감이 넘친다. 여름 숲은 초록으로 다가와 어머니 품처럼 우리를 품어준다. 새치롬한 여린 잎이 엊그제였는데 신갈, 떡갈, 졸참나무 잎에는 초록의 윤기가 농염하기조차 하다. 가을 사과가 붉게 농익듯이 여름 숲은 진초록으로 농염함을 드러낸다. 농염한 것은 붉은 색만이 아니다. 빨주노초파남보, 색깔마다 그 나름의 절정이 곧 농염함이 아닐까?

 

고목은 쓰러져도 새순은 돋는다

 

뻥 뚫린 암벽을 통과하니 간담이 서늘하다

 

만물상이 이러할까?

 

음양수 표지목(사진 몇 장은 차마 공개 못한다 ㅋㅋㅋ, 벌금 xx만원)

 

음수(陰水)와 양수(陽水)가 모여 음양수(陰陽水)

 

음양수(陰陽水)의 돌 제단 

세석산장, 산상의 호텔같지 않나요?

 

세석고원의 야생화(1)

 

 세석고원의 야생화(2)

 

세석고원의 야생화(3)

 

 세석고원의 야생화(4)

 

 세석고원의 야생화(5)

 

 세석고원의 야생화(6)

 

 세석고원의 야생화(7)

 

 

(3) 영신봉에 엎드려 절하다

 

영신봉(1651m)에 선다. 지난 6개월간의 열 한차례(11회)의 산행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그 종점에 지금 선 것이다. 낙남의 끝이다. 아니 새로운 시작이다. 더 갈 길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해놓은 길의 끝일뿐이다. 산 정상에 서면 하늘과 땅이 하나로 맞닿아 있다. 둘의 끝점이 하나로 만난다. 그래서 하늘과 땅은 둘이 아니라 하나로 다가선다.

 

어느 기자가 말하기를 "산은 평탄한 대지에 대한 반역이요, 등산은 중력에 대한 일종의 저항이다." 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 반역이나 저항을 꿈꾸며 산에 오르지 않았다. 물울 거슬러 힘겹게 산정에 오르지만 '상선유수(上善流水)'의 가르침대로 흐르는 물을 따라 세상으로 돌아간다. 등산과 하산이 하나의 행위인 것이다. 이것이 곧 자연에 대한 순응이다.

 

바로 그 자연에 대한 순응이 우리들이 낙남종주를 무탈하게 마칠 수 있게 했으리라. 조촐하게 산신제(山神祭)를 지낸다. 범여 님이 정성스레 준비한 제물(祭物)을 놓고 제주(祭酒)를 따른다. 그리고 엎드려 절한다. "그동안 저희들이 안전하게 산행할 수 있게 지켜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저희들이 가는 길을 굽어 살펴주소서."

 

영신봉(1651m) 표지목

 

영신봉 정상의 세 사람(성원, 오리, 월파)

 

영신봉의 스틱 세러모니, 더 갈 곳이 없다(X)는 의미일까?

 

 종산제(終山祭), 고생한 배낭도 절 받아야지

사과와 떡, 포, 제주(祭酒)에 향(香)을 피우고 준비완료(범여 님의 정성이다)

 

 

나도 제주(祭酒)를 정성스레 따른다

 

제주(祭酒) 따르는 모습, 이쪽에서도 찰칵

 

산신령이시여, 무사한 낙남 종주에 감사하나이다

다음에 이어질 산행에도 굽어 살피소서

 

 

(4) 백무동 길이 새롭더라

 

영신봉에서 세석산장을 거쳐 백무동으로 하산한다. 백무동 내리막길로 접어들기 직전에 문득 뒤를 돌아본다. 넓은 평원의 야트막한 숲속에 별천지 하나가 펼쳐진다. 산장이 아니라 숲속의 별장처럼 보인다. 언제나 사람들로 법석이던 산장이 아니라 고요한 숲속에 은거한 아름다운 별장이 눈앞에 펼쳐진다. 돌아서다 다시 한 번 카메라에 그 모습을 담는다. 산을 내려가는 아쉬움 탓인가?

 

백무동 하산 길 초입은 그 경사가 가파르다. 그러나 길은 잘 정비되어 있다. 군데군데 로프와 계단도 설치되어 있고. 이 길로의 하산이 이번에 세 번째인데 그동안 가지고 있던 선입견이 사라진다. 물론 아직도 가파르고 힘들지만 예전에 고생했던 기억이 더 강렬하다. 아니면 낙남정맥을 마치고 홀가분하고 뿌듯한 기분으로 걷는  내 마음 탓인지도 모르겠다.

 

이어지는 한신계곡의 폭포와 수없는 소(沼)와 담(潭), 오늘따라 더욱 환상이다. 백무동 도착 약속시간에 아랑곳없이 두 번씩이나 탁족(濯足)과 탁신(濯身)을 즐긴다. 게다가 카메라에 담기는 빛의 오묘함이란! 마음의 여유로움이란 이렇게 기쁨과 환희를 스스로에게 안겨주는 것을 왜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일까? 한동안 한신계곡의 환상에 젖어 있을 것이다.

영신봉에서 잠시 촛대봉의 눈부심을 벗하다

 

아늑한 세석산장, 아니 숲속의 별장이다

 

다시 돌아본 숲속의 별장, 다시 오리라

 

물과 이끼와 바위의 환상적 동거(1)

 

물과 이끼와 바위의 환상적 동거(2)

 

 물과 이끼와 바위의 환상적 동거(3)

 

눈으로 귀로 마음으로 담았다

 

위보다 아래가 멋진 세상

 

 낙남정맥 완주 기념, 꽃다발이 쑥스러워

 

(5) 낙남정맥을 반추하다

 

6개월간 걸어온 낙남정맥의 종점에 섰다. 마음을 정하고 낙남에 들어 단 한 번의 주춤거림도 없이 끝까지 마루금을 이어왔다. 백두대간이나 낙동정맥을 할 때와 달리 낙남은 마음속에 몇 가지 바람을 갖고 시작한 산행이었다. 영신봉에 서서 그 바람을 잠시 반추해본다.

 

우선 산보다 산 아랫마을에 많은 관심을 두며 마루금을 걸었다. 낙남의 산은 대체로 그 높이가 낮아 사람 사는 세상이 멀지 않다. 그 산하에서 산과 사람이 올망졸망 어울리는 모습을 살피고 싶었다. 그래서 마루금의 풍경보다 아랫마을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려 했다. 그 속에서 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싶었다. 고향의 산하를 걸으며 만년(晩年)의 삶을 그려보았다. 의미 있는 시도였다.

 

다음으로 낙남을 중심으로 한 고대사의 흔적, 특히 가야국의 역사에 관심을 두고 걸었다. 김해의 대가야, 함안의 아라가야, 고성의 소가야 등 가야국에 대한 유흔을 살피려 했다. 한정된 여건으로 비록 그 과정이 겉핥기식으로 지나간 점이 없지 않으나, 마음속의 생각만으로도 시도하지 않은 것보다 나은 일이었다. 인문지리 탐구의 길은 달리 열려 있지 싶다.

 

그리고 산을 오가는 방법론에 대한 그간의 논란을 잠재우고, 몸은 맡기되 자유롭고 얽매이지 않은 생각의 공간을 확보하려 했다. 외부 산악회의 정해진 운영에 충실히 따르며, 스스로 낙남을 시작할 때의 마음속 바람을 충족시키려 애썼다. <좋은 사람들>과의 동반 산행은 그 본래 목표에 더욱 충실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더 가까이 다가서지 못한 스스로를 탓할 뿐이다. 백두 대장을 비롯한 여러분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낙남의 마루금을 앞뒤에서 끌어주고 밀어주며 동고동락한 강마의 동지들(성원,명기,정산,길원,지용,성호,은영,제용과 그 아들 재훈)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또한 오언에게도 안타까움을 전하며 쾌차하여 다음의 산행 길에 동참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모두 감사합니다. 밝은 모습으로 다른 산줄기에서 만납시다.

 

 

2010. 8. 25.

낙남의 마루금을 내려서며

월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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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과 시작은 서로 다르지 않다. 하나의 고리로 묶어져 있는 것이다.

밤이 깊어지면 새벽이 가까이 오듯, 한 산자락의 끝은 또 다른 산자락에 맞닿아 있다.

그래서 낙남의 끝은 또 다른 산자락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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