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남정맥 09] 사는 게 별거냐?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1. 산행 개요
1) 일 시 : 2010년 7월 18일(일) 무박산행
2) 구 간 : 낙남정맥 제 9구간(유수교-태봉산-딱밭골재-원전고개-배토재) 도상 27.3Km(실거리 29.7Km), 누적 207.1/239.9Km
3) 시 간 : 9시간 35분(식사, 휴식 60분 포함)
4) 참 가 : 좋은 사람들 35인 (9인의 동행자 : 오리, 보초, 월파, 친돌, 졸라, 은종, 포도, 이튼, 리오)
2. 산행 후기
(1) 지리산을 향한 숨고르기
헌걸차게 지리산으로 들기에 앞서 오늘은 잠시 운기조식(運氣調息)하는 산행이다. 흐트러진 기(氣)를 모으고 호흡을 가다듬는 구간이랄까?
영신봉 오르는 길에 기진맥진해서야 되겠는가. 페이스 조절을 잘 해야 하리라. 누군가 이렇게 권했다. " 마음에 기(氣)를 넣어라. 천천히 숨(息)을 고르고 노래(曲)에 힘을 빼라"고. 예? 어떻게 하라고? 룰루랄라 콧노래 흥얼거리며 걸으면 될까요?
새벽의 유수교에 가화강의 물 흐르는 소리 제법이다. 장맛비로 진양호 수위가 높아져 사천만으로 방류가 시작된 것이리라. 살구나무 단지를 지난다. 어둠 속에 길찾기가 만만하지 않다. 도리(桃李)와 봄을 다투던 행화(杏花, 살구꽃)는 벌써 샛노란 열매되어 땅에 떨어졌다. 걷는 길에 살구의 여향(餘香)이 느껴진다. 철철 넘치는 것보다 살짝 풍기는 그 미향(微香)에서 오히려 넉넉함을 느낀다.
그런 삶을 꿈꾸며 2번 국도를 건너 태봉산(190.2m)으로 향한다. 그런데 초입부터 길을 놓치고 길 없는 숲을 뚫고 산마루를 향해 개척 산행을 시작한다. 가시덤불을 헤치며 오로지 능선을 향해 수직상승을 시도한다. 좀 미련스럽지만 색다른 묘미가 있다. 간신히 능선에 올라 태봉산을 지나 숲길을 걷는다. 숲은 습하나 새벽의 청량함이 있어 기분은 상쾌하다.
희붐하게 날이 밝아온다. 진양호 너머 진주 수곡(水谷)의 산하가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수곡은 남강댐 건설로 진양호가 생기면서 많은 지역이 수몰되었다. 비록 그 산하는 물에 잠겼어도 그곳에서 움튼 근세사의 작은 용트림 하나는 시대의 변화와 함께 조금씩 수면 위로 떠올랐다. 수곡 장터를 중심으로 봉기했던 '진주민란(民亂)'의 재평가다.
익어 떨어진 살구의 여향(餘香)이 새벽 산객을 맞는다
(2) 뜻도 모르고 부르던 노래
이걸이 저걸이 갓걸이 / 진주망건 또망건 / 짝바리 휘양근 / 도르메 줌치 장독간
머구밭에 덕서리 / 칠팔월에 무서리 / 동지섣달 대서리
1862년 진주민란(우리 세대는 그렇게 배웠다) 당시의 노래다. 요즘의 운동권 가요랄까? 봉건사회의 부패를 은유한 그 노래는 150여 년 동안 특유의 진주 사투리로 구전되고 있다. 그 의미는 이렇다. "농민은 양반의 갓 거는 갓걸이에 불과한데, 양반도 많고 탐관오리도 많구나, 농민의 삶은 양반 허리춤에 달렸는데, 온갖 세금이 덕지덕지하니 한여름 무서리처럼 무섭구나. 동지섣달 하얀 서리같이 깨끗한 세상이었으면."
동학혁명의 단초를 제공한 진주민란은 몰락한 양반과 피폐한 농민들이 함께 궐기한 민초들의 함성이었다. 조세제도인 삼정(전정, 군정, 환곡)의 문란으로 양반중심의 봉건사회가 붕괴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농민봉기였다. 그러나, 어렸을 때에는 이런 내막은 모르고, "이걸이 저걸이 갓걸이 ....." 하며 구성진 가락에 맞춰 개구쟁이 놀이에 바빴다.
그때는 아이들의 유희(遊戱)에 어른들의 이념(理念)이 스며들지 않았다. 유희와 이념이 서로 모호하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그때의 진주민란은 농민항쟁으로 새로운 관점에서 재평가되고 있다. 당시는 봉건왕조에 반기를 든 일종의 반역이었지만, 이제 피지배계층의 생존권 투쟁이라는 관점에서 재평가를 시도하는 것이다. 역사는 흐른다.
가르마 탄 소녀가 멍석에 앉아 망건을 짜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 연합뉴스>
(3) 알바 알바, 그리고 딱밭골재
태봉산을 지나며 선두그룹을 따라 걷는다. 이 일이 오늘 고생의 전주곡이 될 줄 그때는 몰랐었다. 옥녀봉 방향으로 직진한 선두그룹이 진양호에 이르기까지 알바를 하고, 되돌아와 앞서 걷던 길에서 혼자 다시 알바를 한다. 가까스로 길을 찾았을 때에는 나 홀로 미아가 되었다. 2번 국도(SK주유소)를 건너 혼자 숲길로 접어든다. 일행들에게 전화했더니 벌써 나동공원묘지를 지나고 있다.
길을 서두른다. 이마의 땀은 비 오듯 쏟아지고 마음은 바쁘다. 숲 속에서 홀로 토마토 드시던 분(강촌 님?), 감사합니다. 꿀맛이었어요. 묵묵히 나동의 산정묘지를 지난다. 망자도 산객도 말이 없다. 선들재를 지나 오르는 숲길에서 갑자기 길이 끊겨 선들재로 후진했다가 다시 그 길을 오른다. 잡목 우거진 숲을 뚫고 숲속의 외딴집을 통과하여 산마루에 서니 칡넝쿨이 숲을 뒤덮었다. 내 몸을 꽁꽁 묶는 느낌이다.
새벽부터 4시간 남짓 걸었다. 제법 허기(虛氣)를 느낀다. 혼자서 간식을 먹을 엄두를 못 내고 계속 길을 서두른다. 급경사를 달려 딱밭골재에 이르니 일행들이 기다리다가 반갑게 맞아준다. 휴! 허기보다 땀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 고갯마루의 농가에서 수도꼭지를 틀어 등목을 하니 날아갈 것 같다. 준비한 볶음밥을 얼음물에 말아 후딱 삼키니 그때서야 정신이 든다.
여기가 딱밭골재라고! 딱밭골'은 '닥나무 밭 골짜기'라는 뜻의 '닥밭골'에서 유래한 것일 게다. 딱밭골이란 지명이 곳곳에 있다. 닥나무의 껍질이 한지(韓紙)의 원료로 쓰였으니, 나라에서 닥나무 밭을 일구게 했을 게다. 그런데, 딱밭골재 주변에는 온통 감나무 밭이다. 딱밭골에 닥나무는 없고 감나무만 무성하니 무상(無常)한 세월이다. 의식주(衣食住)의 근간이 변하는 모습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딱밭골재의 감나무, 씨알이 제법 굵다
딱밭골재의 감나무밭에 선 리오(재훈)
닥나무는 그 꽃술도 예쁘다. 암꽃 수꽃이 한 나무에 핀다.
(*) 닥나무 - 닥나무 열매는 성질이 차고 맛이 달아 허기(虛氣)를 보하는 약재로 쓰인다. 그런데 뽕나무와 닮은꼴이라 그 구분이 만만치 않다.
그 열매나 잎이 서로 비슷하다. 그 열매를 먹어봐도 달콤한 맛이 엇비슷해 서로 헷갈린다. 최근 닥나무 뿌리에서 미백과 항암 물질이 발견되어 미용 및 의약품 원료로 각광을 받아 다시 닥나무 재배면적이 늘고 있다. 닥나무의 삶도 유전(流轉)하는 것일까?
(4) 소처럼 느리게, 구름처럼 한가롭게
다시 걷는다. 임도와 병행한다. 시원한 바람을 쐬며 사천만을 조망하다가 234.9봉에 오른다. 이름은 없으나 중요한 분기점(分岐點)이다. 사천만을 향해 잠시 서남진하던 마루금이 다시 방향을 바꾸어 지리산을 향해 서북진하는 곳이다. 15Km 가까이 걸었으니 하프라인을 통과한 셈이다. 그런데, 알바하면서 오버페이스한 후유증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다.
천천히 걷기로 한다. 마음의 고삐를 풀고 유유자적 걷는다. 스스로를 돌아본다. 어디에 마음을 두고 걸을까? 무념무상(無念無想)인가, 무장무애(無障無碍)인가? 유정(有情)의 산새와 미물인가? 무정(無情)의 바람과 숲인가? 느릿느릿 걸으며 하늘의 구름을 본다. 참으로 여유로운 모습이다. 우보운행(牛步雲行)이라! 소처럼 느리게, 구름처럼 한가롭게 걸으라는 전갈이다.
53번 송전탑을 지나자 마루금이 허리를 낮추기 시작한다. 오늘 세 번째 건너게 될 2번 국도인 원전고개가 멀지 않음을 직감한다. 숲 사이로 반짝 비친 햇살이 따갑다. 문득 울창한 대나무 숲이 그립다. 정신이 번쩍 들게 죽비 한 방이면 더할 나위 없겠다, 여기 인근에 다솔사(多率寺)가 있지 않은가. 멀리 있어도 다솔사(多率寺)의 향기가 느껴진다.
15년쯤 전이었을까? 진주에서 묵던 어느 새벽에 차를 몰아 다솔사로 갔었다. 그 울창한 소나무 숲, 다향(茶香)이 은은한 작설차밭과 정갈한 샘이 기억에 생생하다. 늘 그곳에 가면 세심(洗心)이 가능하리라 믿었다.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마음까지 깨끗이 씻을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 생각하며 원전고개 앞 오랑동 마을 앞을 흐르는 수로(水路)에서 옷 입은 채 전신 샤워를 하니 몸과 마음이 날아갈 듯하다.
대나무 숲, 죽비 한 방이면 정신이 번쩍 들겠다
(5) 밤, 밤, 밤, 밤나무 밭에서
이제 산행은 그 끝점을 향하고 있다. 원전고개의 아이스바와 냉막걸리의 효험이 서서히 떨어지고 있다. 산행 초반의 알바 후유증이 몸 깊숙이 찾아든다. 걱정이 되는지 성원 형이 내 뒤에서 보초(?)를 선다. 임도와 숲길을 번갈아 걷는다. 밤, 밤, 밤나무 밭의 연속이다. 일부러 우스개 퀴즈를 내어본다. 하나 풀어볼까? 다음에서 말하는 단어는 우리말로 뭐라고 할까요? 힌트? 글쎄, 한 글자라는 정도?
(1)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된 이란(Iran)의 유적 도시, 2003년 대지진으로 새삼 알려진 도시 (Bam)
(2) 상상의 나라 '오즈(Oz)의 마법사'를 쓴 동화 작가 (Baum)
(3) 폭탄 또는 폭격을 뜻하는 영어 단어 (Bomb)
(4) 태양이 지평면 아래에 있을 때의 시간 (夜), ......... 마지막으로 .............ㅎㅎㅎ...................(5) 밤나무의 열매 (栗)
정답은? 눈치챘나요? 밤, 밤, 밤이다. 밤(Bam, Baum, Bomb)도 아니요, 밤(夜)도 아닌 밤(栗)이다. 바로 그 밤뿐인 밤나무 밭을 걷는다. 해발 100m ~ 250m의 야산은 온통 밤나무 밭이다. 곳곳이 율산(栗山)이요, 율곡(栗谷)이요, 율전(栗田)이다. 낙남의 표지기 없어도 그 밤나무 밭을 요리조리 헤집고 걷는다. 가을에 왔으면 더욱 풍성하겠다. 생각만 해도 절로 마음이 넉넉해진다.
이제 막 영글기 시작하는 밤, 그래서 풋풋하다
(6) 사는 게 별거냐?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백토재에 도착한다. 먼저 온 일행들이 기다리다 반겨준다. 샤워하고 인근 음식점에서 삼계탕에 반주 한 잔하고 서울로 향한다. 단성IC로 가는 길에 지리산 주능선을 살펴본다. 다음 두 구간은 지리산이다. 9차의 낙남여행을 하며 입산 준비를 끝내고 드디어 지리산으로 드는 것이다. 그 생각만으로도 벌써 마음이 들뜬다.
왜 그런가. 굳이 이유를 따질 필요도 없다. 지리산은 내 마음의 고향이요, 어머님의 품같은 존재이지 않은가. 마음의 고향이란 바로 마음의 의지처다. 의지처는 어떤 것인가. 그 '의지처'를 의자에 비유한 시인이 있다. 이정록이다. 그의 시 <의자>를 읊조리다 보면 시인의 어머니가 나의 어머니인 양 느껴진다.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세상사는 게 별거던가. 서로에게 <의자>가 되어주는 일이라는 어머님의 말씀이 아들의 시(詩)가 되었다. 어머니가 시인인 셈이다. 그 어머니는 아들의 <의자>가 되고, 아들은 시를 쓰며 또 다른 <의자>가 된다. 서로 <의자>가 되는 삶, 얼마나 아름다운 삶인가. 나의 삶도 어머님의 <의자>가 되어야 하는데...... 넓고, 편안한 의자가 되어야 한다.
장독대, 가족의 의자였지 싶다
2010년 7월 19일 아침에
낙남에서 돌아와
월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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