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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정맥 09] 봄이 오는 소리 들으며

月波 2011. 3. 13. 21:15

 

[호남정맥 09] 봄이 오는 소리 들으며

 

 

1. 산행개요

 

   (1) 산행일시 : 2011년 3월 13일(일), 무박산행

   (2) 산행구간 : 오정자재-강천산(왕자봉)-금성산성(북문,운대봉,동문)-시루봉-광덕산(564m)-뫼봉(332m)-덕진봉(384m)-방축리 

   (3) 산행거리 : 16.4 Km(도상거리)

   (4) 산행시간 : 7시간 50분

   (5) 산행참가 : 좋은 사람들 27명 합동산행

                        - 9인의 동행자 : 성원,오리,월파,정산,오언,지용,은영,성호,제용


2. 산행후기 

  
 (1)  사나이는 매의 기상이 있어야

 

어둠 속의 오정자재에는 코끝을 자극하는 새벽향기(?) 짙었습니다. 아마 인근 염소농장이 범인(?)일 겁니다. 산길에 접어들자 이내 숲향이 반깁니다. 521.9봉에서 목을 축이고 길을 재촉합니다. 험난한 암봉을 오르며 밧줄에 매달립니다. 붙잡고 의지할 수 있음이 힘이 됩니다. 팍팍한 삶에도 기댈 수 있는 언덕이 있어 위안이 되지요. 강천산(왕자봉)을 지나 걷는 호젓한 숲길에서 해맞이를 했습니다.   

 

북문에 오르니 추월산과 담양호가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난 2월 추월산 산행에 중학생 리오(재훈)가 아빠와 함께 동행했었지요. 참 보기 좋은 부자(父子)의 모습이었습니다. 산에서 대장부의 기개를 키워주려는 아버지의 뜻이 느껴졌지요. 마루금을 걷는 산행은 그런 담대한 포부를 키우기에 안성맞춤입니다. 다산(茶山) 정약용이 아들에게 썼던 편지 얘기를 리오 아빠(제용)와 나누었습니다.  

 

 "사나이 가슴속에는 하늘을 박차고 오를 수 있는 한 마리 송골매의 기상이 있어야 한다. 눈은 천지(乾坤)를 작게 보고, 손바닥은 우주(宇宙)를 가볍게 보아야 한다."  (*) 男子漢胸中 常有一副秋隼騰霄之氣 眼小乾坤 掌輕宇宙 斯可已也   - 여유당 전서, 贐學游家誡 中에서

 

천지와 우주를 가슴에 품는 대장부의 기백을 갖추라는 가르침입니다. 한때의 좌절이나 작은 성취에 일희일비 말고, 창공을 날아오르는 매처럼 늠름하게 세상을 살아가라는 전갈이지요. 득의(得意)에 그 사람의 그릇을 짐작하고, 시련(試練)에 그 사람의 참모습이 드러난다고 했습니다. 담대한 기상을 품으라고 둘째 아들 학유(學游)에게 보내는 다산의 글이 엄(嚴)하면서도 다정(多情)합니다.

 

내 아들을 생각합니다. 재작년 초여름 군입대를 앞두고 함께 했던 지리산 종주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금년 6월에 그 녀석 제대하면 제 키만큼 큰 배낭 짊어지게 하고 다시 지리산에 들어야겠습니다. 이번에도 그 녀석이 흔쾌히 따라 나설지? 애비 마음과 자식 생각이 늘 여일(如一)한 것은 아니니 단지 기대할 뿐입니다.     (**) 아들과 한 지리산 종주기 http://blog.daum.net/moonwave/16153678 

 

북문에서 본 담양호와 추월산

 

첩첩이 새벽안개 핀 저 호남의 산을 보라

 

겨울나무 너머로 아침 빛이 스미고 세상은 잠을 깹니다

 

운대봉에서 환호하는 그대들이여, 등에 아침햇살 듬뿍 받으소서

 

 

(2) 봄, 봄, 세상의 봄

 

북문에서 아침 먹으며 너무 오래 지체한 것은 아닐까? 서둘러 산성을 따라 걷습니다. 그러나 갈수록 마음은 느긋해집니다. 운대봉에 올라 손들어 환호하는 일행들의 모습이 역광에 찬연히 빛납니다. 동문 가는 길에는 노송 한 그루가 반겨줍니다. 긴 세월에 사람 손타지 않고 버티고 선 그 모습이 의연합니다. 저렇게 나이 들고 싶습니다. 시루봉에 들러 조망을 즐긴 값(代價)은 광덕산을 오르며 굵은 땀으로 치루었습니다.

 

오랫동안 광덕산에서 전후좌우 조망을 즐겼습니다. 덕진봉으로 향하는 능선에는 봄 바람이 스쳤습니다. 미세하지만 봄기운에 초목(草木)이 흔들렸습니다. 내 마음까지 바람에 흔들릴까 조심스러웠습니다. 늘 영혼의 자유를 꿈꾸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부랑(浮浪)의 영혼을 지향하지는 않습니다. 스스로 경계(警戒)합니다. 봄바람이 부는 날에는 마음에 풍경추(風磬錘)라도 하나 달아야겠습니다.

 

지난 주 상하이(上海) 외교가와 서울 연예가에서는 묘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온갖 성추문(性醜聞)이 난무했습니다. 들꽃에 모인 벌 나비의 형국이었을까요? 그런데 들꽃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핍니다. 이 시대의 추문도 들꽃처럼 만연하다면 아찔한 일입니다. 행(幸)인지 불행(不幸)인지 일본발 지진과 쓰나미가 그 추한 바람을 잠재웠습니다. 벌 나비 없는 이른 봄에 피는 꽃도 아름다움을 다툴까요?

 

금과동산으로 내려서는 밭길에는 봄내음이 코끝을 스쳤습니다. 밭에 냉이가 돋아나고 있었습니다. 가지에 물오르는 소리 들리는 듯했습니다. 눈 덮인 산에서 봄을 기다렸던 일이 엊그제인데 말입니다. 생명이란 어김이 없지요. 초목(草木)이 봄을 먼저 알립니다. 꽃망울 터뜨리는 날이 멀지 않았겠지요. 산수유에 노란 꽃눈 맺히고 매화가지에 하얀 꽃이 눈 내리듯 할 겁니다. 

 

세상살이의 봄도 기다려봅니다. 움트는 새싹처럼 맑고 깨끗한 세상을 꿈꿔봅니다. 거짓과 음모, 추한 일이 줄고 아름다움이 꽃처럼 번지는 날이 진정 세상의 봄이 아닐까요? 더 밝고 따뜻한 이야기가 뉴스 채널에 넘쳐으면 합니다. 저 혼자만의 바람일까요? 그 기대로 순창고추장 몇통 사들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고추장보다 막걸리가 기억에 남는 봄맞이였습니다.

 

첩첩의 산 그리메, 세상은 아스라하다

 

마지막 봉우리 덕진봉, 배낭 내려놓고 솔향을 쐰다

 

덕진봉의 함박웃음 (사진 : 정산 카메라)

 

우리 모두 고추장보다 막걸리에 넋을 팔았나요?

 

다음에 가도 저 장독들이 반길 것입니다

 

 

2011년 3월 13일(일)

호남의 산에서 돌아와

월파(月波, 달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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