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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정맥 18] 일곱 잔 차(茶)의 노래를 부르며

月波 2011. 7. 25. 06:30

 


[호남정맥 18] 일곱 잔 차(茶)의 노래를 부르며

   

1. 산행개요

 

   (1) 산행일시 : 2011년 7월 24일(일), 무박산행

   (2) 산행구간 : 한재 삼수마을-활성산-봇재-봉화산-그럭재(기러기재)-대룡산-오도재

   (3) 산행거리 : 18.2Km(도상거리)

   (4) 산행시간 : 7시간 25분

   (5) 산행참가 : 좋은 사람들 23명 합동산행

                        - 7인의 동행자 : 성원,월파,은영,지용,성호,제용, 리오

 

2. 산행후기

 

(1) 찻잎 하나 따서 입에 물고

 
한재의 삼수마을에서 활성산(465m)을 오른다. 곳곳에 차밭이다. 우리나라 차(茶)의 60%가 보성에서 재배된다니 그럴 만도하다. 원래 차는 지리산 화개동천(花開洞川)의 자생차가 으뜸이다. 보성은 일부 자생차를 근간으로 근래에 대규모 차밭을 일군 곳이다. 함초롬히 새벽이슬 젖은 찻잎 하나 입에 물고 다향(茶香)에 젖어 걷는다. 
 
차(茶)밭이 새벽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초의선사(艸衣禪師)는 "아침안개 젖은 찻잎의 싹이 마치 파랑새의 혀같다"고 했다. 작설차(雀舌茶)의 작설(雀舌) 또한 참새의 혀이니, 여린 찻잎은 과히 새의 혀와 닮은꼴인가보다. 차는 '총명함을 사방으로 통달시켜 막힘이 없게 한다'고 했으니, 차가 정신을 맑게하는 것일 게다.

 

개인적으로는 15년 이상 커피를 멀리하고 녹차만 마시는데, 총명함이야 접어두더라도 체질이 변화되어 콜레스테롤, 지방간 등 소위 성인병을 다스리는데 상당한 효험이 있다. 특히 곡우(穀雨) 전의 어린 찻잎을 따서 만든 우전(雨前) 차를 마시는 날에는 그 향의 그윽함에 매료되어 만사가 너그러워지니 마음의 보약이다.

 

봇재다원으로 내려서는데 아침안개 환상이다. 이태백이 나이 팔십의 진공(眞公)에게 한 얘기를 떠올린다. '진공의 얼굴이 복숭아 같다'면서, '맑은 차의 향기에 노화가 멈추고 동심(童心)이 되살아난 것'이라 했다. 차(茶)는 마른 나무에 싹이 나게 하는 신비한 영험이 있는 것인가? 팔십 노인의 얼굴이 복숭아 빛으로 돌아온다면, 이거야말로 불로초가 아닌가!

 

 

 

 

 

 

 

(2)  '일곱 잔의 차(茶) 노래'를 부르며

  

    옥화차 한 잔 기울이니 겨드랑이에 바람이 일고        一傾玉花風生腋 (일경옥화풍생액)

    몸은 가벼워 이미 날아오르는 듯 맑은 경지라네        身輕己涉上淸境 (신경기섭상청경)

    밝은 달이 촛불이 되고 벗이 되어주니                     明月爲燭兼爲友 (명월위촉겸위우)

    흰 구름은 자리 펴고 병풍이 되어주네                     白雲鋪席因作屛 (백운포석인작병)

 

초의선사의 동다송(東茶頌) 16송(頌)이다. '차를 마시니 겨드랑이에서 바람이 인다'고 한 첫 구절이 당 나라 노동(盧同)이 쓴 칠완다가(七碗茶歌)를 연상시킨다.(*) "겨드랑이에서 솔솔 맑은 바람이 일어나는" 것이 일곱 잔째의 차라고 했지, 아마? 그 일곱 잔의 차(茶) 노래를 부르며 제일다원 울타리를 지나 봉화산(475m)가는 숲길을 걷는다.

 

차(茶) 첫 잔에 입과 목을 부드럽게 적시고, 둘째 잔에 고독과 번민이 사라지고, 셋째 잔에 메말랐던 창자가 풀어지고, 넷째 잔에 가볍게 땀이 나며 불평이 사라지고, 다섯째 잔에 기골이 맑아지고, 여섯째 잔에 신선과 영통하고, 일곱째 잔은 마시기도 전에 겨드랑이에서 솔솔 맑은 바람이 일어나네."  그 맑은 바람을 나도 한 번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봉화산에는 아침안개 짙어 만상이 아스라하다. 봉수대에서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내려선 풍치재에는 근사한(?) 남근석(男根石)이 반긴다. 몇년 전의 한북정맥 운악산 산행을 떠올린다. 그 때의 에피소드 하나. 운악산의 남근석을 보며 음식을 먹다가 체한 여자산객이, 다음 고개에 도착하자 구토가 나왔다. 그녀 왈, "운악산 남근석은 진짜 대단하네. 쳐다보기만 했는데, 벌써 입덧을 시작하네." ㅋㅋㅋ

 

오늘 풍치재의 남근석을 보고 입덧한 사람 없었나? 그러고 보니 여자 산행객은 두 사람 뿐이었네. ㅎㅎㅎ 그럭재에는 4차선 국도가 지난다. 목포에서 부산까지 국토의 남단을 잇는 저 2번 국도를 작년 여름 낙남정맥 길에서도 자주 건넜었지. 오늘도 무단횡단이다.

 

 

 

 

 

 

 

(3) 고개에는 애절한 역사가 있고
 
대룡산(440m)으로 향한다. 그 정상은 마루금에서 약간 벗어나 있지만 몇몇이 다녀오기로 한다. 가파른 오르막을 치고오른다. 대룡산에는 이것저것 치장을 잔뜩 해놓았다. 비룡(飛龍)의 혈에 무덤을 쓴 후손들의 거창한 비석도 있다. 작은 비석 하나로 족하다 했거늘! 산은 묵묵한데 사람은 갈수록 채색(彩色)에 매달리는구나. 이제 산행은 종반이다. 다소의 오르내림이 있지만 편안한 숲길이다. 
 
오랜만에 산행에 동참한 '리오'와 얘기를 하며 걷다보니 오도재가 반긴다. 보성군 겸백면과 득량면을 연결하는 작은 고개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을 도와 큰 공을 세웠던 최대성 장군이, 정유재란으로 이 근처에서 적장을 생포하고도 산골짜기에 잠복했던 복병의 유탄에 장렬히 순절했던 곳이란다. 뒤 따르던 두 아들도 적을 섬멸하다 전사하니, 애재(哀哉)라!
 
충의(忠義)로 뭉친 3부자가 순절한 곳을 후인들이 '군머리(軍頭)'라고 불렀다는데, 오도재 남쪽에 군머리 마을이 있다. 오도재 북쪽의 겸백면 사곡리 초암산(草庵山, 576m) 기슭에는 최대성 장군의 선영이 있으니, 늦은 봄에 초암산의 철쭉이 핏빛으로 붉게 피는 것은 최 장군 부자의 넋을 기리는 귀촉도(歸蜀道)의 애달픈 울음인가?
 
계곡에서 씻고 논두렁을 걸으며 '고개'에 대해 반추한다. 고개란 어느 길로 걷느냐에 따라 그 위상이 다르다. 신작로를 따라 오르면 가장 높은 곳이 고개요, 마루금을 따라 걸으면 가장 낮은 곳이 고개다. 그런데 어느 길로 걸어도 고개의 절대고도는 같지 않은가! 이것이 고개의 본래 면목이다. 그 본질은 변함이 없는데 사람의 마음이 '높다, 낮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 삶의 고개도 잘 살펴볼 일이다.  

 

 

 

 

 


(4) 벌교를 그냥 지나칠 수 없지
 

벌교(筏橋)라! 참꼬막의 동네다. 홍교(虹橋), 조정래와 태백산맥, 그 속의 현부자네, 염상진과 하대치, 김범우와 심재모, 소화(素花)와 이지숙, 염상구와 외서댁 ...... 호남정맥 산행에서 오늘이 그곳을 둘러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지. 일행들에게 슬슬 바람을 잡는다. 꼬막도 먹고 홍교도 건너보고, 도랑치고 가재 잡자는 생각이다. 버스는 '군머리(軍頭)'를 지나 벌교로 향한다.

 

그 오래된 다리, 벌교의 홍교는 먼발치서 바라보기만 했다. 홍교(虹橋)란 이름 그대로 무지개다리다. 사찰의 입구에서 더러 홍교를 볼 수 있다. 홍예교라고도 한다. 경주 불국사에도 홍예교가 있고 순천 선암사의 승선교도 홍교이다. 다리는 양쪽을 연결하는 동시에 둘을 나누는 곳이다. 사찰의 홍교는 속세의 미진(微塵)을 털고 부처님 앞에 나아가는 통로인 동시에, 속계와 불계(佛界)를 나누는 경계인 것이다. 

  

꼬막을 먹으러 들른 맛집, '태백산맥' 바로 앞에 소화(昭和)다리(부용교)가 있다. 저 다리의 애환이 적지 않았지. 양쪽의 백성을 이어주기도 하고, 이념의 잣대로 서로를 편가르기도 했지. 조정래는 증언한다. "소화다리 아래 갯물에고 갯바닥에고 시체가 질펀허니 널렸는디 아이고메 인자 징혀서 더 못 보겠구만이라. 사람 쥑이는 거 날이 날마동 보자니께 환장 허겄구먼요." 벌교의 슬픔이 우리 현대사의 아픔이다.

 

그 생각에 꼬막이 제대로 목에 넘어가지 않더라. 소주만 벌컥벌컥 넘어가더라. 서울로 향하는 길에는 배롱나무 붉은 꽃이 폭죽처럼 피어 그날의 아픔을 토하더라. 차창을 바라보며, 이해인 수녀의 '여름편지'를 읊조리다 잠이 든다. "산에 오르지 않아도/ 신록의 숲이 마음에 들어차는/ 여름이 오면, 친구야/ 우리도 묵묵히 기도하며/ 이웃에게 그늘을 드리우는/ 한 그루의 나무가 되자고 했지?

 

 

 

 

 

 

2011년 7월 25일(월) 이른 새벽에

다향(茶香)에 젖었던 남도에서 돌아와

월파(月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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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완다가((七碗茶歌)) 

 

당나라 말 옥천자(玉泉子) 노동(盧同)이 쓴 ‘주필사맹간의기신차(走筆謝孟諫議寄新茶)’라는 다시(茶詩)에, '일곱 잔의 차'를 마시는 감상을 표현한 구절이 있다. 그래서 후인들이 그 시를 ‘칠완다가(七碗茶歌)’라고도 부른다. 그 시 중에서 '일곱 잔의 차'를 읊은 부분은 이렇다.

 

一碗喉吻潤(일완후문윤), 兩碗破孤悶(양완파고민), 三碗搜枯腸(삼완수고장) 惟有文字五千卷(유유문자오천권), 四碗發輕汗(사완발경한) 平生不平事(평생불평사) 盡向毛孔散(진향모공산), 五碗肌骨淸(오완기골청), 六碗通仙靈(육완통선령), 七碗喫不得也(칠완끽부득야) 唯覺兩腋習習淸風生(유각양액습습청풍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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