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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정맥 15] 비 내리는 숲속의 수채화

月波 2011. 6. 27. 22:38

 

[호남정맥 15] 비 내리는 숲속의 수채화

     

1. 산행개요

 

   (1) 산행일시 : 2011년 6월 26일(일), 무박산행

   (2) 산행구간 : 예재-온수산-시리산-봉화산-추동재-가위재-고비산-큰덕골재-군치산-뗏재-숫개봉-봉미산-곰치

   (3) 산행거리 : 16.2Km(도상거리)

   (4) 산행시간 : 6시간 50분(04:30 ~ 11:20)

   (5) 산행참가 : 좋은 사람들 20명 합동산행

                        - 4인의 동행자 : 성원,월파,정산,제용

 

2. 산행후기 

 

토요일 저녁 무렵 배낭을 꾸린다. 한 달에 두 번, 호남의 산으로 든 지 8개월째다. 장맛비에 태풍까지 북상한다니 아내는 내심 걱정스러운가보다. 다음에 가면 어떻겠느냐고 넌지시 묻는다. 난감하다. 빙그레 웃으며 아내의 얼굴을 쳐다본다. 마음먹으면 꼭 하는 성미를 잘 아는지라, "조심해서 잘 다녀와요."  오, 쾌재라!  "으, 응! 그럴게. 그래야지. 잘 다녀올께"

 

 

(1) 맑은 노래이고자 했을 뿐

 

새벽의 예재 옛길, 비 내리는 호남선이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약간의 바람이 분다. 산행코스를 머릿속에 그려본다. 남진(南進)하던 산줄기가 우회전하여 서진(西進)하는 구간이다. 산 이름 많기도 해라. 무려 6산 1봉에 6개의 고개다. 그러나 300m급 고개에 400m 전후의 산이니, 낮은 산이요 올망졸망한 능선이다. 시인의 노래를 부르며 봉화산(465.3m)을 오른다.

   

"그는 홀로 높은 산봉우리가 되려고 하지 않았다 / 언제나 그는 바람이고자 했다 / 풀잎 사이에서 일어나서 여울물을 거스르고 / 낮은 흙 언덕을 넘나드는 바람 / 그는 노래가 되고자 했다 / 산의 건너편에 숲처럼 어우러져 사는 이들이 듣는 / 참 맑은 노래이고자 했을 뿐이다"

  

양성우 시인의 시어詩語가 감미롭다. 그런데 시 제목이 '오해誤解'란다. 하나의 반전反轉이다. 이 시에서 '그는' 누구일까? 시인 자신인지 모른다. 홀로 산봉우리 되기보다 낮은 세상의 바람이고자 했는데, 무슨 오해였을까? 소통 부족에 대한 일침인가? 관점 차이에 대한 해명인가? 정치적 변신을 이념의 잣대로 재단하는 현실이 안타까웠을까?

 

"나의 노래가 너에게 가서 닿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 반짝이는 초록 잎이 되어 들을 건너고 산을 넘어 / 너에게 닿을 수만 있다면 / 꽃이 되고 향기가 되어 너에게 닿을 수만 있다면" 시인의 노래가 자연과 어우려졌다. 바람과 노래가 되고, 초록 잎이 되고, 꽃과 향기가 되고 ..... 시인의 감성과 세상의 오해가 부딪히는 파열음처럼, 추동재(楸洞峙)의 빗소리 더욱 커진다.

   

(*) 양성우(梁性佑, 1943년 ~  ) : 교사로 재직하던 1975년, 시 '겨울공화국'을 발표해 파면되고 저항시인으로 활동했다. 1988-1992년 13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그 후 일련의 정치적 행보 변화를 두고 논란이 있어왔다. 현재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이다.

 

예재 옛길에서 빗속에 숲으로 든다   (사진 by 백미르)

 

태풍전야의 잔잔한(?) 비바람이 분다 

 

 

(2) 비 내리는 숲속의 수채화(I)

 

고비산(高飛山, 422m)에 올라 간식을 먹으며 잠시 주변을 살핀다. 높이 나는 산이라고? 밋밋하기만 하다. 청산불견학비흔(靑山不見鶴飛痕)이라, 청산에 학이 날아간들 그 흔적이 남겠는가? 홀로 숲길을 걷는다. 바위와 나무가 부부의 연이라도 맺은 듯 하나의 몸을 이루고 있다. 무정無情과 유정有情이 어울린 조화로운 인연이다. 망개나무 덩굴도 인연의 끈으로 서로를 휘감고 있다.  

 

넓은 방화선을 따라 걷는다. 오두막이 있어 낙숫물 보며 잠시 쉬어가면 좋겠다. 아니, 그것을 바라는 것은 사치이리라. 여름 숲에서 비에 흠뻑 젖는 일은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다. 뼛속까지 스미는 비에 숲과 은밀히 교감하며 걷는다. 빗소리에 쫑긋이 귀를 열고 내면의 울림을 듣는다. 비에 숲만 젖는 게 아니라 나의 마음, 생각의 공간까지 촉촉이 젖는다.

  

빗소리, 통통 톡톡 그 한 음절이 오랜 세월이 응축된 하나의 인연처럼 느껴진다. 떨어진 빗방울은 강과 바다를 이루고, 다시 수증기로 변해 구름으로 형상화되는 긴 여정을 거치리라. 빗방울의 윤회인 것이다. 그 빗소리 굵어진다. 마음을 설레게 한다. 내리는 비는 어디에 부딪히는 가에 따라 그 음향이 달라진다고 했던가? 우리 삶의 소리도 그러하다.

 

통통 톡톡 흑흑 호호 깔깔/ 투덜투덜 재잘재잘 흥얼흥얼 중얼중얼

깡통으로 떨어지는 빗소리/ 슬레이트 지붕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창문으로 떨어지는 빗소리/

문득 나도 어느 곳에서 누구와/ 부딪히는가에 따라서/ 삶의 소리가 결정이 나고/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 권대웅, '빗소리' 중에서 -

  

고비산(高飛山), 청산불견학비흔(靑山不見鶴飛痕)이라

 

빗방울 알알이 맺힌 망개나무 

 

 방화선을 따라 걷는 길에 빗소리 통통통, 톡톡톡 

 

 

(3) 비 내리는 숲속의 수채화(II)

  

홀로 큰덕골재(280m)를 지난다. 앞서간 일행이 기다릴 줄 알았는데, 비만 추적추적 내린다. 왼쪽 발에 떨어진 빗방울은 보성강으로, 오른쪽 발에 떨어진 빗방울은 영산강으로 간다. 길섶의 짙은 풀내음과 풋풋한 숲 향이 어우러져 코끝을 자극한다. 간간이 굵은 빗방울이 고즈넉함을 깨트리지만, 여전히 걸음은 여유롭고 마음은 한가롭다. 

 

먼 숲은 비안개 농염해 차라리 아스라하다. 그러나 가까운 나무의 잎들은 싱그러움을 뽐낸다. 짙푸른 물을 금방이라도 토해낼 듯 진초록 잎들이 생명의 나래를 펼치고 있다. 사랑에 빠진 청춘이 저럴까? 사랑에 빠지면 1월에도 6월 같다고 했다. It's June in January because I'm in love! 그 오래된 팝송, Bing Crosby의 June in January가 절로 나온다.
 
산죽 밭을 지나자 호젓한 숲길에 하늘나리꽃 반겨준다. 군치산(群峙山, 414m)에 올라 준비한 도시락을 먹고, 뗏재로 내려선다. 군치(群峙)가 곧 뗏재이니, 무엇이 무리(群, 떼)를 이룬 것일까? 풍수지리에서 산의 지형이 '기러기 떼 하늘로 나는, 군안동비(群雁同飛)의 형세'를 말하는 것인가? 사람들이 떼로 뭉쳐 넘어야 했던 험한 고개라는 뜻인가?

 

무참하게 마루금이 훼손된 곳을 지난다. 사연이야 있겠지만 이 방법 밖에 없었을까? 신갈나무 울창한 숫개봉(496m)에 올라, 사과를 먹으며 나무에 덩그렁 매달린 표지판을 쳐다본다. 숫개봉이라! 그 산봉우리 이름 한 번 묘(妙)하다. ㅋㅋㅋ 그 이름에 상관없이 숫개봉은 한껏 푸름을 뽐내고 있다. 비안개 걷히기 시작한다.

 

큰덕골재의 표지기들이 빗속에 팔랑인다

 

하늘나리 함초롬히 비에 젖어 있다

 

군치산(群峙山), 군안동비(群雁同飛)의 형세를 찾을 길 없다

 

마루금에 왠 채소밭인가? 여기서 디카는 비에 젖어 맛이 갔지요

 

 

(4) 고르지 못함을 걱정하라 
 
봉미산(鳳尾山, 505.8m)을 오르며 거친 숨을 몰아 쉰다. 이마에 굵은 땀방울 흐른다. 갈증을 느낀다. 정상에는 삼각점 하나에 잡초만 무성할 뿐, 봉황의 꼬리는 흔적도 없다. 앉을만한 곳이 없다. 쉼터가 베푸는 음덕(陰德)이 그립다. 목마른 이에게 한 잔의 물은 감로수(甘露水)요, 한 그루 큰 나무면 비를 피할 수 있으리라. 작은 샘 하나에 한 그루 나무라!
 
세상사도 마찬가지다. 고단한 삶에 갈증을 느끼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난다. 그들은 넓은 강물이나 우뚝 솟은 봉우리를 원하는 게 아니다. 작은 샘과 한 그루 나무의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것이다. 음덕(陰德)이 아쉬운 것이다. 옛 성인은 "재물이 적음을 걱정하지 말고 고르지 못함을 걱정하라(*)" 했다. 재물의 부족함보다 마음의 불편을 염려하라 했다.         (*) 不患寡而患不均(불환빈이환불균), 論語 季氏篇
 
"연탄불 피우던 시절을 기억하는지요?"라고 묻던 지인이 있다. "어느 곳에서 아직도 연탄을 때고 있는데, 승용차 기름 값은 가깝고 연탄 값은 멀게 느껴진다."고. 연탄 값과 기름 값이라! 멀면 보이지 않는 법이다. "보이는 것과 안 보이는 것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는 건 아닌지 ......" 하던 그의 걱정이 우리의 근심이었으면 한다.
 
내리막 숲길을 걷는다. 저 멀리 자동차 소리 들린다. 곰재가 멀지 않다는 얘기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리라. 그 세상에도 민초(民草)들이 기댈 수 있는 큰 나무 같은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그 음덕(陰德)으로, 그늘에 앉아 더위를 식히고 소나기라도 오면 잠시 피할 수 있는 그런 큰 사람 말이다. 

 

봉미산(鳳尾山) 정상에 수풀만 무성하더라  (사진 by 백미르)

 

하산길에 되돌아본 봉미산에 운무가 가득하다   (사진 by 백미르)

 

 

(5) 화순에서 장흥으로 접어들며

 

곰치에 내려서니 슬로시티 장흥의 안내판이 보인다. 느림의 미학(美學)을 존중하고 실천하는 곳이란다. '느려서 아름답고, 불편해서 즐거운' 삶이 진정 행복한 삶이다. 명상시인 류시화처럼 길가의 들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하고. 곰재 휴게소 근처 길가에서 씻고 옷 갈아입으니 날아갈 것 같다.

 

다음 구간의 초반인 땅끝기맥 분기점에서 서진하던 마루금은 다시 남진을 시작할 것이다. 그동안 걸어온 화순(和順) 땅과 작별할 때가 다가온 것이다. 마루금은 장흥 땅 깊숙이 들어가게 된다. 그동안 담양과 화순의 산을 아홉 차례 걸으며 유교 문화와 선비들의 유흔을 통해 남도의 정취를 살피려 했었다. 인문지리를 살피려는 생각이 늘 자리했었다. 

 

담양과 화순의 정자亭子 문화를 수박 겉핥기로 지나감이 아쉽지만 후일을 기약할 수밖에 없으리라. 어찌 산상과 산하를 동시에 아우를 수 있겠는가. 불교 문화유산들은 따로 날 잡아 탐방해야겠다. 무릇 "어느 한 가지를 얻으면 다른 한 가지를 잃게 되고, 작은 것에 뜻을 두면 큰 것을 놓치게 되는 법"(*)이라는 옛사람의 말씀으로 위안할 뿐이다.   (*) 得於此而失於彼, 志乎小而遺乎大也, 성현(成俔, 1439-1504)

 

곰치의 슬로시티 장흥의 안내판   (사진 by 독도)

 

 

<감사의 글>

대형 카메라를 휴대하지 않아 여름 숲의 정취를 제대로 담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소형 디카도 비에 젖어 고장이 나 사진 몇장 밖에 못찍었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산행의 대부분을 함께 했던 백미르 님의 사진으로 상당부분 대체했다. 임시 대장을 맡아 수고하신 독도 님의 사진도 있다.

백미르 님, 독도 님에게 감사드린다.

 

 

2011년 6월 27일 (월) 늦은 저녁에

빗속에 걸은 숲길을 되새기며

월파(月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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