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맥 20] 꽃과 잎의 침묵에서 듣겠습니다
1. 산행개요
(1) 산행일시 : 2011년 8월 28일(일), 무박산행
(2) 산행구간 : 석거리재-백이산-고동산-조계산(큰굴목재)-송광사
(3) 산행거리 : 15.5Km(도상거리), 큰굴목재-송광사 하산 6.0Km 별도
(4) 산행시간 : 5시간 30분(정맥구간), 9시간(하산 3시간 20분, 보리밥집 40분, 송광사 탐방 30분 포함)
(5) 산행참가 : 좋은 사람들 25명 합동산행
- 8인의 동행자 : 성원,오리,월파,정산,은영,성호,제용,기옥
2. 산행후기
(1)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생각하며
석거리재에서 50분 가까이 걸었을까? 선두에 서서 백이산(伯夷山, 582m) 정상에 오른다. 낙안의 넓은 벌판에 아침 안개 만발하고 동녘은 일출을 준비한다. 백이산이라, 그 특이한 이름의 유래가 궁금하나 알 수가 없다. 옛날 중국 상나라(고죽국)의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형제가, 주나라(무왕)의 침공으로 망하자 주나라 땅의 곡식은 먹을 수 없다며 수양산으로 들어가 고사리로 연명했다는 고사가 생각날 뿐이다.
그 절의(節義 : 절개와 의리)를 두고,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에 죽음으로 맞선 사육신(死六臣)의 한 사람인 성삼문은 이렇게 시조 한 수 읊었지.
수양산(首陽山) 바라보며 이제(夷齊)를 한(恨)하노라
주려 주글진들 채미(採薇)도 하난 것가
비록애 푸새엣거신들 긔 뉘 따헤 낫다니
수양산 바라보며 백이와 숙제를 한탄하노라. 굶어 죽을지언정 고사리를 캐먹었단 말인가. 비록 푸성귀일지라도 그것이 누구의 땅에서 생겨난 것인가. 그렇다. 그 고사리도 주나라 땅에서 난 것이 아니던가? 고사리로 연명한 것마저도 절의(節義)를 지키는 걸림돌이라 생각한 성삼문의 꼿꼿한 지조가 대쪽이다. 그 가치가 오늘에도 과연 살아 숨 쉴까?
옛 선비들이 추구한 절개와 의리의 절대가치는 과연 어디까지였을까? 오늘의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아니 절대가치란 그 한계가 없는 것이 아닌가? 어떠한 경우도 타협할 수 없고, 타협해서도 안 되는 가치가 오늘의 우리에게 얼마나 자리하고 있을까? 후미의 일행들이 도착하자 평상심으로 돌아와, 다시 동녘 하늘과 낙안 벌판의 화려한 퍼레이드에 빠진다.
(2) 조계산 송광사 가는 길에서
백이산을 내려서는데 붉은 해가 오롯이 솟아오른다. 걸음을 멈추고 그 빛의 파노라마에 젖는다. 카메라의 눈에 비친 세상은 별천지다. 그러나 마음의 눈에 비치는 영상은 더 황홀하다. 그것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함이 아쉬울 뿐. 낙안의 벌판은 하얀 속치마를 두른 듯 실루엣 같은 안개가 피어나고, 조계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여인의 농염한 젖가슴같은 자태로 산객을 유혹한다. 아름다움도 익는 것이란 걸 알겠다.
빈계재로 내려선다. 수풀 사이로 흐르는 얕은 물에 손과 얼굴을 적시고 고동산(高東山, 709m)으로 향한다. 8월의 마지막 무더위를 염려했는데 다행히 숲에는 시원한 바람이 분다. 편백나무 숲에 가부좌하고 앉은 제용 아우가 부럽다. 왠지 오늘은 그런 마음의 여유가 없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자꾸 길을 재촉한다. 어디엔가 마음이 붙들려있는 게다. 이것이 집착일 게다. 그래도 고동치의 아침은 챙겨야지.
탄탄대로를 따라 고동산에 오르니 앙증맞은 정상석이 반기고, 북쪽으로 조계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실 오늘 산행은 조계산 송광사(松廣寺)에 온통 마음이 쏠려있다. '어느 때인가, 어떤 연유로 고동소리가 울렸다'는 고동산 유래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서둘러 걷는다. 장안치에서 조계산으로 접어드니 그때서야 마음이 편안해진다. 호젓한 숲속의 큰굴목재에서 5시간 30분의 마루금 산행을 끝낸다.
큰굴목재에서 보리밥집을 거쳐 송광사로 하산하는 길은 숲속의 산책길이다. 포도송이처럼 맺힌 일상의 번뇌를 털고, 부질없이 움켜진 세사의 욕심을 버리고, 숲을 스치는 바람처럼 한 털의 걸림도 없이, 자유롭고 맑은 영혼으로 걸을 수 있는 길이다. 그렇게 그 숲길을 걷는다. 옛날 선승들도 삶과 죽음의 화두(話頭)를 잡고, 망상에 빠지는 스스로를 경계하며, 이 숲길에서 구도의 행각을 했으리라.
(3) 물소리 바람소리가 불법(佛法)이니
아늑한 고찰이 눈앞에 다가선다. 송광사가 산객을 맞아준다. 고려시대에 보조국사 지눌 이후 16 국사(國師)를 연속으로 배출한 헌걸찬 역사가 승보(僧寶)사찰 송광사의 위상을 드높이지만, 현대사의 걸출한 선승(禪僧) 효봉(曉峰)스님과 그 맏상좌인 구산(九山) 스님에서 막내상좌인 법정(法頂) 스님에 이르는 내로라하는 선사들이 송광사에서 수행했으니 그 위상이 반듯하다.
오래 머물고 싶은 마음과 달리 몸은 송광사에 잠시 머문다. 곧장 대웅전에 들러 삼배(三拜)하고, 빗장이 굳게 걸린 삼일암(三日庵)을 돌아나와 성보박물관에서 구산(九山)스님의 친필을 살핀다. 33년 전 그때, 무오(戊午)년 유하(榴夏)의 일을 잠시 반추하다가 바로 일주문(一柱門)으로 향하는데, 껍질을 벗어 무욕(無慾)의 알몸이 된 오래된 배롱나무가 붉은 꽃술을 터뜨리며 배웅하더라. 그 알몸처럼 벗고, 털고, 버리고 살라 하더라.
새벽에는 삼일암(三日庵)의 구산(九山)스님 앞에서 무릎 꿇어 먹을 갈고, 낮에는 산죽(山竹)의 바람소리에 귀를 씻으며 불일암(佛逸庵)의 법정(法頂) 스님을 뵈러가던, 33년 전 스무 살 푸른 시절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라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만, '가는 곳마다 청산(靑山)이요, 듣고 보는 것마다 불법(佛法)이 아니겠는가'하며 마음을 다스린다.
소동파가 이르기를 "시냇물 소리가 곧 부처님의 설법이니 산의 빛이 어찌 청정법신이 아니리오?(溪聲便是長廣舌 山色豈非淸淨身)"라고 했다. 물소리 바람소리, 그 모두가 부처님 가르침이 아닌 것이 없다는 얘기다. 몸이 머무는 곳보다 마음이 머무는 그 자리가 곧 절(寺)이리라. (몸이) 송광사에 이르기 전에 (마음이) 벌써 송광사에 닿아있었으니, 오늘 산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여정(旅程)이 곧 송광사였던 것이다.
(4) 꽃과 잎의 침묵에서 듣겠습니다
법정(法頂) 스님의 불일암(佛逸庵)에는 다녀올 시간이 없었다. 작년 가을에 들렀던 기억을 더듬으며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낙안읍성을 거쳐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집으로 돌아와 서재에 앉는다. 법정 스님이 입적(入寂)하시고 먼 길 떠나시던 작년 봄에 썼던 그날의 편지(일기), '꽃과 잎의 침묵에서 듣겠습니다' 를 다시 꺼내 읽고 잠자리에 든다.
......... (중략)
2009년 4월 셋째 일요일, 성북동 길상사(吉祥寺)의 봄 정기법회에서 하신 님의 법문(法問)이 떠오릅니다. 자리에 앉으시면서, " 모두가 한 때이기에, 언젠가 내가 이 자리를 비우게 되리라는 것을 예상하게 된다. 그래서 더욱더 오늘의 만남이 고맙고 기쁘게 느껴진다" 면서 법문을 시작하셨지요.
그리고 봄날에 피는 꽃과 잎들에 대한 말씀을 하셨지요. "꽃과 잎은 우연히 피는 것이 아니다. 인고의 세월을 거쳐 피어난다. 온갖 악조건을 견디고 시절인연을 만나야 꽃으로, 잎으로 피어나는 것이다." 그러하듯 "우리의 삶도 봄날에 어떤 꽃을 피우고 있는지 되돌아보라 "고.
봄꽃을 구경만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꽃으로 피어날 씨앗을 제대로 뿌리고 가꾼 적이 있느지 반문하라 "고 하셨지요. 이어서 "험난한 세월을 살면서 인고하며 가꾼 그 씨앗을 이 봄날에 활짝 펼쳐보시라"고 당부하셨지요. 그날 법문의 마무리가 기억에 또렷합니다. "눈부신 봄날도 덧없이 갑니다. 오늘 미처 드리지 못한 이야기는 새로 돋는 꽃과 잎들을 통해, 그 거룩한 침묵을 통해 들으시라"고.
어쩌면 그 말씀이 오늘의 작별을 예비하셨던 것인지요? 자꾸만 눈자위가 시큰해짐을 감출 수 없습니다. 그 말씀대로 이제 꽃과 잎들의 침묵을 통해 님의 가르침을 들어야 하고, 또 그렇게 하겠습니다. 꽃과 잎의 침묵에서 듣겠습니다.
오늘 송광사에서 다비를 하면, 우리는 님의 육신과 작별합니다. 님께서 입적(入寂)하시기 얼마 전, <육신을 태워 남은 재는 강원도 산골 오두막 뜰 앞의 철쭉나무 아래에 뿌려달라>고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봄마다 아름다운 꽃공양을 바치던 꽃나무에 대한 보답이라시며 .........(후략)
' 꽃과 잎의 침묵에서 듣겠습니다 ' 전문 읽기 : http://blog.daum.net/moonwave/16153808 왼쪽 주소를 클릭
구산(九山) 스님의 친필 (月波 소장본)
송광사 불일암 입구(2010. 11. 7.)
송광사 불일암 (2010. 11.7.)
2011년 8월 29일(월) 늦은 밤에
조계산 송광사 가는 길을 되걸으며
월파(月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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