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맥 19] 산상과 산하, 호남의 1박 2일
1. 산행개요
(1) 산행일시 : 2011년 8월 14일(일), 무박산행
(2) 산행구간 : 오도재 - 국사봉 - 방장산 - 주월산 - 모암재 - 존제산 - 주릿재 - 석거리재
(3) 산행거리 : 22.6Km(도상거리), 실거리 25.5Km
(4) 산행시간 : 9시간 50분(0430 - 1420)
(5) 산행참가 : 좋은 사람들 29명 합동산행
- 10인의 동행자 : 성원,오리,월파,정산,은영,지용,성호,제용,리오,기옥 산행지원 : 길원
2. 산행후기
(1) 휴가지에서 바로 산으로 들다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섬을 베개 삼아 휴가를 보내다가, 가족을 휴가지에 두고 토요일 자정에 혼자 호남의 산으로 향한다. 이 무슨 열정인가? 폭우 속에 통영-진주-순천으로 이어지는 심야의 고속도로를 세 시간 넘게 운전하여 오도재(170m)에 도착하니 새벽 3시 30분, 다행이 비는 멎었다. 1시간 정도 승용차에서 선잠을 자고나니, 서울에서 출발한 28명의 ‘좋은 사람들’ 버스가 도착한다.
그들과 합류하여 곧장 산으로 든다. 새벽이라 해도 후덥지근하다. 그러나 한낮의 폭염에 비하랴! 음력 7월의 보름달, 그 잔영(殘影)이라도 기대했지만 운무에 만상이 아스라하다. 비록 사람의 눈에는 달이 보이지 않지만, 달은 안개비 위에서 세상을 비추고 있으리라. 사람은 달에게 다가가지 못해도 구름 속의 달은 산길에 우리를 따라오지 않을까? 국사봉(355.5m)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무념무상 걷는다. 편백나무 향이 코끝을 스친다. 마음이 저절로 맑아진다. 산행시작 후 1시간 남짓 걸었을까? 서서히 날이 밝아오는 파청재(290m)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곧바로 방장산으로 향한다. 군데군데 시멘트 포장이 되어있다. 산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도시로 가는 길이다. 가파른 곳이 더러 있지만 그것보다 발에 닿는 딱딱함이 오히려 지치게 한다.
방장산(方丈山, 535.9m)은 농무(濃霧)에 갇혀있다. 후미의 일행을 기다리지 않고 혼자 앞서 길을 간다. 서두르지도 말고 잦은 휴식도 않고, 꾸준한 속도로 끝까지 완주하는 것이 오늘의 페이스 조절책이다. 간밤의 장시간 운전과 수면부족은 필시 후반에 체력저하를 부를 것이고, 만약에 한낮에 햇볕이라도 쨍쨍 비추면 그 더위를 헤쳐 나갈 일이 걱정인 게다.
(2) 초암산은 오리무중(五里霧中)이더라
주월산(舟越山, 557m)으로 향한다. 혼자 걷는 숲길이 아늑하다. 여린 풀잎들이 함초롬히 이슬에 젖어 산객을 반기는 주월산 활공장에는 안개가 자욱하다. 고혹적 아름다움이랄까? 먼 산을 조망할 수 없어도 가슴이 확연히 트이고 마음은 절로 느긋해진다. 외양에 쉽게 휩쓸리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지만, 원경(遠景)을 버리고 근경(近景)의 잔잔함에 흠뻑 젖는다.
건너편 초암산은 오리무중이다. 늦은 봄이면 철쭉이 화려한 빛깔로 산을 뒤덮는 곳이다. 정유재란 당시 장렬히 전사한 최대성 장군과 두 아들의 넋이 초암산 자락에 묻혀있으니 봄날의 철쭉은 더욱 붉을 수밖에 없으리라. 무남이재(336m)에서 아침밥상을 차린다. 오늘은 휴가지에서 가져온 통영의 ‘할매김밥’이다. 무우김치를 곁들인 오징어 볶음이 일품이다. 역시 이 맛이야.
광대코봉(624m)에 오르니 길은 그 모습을 달리한다. 신작로 같았던 산길은 좌측 초암산으로 이어지고 우측 호남정맥은 미로 찾기 수준이다. 차라리 이런 길이 낫다는 생각이다. 드러난 길을 따르기보다 숨은 길을 찾아 걷는 재미가 마루금 걷기의 묘미였는데, 이제 어딜 가든 마루금은 신작로 수준이니 대간을 걷기 시작했던 8년 전의 설렘은 덜하다. 자욱한 안개 속에 수풀을 헤치며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안개가 생몰을 거듭하는 전망바위를 거쳐 고흥지맥 분기점을 지난다. 고흥반도로 이어지는 능선은 안개에 묻혔다. 풍수지리서에 지난 산행구간인 봉화산, 대룡산에서 오늘의 방장산, 존제산에 이르기까지 수십 리의 남쪽 바닷가에 크고 작은 혈(穴)이 있다고 했다. 특히 고흥지맥은 봉봉(峰峰)과 곡곡(谷谷)이 명당의 혈(穴)이라고 했다. 저 아래 조성면 신월리도 그중의 하나인데, 역시 오리무중이다.
(3) 처절한 상처가 쉽게 씻기랴
공사가 한창인 모암재(418m)로 내려섰다가 다시 존제산(尊帝山, 703.8m)을 오른다. 곳곳이 위험지대 경고문이요, 처처에 폐막사의 잔해가 흉흉하다. 지뢰밭 경고문을 보며 녹슨 철조망을 넘나드는 일이 조심스럽다. 정상부의 군견묘지 앞에서 과일을 먹으며 일행들과 소담스런 얘기를 나눈다. 존제산은 여순반란 사건과 한국전쟁이 안겨준 이념대립의 상흔을 그대로 끌어안았다. 그 이후 공군부대가 자리했다가 철수하며 흉한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70년대 말 이병주의 소설 '지리산'이 이념적 접근에 대한 금기를 깨고, 이태가 쓴 '남부군'이 그 계보를 이어가자 조정래는 '태백산맥'으로 바통을 이어받았다. '태양(太陽)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월광(月光)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고 한 이병주의 명언을 생각하며 버려진 군부대 막사를 지난다. 나의 산행에는 이병주와 이태가 늘 자리했었다. 역사란 바람처럼 흐르지만 그 바람으로 인해 진전이 있는 것이겠지.
오늘은 조정래가 그 자리를 메운다. 존제산에서 도로를 따라 리오 부자(父子)와 함께 걷는다. 길가의 반사경에 스스로의 얼굴을 비추어본다. 숱한 세월에 나는 무엇을 추구하며 살았는가? 또한 무엇을 추구하지 않았는가? 30여 년 전 송광사에서 조계산을 오르는 길에서 '역사는 바람과 같다'고 갈파하던 고은 시인의 모습이 선연하다. 조정래 문학비가 있는 주릿재의 팔각정에서 일행을 기다리며 상념에 젖는다.
왼손보다 오른손에 익숙했던 삶의 궤적을 되돌아본다. 그 가치관, 그 삶의 방식은 변함없는 나의 몫이다. 팔각정에 누워 산길을 그려본다. 존제산에서 백이산으로, 이어서 조계산으로, 백운산을 오르다가 섬진강을 건너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상념의 꼬리는 끝없이 이어진다. 쓰라린 이념전쟁의 루트인지 모른다. 그 상처가 쉽게 씻기겠는가. 생각을 털고 홍광일 시인의 '아름다운 날'을 마음에 그리며 주릿재를 떠난다.
그대라고 어디 슬픔이 없겠는가/ 그대라고 어디 아픔이 없겠는가// 지나간 일들/ 바람 속에 묻어두고/ 바라보는 하늘은/ 정든 고향처럼 따스하다// 그대라고 길을 가다 평탄한 길만 있었겠는가/ 그대라고 세상 속에서 좋은 일만 있었겠는가// ..... // 저 태양이 따스한 햇살이 되어/ 저 별빛이 그대 가슴에서 반짝이며/ 아름다운 날/ 그날은 반드시 올 것이니// .....
(4) 편백나무 숲을 그냥 지날 수가
산행은 종점을 향해 치닫는다. 석거리재까지 2시간이면 될 것이다. 그런데 더운 날씨에 몸은 서서히 지쳐간다. 그 때 구세주처럼 나타난 편백나무 숲에서 윗도리를 벗고 가부좌하고 앉는다. 편백나무의 은은한 향이 머리를 맑게 한다. 상큼하다. 편백나무는 소나무에 비해 피톤치드가 5배나 많고, 아토피 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있단다. 아토피로 고생하는 리오 아빠는 숲을 떠날 생각을 않고 참선 삼매경이다.
여기 보성에 이웃한 장흥 억불산의 편백나무 숲에 누드 산림욕장이 생겼다는 뉴스를 들었다. 옷을 벗고 숲에서 즐기는 풍욕(風浴)이라! 생각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절로 시원해진다. '피톤치드를 제대로 흡수하려면 누드 삼림욕이 최고'라는 장흥군의 열렬한(?) 홍보가 아니더라도, 신발과 옷을 벗어던지고 세상의 허례허식을 떨쳐버리고, 그렇게 편백나무 숲을 걷고 싶다.
지난주에 일본을 며칠 다녀왔다. 일본에서는 편백나무를 히노끼(檜, ヒノキ)라 부른다. 일본서기에 “스끼(삼나무)는 배를 만들고, 히노끼(편백나무)는 궁전을 짓고, 마끼는 관을 짜라"라는 말이 있다. 히노끼는 일본에서 궁궐이나 신사의 건축에 사용되는 최고 건축재로, 민간에서 신목(神の木)라고 불린다. 아열대성 수종인 편백나무가 자라는 북방한계선이 우리나라 남부지방일 게다.
다시 길을 간다. 나무농원을 지나며 눈앞에 다가서는 백이산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조계산도 아스라하다. 배롱나무 붉음을 토하는 언덕에 내려서니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가 요란하다. 석거리재(240m)로 내려선다. 휴게소 앞마당에서 간단히 씻고 옷 갈아입은 후에 호남정맥 산행의 특별 이벤트인 1박2일을 위해 낙안읍으로 이동하며 휴가지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한다.
(5) 자칫 더 말하면 잔소리 될까 봐
'무더운 날, 먼 길의 산행을 잘 끝냈다'고. 그리고 이미 얘기한 것처럼 '남도에 하루를 더 머물며 호남정맥의 산 아랫마을을 둘러보고 내일 상경하겠노라'고. 뭔가 쓴소리를 예상했는데, 반응이 그게 아니다. 아내 왈,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란다. 아내도 아이들과 통영에서 부산으로 옮겨 하루 더 머물다가 상경할 테니, 날더러 잘 둘러보고 오란다.
아이들도 그렇게 하란다. 뭐라고? 이제 성년이 된 아이들도 자기 방식대로의 휴가가 더 즐거운가 보다. 자칫 더 말하면 잔소리가 될까 봐, '그래, 그러자'고, '내일 저녁에 서울에서 만나자'고 한다. 문득 도연명(陶淵明)의 시(詩)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昔聞長者言(석문장자언) 어려서는 어른들이 잔소리하면
掩耳每不喜(엄이매불희) 듣기 싫어 귀 막았거늘
奈何五十年(내하오십년) 지금은 오십이 된 내가
忽已親此事(홀이친차사) 어느 듯 잔소리를 하게 되었네
갈수록 빠르게 흐르는 세월이다. 그 세월 붙든다고 흰 머리 검어지는 것도 아니고, 때가 되면 새로운 바람이 넘실대는 법이니 그저 따르는 것이 상책이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던 아내와 아이들의 양보로, 펑크 날 뻔 했던 호남정맥 19구간 산행도 하고 가슴앓이로 묻어두었던 몇 곳의 남도순례를 하는 보너스도 챙겼으니, 오 쾌재라!
솔바람 들리는 화순 쌍봉사의 삼층목탑 대웅전
천불천탑 화순 운주사의 와불
2011년 8월 17일 새벽에
남도 나들이를 되새기며
월파(月波)
<PS> 1박 2일, 그 둘쨋날 이야기
철감국사의 쌍봉사와 천불천탑 화순 운주사 탐방, 동복호의 물염적벽(물염정)에서 담양의 면앙정으로 이어진 정자 나들이로 1박 2일이 부족했으니, 미처 하지 못한 아쉬움은 후일을 기약해야 하리라. 낙안읍성 전통가옥에서 보낸 하룻밤, 벌교와 화순의 맛집도 짜릿했다. 그 이야기는 별도로 정리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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