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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정맥 17] 철모르는 철쭉이 철없이 피었더라

月波 2011. 11. 7. 22:18

 

[호남정맥 17]  철모르는 철쭉이 철없이 피었더라

 

1. 산행개요

 

   (1) 산행일시 : 2011년 11월 6일(일), 무박산행

   (2) 산행구간 : 호남 17구간 갑낭재(시목치)-제암산-사자산-일림산-삼수마을

                       사후 보충산행

   (3) 산행거리 : 17.0 Km

   (4) 산행시간 : 8시간 30분(식사 및 휴식 80분 포함)

   (5) 산행참가 : 3명(SW Lee, KW Kim, 월파) + 홀로 걷는 산객

 

2. 산행후기

 

(1) 보충 산행, 동행이 있어 즐겁다

 

호남 12구간인 무등산 산행을 마친 지난 4월이었을 게다. 호남 17구간인 제암산/일림산의 철쭉을 보러 5월초에 그 곳을 미리 다녀오자는 제안이 있었다. 모두 호응했다. 나는 선약이 있어 참가를 못하고, 그간 나 홀로 보충산행의 기회를 살피고 있었다. 그런데, 벌써 23구간 백운산에 오르고 이제 마지막 24구간 망덕포구의 졸업식을 앞두고 있다. 어찌할까? 졸업 전에 보충산행에 나선다.

 

마침 광주에 머무는 K가 보충산행에 동행하겠단다. 더불어 S형이 5월초에 다녀온 그곳에 다시 가보고 싶단다. 어라! 신난다. 나 홀로 산행의 부담을 떨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토요일 S형과 광주행 심야버스를 탄다. 일요일 새벽에 터미널에 마중 나온 K와 하이 파이브! 해장국 한 그릇씩 뚝딱! 그의 차로 갑낭재(시목치)로 향한다. 낙동정맥을 할 때 K가 늘 새벽에 현지 합류하던 기억이 새롭다.

 

보성, 장흥으로 향하는 길에 엷은 비안개 깔리고, 이어폰을 통해 YB 윤도현의 강렬한 사운드가 울려 퍼진다. "....... 이젠 나의 꿈을 찾아 날아,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꺼야, 노래하며 춤추는 나는 아름다운 나비 ...... 거미줄을 피해 날아 꽃을 찾아 날아, 사마귀를 피해 날아 꽃을 찾아 날아, 꽃들의 사랑을 전하는 나비 ......."  흥겨운 음악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

  

오늘 산행도 이처럼 흥겹게 해볼까? 오늘은 "누가 높이 오르나, 누가 빨리 걷는가, 누가 멀리 가는가?" 하는 경쟁의 관점이 아닐세! 높은 봉우리에도 함께 오르고, 오르막이든 내리막이든 같은 템포로 걸어서, 그 종착지에서 서로 하이 파이브하자고! 그런 마음으로 셋이서 미명이 비안개 속에 밝아오는 갑낭재(시목치)를 출발하는데 새로운 산객이 한 사람 합류한다. 홀로 정맥을 종주하고 있단다.

 

 

 

 

 

(2) 볼 수 없으니 보이는 게 있다

 

작은산(685m)에 오른다. 빗방울은 그쳤지만 비안개 가득하다. 산 아랫마을 사람은 이 봉우리를 '작은산'이라 부르고 안내판에는 '큰산'이라 적혀있네. 누구는 작다하고 누구는 크다고 하네. 산의 크기를 어떻게 가늠할 수 있는가? 우공(愚公)이 이산(移山)하듯 산을 파서 옮겨봐야 알 수 있을까? 산이란 단지 그 높이나 넓이로 가늠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가령 기대어 안기고 싶은 포근함의 정도랄까? 소박한 이는 큰 것도 작다고 하고, 떠벌리는 이는 작은 것도 크다고 하더라. 눈으로 보이는 산의 크기가 아니라, 그 품에 안기고 싶은 감성이 절로 드는 산이 '큰산'일 게다. 암릉을 지나 권중웅 불망비를 만난다. 산에서 영원히 잠든 이여, 늘 자유로운 영혼이어라! 얼마 전 히말라야에 영면한 박영석 대장도 그러하리라.

 

제암산에 오른다. 표지석에 807m라 적혀있다. 국립지리원 지형도에는 778.5m이고. 그게 그거지만, 나처럼 무지몽매한 산객이 헷갈리지 않게 했으면 좋겠다. 정상의 넓은 임금바위가 넉넉한 품으로 맞아준다. 모두를 끌어안고 감싸준다. 그리 살라 한다. 700m이면 어떻고 800m이면 대수냐 하면서 살라 한다. GPS로 측정해보라고? 오, 노노노!

 

짙은 안개에 4통8달의 조망이 사라졌지만, '볼 수 없어 오히려 보이는 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원경(遠景)을 버리면 근경(近景)을 얻을 수 있는 법! 임금바위에 올라 안개 속에 처음 만난 젊은 산객과 마주보며 소담스러운 얘기를 나눈다. 화가(畵家)인 그는 산에서 영감(靈感)을 얻으려 혼자 17일째 연속종주를 하고 있단다. 6일 후 호남이 끝나면 바로 낙남으로 들 것이란다. 그에게서 예술의 눈망울을 읽었다.

 

 

 

 

 

 

 

 

(3) 사자(獅子)는 오리무중(五里霧中)이더라

 

사자산으로 향한다. 사자(獅子)의 머리와 꼬리를 잇는 사자의 등허리는 끊임없이 안개 속에 생몰(生沒)을 거듭한다. 주변의 철쭉 군락은 봄날의 화려한 옷을 푸른 잎으로 갈아입었다가 그마져 벗어버렸다. 꽃피는 봄날에는 장관이었겠다. 花不送春春自去(화불송춘춘자거)라 했다. 꽃이 봄을 보내는 게 아니라 봄이 스스로 가는 것이라고. 영원한 것이 있던가?

 

사람의 나이 듦도 그렇다. 사람이 늙음을 맞이하는 게 아니라 늙음이 제 발로 찾아오는 게다. 다만 꽃은 시들어도 다시 피지만, 사람은 늙으면 다시 소년이 될 수 없으니...... 자연과 인생의 이치가 그러한 것이다. "봄바람이 온갖 나무와 꽃을 피워도 사람만은 혼자 늙게 한다(*)"고 한 이달(李達)의 글에 한 치 그릇됨이 없구나. (*) 東風亦是無公道 萬樹花開人獨老

 

포효(咆哮)하듯 뻗은 사자의 등허리 아래에 장흥이 안개 속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호남정맥이 바다에 연한 남도의 끝자락에 자리한 저곳은 탐진강이 흐르는 넓은 벌판이니 백성을 아우르기에 넉넉했을 게다. 사자의 꼬리인 미봉(尾峰, 666.0m)에 선다. 억새가 출렁이는 정상부는 묘한 매력이 있다. 제철이 아니더라도 철쭉은 철쭉대로, 억새는 억새대로 본연의 품성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꽃 피는 철만이 제철이겠는가!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만지러 사자 두봉(頭峰)을 다녀올까? 길을 서두른다. 왜 그랬을까? 이외수 시인은 말한다. "험난한 길을 선택한 이는 길을 가며 자신의 욕망을 버리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고, 평탄한 길을 선택한 이는 길을 가며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일에 즐거움을 느낀다" 고. 산 아랫마을을 더 살피고 싶은 욕심이리라. 마음이 너그러워지느냐, 옹졸해지느냐의 갈림길에 섰던 게다.

 

 

 

 

 

 

 

(4) 철모르는 철쭉이 철없이 피었더라

 

사자산에서 급한 내리막을 내려서면 신갈나무 무성한 숲이 이어진다. 골치산(614,2m)으로 향하는 곳곳에 보성군에서 쉼터를 만들어 놓았다. 군데군데 쉬어가며 느긋이 걷는다. 홀로 연속종주를 하고 있는 젊은 화가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는데 산을 바라보는 그의 눈매가 참 편안해 보인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視角)이 그렇다. 구상(具象)에서 추상(抽象)을 구하려는 그의 노력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골치산에 오르니 빗방울이 굵어진다. 새벽부터 아스라한 안개 속에 편안히 걸었는데, 부랴부랴 비옷을 걸치고 삼비산(三妃山, 664.2m)으로 향한다. 길가의 수많은 철쭉나무가 봄의 장관을 상상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사자산의 철쭉보다 더욱 장관일 것 같다. 정상으로 향하는 길가에 군데군데 철쭉이 피어있다. 11월의 철쭉이라! 철을 잃은 철쭉이다. 철모르는 철쭉이 철없이 핀 것일까? 아무튼 반갑다.

 

철쭉 군락을 따라 정상에 오른다. 거기에 사람 키보다 큰 정상석이 있다. 그런데 지도상의 '삼비산'과 달리 정상석에는 큼지막하게 일림산이라 새겨져 있다. 그 앞의 작은 바위에 누군가 '三妃山' 이라 손으로 새겨놓았다. 무슨 사연이 있겠지. 비안개 자욱해 조망이 없어도 분위기가 환상적이다. 넓은 득량만(得糧灣)을 잃은 대신에 안개비의 몽환적 미학(美學)을 접하는 것이다.

 

가슴 떨리도록 아름다운 분위기에 얼마나 젖었을까? 길을 간다. 봉수대 삼거리에 이른다. 호남정맥뿐 아니라 1대간 9정맥의 마루금 중에서 최남단이다. 이제 마루금은 조계산을 향해 서서히 북동진할 것이다. 그 길 걷던 지난 초가을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조릿대가 무성한 길을 따라 지형도 상의 일림산(626.8m)에 오른다. 

 

 

 

 

 

 

 

(5) 나 그냥 그렇게 산다

 

일림산은 득량만 바닷가에서 바로 솟구쳐 그 산세가 기운차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 정상부는 고원처럼 산세가 부드러움을 자랑한다. 산악미는 험하고 높은 것만이 아닌 게다. 그 조화로운 기운을 받아 저 아래 보성 회천면의 도강마을에서 태어난 소리꾼 정응민이 서편제와 동편제가 어우러진 보성소리를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일까? 춘향가 한 대목 떠올리며 한재 방향으로 향한다.

 

내리막을 걷는데 다시 빗방울이 굵어진다. 길을 서두른다. 회령 삼거리를 지나 413봉에서 한재로 가는 길을 버리고 좌측으로 내려서는데, 급경사 내리막에 낙엽이 쌓인 길에 비까지 내려 미끄럽기 그지없다. 조심조심 보이지 않는 길을 찾아 지방도에 내려서니 저만치 삼수마을이 반긴다. 삼수마을 정자에서 활성산으로 향하는 젊은 화가와 작별하고 산행을 마무리한다. 철쭉 피는 봄날 다시 걷고 싶다.

 

오늘 산행으로 호남정맥의 장흥 산줄기와 작별한다. 장흥은 문림(文林), 문학의 숲이다. 조선의 가사문학에서 현대문학에 이르기까지 족보가 제법이다. 가사 관서별곡의 백광홍에서 현대문학의 이청준, 한승원, 송기숙 등 그 면면이 대단하다. 그 향기가 있어 철쭉이 지고 없어도 오늘 산행이 전혀 허허롭지 않았다. 하산이 늦어져 계획했던 보림사 탐방과 장흥의 문향(文香)을 찾아가는 일은 다음으로 미룬다.

 

율포 해변으로 간다. 비는 그쳤다. 바닷가의 풍경이 한 폭의 그림이다. 뜨거운 녹차 해수탕에 몸을 담그니 하루 종일 걸은 육신의 피로가 절로 풀린다. 서울행 버스 예약시간이 빡빡하다. 일사천리로 광주로 달려 버스시간까지 맛깔스런 도미요리를 놓고 몇 잔의 '소맥'으로 뒤풀이를 하니 세상을 모두 얻은 것 같더라. K 아우와 S형, 즐거웠습니다. 장흥의 문인 한승원 선생의 시 한 편 보냅니다. 그럴 날 오겠지요. 


'구름이 물었다 요즘 무얼 하고 사느냐고/ 내가 말했다 미역 냄새 맡으며 모래알하고/ 마주앉아 짐짓 그의 시간에 대하여 묻고/ 갈매기하고 물떼새하고 갯방풍하고 갯잔디하고/ 통보리사초 나문재하고 더불어/ ...../ 나 그냥 그렇게 산다.' 

 

 

 

 

 

 

2011년 11월 6일(일)

늦가을의 제암산, 일림산을 다녀와서

월파(月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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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0625  갑낭재(시목치) 출발

0722  작은산(5분 휴식)

0800  전망대(5분 휴식)

0825  제암산

0930  제암산 임금바위 정상(807m, 10분 체류)

0919  곰재

0936  간재(40분 식사 및 조망)

1052  사자산 간제봉(사자 尾峰, 668m)

1207  골치 사거리(5분 휴식)

1232  골치산 작은봉(5분 휴식)

1247  골치산 큰봉(623m)

1305  삼비산(667.5m) - 표지석은 일림산이라 표시(10분 휴식)

1340  일림산(627.8m)

1440  삼수마을 입구(표지석)   

1455  삼수마을(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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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젊은 화가 이점수 님이 보낸 사진

 

제암산에서 만난(2011년 11월 6일) 젊은 화가 이점수 님이 그의 카메라에 담긴 제암산 사진을 거의 3달만에 보내왔다.(2012년 2월 4일)

그동안 그는 호남의 마무리와 연이어 낙남정맥, 낙동정맥을 단독으로 연속종주하고 이제사 세상에 내려온 모양이다.

산에서 그림을 그리는 영감을 얻으려는 그의 맑은 영혼이 무척 아름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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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카사비앙카 Drama Ver. - 적우 - 레드 레인

꿈꾸는 카사비앙카 바다와 맞닿은 그곳에
붉은빛에 부겐빌레아 그대를 기다리네
잊지못할 그리움 그댈찾아 길을 나서면
와인빛에 그날의 바다 나처럼 울고있네

석양은 물드는데 그댄 어디쯤 있나
늦은 아침이 오면 그대 내일은 오시려나
추억의 카사비앙카 눈물의 언덕이되어
그리움을 간직한채로 아련한 꿈을 꾸네

석양은 물드는데 그댄 어디쯤 있나
늦은 아침이 오면 그대 내일은 오시려나
꿈꾸는 카사비앙카 바다와 맞닿은 그곳에
붉은빛에 부겐빌레아 그대를 기다리네

오늘도 기다리네 -

가사 출처 : Daum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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