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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북정맥 09] 본색本色을 잃은 마루금에서

月波 2012. 4. 8. 23:06

 

[한북정맥 09] 본색本色을 잃은 마루금에서

 

1. 산행개요

 

(1) 산행일시 : 2012년 4월 8일(일), 당일산행

(2) 산행구간 : 축석령-천보산 갈림길-고읍 택지개발지구-큰데미-샘내고개-청엽굴고개-임꺽정봉-오산3거리

(3) 산행거리 : 20.0Km

(4) 산행시간 : 7시간 50분(0840-1630), 고읍의 맛집에서 즐긴 이른 점심 1시간 포함

(5) 산행참가 : 8명의 산친구들(성원,오리,월파,정산,오언,은영,지용,성호)

 

2. 산행후기

 

(1) 허물어진 마루금, 길을 잃다

 

오늘 여러 개의 고갯길을 지났다. 축석령, 백석이고개, 오리동고개, 덕고개, 막은고개, 샘내고개, 청엽굴고개, 오산3거리다. 그러나 그 고개가 마루금인지 평지인지 구분이 안 되는 밋밋한 곳이었다. 또한 산이라고 이름 붙은 곳은 산행막바지에 오른 불곡산(佛谷山, 471m) 정도이니 산행을 한 것인지 헝클어진 마루금 찾기를 한 것인지 헷갈린다.

 

도시화의 바람으로 마루금은 곳곳에서 그 종적을 찾기가 난해했다. 퍼즐 맞추기였다. 상하고저의 분간이 어려운 대규모 택지개발지구를 통과하고, 포장도로를 따라 걷다가 아파트단지를 지나 철길을 통과하기도 했다. 골프장을 가로지르는 일은 차라리 양반이었다. 산 아랫마을과 어울린 마루금은 잘리고 헐린 채 그 본색本色을 잃고 있었다.

 

마루금 걷기의 묘미를 느낄 수 없으니 그저 앞사람을 따라 요리조리 쫓아다녔다. 주변에 특별히 살필 곳도 없는 군부대 철조망을 따라 무덤덤한 표정으로 시큰둥하게 걷기도 했다. 낙동정맥 끝 무렵 부산 다대포를 앞두고 도시의 골목길과 낮은 산언덕을 지날 때는 골목길에서 마루금을 찾아가는 생경한 느낌이라도 있었지. 이런 길을 계속 걸어야 하나?

 

그런 생각이 온통 뇌리를 지배하던 산행의 끝 무렵에, 그나마 불곡산을 오르며 허탈했던 마음을 달랜다. 청엽굴고개에서 불곡산 방향으로 본격적으로 산길을 오른다. 불곡산은 그 고도가 높지 않아도 암봉과 어우러진 산세가 산객山客의 마음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다. 산을 오를수록 기대감이 조금씩 커져간다. 마음은 이런 것인가?

 

 

 

 

 

 

 

(2) 불곡산에서 임꺽정을 생각하다

 

마루금에서 조금 벗어난 임꺽정봉에 오른다. 양주 벌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실학자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은 홍길동, 장길산과 함께 임꺽정을 조선의 3대 도적盜賊이라고 했었지. 그 임꺽정이 태어난 곳이 저 아래 양주의 유양동이란다. 이 산봉우리를 '임꺽정봉'이라 부르는 연유도 그런 것이겠지. 세찬 바람이 부는 암봉에 서서 잠시 그의 삶을 생각한다.

 

백성들은 임꺽정을 의적義賊이라 추켜세웠지만 조선의 조정은 그를 민심을 흉흉하게 하는 도적盜賊이라 하여 처형했다. 얼마 전 어느 일간지가 '다시 읽는 고전古典' 캠페인을 하면서 그 첫 작품으로 벽초 홍명희가 쓴 소설 '임꺽정'을 선정했다. 소설가 성석제는 임꺽정의 사상이나 행동보다 홍명희의 소설적 표현력에 무한감동을 보냈다.

 

성석제의 말처럼 임꺽정은 로빈 후드나 활빈당 같은 멋진 의적은 아니다. 그저 힘이 장사일 뿐 화적떼 두목이요, 제 멋대로 사는 무식한 불한당에 이기주의자일 뿐이다. 사기와 강도질은 기본이고, 마음에 안 들면 아무에게나 욕설에 두들겨 패는 일은 다반사茶飯事요, 심지어 살인까지 예사例事다. 그런데 독자들은 왜 소설 임꺽정에 열광했을까?

 

일종의 대리만족이었을까? 지연 혈연 학연에 따른 파당派黨에 싫증이 나서 소수少數의 특권이 아닌 다수多數의 공리公理를 꿈꾸는 일, 그 일은 시대를 불문하고 늘 민초民草로부터 싹이 트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사람들은 소설 속의 임꺽정을 통해, "토지와 핏줄에 근거하지 않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사람들의 행로行路"를 가슴 아프도록 공감했던 것일까?

 

 

 

 

 

 

(3) 장쾌한 암봉에 마음을 뺏기다

 

홍명희는 소설에서 임꺽정을 의적義賊이라 부르지 않았다. 다만 파란만장했던 그의 삶을 감성 넘치도록 풍성한 어휘로 묘사해, 임꺽정을 일약 스타덤(?)에 올렸을 뿐이다. 춘원 이광수, 육당 최남선과 더불어 조선의 3대 천재로 불렸던 벽초 홍명희, 그러나 해방 후 북한에서 부수상까지 지냈으니 한동안 그는 금기禁忌였고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을 뿐.

 

그런데 의적義賊이란 어떤 사람인가? "무법천지로 탈취하여 약자에게 무상분배"한 것이 정의正義라면 법과 질서는 무엇인가? 봉건사회의 구조적 한계를 타파하려던, 소위 '혁명'을 꿈꾸었던 혁명가일까? 그러나 아쉽게도 실패한 혁명은 혁명이라 불리지 않는 법. 민주화된 오늘의 사회에서 부조리한 사회의 개혁을 꿈꾸는 이들은 어떻게 칭하는가?

 

잡념을 털고 하산을 서두른다. 임꺽정봉에 인접한 능선의 장쾌한 암봉에 마음을 빼앗기며 걷는다. 암릉의 바위들이 각종 동물의 형상을 닮아 신기하기 그지없다. 코끼리, 곰, 투구, 상투 모양의 바위가 즐비하다. 다음에는 마루금을 버리고 불곡산 암봉 산행을 해보자고 동행하던 성호 아우와 얘기를 나눈다. 악어바위의 생생한 비늘도 볼 수 있겠지.

 

오산 3거리로 하산, 큰오미의 두부가 생각났지만 가까운 곳에서 조촐하게 파전에 막걸리를 한 사발씩 하고 서울로 향한다. 사실 수제비 맛에 더 마음이 끌렸다. 큰오미의 명품 두부 맛은 언제 길일吉日을 택해야 할까보다. 그렇죠, 형님? 의정부를 거쳐 양재역에 이르니, 정산 왈 "오늘은 양재지맥 안 해?" 맥주 한 잔 유혹을 뿌리치고, 잽싸게 집으로 .......

 

 

 

 

 

 

산행 말미에

 

오는 봄을 시샘하듯 주초週初에 한바탕 4월의 눈비가 내렸다. 애타게 봄을 기다리던 마음을 주체 못하고 어제는 불원천리不遠千里 여수 향일암向日庵과 순천 선암사仙巖寺를 아내와 함께 다녀왔다. "나 찾다가/ 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 예쁜 여자랑 손잡고/ 섬진강 봄물을 따라/ 매화꽃 보러 간 줄 알거라." 는 시인의 노래를 부르면서.

 

향일암의 동백꽃은 통째로 떨어지며 절정의 붉음을 토하고, 선암사의 오래된 홍매紅梅는 수줍은 듯 속살을 보여주더라. 오늘 보니 한강 북쪽의 불곡산佛谷山 자락에도 진달래가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산야山野에도 풀이 돋고 꽃이 피기 시작했으니 바야흐로 봄이다. 어제는 남도南道, 오늘은 한북漢北의 산야山野를 누비니, 곳곳에서 봄을 알리더라.

 

이렇게 외물外物이 모두 봄이라 하니, 이제 스스로 '마음의 봄'을 찾아야 할 때다. "종일 봄을 찾아 헤매다가 신발만 닳고 돌아와, 집 앞의 매화 향기를 맡으니 봄은 이미 그 가지에 무르익어 있었다." 는 옛 선사禪師의 말씀처럼, 가까이 내 마음 속의 봄을 찾아야겠다.

 

 선암사 백매白梅(2012. 04 .07)

 

 선암사 홍매紅梅(2012. 04. 07)

 

 

2012년 4월 8일(일) 늦은 밤에

봄을 찾아 헤매다가 돌아와

월파月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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