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따라 길따라/* 백두대간

(04) 세상으로 내려온 백두대간

月波 2005. 6. 27. 23:53

백두대간 종주기] : 여원재-고남산-사치재



1. 종주 기록

(1) 일 시 : 2004.3.21.(일)
(2) 구 간 : 여원재-고남산(4.4km)-매요리(4.0Km)-유치삼거리(2.0Km)-사치재(2.5Km)
(3) 산 행 : 도상거리 12.9Km, 소요시간 4시간 30분

(4) 참 가 : 29명
----- 권오언, 김경애, 김성호, 김은만, 김종복/이영희, 김현숙, 남시탁/김영이, 박홍구, 박희용,
손영자, 송영기, 윤재용/이흥녀, 이기순/박재상, 이성원, 지용, 최정미, 홍명기, 이상덕/맹혜경,
이종도, 서종환, 백청용, 천황복, 함인성, 허종성

(5) 산행일지

- 07:02 개포동 국민은행 앞 출발
- 08:27 죽암휴게소(조식 15분)
- 10:15 88고속도로 인월 나들목
- 10:30 여원재(산행 시작)
- 11:09 561.8봉
- 11:42 광암재
- 12:07 고남산(846.5m), 8분간 휴식
- 12:33 통안재, 15분 중식
- 13:10 유치재(573.2m)
- 13:45 매요리, 20분간 휴식
- 14:20 유치 삼거리
- 15:00 사치재/ 지리산 휴게소(1시간 40분 휴식)
- 16:40 지리산 휴게소 출발
- 20:00 서울 개포동 도착


2. 산행기 -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을 되새기며


1) 산길에서 느끼는 동심(童心)

백두대간 제 4차 산행이다. 서울을 출발한지 3시간 30분이 걸리지 않은 10시 28분, 지난 산행의
종점이었던 여원재에 도착한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오늘 산행을 함께하는 29명의 대원들은
출발을 준비한다. 등산화 끈을 고쳐매며 오늘 산행에 대한 의지를 다진다. 신발의 끈만 묶는 것이
아니다. 산과 하나가 되어 보자고 마음의 끈을 굳게 묶는 것이다.

여원재의 전설을 안은채 서있는 운성대장군을 바라보며, 산행 들머리에서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곧바로 출발이다. 이내 솔밭길에 접어든다. 제법 햇살이 따사롭다. 나무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
온다. 새 솔잎에서 풍기는 싱그러운 향이 아니더라도 솔내음은 언제나 정겹기만하다. 송화가루
날리던 봄날이면 천둥벌거숭이처럼 마을 앞 산을 누비벼 뛰놀던 기억이 향수처럼 다가온다.



산행 시작부터 한없이 마음이 푸근하다. 오늘 걷는 대간 길은 내 동심을 키웠던 고향 모습을
너무도 닮았다. 넓지않은 논밭을 허리춤에 안은채 자리잡은 장교리(長橋里) 마을의 모습이
그렇고, 높지 않은 야산을 따라 걸어가는 솔밭길이 그렇고, 마을 뒤로 솟아있는 고남산의 모습은
고향의 집현산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앞서가는 일행들은 장치(長峙)를 지나 느닷없이 밭고랑 사이를 가로질러 숨바꼭질하듯 숲으로
사라진다. 밭길이 마루금이 아닌 지름길인 듯하여, 정산(正山)과 둘이는 유심히 지형을 살피며
묘지옆으로 오르는 길을 따라 오른다. 언덕에서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보니 낮은 구릉(丘陵)사이로
운봉(雲峰)과 남원(南原)으로 갈라지는 마루금이 확연히 드러난다. 참 재미있다. 오늘은 이렇게
마루금을 찾아가며 아기자기 산길을 걸어볼까나?




2) 산을 달리는 사람들

출발한지 30분이나 되었을까? 아직은 몸이 덜풀려 다리가 뻐근하다. 561봉을 오르는 솔밭길을
따라 천천히 걷는다. 앞서간 선두 그룹들은 이 야산에서 얼마나 달리고 있을까? 마라톤클럽의
백두대간 종주이니 얌전히 걷기만 하겠는가? 선두조와 함께 달리겠다는 마음은 일찌감치 접는다.
다음에는 날씨도 풀렷으니 겨울용 중등산화대신 트레킹화로 바꿔신고 나도 한번 뛰어볼까?

지난 여름 강마와 함께 산악마라톤을 하며 지리산 당일종주를 하던 기억을 떠올린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겁없이 덤볐던 것같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금년 여름에는 지리산 당일 왕복종주를
하자는 얘기가 조금씩 나온다. 아직은 고개를 흔들지만 막상 여름이 오면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

561봉을 못미쳐 길이 갈라진다. 직진하는 길로 가기 쉽상인데, 잠시 망설이다가 오른쪽 급경사
내리막 길을 따른다. 얼핏보면 지형상 마루금이 아닌 것같다. 불안하다. 다시 지도를 보니
오른쪽이 맞는듯하다. 다행히 곳곳에 얼었던 흙길이 녹으며 깊숙히 패여있는 앞서간 발자국을
발견하고 내리막길을 힘차게 걷는다. 앞서간 발자국에 감사하며, "뒷사람들의 길잡이(後人程)가
되리니 함부로 길을 걷지(胡亂行) 말라"고 했던 서산대사를 떠올린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앞서간 선두조가 뒤에서 달려온다. 선두조의 일부가 길을 잘못들어
알바(?)를 한 모양이다. 말로만 듣던 [알바]를 이번 종주길에서 처음 본다. 누구나 대간 길에서
종종 겪을 [알바]이니 앞으로 달려가는 선두조에게 [힘!]을 외치며 길을 비켜준다,

시계(視界)가 확보되는 고개마루에 내려와 되돌아보니, 선명히 드러나는 마루금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참 오묘한 일이다. 이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이제 막 마루금에 피어나는
버들강아지가 빙긋이 웃고있다.




3) 고남산을 오르며

여원재에서 바라본 고남산은 단숨에 올라갈 것 같았는데, 동네 뒷동산같은 숲길은 걷고 걸어도
쉽게 정상을 허락하지 않는다. 하늘을 덮는 소나무 숲을 걷는지라 주변을 제대로 살필 수 없지만,
간간이 숲 사이로 파고드는 햇살이 눈부시다. 햇살에 취해 무심코 합민성(合民城)터를 지난다.

광암재를 지나자 상당한 오르막이 시작된다. 앞에는 박재상/이기순씨 부부가 서로를 격려하며
사이좋게 산길을 오르고 있다. 오늘은 다섯 커플이 산행을 함께한다. 평생을 함께하는 동지가
신발끈을 함께 묶고 서로의 마음을 굳건히 합하면 그 어떤 산길을 못오르겠는가?
산행길에서 만나는 부부는 언제나 부러움을 자아내게 한다. 참 보기에 좋다.



정산(正山)과 사진이야기를 나누며 조금씩 산행템포를 조절한다. 숲사이로 비치는 소나무들을
역광으로 카메라에 담아본다. 햇살을 등지고 찍는 사진들과 달리 명암이 뚜렷하다. 나무들이
살아 숨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앞선 여성회원들과 숲길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솔바람
소리를 듣는다. 송운(松韻)을 즐기기엔 아직 연륜이 턱없이 부족함을 느낀다.



다시 길을 재촉한다. 제법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데 갑자기 암봉이 앞을
가로막아 선다. 한사람 한사람 조심스레 로프를 잡고 암봉을 오른다. 쉽게 정상을 허락하지
않으려는 조물주의 뜻인지, 정상에서 느끼는 짜릿한 쾌감을 더하려는 세심한 배려인지 .......

12시 7분, 드디어 고남산(846.5m) 정상이다. 생각보다 정상은 좁다. 겨우 몇사람만이 동시에
발디딜 틈을 허용한다. 산아래 남동쪽으로 운봉과 인월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 뒤로 덕두산과
바래봉을 잇는 서북능선이 희미하게 보인다. 황사 때문인지 하늘이 뿌옇다. 충분한 시계가
확보되지 않아 아쉽다.






4) 후미산행의 별미

정상에서만 즐길 수 있는 쾌감을 가슴에 담고, 그러나 오래 머무를 수 없는 아쉬움을 간직한채
고남산을 내려선다. 정상 바로 아래의산불 감시초소와 커다란 송신탑을 지나 통안재로 가는
길로 접어든다. 대간의 마루금위에 꼭 저렇게 송신탑을 흉물스럽게 세워야만 하는 것일까?
시멘트로 포장된 임도와 숲속의 흙길을 두차례 오가며 산길을 내려오니, 몇 그루 느티나무가
통안재를 지키며 우리를 반겨준다.



선두 그룹은 벌써 유치재를 지나 행동식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있다는 무전이 온다. 후미 그룹도
통안재 숲속의 빈터에서 각자 가져온 보따리를 푼다. 먹거리가 풍성하기만 하다. 행동식이라기
보다 호화별미다. 후미로 산행을 하는 맛은 해본 사람만이 안다.
앞서 달리면서 느끼는 육체적 성취감이야 선두그룹보다 덜하겠지만, 대간 길에서 만나는 자연과
교감하며 느끼는 여유로움과 정신적 충만감을 그 어디에 비견하랴.

다시 숲길을 걷는다. 유치재를 지나니 대간은 더욱 몸을 낮추는 기색이 역력하다. 낙옆되어
마루금에 쌓여있는 솔잎이 한결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솔갈비다. 땔감으로 제일인 솔갈비를
모으려(" 나무하러" 간다고 했지 싶다), 늦가을이면 동네 뒷동산에 오르던 기억이 새롭다.
서서히 오른쪽 능선 아래로 매요리 마을과 논밭이 보이기 시작한다.




5) 할머니, 할머니 우리 할머니

매요마을 논밭에서는 봄일을 시작하는 촌노들의 모습이 보인다. 대간 길은 완전히 꼬리를 내려
사람사는 마을 깊숙히 파고든다. 지난 번 수정봉을 오르며 지났던 가재마을에 이어, 백두대간
마루금이 지나가는 두번째 마을이다. 아마 마루금에서 다시 이런 마을을 다시 찾기란 힘들지
싶다. 마을 골목 담벼락에 대간 표지기가 어지럽게 걸려있는 모습이 왠지 어색하다.



매요교회를 오르는 코너, 매요 휴게실에는 남대장이 막걸리와 두부, 김치를 마련해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목이 마르던 차에 단숨에 막걸리 한사발을 비운다. 꽁꽁 언 김치의 맛도 별미다.
배낭을 내려놓고 동동주까지 서너 사발을 마신다. 아! 크~ 크~ 걸쭉한 그 막걸리의 맛이 아직도
입가에 어려있는 듯하다.



이 매요 휴게실은 대간돌이라면 누구나 빠짐없이 들리는 참새방아간인 모양이다. 담벼락에 붙어
있는 산행객들의 낙서판이 이를 대변한다. 휴게소를 지키는 신 순남 할머니는 세월의 흐름을
그대로 얼굴에 담고있다. 이마에 패인 깊은 주름살은 우리네 할머니들이 살아온 모습 그대로다.
표정은 그저 순박하고 맑기만 하다.

할머니에게 막걸리 맛이 꿀맛이라며 한 통에 1,000원쯤 올려도 괜찮겠다고 넌지시 귀띰했더니,
"그러면, 뭐 그시기 인터닛인가 하는 곳에 올라가 대간꾼들의 입방아로 시끄러울 텐디......"
하신다. 그저 산골의 사람사는 법대로 적당히 어울려 살아감이 좋다는 표정이다.






6) 부부가 걷는 백두대간

다시 길을 나선다. 유치 삼거리에서 박재상씨 부부를 우회로로 보내고 우리는 대간 마루금을 따라
618봉을 향한다. 618봉 어르는 입구의 목공소에 쌓여있는 나무들을 보면서, 한때 목기(木器)로
유명했던 운봉(雲峰)의 전통이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는 듯해 반갑다. 618봉만 넘으면 오늘의
종점인 사치재가 나올 것이니 발걸음이 한층 가볍다.

618봉에서 내려다보는 운봉(雲峰)은 덕두산, 바래봉등 지리산 서북능선을 병풍처럼 휘두른채
이름 그대로 구름에 쌓여 있다. 가까이 남동쪽에는 진주 남강으로 이어지는 광천이 흐르고,
고려말 이 성계장군이 왜구 아지발도 대장을 무찔렀다는 황산(荒山, 695m)이 우뚝 솟아 있다.
그 황산 아래 화수리 비전마을이 송 흥록에서 송만갑으로 이어지는 판소리 동편제의 고향이란다.



618봉에서 사치재로 내려서는 길목에서 여러 종류의 대간 표지기들이 보인다. 조금씩 리본들의
크기가 커지는 것을 보고 자신을 자꾸 드러내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을 읽는다. 그러나, 종종
색다른 리본이 눈에 뛴다. [아빠와 만들어가는 추억여행], [부부 백두대간] 등 가족중심의 주제가
있는 리본들이 가슴에 와 닿는다.



매요휴게소에서 만났던 부부의 모습이 떠오른다. 잠시동안 마라톤 얘기, 산 얘기를 나누었던
안산 마라톤클럽 김 송철씨 부부다. 둘이서 오손도손 대간을 걷는 모습이란 생각만해도 정겹다.
어제 저녁 밤차로 내려와 새벽 4시에 정령치에서 수정봉, 고남산을 거쳐 사치재까지 간다니,
우리가 세번에 걸쳐 구간종주하는 거리를 한번에 주파하는 셈이다.

김 송철씨의 금년 동아 마라톤 기록이 3시간 02분 08초이고, 부인도 작년 조선알보 춘천마라톤
기록이 4시간 10분대라니 그저 존경스러울 뿐이다. 마라톤 Sub 3에대한 꿈도 중요하지만
나이가 더 들기전에 백두대간을 꼭 해야겠다는 열망으로 부부가 함께 길을 나섰단다.
언제 대간길이나 달리기 주로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대해본다.




7) 사치재로 내려서는 길에서

618봉에서 사치재를 내려서는 길목에서 자그마하게 쌓아놓은 돌무덤을 지난다. 무사산행을 비는
대간돌이들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있는 듯하다. 숲길에는 길을 가로막고 허리가 꺽인채 쓰러져
있는 소나무들이 즐비하다. 아마 작년, 재작년 이곳을 스쳐간 태풍의 잔해가 아닌가 싶다.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 속수무책인 인간의 한계를 새삼 느끼며 좀 더 겸손해져야겠다는 생각이다.



사치재가 가까워 오면서 88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굉음들이 숲너머에서 간간이 들려온다.
오늘 산행을 마무리할 시점이 다가오는 것이다. 산행여건이 좋으면 복성이재까지 연장하겠다고
아침에 버스에서 안내했지만, 사치재까지의 일정에 마음을 맞춘지 오래다. 걸음은 한결 여유롭다.

먼저 88휴게소에 도착한 선두그룹에서 후미의 현위치를 파악하는 무전이 계속 날아든다. 누군가
하산주로 포도주를 준비한 모양이다. 포도주맛이 일품이라며 후미를 독려하는 목소리가 무전을
타고 사치재 숲길로 연신 날아든다. 포도주를 좀 남겨놓아야 할텐데......




8) 산행을 마무리하며

사치재에서 산행을 마무리하고 88휴게소로 향하는 길에, 난데없이 날아온 전화 한통에 비상이
걸린다. 사치재에서 고속도로를 횡단하여 복성이재로 대간종주를 계속 진행한 여자회원들이
있다는 소식이다. 남대장이 복성이재 가는 길로 달려가고, 우리는 휴게소로 향한다.

여기저기 꽃망울을 터뜨리는 새싹의 모습을 간간이 볼 수 있다. 산에서 봄을 느끼기에는 아직
이른가 보다. 5월 말 봉화산을 오르며 널부러지게 피어있을 철쭉을 보며 완연한 봄속으로
빠져들 수 있을런지 기대해본다.



오늘 산행을 반추해본다. 고향에 온듯한 착각으로 올망졸망 마을로 내려온 대간길을 따라 걸었다.
하늘을 가리고 빽빽이 선 소나무 숲길에서 송운(松韻)을 듣기도 하고, 그 숲 너머로 이따금
제모습을 드러내는 운봉마을에서 내 어릴적 향수를 끄집어내어 가며 걸었다. 세월의 깊이를
그대로 간직한 매요마을 할머니의 모습에서 한없이 포근함을 느끼기도 하고, 부자(父子)나
부부(夫婦)가 함께하는 백두대간 종주에서 가족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느끼며 걸었다.

그러나, 제대로 송운(松韻)을 즐기고 꽃망울 터지는 소리를 들으며, 세상의 소리를 걸러내는 귀를
가지기에는 공력이 턱없이 부족함을 느낀다. 어느 시인은 밤하늘 별들이 속삭이는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어야, 맑은 소리를 골라 들을 수 있는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했는데......
얼마나 산을 더 걸어야 제대로 산을 닮을 수 있을까?


산이라 해서 다 크고 높은 것은 아니다
다 험하고 가파른 것은 아니다

어떤 산은 크고 높은 산 아래
시시덕거리고 웃으며 나즈막히 엎드려있고
또 어떤 산은 험하고 가파른 산 자락에서
슬그머니 빠져 동네까지 내려와
부러운 듯 사람사는 꼴을 구경하고 섰다

그리고는 높은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순하디순한 길이 되어 주기도 하고
남의 눈을 꺼리는 젊은 쌍에게 짐짓
따뜻한 숨을 자리가 돼주기도 한다

............... [신 경림]의 산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