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따라 길따라/* 백두대간

(06) 안개비 속의 백운산

月波 2005. 6. 27. 23:58

[백두대간 종주기] : 봉화산-백운산-영취산(6차)



1. 종주 기록

(1) 일 시 : 2004.4.18.(일)

(2) 구 간 : (송리마을:진입)-봉화산(919.8m)-광대치-월경산(981.9m)-중재(650m)-중고개재-백운산(1278.6m)-1066봉-선바위고개(갈림길)-영취산-(무령고개:하산)

(3) 산 행 : 도상거리 주능선13.0Km + 진입 2.5Km + 진출(0.5Km)

(4) 소요시간 : 6시간 21분 - 주능선(5시간 18분) + 진입(55분) + 진출(8분)

(5) 참 가 : 19명
----- 남시탁/김영이, 박홍구/유난희, 박희용,송영기, 윤재용/이흥녀, 이성원, 지 용, 홍명기, 이상덕/맹혜경, 서종환, 이종도, 함인성, 천황복, 윤영기, 정한채
(5) 산행일지

- 07:06 개포동 국민은행 앞 출발
- 08:26 옥산휴게소(조식 20분)
- 10:06 88고속도로 지리산(인월) 나들목(I/C)
- 10:36 구상리 송리마을 도착, 산행시작(진입)
- 11:06 임도(성주 배공 묘 위)
- 11:29 봉화산(임도 끝), 종주 시작
- 11:35 무명봉(870m)
- 11:55 944봉
- 12:35 광대치
- 13:05 월경산(981.9m)
- 13:38 중재
- 14:18 중고개재
- 15:35 백운산(白雲山 : 1278.6m)
- 15:55 암봉
- 16:24 1066봉
- 16:37 선바위고개(갈림길)
- 16:47 영취산(1075.6m), 종주 산행 끝
- 16:55 무령고개(진출), 식사및 하산주
- 17:42 무령고개 출발
- 22:00 서울 개포동 도착


2. 산행기

(1) 지리산 자락을 벗어나며

백두대간 6차 산행의 날이 밝아왔다. 오리 연습주와 9 Bridges 행사에 이어 연 3일째 강행군이니 몸이 다소 뻐근하지만 백운산에서 바라볼 조망에 대한 기대로 마음은 한결 가볍다. 잠이 일찍 깨어 여유있게 개포동역에 도착하니 대간동지들이 한 사람씩 모여든다. 그들 모두 진정한 산꾼을 꿈꾸는 사람들이지 싶다. 오늘은 19명이 참가, 단촐하다. 산행후 무령고개에서 즐길 하산주와 삼겹살 파티가 정말 오붓할 것같다는 예감이다.

개포동을 출발한지 정확히 세시간만에 버스는 88고속도로 지리산 나들목(I/C)에 도착한다. 백두대간을 시작하여 그간 6회의 산행중 중산리에서 진입한 제 1차를 제외하고, 다섯차례의 산행을 여기 인월(引月)의 지리산 나들목을 기점으로 해왔다. 지리산 서북자락이 얼마나 넓은지 알 수 있다.

지리산 입산통제로 아직 못다한 3구간(화개재-노고단-성삼재)과 4구간(성삼재-정령치-가재마을)이 남아있어 한 두번은 더 여기를 이용하겠지만, 백두대간은 오늘 향하는 봉화산을 지나 백운산을 넘으면 완전히 지리산 자락을 벗어나게 된다.


(2) 백우당(白牛堂) 각묵(覺默)스님

오늘의 대간길을 지나면 지리산을 벗어나 덕유산 구간으로 접어든다고 생각하니, 인월의 지리산 나들목에서 자꾸 뒤를 돌아보게된다. 구상리(송리마을)로 향하는 버스속에서 마음은 지리산 백무동 가는 길의 실상사(實相寺)로 향하고 있다. 1월부터 4개월째 인월(引月)을 맴돌면서 실상사를 들리지 못했으니........

구산선문(九山禪門) 개산(開山)이래 선종(禪宗)의 맥이 면면이 흐르는 백장암 선방에서 참선하는 수좌들, 화엄학림의 젊은 학승들, 생명사랑 운동과 3보1배의 도법(道法)스님이 있기에, 소유가 아닌 존재를 나누는 상생(相生)의 문이 할짝 열려있는 실상사가 아닌가?

또한, 스무살 푸른 시절 간절한 마음으로 함께 구도(求道)하고 정진(精進)했던 도반(道伴), 백우당(白牛堂) 각묵(覺默)스님이 실상사에 주재하고 있으니 그가 더욱 그립고, 지리산 자락을 벗어나는 발길이 아쉽기만 하다. 백두대간 산행을 시작하며 시절의 연(緣)으로 해후의 오랜 꿈이 이뤄지길 은근히 기다렸는데 다음을 기약해야 하나보다.

작년 어느 봄날 지리산 삼각고지에서 가지를 치고 뻗어난 삼정산 등반길에 실상사에 들렀으나 출타중이어서 못뵙고, 금년 봄 매화차 한 잔을 기다렸었는데 ...... 각묵(覺默)이 직접 설(說)하는 금강경 주해(註解)가 아니더라도 그의 너털웃음과 어린아이같은 천진난만한 미소만으로도 마음은 늘 푸근하다는 생각을 하며 봉화산으로 향한다. 그 시절을 함께했던 정산(正山)은 이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지긋이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다.


(3) 봉화산을 오르며

봉화산을 오르는 길은 지난 번의 하산코스(부동마을)가 아닌 송리마을에서 바로 정상을 향해 오르는 길을 택한다. 백년도 넘었음직한 송리마을의 돌담길을 지나고, 이제막 새쑥이 제법 고개를 내민 논두렁을 건너니 바로 산길이다. 길가에는 갓 새순이 올라오는 두릅의 향기가 상큼하게 퍼진다.

오르막 산길에 접어든다. 여기도 지난 여름 태풍이 지나갔나보다. 곳곳에 폭풍우에 꺽어진 나무와 간벌로 밑둥을 잘라 넘어진 나무가 나뒹군다. 제법 가파른 길을 힘차게 오른다. 초반이라 아직 체력에 자신이 있다.

한참을 오르니 양지바른 능선에 마을 사람들이 십여명 모여 무덤에 봉분을 세우고, 상석을 놓는 일을 하고 있다. 성주 배씨 묘다. 그래 금년이 윤년이지. 십여년 전 어느 윤년에 우리 선산에도 상석을 새로 놓았었지.

그때 애쓰시던 아버님 생각을 한다. 여느 아버지라면 자식이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물가에 내놓은 것마냥 안심이 안될텐데, 아버지는 언제나 내가 하는 일을 늘 묵묵히 지켜보시고 성원해주시는 모습이 고맙기만하다. 봄이 가기 전에 부모님에게로 달려가 내 어릴적 고향의 흙냄새와 봄향기를 맡으며 하루 밤을 지내고 싶다.

상석놓는 작업을 하던 촌노(村老)들은 우리의 산행길이 이채로운가 보다. 땀을 뻘뻘 흘리고 오르는 우리에게 한 말씀씩 돌아가며 하신다.
" 서울서 여기까정 뭐하러...... 힘들게...... "
" 우리는 서울로 가는디....... "
" 워따, 이 보다 더한 보약이 또 어디 있겠능감? "
모두 다 옳으신 말씀이다. 오늘 나는 왜 산을 오르는 것인가?


(4) 억새밭에 피어난 진달래

봉화산 주변은 아직 새잎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철지난 억새만이 무성하다. 간혹 억새사이에 피어난 진달래가 산에도 봄이 멀지 않았음을 알려줄 뿐이다. 산아래 마을에서 봄이 왔다고 호들갑을 떨어도 대간길의 나무들은 촐랑대지 않는다. 오로지 뿌리끝에서 가지끝까지 자양분을 빨아들이며 새순을 돋울 준비를 묵묵히 하고 있다.

대간능선을 따라 5-6분을 걸었을까?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를 이루는 870봉에 이른다. 여기서부터 오늘 걸어갈 대간 길은 왼쪽이 전북 장수, 오른쪽이 경남 함양이다. 왼발은 전라도에, 오른발은 경상도에 내딛으며 하루를 걸어보자.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 전라, 경상, 전라, 경상 .........

944봉을 지나고 숲길에 피어난 진달래를 간간이 카메라에 담으며 광대치를 향해 걷는다. 오늘이 음력으로 2월 그믐(29일)이니, 사흘 후면 삼월 삼짇날이다. 내 어릴적 고향 뒷동산의 진달래는 유난히 그 빛깔이 고왔지 싶다.
삼짇날에 진달래를 넣어 담근 붉디붉은 두견화주(杜鵑花酒)를 즐겨드시던 할아버지, 유가(儒家)의 장손이라고 나를 그렇게도 아끼셨는데....... 그 할아버님을 두견주없는 세상으로 모신지 벌써 30년이고, 홍안의 소년은 어느듯 나이 오십을 바라본다.
숲길을 걷는데 가끔씩 환청처럼 두견새 울음이 들리는 것은 할아버님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가?


(5) 월경산(月鏡山 : 981.9m)을 넘어

봉화산에서 대간길을 한 시간여 걸었나보다. 광대치에 도착하니 선두의 꼬리가 월경산을 향해 떠난다. 광대치에는 대간 리본이 많이도 달려있다. 지용 님과 둘이서 행동식으로 허기를 때우고 월경산을 오를 준비를 한다. 처음부터 꽤 가파른 산길이다.

월경산 오르는 중간중간에 떡갈나무들이 나딩굴고 있다. 간벌을 한 모양인데 보기에 썩 좋지는 않다. 나무들도 사람마냥 다 양지바른 곳, 토양이 좋은 곳에서 잘 자라는데 저 떡갈나무는 척박한 땅, 바람부는 능선에서도 꿋꿋이 자란다. 참으로 생명력이 강한 나무의 하나다. 떡갈나무에서 또다른 지혜를 깨닫는다.

월경산에서 중재로 내려서는 비탈은 산사태가 난 것처럼 미끄럽고 급한 내리막 경사다. 곳곳에 설치된 밧줄을 잡으며 내리막길을 정신없이 뛰다가, 걷다가를 반복한다. 은근히 무릎이 걱정이다. 힘든 길을 왠만큼 내려왔을까? 주위를 둘러보니 선두그룹도, 후미그룹도 보이지않고 나 혼자 산길을 걷는다. 나는 나는 산이 좋아라.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후미그룹은 어디쯤 오고 있을까? 궁금하다. 무전기를 찾으니, 허리춤에 차고왔던 무전기가 없다. 아뿔사! 어디서 흘렸지? 월경산 정상에서 무전을 쳤으니 산사태 난 내리막길을 뛰면서 떨어뜨린게 분명하다. 다시 찾으러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가자니 영 찜찜하다.

오늘 대간 진행팀의 팀웍이 아무래도 No Good이다. 휴대폰으로 남대장에게 연락해도 안받고, 간신히 후미의 홍형과 통화가 되어 전후사정을 설명하고 나는 내 갈길을 달린다.
무전기도 없고 이제 휴대폰이 안터지면 연락수단이 없는데 아직까지 휴대폰이 잘 터지고 있다. 다행이다. 대표적인 산골 오지인 함양 백전과 장수 번암을 양허리에 끼고 걷는 산길에서 휴대폰이 잘 터진다는 사실이 신통하기만 하다.


(6) 중재의 봄
월경산 정상에서 30여분을 달리고, 걷고를 반복하니 중재에 도착한다. 중재는 함양의 중기마을과 장수의 지지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지지리는 특히 손꼽히는 오지마을이었는데, 멀리서 보니 지지리에서 무령고개가는 길이 최근 포장을 했는지 시멘트색 길이 선명하게 보인다. 이 정도면 앞으로 대간길을 진입, 진출하는데 큰 애로사항은 없을 것 같다.

중재는 해발고도(650m)가 낮아서 곳곳에 봄기운을 느낄 수 있다. 여기저기 등산로 언저리에 진달래도 제법 피어있고, 가까운 숲에는 산벚꽃이 활짝 피어 화사함을 더한다. 중재 길목에는 찔레꽃이 새하얗게 피어 멀리 백운산을 한눈에 조망하는데 싱그러움을 더해준다. 이리저리 카메라에 담아본다. 저 꽃의 향기까지 담아 낼 수 있을까?

중재를 지나 695봉을 향하는데 후미의 홍형한테서 휴대폰이 날아든다. 잃어버린 무전기를 찾았다고 한다. 은근히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홍형, 고맙십니데이."
그런데 무전기 찾았다는 소식에 긴장이 풀렸나? 갑자기 허기도 지고 체력이 떨어짐을 느끼면서 도저히 걸을 수가 없다. 이 일을 어쩌나? 수백미터쯤 앞서가는 정산에게 휴대전화를 걸어 점심식사를 하고 가자고 하니 695봉에서 기다리겠단다.

695봉 솔밭길에 앉아 먹는 떡과 김밥이 제법 원기를 북돋워준다. 특히 정산이 준비해온 방울토마토는 그 맛이 일품이다. 정산은 산행시마다 이것저것 과일을 바꿔가며 준비한단다.
어느 과일이 수분과 당분을 보충하는데 더 효과적인지 테스트해보고, 앞으로 3년여 대간길에 철마다 적당한 과일을 준비하겠단다. 참 용의주도한 친구다. 매번 과일을 정성들여 준비해주는 그의 아내, 미원씨의 마음씨도 참으로 곱다.


(7) 백운산을 오르며

정산과 맛있는 점심을 먹고는 힘을 내어 산길을 오른다. 755.3봉을 지나자 이내 중고개재가 발아래다. 오른쪽 숲너머로 보이는 함양 백전면 중기마을은 시골집에 피어오를만한 굴뚝연기도 보이지 않고 고요하기만하다.

광대치에서 만났던 두 소년이 생각난다. 아빠와 함깨 백두대간을 북에서 남으로 타고있다고 했다. 오늘 저기 중기마을에서 산행길을 시작했다고 했다. 진부령에서 지리산으로 남행길이니 그 가족들의 2년이 넘는 대간길이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 부자가 또는 부부가 함께하는 백두대간, 참 부럽다. 언제 아들넘 손잡고 산길을 걸어볼 수 있을까?

중고개재를 지나자 백운산을 오르는 가파른 흙길이다. 아마 여기서 1시간 30분이상 된비알을 올라야하리라. 숨이 헉헉 차온다. 체력이 은근히 걱정이 되어 정산을 뒤에 세우고 내가 앞장서 백운산을 향해 오른다. 일기예보가 맞아떨어지나보다. 하늘에는 구름이 자욱하고 조금씩 안개비가 볼을 스친다.

뚜벅, 뚜벅 ...... 한걸음 한걸음 말없이 토산(土山)을 밟는다. 그나마 암산(岩山)이 아니라 다행이다. 정산과 말없이 오르면서도 서로를 충분히 교감한다. 오늘따라 유난히 힘들어하는 나를 느끼고는 뒤에서 "월파, 힘 ! " 하고 큰소리로 외쳐준다. 진정 고마운 친구다. 앞서가던 일행 세사람을 만나 함께 백운산(1278.6m)에 오른다.


(8) 안개비속의 백운산

드디어 백운산(함양) 정상이다. 백운산은 백운봉이라 부르는 곳을 포함해 전국에 30여개가 있단다. 영월의 백운산(1425m)이 가장 높고 그 다음이 여기 함양 백운산이다. 그외에 지리산 종주능선에서 조망할 수 있었던 광양 백운산이 있고, 무주, 원주, 포천에도 백운산이 있다.

함양 백운산은 오늘 대간길의 주 포인트다. 백운산 정상에서 조망할 수 있는 동서남북의 산들이 그 얼마나 장관이라고 알려져 있던가? 북으로 덕유산, 남으로 멀리 지리산의 주 능선들, 동으로 금원산,기백산, 서쪽으로 장수 팔공산, 동북으로 가야산, 황매산 등등....사방에 병풍을 두른듯이 펼쳐지는 파노라마를 기대했었는데.....

그러나 정말 아쉽다. 우리가 정상을 오르기를 기다렸다는듯이 안개비가 점점 짙어져 빗방울이 되고, 이내 얼굴을 타고 흘러내린다. 백운산을 오르며 볼 수 있었던 장안산(1236.7m)과 괘관산(1251.6m)만 가까이 시야에 들어올 뿐 지리산 주능선은 물안개속에 가려져있다. 어찌하랴? 다음을 기대하는 수밖에.....

빗방울이 조금씩 굵어지고, 오후 3시 30분을 조금 지났는데도 주위가 어두워진다. 더이상 머무를 수가 없다. 백운산 정상표지석앞에서 정산과 부지런히 증명사진을 찍고 영취산을 향해 걸음을 재촉한다. 디카는 비속에 더 이상 사용하기가 무리일 것같아 가방속 깊숙히 넣고서......


(9) 1066봉을 넘어 영취산으로

백운산을 내려서자마자 바로 조릿대라 부르는 산죽(山竹)터널이 이어진다. 키 높이에 이르는 산죽이 길 좌우로 밀집해 있고, 아니 밀집된 산죽밭에 간신히 걸음을 옮길만큼 길이 뚫려있는 셈이다. 산죽터널을 뛰고 달린다. 날씨가 점점 궂어지니 자연 걸음이 빨라질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있을 줄이야. 산죽터널을 20분 가까이 통과하여 암봉에 도착하니 아래 위 옷이 온통 빗물에 젖어 있다. 산죽터널이 품고있던 안개비의 물기가 온통 내 몸으로 파고든 것이다. 늦었지만 걸음을 멈추고 비옷을 상의에 걸치고 다시 산길을 재촉한다. 정산과 서로 마주보며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안개비속에서도 비옷을 입지않고 조금 편히 걸어려던 아둔한 생각이 빚은 결과이리라.

산죽밭과 암봉을 지나 싸리밭길을 걸어 오르니 널찍한 공터가 산중에 나타난다. 1066봉이다. 영취산이 멀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다. 내리막 길에서 후미의 홍형한테 휴대폰을 하니 셋이서 백운산 지나 잘 오고 있단다. 일부는 중고개재에서 탈출하여 무령고개로 직행했다니 안심이 된다. 정산과 둘이서 산길을 계속 달린다. 산악달리기가 시작된 것이다.

내리막 길을 제법 달리니 선바위고개가 나타난다. 여기서 무령고개로 가지 않고 그대로 직진하여 영취산 정상으로 향한다. 정산도 이에 동의하고 묵묵히 나를 따른다. 제법 빗방울이 굵어지고 영취산을 오르는 발걸음도 빨라진다. 탈출로로 무령고개에 먼저 도착한 남대장은 우리가 걱정인지 연방 휴대폰을 날린다. " 걱정마이소, 우리 잘 가고 있슴니더 "

드디어 영취산 정상이다. 오늘 대간 길의 종점이다. 배낭 속 깊숙히 넣어두었던 디카를 꺼내 정산과 몇 장 기념사진을 찍고 이내 하산을 서두른다. 10분이면 무령고개에 도착하리라. 급경사 내리막 길이 빗물에 젖어 제법 미끄럽다. 그래도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처럼 달려 내려간다. 무릎이 온전할지......

그때 문득 배낭 속에 남겨둔 한라봉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그렇지! 원래는 백운산 정상에서 먹으려고 아껴 두었던 것인데, 안개비가 잦아지는 백운산 정산에서 경황이 없어 깜빡하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걸음을 멈추고 오렌지와 감귤 맛이 환상적으로 합쳐진 한라봉을 꺼내 정산과 나누어 입에 넣는다.

정산 !
그 맛이 꿀맛이더냐? 한라봉 맛이더냐?
무령고개에 도착하니 먼저 온 일행이 반겨주고, 빗속에 상추쌈에 싼 삼겹살과 하산주 한 잔이 온 몸을 녹여준다.
이 맛 또한 꿀맛이 아니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