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종주기] : 2차 (세석-화개재)
1. 종주 기록
(1) 일 시 : 2004.2.14.-2.15.(무박 2일)
(2) 구 간 : 지리산 구간의 백무동->세석-벽소령-연하천-화개재->뱀사골, 반선
(3) 산 행 : 도상거리 30.1Km, 소요시간 12시간 10분
(4) 참 가 : 25명
2. 산행기
(1) 백무동 가는 길
백두대간 1차산행 이후 1달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여러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2차산행의 날은 조금씩 다가왔고, 하루하루 지리산의 기상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D-Day를 기다렸다. 출발 1주일을 앞둔 전 주말에는 폭설로 지리산 입산이 전면통제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가슴이
철렁하기도 하면서.......
2004년 2월 14일, 드디어 출발이다. 출발에 앞서 예정에 없던 태백산행을 눈보라속에서 하게되었다. 그 산행에서 돌아온지 3시간만에 짐을 다시 꾸려 지리산으로 향한다. 이런 나에게 아내는 쓴소리 한 마디 없이 필요한 짐을 챙겨 보내준다.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이래서 아내란 영원한 동반자이다. 아내가 보온병에 담아 준 뜨거운 녹차가 내일 종주산행 내내 온기를 계속 유지해야 할텐데.....
밤 11시를 조금 넘긴시각, 25명의 종주대원을 태운 버스는 개포동을 미끄러지듯 빠져나간다. 태백산 심설산행의 피로탓인지 이내 깊은 잠에 빠져 들었고, 눈을 뜨니 벌써 백무동이다. 2월 15일 새벽 02시 56분, 채 4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야간산행이 금지되어 있는데다, 어제 내린 눈때문에 입산허가가 나지 않는다. 매표소를 왕복하며 2시간여를 초조히 기다린 끝에 5시 20분, 드디어 입산이 허락된다. 어제까지 입산통제였는데 천만다행이다. 은근히 걱정했던 가슴을 쓸어 내린다.세석에서 시작할 2차 구간종주를 위해 백무동에서 진입산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2) 한신계곡에 흐드러진 별빛
百巫洞, 여기서 8도강산으로 간 100명의 무속인 이야기는 전설쯤으로 스쳐가는 얘기이리라. 한신계곡의 초입인 백무동은 아직도 깊은 어둠이 묻혀있다. 모두들 이마에 랜턴을 달고 어둠속으로 발을 내딛는다.
중백무 주차장을 떠나 차례로 첫나들이 폭포, 둘째 나들이 폭포 이정표를 만난다. 어둠 속에서 랜턴을 비춰보지만 얼어붙은 빙벽만 어렴풋이 보일 뿐이다. 계곡미를 즐길 수 없는 상황이 안타깝다. 무박산행이 안겨주는 아쉬움이다.시원한 폭포수가 연출하는 환상적인 물안개와 포말음은 머리속으로 그릴 뿐이다. 계류(溪流)와 깊은 소(沼), 아담한 폭포가 조화를 이루는 이 계곡에서 발담그고 여름날의 하루를 보내고 싶은 욕구는 마음속에 깊숙히 담아둔다.
그러나, 야간 겨울산행은 다른 묘미가 있다. 계곡의 어두운 숲너머에 걸린 하현달이 무척 인상적이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 달이 따라다니며 한신 주계곡을 구석구석 비쳐주는 듯하다. 잠시 고개들어 먼 하늘을 보니 온통 별빛이다. 푸른 별들이 어두운 밤하늘에 허드러지게 쏟아져 내리고 있다. 출렁다리를 건너면서 보는 하늘은 이름 그대로 별빛 총총이다.
서서히 등과 목에 땀이 젖기 시작하고, 어제 태백산행에서 뭉친 근육이 풀리면서 몸이 가벼워진다. 선두의 김성의님과 장춘희님은 쉴틈없이 전진이다. 참 체력도 좋다. 하기야 지난 여름의 지리산 당일 종주시에 그 솜씨들을 익히 보았었지.......
출발한 지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아직 먼동이 트기에 이른 시각에 가내소 폭포를 지난다. 소설 동편제에 나오는 소리꾼 정구룡이 여기서 소리공부에 매진, 득음(得音)했다는 곳이다. 그러나, 빙벽으로 변한 폭포에서 소리꾼이 목이 터져라 연습하는 모습을 상상하기는 쉽지않다.
가내소를 지나면서 산길에는 제법 많은 눈이 쌓여 있다.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맑은 하늘에 쏟아져내리는 별빛을 헤아리며 심설산행의 묘미를 조금씩 느끼기 시작한다.
(3) 세석가는 된비알
한신 주계곡의 출렁다리 몇을 지났나보다. 한신폭포를 지나며 협곡산행에서 가파른 등산로로
접어든다. 아직은 체력이 튼튼하지만 올라갈 길의 무게가 서서히 느껴지기 시작한다.
날이 밝아져 함께한 일행과 사진도 찍으며 숨을 고른다. 하지만, 이어지는 등산로는 깍아지른 듯한
산길이 끝없이 앞을 가로 막는다. 엄청난 된비알이다.
어릴적 시골에서 가끔 쓰던 [된비알]이라는 단어가 문득 떠오른다. 순우리말 표준어인지,
서부 경남지방 특유의 사투리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참 정감어린 말이다.
비알이란 단어는 "오르막 산길"이란 뜻이라 생각되고, "매우 심한" 이란 뜻의 접두사 "된"이 붙어
있으니 아마 수직절벽에 가까운 오르막 산길이다. 정말 적절한 표현이다.
이 된비알에서 선두와 중간그룹및 후미의 간격이 확연히 벌어진다. 모두들 초반부터 심한 체력소모를
하고만다. 돌이켜보면 나도 여기서 흘린 많은 땀으로 인해 산행내내 탈수증상으로 고생했었지 싶다.
밧줄을 잡기도 하고, 때로는 바위돌을 기어오르기도 하며 된비알의 매운 맛을 톡톡히 본 셈이다.
그러나,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침엽수림과 곳곳에 딩구는 고사목 숲속, 그기에 허리를 덮을듯이 쌓인
눈이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런 이색체험이 된비알을 오르는 발걸음에 한결 힘을 불어넣는다.
고개돌려 먼 산을 본다. 서쪽 산마루에 환한 아침햇살이 비쳐져 내려오기 시작한다.
산이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새벽 별빛의 초롱초롱한 느낌만큼이나 햇살이 밝고 싱그럽다.
이는 오늘 날씨가 한없이 청명하리라는 징조다. 예감이 좋다. 맑은 날씨속에서 심설산행을 즐길 수
있겠다는 기대를 해본다.
선두그룹에서 중간그룹의 후미로 쳐져 잠에서 깨어나는 먼 산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도 하고,
허벅지까지 쌓인 눈길을 헤쳐가며 된비알을 오르니, 갑자기 시야에 넓은 고원지대가 나타난다.
세석고원이다. 시간을 보니 당초 예정된 시간보다 50분이나 빠른 3시간 10분만에 세석에 오른 것이다.
이제부터 능선 길이다. 오늘 산행의 가장 힘든 고비를 넘긴 셈이다.
(4) 다시 찾은 세석고원
세석(細石), 잔돌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 했던가? 동쪽으로는 촛대봉이 우뚝 솟아있고, 나아갈 길에는 영신봉이 지척이다. 남쪽의 개마고원이라 할만큼 넓은 고원지대로, 좀처럼 산에서 보기 드문 독특한 지형과 자연환경이 세석을 찾을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1차 종주에 이어 1달여만에 다시 오른 세석은 지난 번과 달리 제법 멋을 부리고 있다. 비록 제철을 만난 철쭉이 넓은 고원지대를 감싸는 봄철의 세석에 비견하랴마는, 고원지대에 쌓인 눈들이 독특한 겨울풍광을 만들며 또다른 세석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의 세석은 상대(上帶)의 초원지대와 중대(中帶)의 철쭉등 관목류가 눈 속에 덮혀 있다. 대간길을 함께하는 정산을 만나 눈속에 피어난(?) 마른 풀꽃을 렌즈에 담으며 제법 시간을 보낸다. 좀체 접할 수 없는 특이한 양태다.
여기서 움막을 치고 지리산 지킴이 역할을 하다가 홀연히 사라진 산사람 허만수의 생을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겨 세석산장에 도착하니 먼저온 일행이 반갑게 맞아준다. 행동식으로 체력을 보충한 후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본격적인 대간종주길을 서두른다. 그러나, 세석을 오르는 된비알에서 5-6명의 후미들이 체력을 많이 소모했는지 아직 산장에 도착하지 않는다.
(5) 영신봉(靈神峰)의 아침햇살
세석산장을 떠나 영신봉 오르는 길로 접어든다. 지난 번 지리산 1구간(천왕봉-세석)에 이어
지리산 2구간(세석-벽소령-화개재) 대간종주를 시작하는 것이다. 무릎을 덮을 정도로 쌓인 눈위로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아! 이렇게 날씨가 맑을 수가 있을까? 햇살을 우러러보는 하늘은 짙푸르다 못해 검푸르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다행이 러셀이 잘되어 있는 눈길을 따라 가볍게 영신봉을 오른다.
영신봉은 백두대간에서 뻗어난 한반도 13정맥중 낙남(洛南)정맥의 분기점이다. 낙남정맥은 영신봉에서 경남 남서해안 주요 지역(사천,삼천포)을 거쳐 마산 무학산, 김해 분성산(奮城山:360m)까지 약 299km에 이르는 산줄기를 형성한다.
수차례 지리산을 오르내렸지만 동서남북으로 이렇게 시계가 멀리 확보되기는 처음이다. 멀리 남쪽으로 사천만과 남해바다, 광양만의 제철소가 보이고, 서쪽으로는 호남정맥의 무등산이 우뚝 솟아 바로 눈앞으로 다가오며, 북쪽으로는 덕유산과 가야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반야봉은 지척으로 다가온다. 언제 어디서 보아도 반야봉은 그 후덕한 품새를 자랑한다.
하늘에는 정말 구름 한 점 없다. 눈덮힌 산 능선을 이런 날씨속에 걷는 것 자체가 다시 만나기 어려운 행운이다. 지난 번 지리산 1구간에서 3대적선(三代積善)의 천왕일출을 볼 수 있었던 것도, 오늘 또 지리산 2구간에서 청명한 날씨속에 심설산행을 즐길 수 있는 것도 모두 훌륭한 강마의 여러님들이 평소 가꾸어 놓은 덕이 아니겠는가 싶다.
(6) 암릉(岩陵)을 넘고넘어
영신봉에서 50분쯤을 눈속을 헤치며 걸었을까? 7개의 암봉(岩峰)들이 기이한 형상으로 오밀조밀
모여있는 칠선봉에 이르른다. 날씨가 맑아 암봉에 걸린 구름이나 안개낀 산릉의 신비함을 맛보지
못하더라도 남쪽으로 확트인 전망은 일품이다. 모두들 배낭을 내려놓고 한 컷씩 사진을 찍으며
잠시 땀을 훔친다.
아뿔사! 그런데, 이럴 수가........ 남쪽 능선을 배경으로 미처 몇 컷을 잡기 전에 카메라에 이상이
생긴다. 디카의 Battery가 모두 방전된 것이다. 어제 태백산 눈속에 너무 많은 사진을 찍었나보다.
충전할 틈이 없이 그대로 지리산으로 떠나왔으니..... 아쉽지만 카메라를 접어넣는다. 지금부터 지리능선의 조망을 오로지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끼며 마음에 그 영상을 담을 뿐이다. 이렇게 생각을 다잡으니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칠선봉을 떠나 올망졸망 솟아있는 무수한 암봉(岩峰)들을 오르내리며 선비샘으로 향한다.
이 암릉길은 흔히 육산(肉山)이라 부르는 지리산 종주능선에서는 좀체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경관을 이룬다. 그러나 그만큼 힘이 드는 어려운 구간이다. 눈덮힌 서북사면과 햇살에 눈이 녹아
젖어가는 동남사면을 반복하여 걸으며 선비샘이 있는 덕평봉 산허리를 오른다. 밧줄에 매달리기도
하면서 끝없는 암릉길을 오른다..
....... 눈에 보이는 고개만 넘으면 끝인 줄 알았다.
....... 하나를 넘으면 더 높은 고개가 나타났다.
....... 산을 넘으면 또 산이다.
....... 나아갈수록 바람은 세고, 숨이 가쁘지만
....... 멈출 수도 하산할 수도 없다.
.......... - 김영갑의 <그 섬에 내가 있었네> 중에서 -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한 고비를 넘기면 또 다른 고비가 나타난다. 힘겹게 한 봉우리를 넘으면 더 가파른 봉우리가 나타난다. 그래도 그 봉우리를 넘고 또 넘는 것은 정상에 올랐을 때의 성취감과 봉우리 너머에 있는 큰 희망에 대한 기대 때문이리라.
선비샘에서 중간그룹이 모여 잠시 사진을 찍는다. 평생을 사람대접 못받고 살았던 한 화전민의 한이 서려있다는 선비샘, 그러나 지난 여름 종주시와는 달리 물이 말라 있다. 여름 날에 맛보았던 그 시원한 물맛을 기대했는데 아쉽다.
(7) 벽소령 가는 길
선비샘을 떠난 발걸음은 덕평봉을 돌아 벽소령으로 향한다. 모두들 힘든 표정이다. 지금까지의
능선에는 그런대로 러셀이 되어 있어 눈길을 걷기에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지만
서쪽(대간종주 진행 방향)으로 갈수록 쌓인 눈이 많아지니 은근히 걱정이다.
그래도 묵묵히 걷는다. 곳곳에 바람에 밀린 눈이 허리까지쌓여있어 러셀이 안된 곳은 발디디기조차
겁난다. 한 발자국씩 눈길에 발을 옮길 때마다 서산대사의 선시(禪詩)를 읊조려 본다.
.........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눈 덮인 광야를 걸어갈 때에는)
......... 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 이리저리 함부로 걷지 말라)
.........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백범일지를 보면 이 선시를 김구 선생이 휘호로 즐겨 쓰며 애송하던 모습을 볼 수 있다.
오늘 산행내내 눈길에서 화두처럼 놓지않고 되뇌이리라.
소위 신벽소령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중간그룹이 도착하길 기다린다. 벽소령 북쪽아래 음정마을로 하산하는 탈출로와 종주능선의 갈림길이다. 일행중 한 사람이 음정방향으로 바로 하산하겠다고 한다. 아직 후미그룹이 오지 않아 일단 벽소령 산장까지 가서 결정하기로 하고 길을 재촉한다.
신벽소령에서 내려다보는 하동의 의신골은 언제 보아도 골이 깊기만하다. 대성골, 빗점골, 연동골에서 모인 물이 쌍계사 계곡, 화개를 거쳐 섬진강으로 흘러든다. 여기저기 어렴풋이 벽소령을 오르는 옛 군사작전도로(?)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제 도로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군데군데 잡목이 자라기 시작하지만, 백두대간 지리산의 허리를 두 토막으로 동강내었던 그 상채기가 아물기엔 아직도 세월이 더 필요한가 보다.
11시 20분, 드디어 벽소령 산장이다. 백무동을 떠난지 6시간만이다. 그러나 ,가야할 길이 아직도 멀다. 오늘 산행계획의의 50%, 전반부를 마친 셈이다. 후반부 산행을 위한 체력비축울 위해 산장에 들러 이른 점심을 챙긴다. 먼저 도착한 일행이 건네주는 소주 한 잔에 얼굴이 달아 오른다. 소주 잔에 달이 떠 있다. 아니 마음의 달을 그려본다.
벽소령에서 하루 밤 지내며 벽소명월(碧宵明月)을 즐기고 싶은 것은 나만의 꿈이 아니리라.
지난 여름에는 연하천과 장터목에서 벗들과 하루밤씩 묵으며 별이 총총한 지리산의 숨결을 느꼈었다. 언젠가 벽소령에 보름달 뜨는 날을 골라 온 산에 퍼지는 그 달빛을 가슴으로 안고 싶다.
(8) 시대의 아픔을 넘어
벽소령을 떠난 발길은 형제봉을 지나고 삼각고지를 향한다. 형제봉(1,433m)은 두개의 바위가 등을 맞대고 선 형상이다. 형제가 지리산녀의 유혹을 뿌리치리고 수도하다 그대로 굳었다나?
그 특이한 모양과 가슴저린 전설을 새기며 쉴새없이 능선을 오른다.
형제봉을 지나 삼각고지를 오르는 길 주변은 내 어릴적 조릿대라 불렀던 산죽의 천지다.
지리산 곳곳에 산죽이 많지만 해발 1,400m가 넘는 곳에 이렇듯 산죽이 많은 곳은 찾기쉽지 않다.
그래서 도처가 빨치산의 비트처럼 보인다.
남원,하동,함양이 맞닿은 삼각고지(1,463m). 그 남쪽 하동쪽 능선은 흔히들 피의 능선이라 불리는 곳이다. 한국전쟁 당시 남부군 총사령관이었던 이 현상의 아지트가 있던 빗점골이 그 능선아래에 있고, 곳곳이 빨치산의 비트요, 호랑이로 소문난 빨치산 토벌대장 김종원과 피의 살육전을 펼쳤던 곳이란다.
생각해보면, 이념의 갈등속에서 아픈 삶을 살다간 그들은 이 땅의 품속에 제대로 안겨보지 못한
시대의 이단자들이다. 한 줌 흙으로 돌아가서야 이 땅에 안길 수 있었던 그들의 혼을 그 누구가
달래줄 수 있을까? 이제라도 좀 더 가까이 그들을 껴안을 수는 없는 것인지? 서로가 서로를 용서하고 화해하면서 낡은 이념의 벽을 허물 수는 없는 것인지....... 부질없는 나 혼자의 생각인지,
눈덮힌 산야에는 그들의 숨소리조차 느낄 수없이 고요하기만 하다.
(9) 숲속의 별천지
삼각고지를 내려서서 연하천에 이르는 숲길은 걸을 때마다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나무 숲이 햇살을
받으며 생기를 발하는 모습이 한없이 정겹고, 군데군데 고사목이 넘어져 있는 숲길도 호젓해 걷기에
좋다. 지난 여름 이 길에서 아침햇살에 취해 시간가는 줄 몰랐던 기억이 새롭다. 이 번에는 눈 덮힌
숲길에서 산이 숨쉬는 소리를 듣고 산의 향기를 맡는다.
연하천이 가까워지는 모양이다. 고산지대에만 서식하는 구상나무가 몇 그루씩 보이기 시작하더니,
주목의 군락지가 나타난다. 生千年 死千年이라 했던가? 어제 태백산에서 보았던 주목에 비해 훨씬
수령이 작아보이지만 훨씬 많은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구상나무나 주목처럼 관심을 끌지 못하는 많은 나무들이 숲속에 어우러져 있다. 어제 태백산에서
화두를 꺼냈던 나무의 삶을 생각해 본다. 다음 생에는 나무로 살고 싶다던 어느 소설가의 간절한 소망의
본질이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나무는 함부로 그 뿌리를 옮기지도 않고, 비바람에 밑둥이 뽑히거나
허리가 꺽여도 그 본성을 잃지 않는다. 어느 나무 하나 스스로를 뽐내지도 않고, 각자의 생김새대로
동냥이 되기도 하고, 땔감이 되기도 한다. 살아서는 늘 힘든자들의 그늘이 되어주고, 죽어서는 바스라져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서도 벌레의 먹이가 된다.
시류에 흔들림이 없이 늘 본성을 지키며, 한없이 자신을 낮추고 희생하면서 남을 이롭게 하는 나무의
삶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많다. 나무로 살고 싶다는 그 문인의 간절한 바램을 조금은 이해할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섣부른 생각인지도 모르지만........
나무생각에 지친 줄도 모르고 걷다보니 어느새 샘물이 콸콸 쏟아져 작은 시내를 이루는 연하천에
도착한다. 벽소령을 떠난지 1시간 40분만이다. 먼저 찬 샘물을 한 바가지 떠서 꿀꺽꿀꺽 마신다.
마셔도 갈증이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충분한 수분 보충없이 땀을 너무 많이 흘렸나보다. 아무래도
탈수증세가 오나보다. 아직도 갈길이 먼데 걱정이다.
어찌하랴? 이 숲속의 별천지에서 충분히 쉬며 몸을 회복하고 싶은데 그럴 시간이 없다. 지난 여름에
만났던 산장지기에게 눈인사를 하고 라면하나를 사서 준비해 간 햇반을 넣어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뚝딱하니 조금 생기가 난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제 막 도착한 후미그룹 4-5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떠나고
없다. 서둘러 명선봉을 오르는 계단을 밟으며 숲속의 별천지, 연하천과 아쉬운 작별을 한다.
(10) 영원히 잊지못할 카보샷
명선봉 허리를 감아돌며 토끼봉으로 향하는 숲속에는 가파른 내리막 계단이 있다. 무릎에 부담이 오는지
이제 계단만 보면 겁이 난다. 눈앞에는 토끼봉(1,533m)과 반야봉(1,732m)이 지척으로 다가온다.
그렇다. 저 토끼봉만 넘으면 오늘의 능선종주는 끝내고 하산길에 접어든다.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토끼봉을 올라야지 !
그런데, 토끼봉 오르는 길은 정말 장난이 아니다. 그 경사가 가파르기도 하지만 러셀이 전혀 안되어
있어 눈속에 길을 찾을 수 없다. 앞서간 발자국에 발을 디뎌보니 허벅지까지 눈이 차오른다.
그마져 나무 숲과 가시 덤불을 헤치고 나가야한다. 원래의 등산로가 아니다. 가시덤불울 피해 발자국이
없는 눈위를 밟아본다. 허리까지 눈에 빠진다. 먼저 간 일행은 어떻게 갔는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한마디로 혼자서 악전고투다. 체력은 고갈되어가고 정신은 기진맥진하여 혼미한 상태다. 마라톤의 35Km
지점에서 느끼는 체력소모보다 훨씬 심하다는 느낌이다. 아홉차례의 풀코스 마라톤을 하면서도
이렇게 체력이 저하된 적은 없었다. 체내의 글리코겐이 완전고갈된 상태인가보다.
그러나, 어찌하랴? 이제 하산할 길도 없다. 토끼봉을 넘어야만 한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어 길없는
눈속에서 러셀을 하며 가파른 토끼봉을 오른다. 얼마나 헤매었을까? 가파른 숲길 눈밭에서 간식을 먹는
두명의 여자 산행객을 만난다. 정신이 몽롱해 우리 일행인지 아닌지 분간이 안된다.
스쳐지나며 힘들게 걸음을 옮기는데, 누군가 "과일 좀 드세요" 하면서 사과 반쪽을 건넨다. 입에 넣으니
사르르 녹는다. 순식간에 당분이 온몸에 퍼진다. 놀라운 일이다. 사과 반쪽에 원기를 회복하여 언제
그랬냐는듯 뛰다시피 토끼봉에 오른다. 돌아와 글을 쓰는 지금도 그 사과맛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마라톤 35Km지점에서 먹는 카보샷과도 같았던 그 사과 맛은 아마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 나중에 반선에 하산하여 굴국을 먹으며 수소문해보니 그 카보샷의 주인공은 강마의 윤 영옥님과
친구분이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어려운 고비에 카보샷을 날려주신 두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11) 심설산행의 여운들
토끼봉에 오르니 날아 갈듯하다. 이제 화개재를 거쳐 뱀사골로 하산하는 길만 남아있다. 아직 10Km가 넘는 길이 남았지만 사실상 오늘 종주산행의 힘든 고비는 끝난 셈이다. 지나온 길들을 되돌아본다.
능선종주의 묘미는 앞만보고 달리는 것이 아니라 전망좋은 봉우리나 바위에 걸터앉아 지나온 산줄기를 되돌아 보고 "능선아,능선아"를 외치며 호연지기를 되살리는데 있으리라. 아침햇살이 눈부셨던 영신봉, 기암연봉에 혼을 빼앗기던 칠선봉과 형제봉, 암릉속에서도 연인의 숲길처럼 다가왔던 연하천......
아침햇살에 깨어나는 산의 숨소리를 듣기도 하고, 눈길을 걸을 때 발자국을 함부로 하지말라던
선사의 가르침을 화두처럼 되뇌이기도 하고, 숲속을 걸으며 나무의 생을 갈망하는 문인의 꿈을
헤아려보기도 하면서 눈덮힌 지리산 능선을 밟아왔다. 이제 오늘의 대간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하산을 서둘러야겠다.
화개재에서 길을 돌려 뱀사골로 하산을 서두른다. 화개재에는 봇짐장수도 소금장수의 흔적도
찾을 길 없다. 그 옛날 물물교역의 루트였다는 전설만 남긴채 이제 그 이름조차도 뱀사골에
밀려나고 있지않나 싶다.
뱀사골 산장에서 잠시 휴식 후 곧 바로 하산이다. 이제 일몰까지 2시간 30분박에 남지 않았다.
비록 하산길이지만 눈과 빙판이 교차하는 산길 9Km를 해지기 전에 내려가야 한다. 달리지 않을 수 없다. 선두의 김 성의님은 지칠 줄 모르고 달려 내려간다. 산악 마라톤이 시작된 것이다. 나도 지친 몸을 이끌고 선두그룹을 따라 달려 내려간다.
달리면서 간장소, 탁용소등 뱀사골이 자랑하는 소(沼)와 담(潭)을 곁눈질한다. 대부분 얼음에 잠겨 있다. 조물주가 환상적으로 빚어 놓은 뱀사골의 파노라마를 즐기기에는 오늘의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눈덮힌 뱀사골을 마음껏 달린 순백의 심설산행은 오래오래 추억으로 기억될 것이다.
다행이 해지기 전인 오후 5시 30분, 백무동을 출발한지 12시간 10분만에 도상거리 30.1 Km의 백두대간 제 2차 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대간길중 가장 어려운 구간에서 마라톤으로 다져진 강마의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산행이지 싶다. 앞으로의 진행에 아무런 걱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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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종주기록
1. 일 시 : 2004.2.14.-2.15.(무박 2일)
2. 구 간 : 제 2구간(지리산 구간의 백무동->세석-벽소령-연하천-화개재->뱀사골, 반선)
3. 참 가 : 총 25명 (강마 회원 24명, 비회원 1명)
- 권오언, 김경애, 김석준, 김성의, 김성호, 김영수, 김영이, 김윤표, 김종복, 김춘자, 남시탁, 박홍구,
박희용, 손영자, 송영기, 양영석, 오영제, 유난희, 윤영옥, 이성원, 이영희, 장춘희, 지 용, 최정미, 홍명기
4. 산 행 : 백무동-가내소폭포-세석 산장-영신봉(1,651m)-칠선봉(1,576m)-선비샘(덕평봉)-벽소령 산장-형제봉(1,433m)-삼각고지(1,463m)-연하천 산장-명선봉(1,586m)-토끼봉(1,533m)-화개재-뱀사골 산장-간장소-제승대-탁용소-반선
5. 거 리 : 도상거리 30.1Km (백무동-세석 6.8Km, 세석-벽소령 6.3Km, 벽소령-화개재 7.8Km, 화개재-반선 9.2Km)
6. 소요시간 : 12시간 10분
7. 산행일지 : 중간그룹 기준
...(1) 2월 14일 23:00 개포동 국민은행 앞 출발
...(2) 2월 15일
- 03:00 백무동 도착, 산행준비(조식)및 입산대기
- 05:20 백무동 출발(0.0 Km)
- 06:15 가내소 폭포(3.0 Km)
- 08:30 세석산장 도착(6.8 Km), 휴식 22분
- 08:52 세석산장 출발 (0.0 Km)
- 09:00 영신봉
- 09:50 칠선봉(2.0 Km)
- 10:40 선비샘(3.6 Km)
- 11:30 벽소령 도착(6.3 Km), 휴식 30분
- 12:00 벽소령 출발
- 12:50 형제봉(1.5 Km)
- 13:40 연하천 도착(3.6 Km), 휴식 10분
- 13:50 연하천 출발
- 15:00 토끼봉(6.6 Km)
- 15:25 화개재 도착(7.8 Km)
- 15:25 화개재 출발(0.0Km)
- 15:30 뱀사골 산장(0.2 Km), 휴식 10분
- 15:55 간장소(2.7 Km)
- 16:10 제승대(3.7 Km)
- 17:00 탁용소(6.2 Km)
- 17:30 반선 도착(9.2 Km), 식사및 삼겹살+소주
- 18:30 반선 출발
- 21:30 서울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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