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따라 길따라/* 백두대간

(08) 남덕유의 아침을 보았는가?

月波 2005. 6. 29. 16:13

[백두대간 종주기] : 육십령-남덕유산-삿갓골재-(하산)-황점(8차)


1. 종주 기록

(1) 일 시 : 2004.6.5.(토) - 6.6.(일) 무박2일

(2) 구 간 : 육십령-할미봉(1026m)-전망대-서봉(장수덕유산1492m)-남덕유산(1507.4m)-월성치(1240m)
-전망바위(1340m)-삿갓봉(1410m)-삿갓골재(1280m)-황점(하산)

(3) 산 행 : 도상거리 16.5Km(종주13.1Km+하산3.4Km), 소요시간 7시간 30분(중간그룹 기준)

(4) 참 가 : 41명
----- 권오언, 김경애, 김성호, 김종복/이영희, 김춘자, 남시탁/김영이, 박홍구/유난희, 박희용,
변주희, 손영자, 송영기, 오영명/이미옥, 오영제, 유준호, 윤재용/이흥녀, 이성원, 지 용, 진성박,

최정미, 홍명기, 서종환, 런다 15명[김고현,김학윤A(8000m),김학윤B(네잎클로버)/정순명,박보영,
손춘용,윤상문,이강모,이경애,장달수,장재덕/윤명숙,정미라,정재필,주운표]

(5) 산행일지

- 23:00 개포동 국민은행 앞 출발
- 03:00 육십령(아침식사)

- 03:58 육십령(산행 시작)
- 04:30 헬기장
- 04:49 할미봉(--> 51분, 5.2Km)

- 05:33 교육원 삼거리
- 05:55 전망대(9분 휴식)
- 06:49 장수덕유산 서봉(--> 2시간, 2.1Km)
- 07:05 서봉 출발(16분 휴식)

- 07:27 갈림길
- 07:45 남덕유산(--> 40분, 1.5km)
- 08:00 남덕유산 출발(15분 휴식)

- 08:30 월성치(--> 30분, 1.4Km)

- 09:16 삿갓봉 갈림길
- 09:30 삿갓봉(10분 휴식)
- 10:02 삿갓골 대피소(--> 1시간 32분, 2.9Km)

- 10:18 샘터 출발
- 11:30 황점마을(--> 1시간 28분, 3.4Km)

- 14:10 황점 출발
- 18:30 서울 개포동 도착


2. 산행기

(1) 빈 좌석없는 대간길

지난 1월 11일에 지리산 천왕봉에서 시작한 대간길이 8차에 걸쳐 진행되며 덕유산 구간으로
접어들고 있다. 지리산 3구간(화개재-성삼재)및 4구간(성삼재-주촌마을)이 미답구간으로
남아있지만, 여러가지 우여곡절 끝에 꽤 북상한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산행은 나름대로 의미가 크다. 진부령까지 가는 길에 몇 개의 획을 긋는
구간이기 때문이다. 지리산 구간을 마치고 덕유산 구간으로 접어들 때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3년을 함께할 대간돌이들의 윤곽이 드러나리라 생각했었는데,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대형버스 1대로 움직이기에 다소 미흡한 인원이지만 들락날락하며 산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 있으니 이래저래 꾸려가지 싶다.

게다가 오늘은 런다의 멤버들이 15명씩이나 우정출연하여 분위기가 한 층 고무된 상황이다. 지난 번 산행에 이어 람세스님의 활약이 꽤 크다. 41명 버스에 빈 자리 하나없이 꽉 차기는 처음이다.
앞으로 자주 이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육십령에 도착한다.


(2) 미리 쓴 산행기

아직도 어둠이 짙게 깔려있는 육십령에서 여명을 기다리며 아침식사를 간단히 준비하여 허기를 채운다. 평소 아침식사를 거의 않는데 산에 나서거나 골프장에 가거나 하면 늘 배고프다. 이것도 하나의 습관성인가? 햇반을 넣어 말아먹는 컵라면이 이럴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이번에는 산에 오르기 전에 덕유산을 그리며 미리 산행메모를 해보았다. 자연에 동화되어 느끼고 사유하며 걷는 길을 늘 꿈꾸지만, 산에서도 달리기 쉽상인 마라톤 클럽의 대간종주라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길에 늘 아쉬움을 남긴다. 그래서, 이 번에는 종주에 마음의
가이드로 삼고자 미리 산행기를 써 보았다.

산행출발 예정시간인 04시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다. 육십령을 출발하기 앞서 남덕유산을 마음
속에 그리며, 미리 쓴 산행기를 되새겨본다.

*** 미리 쓰는 산행기 ***

마음속의 때를 벗으면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보인다. 그러나, 그 때를 털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어렵거든 그냥 그대로의 모습대로 세상의 욕심을 내어 덕유산행의 묘미를 즐겨도
나쁠거야 있겠는가?

[Tip 1] 오랫만의 무박산행이다. 새벽안개를 헤치고 잠에서 깨어나는 덕유능선의 모습이 기대되고,
할미봉을 지나 남덕유산을 향하는 오르막에서 맞이할 장엄한 일출을 머리속에 그려본다.

[Tip 2] 백두대간은 이제 다시 천상(天上)으로 올라간다. 1,000m 아래의 산에서 사람사는 모습과
어울렸던 지난 몇 차례의 산행과 달리, 세간의 닭울음 소리를 멀리한채 천상(天上)의 대간을 걸으며
즐기는 덕유의 웅자여 !

[Tip 3] 고산지대에서만 볼 수 있는 고사목 지대, 그 사이를 비집고 피어나는 이름모를 야생화를
취향대로(마음속에, 눈에, 카메라에) 담을 수 있으리라.
운이 좋으면 바위틈에 몸을 감추고 촌색시처럼 피어나는 희귀식물 금강애기나리의 작은 꽃잎을
지금쯤이면 볼 수 있을텐데...... 꽃잎이 태양을 거슬러 감히 피지 아니하고, 땅으로 향해 피어난다는
함박꽃도 고산에는 지금쯤 피고 있지않을까?

[Tip 4] 서봉, 남덕유산에서 만나게되는 암봉군락과 그 가파른 길에 놓인 나무계단, 철계단을 밟으며
온 몸을 땀에 적셔본다. 땀 흘린후의 개운함을 달림이만큼 잘 아는 사람이 누가 또 있겠는가?
정상에서 불어오는 산바람을 쐬며, 때로는 음기(陰氣)가득한 산죽밭을 지나며 세상사에 뜨거워진
머리를 식힐 수 있다면 이 보다 더한 즐거움이 없으리라.

[Tip 5] 산을 오르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 그것이 무었이던가? 남덕유산 정상에서 동서남북을
아우르는 조망을 통해 느끼는 웅장함과 폐부를 찌르는 장엄한 기개는 그들만의 몫이리라.
물론, 남덕유산에서 즐기는 한 잔의 정상주(頂上酒)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일테고......
아 ! 덕유산....... 하산 후 황점마을에서는 어떤 마무리 파티가 준비되고 있을까? 일단 안개속에
묻어두고 육십령을 출발하자.


(3) 여명에 비친 꼬부랑 할미

산경표(山經表)에 六十峙라고 표기된 해발 734m의 육십령, 이름의 유래가 여러가지다. 여기서 장수및 안의 감영까지가 육십리, 고개 굽이굽이가 60개, 도적이 많아 60명이 모여야 넘을 수 있다해서 ..... 어딜 가든 그 이름에 얽힌 얘기는 우리를 한 걸음 더 친숙하게 만드는 포근함이 있다.

지난 산행의 끝머리에 미리 확인해둔 산행 들머리가 어둠속에서도 잘 보인다. 나무로 만든 대간길 표지목이 이채롭다. 어둠 속에서 앞에서부터 일렬번호로 인원점검을 하며 꼬부랑 할미의 모습을 찾으러 나선다. 숲길에 비치는 이마의 랜턴이 무박산행의 재미를 더해준다.

그 옛날 군사를 숨겨두었던 곳이라는 군장동(軍藏洞)을 지난다. 그러나, 이제 대형 비닐하우스로
바뀌어 옛이름을 무색하게 한다. 지난 번 산행 말미에 깃대봉에서 하산하며 보았던 채석장, 대간의 맥을 파헤치고 있던 그 채석장은 어둠속에 잘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안보이니 속이 편하다.

된비알 급경사를 땀에 젖어 걸어 오른다. 여명이 서서히 세상을 깨우기 시작한다. 50여분을 걸었을까? 아직도 어둠이 가시지 않은 암봉에 올라 꼬부랑 할미를 찾는다. 해발 1026m의 할미봉은 그 남사면(南斜面)에 깍아지른듯한 암벽을 가슴에 품고 있다. 어느 방향에선가 보면 허리굽은 할머니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했는데......

할미봉에서 맞은 여명, 꼬부랑 할미의 허리가 이런 모습인가?


(4) 그대 보았는가, 덕유의 아침을?

할미봉을 지나 서서히 오르는 완경사길을 걷는다. 런다의 늘푸른산님은 육중한 몸집에도 불구
스피드가 대단하다. 서봉을 오르는 가파른 길과 덕유교육원으로 가는 삼거리에서 날쌘돌이처럼
길을 앞지른다. 불수사도북 5산종주를 앞두고 훈련을 하는 모양이다.

해발 1300m를 오르며 서서히 동쪽하늘이 조금씩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구름이 얕게 드리워져
덕유에 떠오르는 찬란한 아침태양을 즐기지 못함이 아쉽지만, "풋내 나는 여인네 속옷 더디 벗듯"
아침안개속에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남덕유의 모습을 보며 서봉을 향해 된비알을 오른다.

장수덕유를 상징하는 9개의 거대한 암봉군락이 도열해 있는 그 첫머리, 전망대에 오르니 이제막
잠에서 깨어나는 덕유산군의 조망을 한 눈에 즐길 수 있다. 서봉 정상에 오르기 전 우리는 뜸을
들이며 경치를 즐긴다. 암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고산지대라 이제사 피어나는 곰취를 뜯으며, 100여m 아래 참샘을 다녀온 산행객의 얘기를 듣기도 하며......

참샘이라.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손을 담글 수 없을만큼 찬 샘물이란다. 내 고향 진주 남강의 발원지이기도 하고....... 대간능선길에서 만나는 샘은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영각사에서 불어오는 아침바람을 맞으며 사뿐히 장수 덕유산 정상(서봉)에 오른다.


(5) 장수덕유와 남덕유산의 조망들

1492m의 장수 덕유산 정상(서봉)에는 제법 찬바람이 불고있다. 선두그룹은 벌써 길을 도와 달려
가버리고 없다. 아직 뒤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는 후미를 기다리며 서봉에서 조망을 즐기며 많은
사진을 찍는다. 준비해온 간식으로 벌써 나타난 허기를 채우기도 하고......

새벽과는 달리 제법 날씨가 맑아져 구름이 걷히니 전망이 더욱 좋아진다. 이것도 백두대간팀의
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봄에서 여름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는 동서남북의 산군(山群)들의 모습에서 생기를 느낀다. 눈 앞의 진초록은 뒤로 물러날수록 엷어지며 구름위의 섬처럼 떠있는 산군(山群)의 모습을 화폭에 담고 싶다.

남으로 장안산, 깃대봉, 백운산이 보이고, 동으로 바로 건너 남덕유산을 넘어 월봉산과 금원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북으로는 삿갓봉, 무룡산 넘어 북덕유산의 향적봉이 보인다. 그 섬들의 너머에
아스라이 지리산 주능선들이 말없이 있는듯 없는듯 숨어있다.

서봉을 떠난 발길은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 철계단을 타고 수직암벽을 내려간다. 굴참나무가 무성한 숲길을 걸어 앙증스런 봉우리를 오르내리니 남덕유가 코앞이다. 300m 정도 급경사를 오르니 남덕유산이 반갑게 맞아준다. 날씨는 더욱 화창해지고, 서봉에서 즐긴 조망을 남덕유산 정상에서 더욱 생생하게 즐기며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를 한없이 즐긴다.


남덕유산 정상에서 찰칵, 찰칵 .....


(6) 지산죽지후조야(知山竹之後凋 也)

남덕유산 가는 길 주변에 크고 작은 산죽밭을 만난다. 아직 새로난 산죽잎이 없어서인지 산죽 본연의 푸르름을 느낄 수 없다.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라고 세한연후 지산죽지후조(歲寒然後 知山竹之後凋 )인가?

지리산 삼각고지 아래의 산죽, 백운산에서 영취산으로 향하던 길의 산죽에서 빨치산과 이현상부대를 연상하며 걷느라 산죽 본연의 푸르르믈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것같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난 2월 지리산 눈속에서 그 청정한 기개를 뽐내던 산죽의 푸르름이 떠오른다. 오늘 이 덕유산의 산죽은 6월의 신록에 묻혀 그 빛을 잃고 있다.

남덕유산에서 삿갓봉으로 향하는 길은 멀리서 보면 그 칼날같은 능선 길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몇개의 무명봉을 넘고 넘어야 긴삼각형 모양의 삿갓봉에 오르는데 중간중간 만나는 봉우리들이 모두 삿갓봉같다. 아마 성질 급한 사람은 몇개의 무명봉을 지나며 삿갓봉을 지난양 착각하고, 정작 삿갓봉에 이르러서는 우회로를 따라 삿갓골재로 내려가기 쉽상이다. 갈림길에서 한참을 기다려 중간그룹을 모아 삿갓봉을 오른다.


(7) 삿갓재 대피소에서 황점마을로

삿갓봉을 지난 발길은 삿갓골재를 마지막 지점으로 오늘의 종주를 마치고 본격 하산의 길로 접어든다. 황점으로 하산하는 1시간 30분여의 거리는 왠지 부담스럽다. 중간중간 나타나는 너덜길이 무릎에 많은 부담을 준다. 작년 2박 3일 지리산 종주시에 유평계곡으로 하산하던 6시간여의 너덜길을 회상시키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유평계곡에는 잊지못할 짜릿한 추억을 남겨둔 곳이다. 오늘 그 추억을 떠올리며 부지런히 너덜길을 걷는다. 깨밭골과 감초골이 합수되어 삿갓골 황점마을로 향하는 계곡에는 곳곳에 작은 소(沼)와 담(潭)이 작은 폭포와 어우러져있다. 하산중에 그 폭포아래 어느 소담(沼潭)에서 몸을 담그고 탁신(濯身)을 하는 즐거움을 어찌 글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어느 산객의 얘기가 생각난다. 오늘 그대로 한 번 해보자. 작년 유평리 계곡에서 처럼..... 그러나, 오늘은 아쉽게 동지를 찾기가 여의치 않다. 혼자서라도 해야지. 계곡을 내려가며 쉴 새없이 적당한 장소를 찾는다. 황점을 1Km도 남긴 마지막 숲길에서 절호의 명당을 찾는다. 지체없이 실행이다. 그 산객이 얘기대로........

땀젖은 상태에서 잽싸게 옷을 벗고, 눈깜짝할 사이에 계곡물에 몸을 담근다. 그리고, 눈을 감고
세개의 기도를 외운다. 고3인 우리 딸 공부 잘하게하여 원하는 대학에 가게 해 주시고, 중 3인 우리 막내 언제나 밝게, 맑게 자라게 해주시고, 1년 365일 나만 위해 살아가는 우리 집 착한 여우 더욱 착하고 행복하게 해주시고...... 그 사이 물의 찬기운이 서서히 사라지게 되면 오래도록 물속에서 담수를 즐긴다.

아 ! 내공이 부족하여, 기도 솜씨가 서툴러서 찬물을 이기고 장시간 담수를 즐기지 못했지만, 마른 옷 갈아 입고 룰루랄라 하산하는 이 개운함이란? 그리고, 나처럼 탁신을 즐기고 하산하는 어느 산악회 영감님에게서 느끼는 동질감....... 황점마을에서는 푹 삶은 돼지고기 수육에 걸치는 하산주가 기다리고 있었다. 더할 나위없이 행복한 하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