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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덕유는 우리를 거부하는가?

月波 2005. 6. 29. 16:38

 

 

 덕유는 우리를 거부하는가? (백두대간 11차)

 

 

1. 산행개요

(1) 산행일시 : 2004년 8월 22일(일) 당일산행
(2) 산행구간 : 덕유산 3구간(빼재-덕유삼봉산-소사고개)
(3) 참가자 : 20명
- 권오언,김성호,김영이,김우주,남시탁,박희용,변주희,손영자,송영기,신정호,윤재용,이규익,정제용,지용,진성박,최세욱,최정미,홍명기,서종환,주운표


2. 산행일지

8월 22일 일요일

06:40
덕유산 종주의 두번째 구간이다. 지난 산행의 하산지점인 황점마을을 거쳐 삿갓골재 산장에서 북덕유로 이어지는 능선상의 여러 봉우리를 거쳐 빼재까지 가는 덕유산 국립공원 두번째 구간을 걷는 길이다.
무박2일로 진행하려던 일정을 당일로 진행하기로 하고 출발시간을 평소보다 1시간 앞당겨 출발하려 했는데, 버스기사와 커뮤니케이션에 차질이 발생해 버스는 40분이나 늦게 도착한다. 개포동을 출발한다(06:40).

출발부터 날씨가 심상찮다. 남쪽에?비가 예보되?있다. 날씨를 고려하여 유사시 산행구간을 단축하여 횡경재에서 송계사로 하산하기로 비상대책을 세운다. 간간이 뿌리는 빗속에 버스는 미끄러지듯 달린다. 유성에서 런다의 쥬피터님이 합류하여 20명 성원을 이룬다. 단촐하지만 백두대간의 열성파들은 다 모인 셈이다.

08:45
금산인삼랜드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한 후 덕유산으로 향한다(08:45).

09:45
서상 나들목을 빠져나와 5Km남짓 달렸을까? 남덕유산 영각사 입구를 지나간다(09:45). 남덕유산을 오르려던 한 무리의 산행객들이 버스로 되돌아오는 모습이 보인다. 뭔가 일이 꼬인다는 느낌이다. 아니나 다를까? 폭우로 국립공원 덕유산구간의 입산을 통제한단다. 허 참! 남덕유산과 달리 북덕유산은 두번씩이나 우리의 입산을 거부하고 있다. 지난 번에는 태풍으로, 오늘은 예상치 못한 폭우로......

당초 예정된 입산지점인 황점마을로 향한다. 황점에서 삿갓골재로 대간능선에 올라 무룡산,동엽령,백암봉,횡경재, 빼재로이어지는 대간길을 걸을 계획이었는데..... 황점도 통제이겠지..... 그럴거다. 같은 국립공원 구간이니까..... 일단 황점으로 가보자. 그기도 통제면 국립공원 구간을 벗어나는 빼재로 가자, 빼재로......

10:10
지난 산행의 하산지점인 황점마을 느티나무 정자는 변함없이 우뚝 서 있다. 다만 국립공원 관리요원만이 눈을 부라리며 입산통제를 하고 있다. 주저없이 빼재로 향한다.
가는 길에 함양 북상면 사무소(갈계리)에 들러 길을 확인한다(10:10). 송계사 입구로 가는 갈림길이다. 면사무소에는 휴일 당직을 선 아저씨가 눈을 비벼 일어나 낯선 산행객의 물음에 정말 친절히도 안내한다. 시골마을에서나 느낄 수 있는 훈훈함이다. 감동이다.

10:15
송계사 계곡을 들르지 못하고 함양 마리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가에는 붉은 배롱나무꽃과 외래 들국화 종류의 하나인 노란색 금계국이 널부러지게 피어있다. 배롱나무꽃은 백일동안이나 붉은 꽃이 핀다고 하여 통칭 백일홍 또는 목(木)백일홍이라 불린다. 이 꽃나무는 학술적으로 부처꽃과의 나무로 분류되는데, 그래서 그런지 사찰의 마당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달리는 차창가의 개울에 아름드리 소나무와 커다란 바위가 버티고 있는 낯 익은 지역을 통과한다(10:15). 수승대(搜勝臺)다. 한가운데 자리한 커다란 거북 형상의 구연암(龜淵岩), 그기에 천년들이 노송이 맑고 푸른 소(沼)와 어우러져 있고, 바로 옆에는 고색창연한 구연서원(龜淵書院)이 함께 있다.
몇년 전 가족들과 수승대를 들러 산책도 하고 가을바람을 쐐던 기억이 새롭다. 막내 녀석은 촐랑촐랑 소나무가 울창한 계곡 숲길을 뛰어다니고, 얌전한 큰 녀석은 수승대 근처를 거닐며 혼자만의 사색에 잠기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애들은 구연암에 새겨진 한자를 꼬치꼬치 캐물었었지......
구연암에 새겨져 있던 수승대 명명시(命名詩)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본다. 퇴계 이황 선생에 대한 기억 뿐, 나머지는 아련한 생각에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삼국시대에는 여기가 백제 땅이었는데신라로 사신을 떠나보내며 수심에 차서 송별하던 곳이라는 뜻의 수송대(愁送臺)라 불리웠는데, 조선 중종때 퇴계 선생이 이곳을 지나며 수승대(搜勝臺)로 이름을 바꾸어 불렀다고 한다. 집에 돌아와 기억을 더듬어 자료를 찾아보니, 구연암 암벽에 새겨진 퇴계의 수승대(搜勝臺) 명명시(命名詩)는 이러하다.

搜勝名新換 수송을 수승이라 새롭게 이름하니
逢春景益佳 봄을 만난 경치 더욱 아름다워라
遠林花欲動 먼 산의 꽃봉오리 방긋거리고
陰壑雪猶埋 응달진 골짜기엔 잔설이 보이네
未寓搜尋眼 눈은 자꾸만 수승대로 쏠리니
惟增想像懷 수승을 그리는 마음 더욱 간절하구나
他年一尊酒 언젠가 한 두루미 술을 가지고
巨筆寫丹涯 수승의 절경을 만끽하리

산고수장(山高水長)한 곳에서는 어김없이 풍류를 즐기며 시를 읊던 우리네 선인들처럼 대간길 곳곳의 절경지에서 인문과 지리를 두루 살피며 걷고 싶은 것은 비단 나만의 바램일까?


10:30
수승대를 지나 빼재로 향하는 거창 상수내 마을. 길가에는 짙은 핑크빛의 들꽃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소위 며느리밥풀이란 이름의 들꽃처럼보인다. 조그만하지만 분위기있는 음식점인 [작은 골 산장]을 지난다(10:30). 5-6년 전 어느 가을 날 무주 구천동을 지나 귀향하던 길에 잠시 들렀던 곳이다. 토종 백숙이 일품이었지.....

상수내 마을에서 빼재까지는 굽이굽이 회돌이쳐 수 Km를 오른다. 마치 속리산 문장대가는 길을 연상하게 한다. 빼재에 다가갈수록 안개비는 다시 자욱해지는데, 목백일홍 배롱나무는 그 꽃술의 붉음을 어김없이 자랑하고 있다.

10:40
빼재에 도착한다(10:40). 빼재에는 수령(秀嶺)이라 새긴 커다란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여기는 빼재, 수령(秀嶺), 신풍령(新風嶺), 상오정고개 등 여러 개의 이름으로 불리는 곳이다. 거창~무주를 잇는 37번 국도가 지나가며 도로 양쪽으로는 산세가 매우 가파르고 골이 깊다.

빼재에서는 잠시 의견이 분분하다. 소사고개까지냐? 덕산재까지냐? 아니면 아예 산행을 포기하고 달리기냐? 한 구간이라도 걷자는 의견과 무주 구천동 또는 함양 수승대에서 달리기 하자는 의견이 팽팽하다. 결국 당초 길떠난 취지대로 대간길을 걷기로 하고 소사고개까지의 마루금타기를 시작한다(11:07). 다행히 빗방울이 다소 주춤해진다.

11:27
수령봉 (1,050m)을 통과한다. 누군가가 종이에 손으로 쓴 표시판이다.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의 잡목숲을 통과하며 땀을 비오듯 흘린다. 진한 분홍빛 야생화밭을 지나 억새밭 속을 헤치며 걷는다. 빗속에서라도 사진 몇 커트를 찍어 기록으로 남기고...... 모두들 카메라 앞에서는 김치, 치즈, 와이키키, LG, 감자, ....... 잘들 따라한다. 모두들 멋있게 웃는 모습이 앵글에 잡혀야 할텐데......

11:55
된새미재를 지나 무명봉에 오른다.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안된다. 안개비 속에 시야는 5m를 넘지 않는다. 맑은 날 전후좌우로 조망되는 경관들을 못보는 아쉬움이 크다. 그러나, 어디 늘상 멀리만 보아야만 하는가? 때로는 가까운 발아래도 살피면서 살아가라는 자연의 메시지가 아닐까?

12:30
자욱한 안개비 속에 호절골재를 지나 덕유삼봉산의 첫번째 봉우리에 오른다(12:30). 주변의 시야는 10m를 넘지 않는다. 아쉽다. 정상주변에 널려져 피어있는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들꽃을 열심히 디카에 담는다.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족할텐데 욕심을 내어 본다. 노란색 마타리종의 들꽃도 보이고, 흰 색 뚝갈처럼 생긴 들꽃도 보인다. 함께 길을 걷던 서종환님은 어느 새 자취를 감추고 뒷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12:35
드디어 덕유삼봉산(1,254m) 정상이다. 정상표지석 주변에 바윗돌을 모아 놓았다. 삼각점 표식도 있고..... 말로만 듣던 금봉암 가는 길은 어디에 있는지? 안개속에 도대체 시야를 분간할 수 없으니 안타깝다.
정상 표지석 옆에는 어느 무명시인의 의 시(詩)가 자그마한 철판에 새겨겨져 있어 대간 산행객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진달래] - 작가 미확인

진달래 밭에서
너만 생각하였다

연 초록빛 새순이 돋아나면
온몸에 전율이 인다는
眞實이

이제 너만 그리워하기로하고
사나이 눈감고 맹세를 하고

죽어서도 못 잊을
저 그리운 대간의 품속으로
우리는 간다

끊어 괴로운 인연이라면
구태여 끊어 무엇하랴

온산에 불이 났네
진달래는 왜 이리
지천으로 피어서
지천으로 피어서


대간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붉은 진달래에 절절이 스며있는 시 한편이 문득 외로움을 떨치게 하고 용기를 북돋운다. 무전기로 후미의 위치를 확인하고 그들을 기다리기로 한다. 주먹밥에 소시지, 음료로 허기를 때우며 20여분을 기다리니 후미가 도착한다. 그 사이 체온이 내려 몸이 떨린다. 정상석 앞에서 사진 한컷하는 일이야 빼놓을 수 없다.

13:20
덕유 삼봉산에서 소사고개로의 하산 길에는 몇개의 암릉을 지나 크고작은 능선을 오르내린다. 덕유삼봉산과 삼도봉 사이의 안부로 향하는 내리막길은 빗속에 미끄러짐이 장난이 아니다. 중등산화를 신지 않고 가벼운 트랙킹화를 신은 것을 후회해도 이제 소용이 없다. 오직 발걸음을 조심하며, 겨울철 스키타듯 양다리는 피자모양을 만들며 내리막에서 재주를 부려본다.

얼마를 걸었을까? 소사마을이 멀지 않았음직한 예감을 하며 어느 안부에 이른다(13:20). 대간길은 직진방향의 오르막을 타는 것이 아니라, 오른쪽으로 직각으로 방향을 틀며 급경사 내리막길로 이어진다. 대간 마루금인지 의심이 든다. 조심스레 지형을 살피며 하산하다 미끄러운 길에 으랏차차! 엉덩방아를 찧는다. 다행히 큰 부상은 없는 것 같다. 한참을 내려와서야 산세와 지형이 마루금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제 소사고개로 향하는 길은 제법 완만해졌다. 어느 고개에 이르자 정산이 기다리고 서있다. 직진하지 말고 왼쪽의 임도를 따라 걸으라고 후미에게 안내하라며 자신은 체온이 떨어졌다며 먼저 길을 떠난다. 20여분이상 기다리며 추위에 떨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의 마음은 언제나 여유롭고 따스하다.

후미가 도착하고 정산이 안내한대로 임도를 따라 길을 나서다 아무래도 미심쩍어 원위치하여 지형을 살핀다. 아니나 다를까? 대간길은 직진이다. 고냉지 채소밭을 지난다. 금년 여름의 더위가 얼마나 심했는지 고냉지의 배추가 생생히 증언해주고 있다.
밭길을 벗어나 다시 산길을 따라 걷는다. 삼나무(전나무인가?)로 보이는 침엽수림이 제법 울창하다. 지난 2월 눈속의 태백산에서 보던 그 침엽수림과 느낌이 비슷하다. 하늘 향해 쭉쭉 뻗은 저 나무처럼 만사가 형통했으면....... 소사고개가 보인다.

14:20
어느 듯 소사고개다(14:20). 여느 때처럼 하산주에 라면국물에 말아먹는 밥은 꿀맛이다. 새벽에 정성들여 아내가 싸준 주먹찰밥보다 라면이 더 구미가 당기는 무슨 연유일까? 그래도 다음 산행에는 내가 좋아하는 찰밥을 또 싸달라고 아내에게 부탁해야지.

김치를 안주로 한 동안 조껍데기술로 몸과 마음을 데우면서, 붉게 핀 키다리와 봉숭아를 눈동자에 담아본다. 소사고개를 뒤로하며, 짧은 구간이나마 빗속에서 산행하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15:40)

16:06
무주구천동을 지난다. 반딧불이 살아 숨쉬는 자연의 나라라고들 한다. 하늘은 잔뜩 흐리지만 덕유산 자락에 내렸던 비안개는 서서히 걷히고 있다(16:06).
상경길의 버스속에는 구천동에서 구한 적포도주 2병이 흥을 돋군다. 모두 버스 속에서 한 잔씩..... Red Wine과 White Soju의 적절한 배합이랄까? 영자Song도 가세하니 11차의 대간산행에서 처음보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모두 마음이 흡족했으리니........

16:46 무주 IC 통과
17:46 신탄진 휴게소 착
20:10 개포동 착

아, 덕유산 그대는 정말 나를 거부하는가?
9월 첫째주로 다시 연기된 덕유산 종주(2) 삿갓골재-무룡산-(향적봉 왕복)-빼재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