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산, 지리 10경 어때? - 백두대간 10차
1. 산행기록
(1) 일정 : 7월24일(토)-7월 25일(일) 무박 2일
............. 세부 일정 아래 참조
(2) 산행코스 : 19. 4Km
............. 반선 - 뱀사골 - 화개재-삼도봉-(반야봉)-임걸령-노고단-(노고단 정상부 탐방)-성삼재
2. 산행 후기 - 무엇을 생각하며 걸었나?
(1) 지리산을 닮고 싶다
지리산에는 아름다운 것이 참 많았습니다. 나무, 돌, 잎, 계곡, 폭포, 담(潭), 소(沼).....
모두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새벽부터 뱀사골을 거슬러 오르며 수 없는 소(沼)와 담(潭)을 보았습니다. 오래도록 손담그고, 발담그며 쉬고 싶었습니다. 간간이 맑은 소(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살펴보았습니다.
아직은 뒤를 돌아볼 때가 아니라며 앞만 보며 살아 온 모습이 선명합니다. 그러나, 이제 자신의 얼굴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할 나이임을 느낍니다. 앞을 향해 질주하듯 살아 온 직설적인 삶에서 벗어나, 주변을 돌아보면서 좀 더 은유적이고 관조하는 자세로 살고 싶습니다.
이런 생각이 마음에 새로운 걸림돌이 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욕심을 부려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중생이기 때문일겁니다.
반야봉에 올라서는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지리 주능선을 돌아보았습니다. 그간 지리산 종주능선에서 만난 수없는 연봉들은 세상의 욕심에서 초연해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무소유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는 넉넉한 품새였습니다.
탈속의 여유를 품고 있는지리 연봉의 모습 앞에서 감히 새로운 자화상을 꿈꿔 봅니다.
이러한 지리산의 모습을 우리도 닮을 수는 없는 것일까요? 지리산을 얼마나 오르내려야 그 이치(理致)와 도(道)를 깨달을 수 있을까요?
반야봉에서 - 배경에는 멀리 천왕봉과 지리산 주능선이 보인다
(2) 나무처럼 살고 싶다
이 번 대간길에는 나무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지며 걸었습니다. 그 이름만해도 수없이 많았습니다. 까치박달, 노각, 비목, 느릅, 물오리, 당단풍, 졸참, 서어(자작), 물푸레,고추,붉은 병꽃,고광,신갈,구상,노린재, 참빗살,산초...... 이 모든 이름들이 뱀사골과 반야봉, 노고단에서 만난 나무들의 이름입니다.
뱀사골의 수없는 소(沼)와 담(潭)에 수원(水源)을 공급하는 삼도봉 주변의 울창한 수림(樹林), 반야봉의 구상나무 군락과 특이한 생태계, 해발 1,500m를 넘나들며 볼 수 있는 각종 침엽수, 울창한 숲과 암릉사이에 누워 있는 고사목에서 나무의 생(生)과 사(死)를 보며 걸었습니다.
다음 생(生)에는 나무로 살고 싶다던 소설가 정도상님이 생각났습니다. 나무의 생(生)을 간절히 소망하는 그 내면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 나무는 뿌리를 함부로 옮기지 않습니다. 또한 비바람에 가지가 꺽이고 밑둥이 뿌리채 흔들려도 꿋꿋이 그 본성을 지킵니다. 생명을 잃은 상태에서도 미생물의 먹이가 되고, 혹은 인간의 집이 되기도 합니다. 흙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스스로를 뽐내지 않고, 아낌없이 모든 것을 주고 미련없이 자연의 일부가 됩니다."
참으로 나무의 모습을 닮고 싶었습니다. 높은 산으로 올라 갈수록 스스로 몸을 낮추는 나무의 모습에서, 언제까지 자신의 모습을 잃지 않고 최후까지 그 본성을 유지하는 나무의 여여(如如)한 그 모습에서 삶의 본질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화개재에서 - 화개재의 고사목과 뱀사골 위로 뻗은 운무의 모습
(3) 내 속의 나를 본다
이 번 산행에서는 출입이 제한되어 있는 노고단 정상부를 운좋게 탐방할 수 있었습니다. 노란색 원추리를 비롯한 각종의 야생화(野生花)들이 천상(天上)의 화원(花園)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원추리, 비비추, 노루오줌, 동자꽃, 구절초, 가는잎 구절초, 범꼬리, 둥근 이질풀, 돌양지꽃, 까치수영, 용담, 지리터리풀, 개불알꽃, 쑥부쟁이, 산오이풀, 미역줄나무....... 이름조차 생소한 야생화들입니다.
이 중에 돌양지꽃이라는 작고 예쁜 꽃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돌위에서 이슬만 먹고 자란다는 꽃이었습니다. 내면의 나를 돌아보게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 꽃이기도 합니다.
야생화(野生花)가 가득한 노고단 정상에서 굽이굽이 흐르는 섬진강의 청류(淸流)를 굽어 보았습니다. 뱀사골 깊은 골짜기의 소(沼)와 담(潭)에서 그러했듯이, 반야봉 정상에서 천왕봉을 되돌아보며 그랬듯이, 천상의 화원을 이룬 노고단 정상에서 섬진청류에 비치는 내 속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지리산 깊은 골짜기에서
나를 본다
사람마다 스스로 외로움을 데불고 가는
사연이 아주 잘 보인다
흐르는 물이 저를 벗어 제 속을 맑게 보여 주듯이
내 속을 드러내는 나를 내가 본다
이 얼마만에 맞이하는
내 젊음이냐 설레는 자유냐 / <이 성부 : 한신골에서 나를 본다>
흐르는 물이 저를 벗어 제 속을 맑게 보여 주듯이, 내 속을 드러내는 나를 내가 보며 살고 싶습니다. 야생화의 모습에 드러난 그 속살처럼 있는 그대로의 참 모습을 살피며 살아가는 것을 그려 봅니다. 그것이 본성을 찾아가는 진정 맑고 밝은 삶의 길이라 믿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노고단 정상부의 원추리 군락 - 노란색 꽃이 7월에 절정이다
[에필로그 : 친구 정산에게]
친구야,
오랫만에 느긋하게 계곡과 나무와 꽃의 모습을 즐기며 여유로운 산행을 함께 했지 싶다.
뱀사골의 소(沼)와 담(潭)에 발을 담그는 그 맛을 누구라 알겠는가?
삼도봉에 올라 불무장등과 피아골에 피어나는 아침햇살을 맞이 하는 즐거움을 함께 하기가 그리 쉽던가??
어머님 품속같은 반야봉에 안겨 지리산하의 참맛을 음미하는는 재미는 여유로운 산행의 특권이 아니던가?
임걸령 샘터의 물맛도 노고단의 야생화도, 지리산에 사는 수많은 나무들의 모습도......
친구야,
그 하나하나를 내 작은 가슴으로는 도저히 다 담아 올 수 없었던 아쉬움에 또 다른 지리산행을 꿈꾼다.
정산,
친구야 친구야,
자네가 제안한대로 지리 10경 한 번 해 봄이 어때?
반야낙조부터 하자구? 좋지. 암 좋고 말고...... 8월 하순에 작년처럼 날 잡자구.
난 진작부터 벽소명월을 하고 싶었다네.
아니면, 하늘의 운을 빌어 섬진청류와 노고운해를 한 몫에 해도 좋고.....
이 번 가을, 정말 제대로 된 단풍을 눈에 담으러 직전으로 가든지......
그렇게 가더라도 어떻게 지리산을 가슴에 다 담을 수 있겠는가?
그 누구의 얘기대로 1000번을 지리산에 오른들 어찌 지리산을 다 알 수 있으리......
그래서, 나는 늘 또 다른 지리산행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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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 일정]
(1) 7월 24일(토)
23:05 개포동 출발
(2) 7월 25일(일)
03:00 함양휴게소 도착, 지리산 당일 종주팀과 구간 종주팀 분리탑승
04:00 반선 도착,이침 식사
05:00 반선 출발, 뱀사골 진입
05:35 요룡대, 천년송이 있는 와운마을 입구
05:42 탁용소
06:08 병소
08:01 뱀사골 산장 도착, 기념사진, 두꺼비 사냥
08:31 뱀사골 산장 출발
08:40 화개재 도착, 나폴레옹으로 산행주
09:07 화개재 출발
10:00 노루목
10:40 반야봉
11:15 노루목
11:40 임걸령
11:47 피아골 갈림길
12:30 노고단
13:00 노고단 정상부 탐방입장
13:45 노고단 출발
14:40 성삼재
15:45 성삼재발
19:45 서울 개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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