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따라 길따라/* 백두대간

(07) 육십령을 향한 노래

月波 2005. 6. 28. 00:05

[백두대간 종주기] : 영취산-육십령(7차)

 







1. 종주 기록

(1) 일 시 : 2004.5.16.(일)

(2) 구 간 : 무령고개(진입)-영취산(1075.6m)-덕운봉(956m)-(암릉)-(전망대)-(842.8봉)-977.1봉-민령-(철탑)-깃대봉(1014.8m)-(공터)-(전망바위)-육십령

(3) 산 행 : 도상거리 주능선11Km + 진입 1Km

(4) 소요시간 : 4시간 (중간그룹 기준)

(5) 참 가 : 31명
----- 권오언, 김성호, 김종복/이영희, 남시탁/김영이, 박홍구/유난희, 박희용/정선자, 손영자, 송영기,윤재용/이흥녀, 이성원, 지 용, 최정미, 홍명기, 백청용, 서종환, 이상덕, 이종도, 천광복, 함인성, 김학윤A/정순명, 김학윤B/정미라, 구본철, 주운표, 김종복 子

(5) 산행일지

- 07:02 개포동 국민은행 앞 출발
- 08:22 옥산휴게소(조식 15분)
- 10:02 대전-진주 고속도로 장수 나들목(I/C)
- 10:30 무령고개, 산행시작(진입)
- 10:54 영취산 정상(대간종주 시작)
- 11:28 덕운봉(956m)
- 12:30 무명봉(977.1m)
- 12:55 민령
- 13:42 깃대봉(1014.8m)
- 14:30 육십령(734m), 종주 산행 끝
- 16:55 식사및 하산주 종료
- 17:00 육십령 출발
- 21:30 서울 개포동 도착


2. 산행 후기

호남의 대표적 오지라 불리던 무진장(무주,진안,장수), 그 무진장의 손꼽히는 심산(深山) 절경지대인무령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1주일 전부터 예보된 비, " 비가 오면 오는대로 재미가 있으리라" 하면서 우중산행을 각오했지만, 비 한방울 오지않은 예상밖의 날씨였습니다. 백두대의 산신령이
우리의 대간길을 싫어하지 않는가보다 생각했습니다.

영취산 정상에서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남쪽으로 그간 지나온 지리산 구간, 옅은 구름속에 잠긴 주능선이 아스라히 가슴에 다가왔습니다. 이제 바야흐로 지리산을 벗어나 덕유산 구간으로 접어드는 길목에 서 있다는 느낌이 확연히 들었습니다.

지리산 구간 내내 가슴에 묻어두었던 실상사의 백우당(白牛堂) 각묵(覺默)스님을 생각했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함께 기도하고 정진했던 스무살 푸른 시절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내 마음을
아는지 그 시절의 도반(道伴) 송 영기님은 말없이 빙그레 미소만 짓습니다. 우리는 찻잔에 매화 한잎 동동띄워 백우당과 나눠 마실 그날을 마냥 기다립니다.

영취산에서 북쪽으로 경남 함양 서상과 전북 장수 장계를 가로지르는 백두대간길을 본격적으로
걸었습니다. 임진왜란때 적장을 안고 진주 남강으로 뛰어든 충절의 여신 주논개가 태어나고(장계) 묻힌(서상) 곳이기도 합니다.

오른발은 경상도, 왼발은 전라도를 밟으며 덕유산을 향해 북상하는 대간길에는 군데군데 억새밭과 산죽(山竹)밭이 깔려있어 이채로왔습니다. 새 잎에 덮혀져가는 묵은 억새를 보면서 원숙미를 느낄 수 있는 가을의 억새밭을 다시 오고픈 충동을 느끼는 것은 저만의 감성이었을까요?

7차에 걸친 대간길에서 처음으로 푸르름이 한창인 봄산의 정취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덕운봉과민령을 거치며 산자락에 펼쳐진 봄기운을 온몸에 감싸고 걸었습니다. 깃대봉(1014.8m) 정상에 서서 다음에 이어갈 남덕유산의 웅자(雄姿)를 바로 면전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산세를 제법 느낄 수 있는 해발 1,000m 전후의 능선을 걸으면서도 별로 힘들지 않고 즐겁게 대간길을 걸었습니다. 숲속에 카페트를 깔아 놓은 양 푹신푹신한 오솔길, 여기저기 피어나는 야생화, 곳곳에 보이는 취나물........ 카메라에 담기도 하고 취를 뜯으며 그 향을 즐기기도 하고.....

빛고을 100을 앞두고 훈련차 산길을 달리는 산악마라토너들이 절반쯤이나 되었지만 나는 푸르름에 취해 걸었습니다. 달리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느라 마음의 갈등이 적잖이 있었습니다. 산악 달리기는 언제나 할 수 있는데 이 푸르름은 때가 있는 것이니까요.

녹음이 짙어가는 산길에서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박 재삼님의 시를 읊조리며 걸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운율을 주고받으며 천년의 바람을 이야기했습니다.

천년 전에 하던 장난을
바람은 아직도 하고 있다.
소나무 가지에 쉴새없이 와서는
간지러움을 주고 있는 걸 보아라
아, 보아라 보아라
아직도 천년 전의 되풀이다.

그러므로 지치지 말 일이다.
사람아 사람아
이상한 것에까지 눈을 돌리고
탐을 내는 사람아.

그랬습니다. 숲속에 불어오는 바람이 나뭇잎을 간지럼 태우고 있었습니다.
"푸른 산, 푸른 산이 천년만 가리" 라고 노래했던 신석정 시인처럼, 박재삼 시인도 소나무 가지를
쉴 새없이 흔드는 바람을 보면서 천년 전에도 그랬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자연은 유구한데 이까짓 짧은 인생살이에서 왜 사람들은 아웅다웅하는가" 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다고 말하던 어느 문인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녹음이 짙어가는 산길을 그렇게 걸었습니다.
봄산의 푸르름은 걸어도 걸어도 물리지않고 지치지 않았습니다. 짙푸름에 빠져드는 자신을 마냥 내버려두었습니다. 청록파 시인 박두진 선생의 청산도(靑山道)를 되뇌이며 대간을 걸었습니다.

"산아. 우뚝 솟은 푸른 산아. 철철철 흐르듯 짙푸른 산아. 숱한 나무들, 무성히 무성히 우거진 산마루에,금빛 기름진 햇살은 내려오고, 둥둥 산을 넘어, 흰 구름 건넌 자리 씻기는 하늘. 사슴도 안 오고 바람도안 불고, 넘엇 골 골짜기서 울어오는 뻐꾸기......"

"산아. 푸른 산아. 네 가슴 향기로운 풀밭에 엎드리면, 나는 가슴이 울어라. 흐르는 골짜기 스며드는 물소리에, 내사 줄줄 가슴이 울어라. 아득히 가버린 것 잊어버린 하늘과, 아른아른 오지 않는 보고 싶은 하늘에, 어쩌면 만나도 그리워질 볼이 고운 사람이, 난 혼자 그리워라. 가슴으로 그리워라."

"티끌 부는 세상에도 벌레같은 세상에도 눈 맑은, 가슴 맑은, 보고지운 나의 사람. 달밤이나 새벽녘, 홀로 서서 눈물 어릴 볼이 고운 나의 사람. 달 가고, 밤가고, 눈물도 가고, 틔어 올 밝은 하늘 빛난 아침이 이르면, 향기로운 이슬밭 푸른 언덕을, 총총총 달려도 와줄 볼이 고운 나의 사람."

"푸른 산 한 나절 구름은 가고, 골 넘어, 골 넘어, 뻐꾸기는 우는데, 눈에 어려 흘러가는 물결같은
사람 속, 아우성쳐 흘러가는 물결같은 사람 속에, 난 그리노라. 너만 그리노라. 혼자서 철도 없이
난 너만 그리노라."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다짐했습니다.
거칠고 험한 세상을 이겨나갈 수 있는 것은, 나와 함께 길을 헤쳐갈 님이 있기 때문이리라. 이제 막 새롭게 피어나는 봄산 대간길에 "총총총 달려 와준" 그 님이 있기에 내 마음은 항상 이렇게노래합니다. "난 그리노라. 너만 그리노라"


[추신] :

산행종료후 생돼지 고기를 삶아 대간팀이 현장에서 직접 만든 수육, 산행중 채취한 취나물 쌈, 그기에 곁들인 참鎭 이슬 露는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이런 걸 두고 일품이라고 할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