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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가을의 잔해를 밟으며

月波 2005. 6. 29. 17:04
 

가을의 잔해를 밟으며 - 백두대간 16차

 

 

 

지난 1월 11일 지리산 천왕봉에서 해돋이를 하며 첫발을 내딛었던 백두대간이 12월 산행으로 16차에 이르렀다. 이번 16차 산행은 2004년 백두대간 마루금걷기를 마무리하는 송년산행으로 구간은 짧았지만 나름대로 많은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다.

1. 산행일시 : 12월 5일(일) 당일산행
2. 산행장소 : 작점고개~용문산(710m)~국수봉(620m)~큰재 : 11.5Km

3. 산행대원 : 20명(권오언,김성호,김영이,김종복,남시탁,박희용,송영기,오영명,윤재용,이미옥,이성원,이영희,이흥녀,정제용,지용,진성박,홍명기,서종환,주피터(주운표),지용친구

4. 산행후기

(1) 송년산행에 나서며

열병처럼 빠져들었던 백두대간이 16번의 산행을 이어가며 추풍령을 넘어 한 해를 마감하고 있다. 이제 제법 담담히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묘미를 터득하며 산마루금을 걸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간밤에 마신 소주의 여독이 남은 탓일까? 금년을 마감하는 송년산행에서 처음으로 지각을 한다. 5분을 기다려준 일행에게 미안해서 얼굴이 붉어짐은 당연지사 ..... 그래도 반갑게 맞아주는 그들, 모두 진부령에서 만날 대간의 동지들이다.

황간에서 추풍령으로 가는 국도변에서 몇 년 전 태풍 매미의 후유증을 본다. 나도 그날 밤 추풍령 마을에서 폭우속에서 사선(死線)을 넘나들고 있었지..... 하천변의 포도밭을 지나며 황토물이 채 가시지 않은 포도넝쿨의 환영(幻影)을 본다. 그날 밤 매미가 훑고간 추풍령 일대는 어둠속에 누런 황토물만 이 출렁이었지.......

추풍령 저수지를 돌아 작점고개를 향하는 버스속에서 지난 번에 펑크낸 백두 15차의 낮은 산등성이를 눈에 담는다. 석재를 채취하느라 만신창이가 되버린 금산이 마음을 아리게한다. 곳곳에서 만나는 대간의 상채기가 이름모를 아픔으로 다가온다.

언제 시간을 내어 펑크난 15차 구간을 빵때림해야 하나? 은근히 걱정이지만 함께할(함께 펑크낸) 몇몇 동지들이 있기에 부담은 덜하다. 종환님과 성박님, 내년에 봄날의 아지랑이를 함께 잡으러 궤방령으로 가지 않겠소?


작점고개를 떠난 숲길에서


(2) 가을 잔해가 가득한 숲길에서

작점고개에서 시작하는 오늘 대간길은 다른 어느 때보다 마음이 푸근하다. 거리에 대한 부담도 덜하지만, 한 해를 마무리하는 송년산행이라는 의미가 가슴을 뿌듯하게하기 때문이리라.

가을이 남기고 간 잔해가 용문산(710m)을 오르는 숲길에 가득하다. 마치 양탄자를 깐듯한 푹신함이 매 걸음마다 느껴진다. 산악달리기에 참 좋은 여건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달릴 생각을 않는다. 숲길에 쌓여 나딩구는 낙엽을 밟으며 각자의 생각에 잠길 뿐이다.


가을의 잔해를 밟으며 걷는 백두대간 길

나무들은 이제 부끄러움도 잊고 알몸을 완전히 내보이고 있다. 부끄러움에 파르르 떨며 한 잎 두 잎 잎새를 떨어뜨리던 초가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나신(裸身)을 보이는 나무가 오히려 당당해 보인다. 완전히 자신을 벗어던지고 얻는 당당함이라고나 할까?

용문산에서 잠시 땀을 씻으며 사방을 조망해 본다. 정상의 억새밭 너머로 국수봉(620m)이 보인다. 산(山)은 무엇이며, 봉(峰)은 무엇인가? 모두 다 허명(虛名)일 뿐인데, 우리가 그 이름에 집착하는 것은 아닌지? 산이든 봉이든 해발 1000m도 안되는 낮은 곳이다. 여성으로서 대간길을 개척했던 남난희님은 낮은 산이 좋다고 했지...... 그 의미를 헤아려보아야겠다.

용문산 정상에서 내려서는 길에서 오른쪽 발아래의 용문산 기도원을 본다. 산골 깊숙한 계곡에 꽤 넓게 터를 잡고 있다. 1950년부터 건립된 한국 최초의 기도원이란다. 저기서는 어떤 사람들이, 무슨 기도를 할까? 오늘 나는 산길을 걸으며 무슨 기도를 할 생각인가?

지난 2월 태백산 천제단에서 간절한 염원을 담아 기도했던 일을 떠올려 본다. 막 500고지를 넘어선 당시에, 600 고지를 갈망하며 눈보라속에 태백장정을 했던 기억이 새롭다. 꿈에도 그리던 600고지를 점령하고, 이제 또 다른 고지 800을 향한 발원을 하고 있다. 한 사람의 꿈은 꿈이지만 여러 사람의 꿈은 열망을 넘어 현실로 다가올테니......

숲길을 걸으며 문득 마음 속의 풍경(風磬) 하나를 만들어 가슴속에 매달고 싶어진다. 산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은 "늘 깨어있으라"는 경책의 뜻으로 물고기 모양의 풍경(風磬)을 만들어 처마에 매달았다고 했었다. 잠잘때도 눈을 감지 않는다는 물고기를 본뜨자는 생각에서 ...... 그러면, 문자(文字)에 얽매이지 않고, 산사(山寺)의 단청(丹靑)에 머물지 않는 지혜를 깨달을 수 있을까?



마음의 풍경소리를 들으며 오르는 대간길


(3) 아자개의 혼이 흐르는 상주벌판

국수봉 오르는 대간길에서 쏴하고 지나가는 한 줄기 바람을 만난다. 옷깃을 여미고 깊숙히 모자를 쓴다. 아직은 겨울이라 부르기에는 이른 철이지만, 산에서의 초겨울 바람은 꽤 매섭다. 산의 날씨변화 또한 무상하니 언제나 겨울산행 배낭에는 여벌의 장비가 필요하다.

국수봉에서 바라보는 상주벌판은 꽤나 넓다. 생각했던 것 이상이다. 기억을 더듬어 본다. 아마 후백제를 세운 견훤의 고향이요, 그의 아버지 아자개가 진을 쳤던 곳이 아니었던가? 시간을 내어 역사책을 더듬어 봐야지.

국수봉에서 북으로 이어지는 대간마루금은 충청북도와 경상북도의 경계를 이루는 도계와 일치하지 않는다. 어쩌면 아자개가 떨쳤던 세력의 크기를 보여줌인지, 낙동강계의 경북의 상주는 대간 마루금을 넘어 금강계를 이루는 충청북도 땅을 깊숙히 침범하고 있다.


국수봉에서 바라보는 상주벌판과 백학산으로 이어지는 대간길

국수봉에서 큰재로 내려서는 길목에 서면 상주의 넓은 벌판, 앞으로 달려갈 백학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속리산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속리를 하기 아쉬워서일까? 인간사는 세상의 내음을 더 맡으려 함일까? 대간길은 해발 400-700m를 넘지 않는다.

큰재에는 지금은 폐교가 된 시골분교 하나가 어릴 적 고향처럼 우리를 맞아준다. 백두대간상에 놓인 유일한 학교였던 옥산초등학교 인성분교터다. 1949년 11월 9일에 개교하여 1997년 3월 1일에 폐교하기까지 50년 가까운 세월동안 겨우 597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으니 1년에 10명 남짓 졸업생을 낸 셈이다. 동심으로 돌아가 풀이 무성한 학교 운동장을 거닐며 어릴적 추억을 더듬는다.

동심에 젖어 큰재에서 머문 잠시의 시간은 백두대간을 시작할 때의 초발심을 일깨워주는 좋은 시간이었다. 마루금을 걸으며 자연에서 겸허함을 배우는 산행은 계속되리라.


(5) 송년산행의 뒤풀이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송년산행을 마무리한 일행은 김성호님의 시골 본가에 들러 세상에서 맛볼 수 없는 무한 행복을 체감한다. 성호님 동생내외의 모습과 넉넉한 마음에서 조건없는 따뜻한 형제애를 본다.
16차례의 대간길보다 그들을 만난 오늘이 더 큰 기쁨이다. 나누는 마음에서 즐거움 가득한 삶의 참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백두대간이 눈앞에 펼쳐지는 그 곳에서 해넘이를 하면서 ...... 그들을 통해 비춰지는 내 자화상은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지?

성호씨 본가에서 삽겹살과 포도주, 그 맛을 어찌 잊으랴? 밤 10시가 넘어 서울 개포동에 도착했지만, 생맥주로 다시 송년산행의 아쉬움을 달랜다. 아무 탈없이 16차에 걸친 백두대간 산행을 마칠 수 있었던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대간의 모든 산신령께 감사드린다. 더욱 덕을 쌓으며 살아야지 다짐한다.



성호님 고향집에서 맞는 해넘이


[산행 기록]

2004년 12월 5일(백두대간 16차)

08:06 개포동 출발
10:06 금강휴게소 도착(20분 휴식)
11:08 작점고개
11:25 479.7봉
11:50 산불방지 초소
12:00 기도터 바위
12:10 687.4봉
12:30 용문산(710m) - 20분 휴식
13:10 용문산 기도원 삼거리(안부)
13:35 국수봉
14:45 큰재(10분 휴식)
14:55 김성호 본가로 이동
17:42 서울로 출발
22:05 개포동 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