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종주기] - 저 높은 곳을 향하여
- 종주일자 : 2003년 8월 23일(금) - 8월 25일(일) 2박3일
- 종주코스 : 성삼재-노고단-연하천(숙박)-벽소령-세석-장터목(숙박)-천왕봉-중봉-치밭목-대원사
- 종주대원 : 김정환, 김재철, 송영기, 심재천, 박희용
4. 연하천(煙霞泉)의 밤
종주산행의 첫날이 석양속에 사라지기엔 아직도 상당한 시간이 남았다. 반야봉에서 하산하며 다시 그 화두를 참구한다. 반야란 무었인가? 누구인가 숲속의 그늘이 곧 반야라고 얘기한다. 실감영상이다. 8월의 마지막 태양이 작열하는 그 산하에서 한 잎의 그늘은 세상을 덮고도 남는다. 그러나 우리는 어찌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헤매이는가 싶다.
반야봉에서 노루목으로 돌아온 우리는 곧 삼도봉으로 향한다. 삼도봉(三道峰), 이름하여 경남,전남,전북 3도의 분수령이다. 삼도봉을 거쳐 화개재로 가는 길목에서 수백 계단의 내리막을 걷는다. 중간중간 이끼낀 나무들의 숨소리에 귀 기울인다. 그러나, 이제 내리막 길도 걱정으로 다가온다.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기 마련이니.......
김 관장은 다음 봉우리는 얼마나 가파를까 지레 걱정이다. 부산에서 왔다는 육십(?)도 훨씬 넘은 듯한 할머니가 내리막 계단에서 쉬면서 넋두리를 한다. "뱀사골로 빠지는 사람 참 좋겠데이. 내리막 길만 남았으니까...." 이 할머니도 화개재에서 다시 오를 토끼봉이 마냥 걱정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숲길은 고요하고 마음은 여유롭다. 법정스님은 새들이 떠난 숲은 적막하기조차 하다고 했던가?
삼도봉에서 수백계단을 내려온 화개재. 그 화개재에서 우리가 가는 큰길을 양분하는 이정표가 있다. 천왕봉을 향해 토끼봉으로 직진이냐, 갈길을 접고 뱀사골을 따라 반선으로 하산하느냐? 더 이상 주저할 것이 없다. 다시 토끼봉으로 향한다.
그런데, 내리막 계단에서 걱정했던 것보다 완만한 오름새의 숲길이 계속된다. 갈 길은 오히려 미지에 휩싸이며, 더욱 두려움을 가져다 준다. 갈 길이 얼마인지, 어이 갈 수있는지? 조금씩 우리 멤버들이 중간중간 쳐진다. 나 혼자 길을 앞서간다. 혼자가는 숲길은 여유로와서 좋다.
팀들과 떨어져 혼자 본격적으로 시작된 토끼봉 오르막을 탄다. 과연 오르막의 매운 맛을 제대로 느낀다. 정상에서 뒤를 돌아 본다. 바로 가까이 지나온 반야봉이 엄마품처럼 가슴에 와 닿지만 그것을 느끼고 있기엔 달려온 토끼봉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 계속 어깨를 짓누른다.
김관장을 뒤로한 채 토끼봉을 떠난다. 연하천 산장을 가는 마지막 고비인 명선봉을 오른는 계단에서 한참동안 숨을 가눈다. 잔뜩 짐을 졌지만, 지난 번 당일 종주시보다 마음은 오히려 가볍다.
다행히 후미에 있던 일행중 재철이가 바로 따라 올라온다. 역시 타고난 체력이다. 재철이의 체력은 그 다리의 튼튼함에서 나온다. 속리산 법주사 모임에서 문장대를 오르내리며 검증된 다리 아닌가? 역시 [다리 제일]은 우리의 호프 [골이]인 재철이 몫이다. 이 대목에서 경조씨 한 턱 다시 쏘기로하고 다음 소절로 넘어 가야겠다. 풍기문란에 휩싸이기 전에 확실히 쏘시는 거죠?
다른 친구들은 아직이다. 하지만, 재철이와 함께 명선봉 허리를 돌아 연하천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는 한결 발걸음도 가볍게 룰루랄라 신이나 있다. 종주산행의 첫날 밤을 화려하게 보내기로 한 연하천 산장이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산장지기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연하천에 하루 밤을 머물 산객중에는 우리가 첫번째로 도착했음을 확인한다.
저녁식사는 햇반에 정산이 준비한 꽁치 통조림이다. 저녁 식사보다 소주 한 잔이 더 정겨운 것은 속세를 벗어나지 못한 중생의 아픔만은 아니리라...... 온갖 밑반찬에 팩 소주 맛이 일품이다. 그 소주팩 짐을 하루 종일 내색않고 지고온 정산이야말로 자기 몸을 녹여서 세상을 깨끗이하는 [비누의 화신]이 아닐까? 어쩌면 이 맛에 그 무거운 짐을 지고, 하루 종일 연하천의 밤을 즐기려 달려온 것이 아닌가? 연하천의 물소리와 별 모양을 즐기려......
[ PS ]
옆에서 코고는 소리에 잠 한 숨 못자고 꼬박 뜬 눈으로 지샌 [연하천의 밤] 얘기는 접어두더라도, 자기 몸을 녹여서 세상을 깨끗이 하는 [비누의 화신] 이야기는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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