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여행/* 마라톤 완주기

즐거운 서울구경 - 42.195Km에 비친 세상

月波 2005. 8. 7. 18:12

 

 [즐거운 서울구경 - 42.195Km에 비친 세상] - 동아 서울국제마라톤(2005. 3. 13, 3시간 46분 29초)

 

 

(1) 대회를 앞두고

3월 13일(일)에 "2005 서울 국제마라톤 겸 제 76회 동아마라톤 대회"라는 긴 이름의 마라톤대회가 서울 한복판에서 열렸다. 달림이라면 누구나 달려보고 싶어하는 도심을 가로지르는 멋진코스다. 그래서 동아대회를 앞두고 4-5개월 전부터 모두 동계훈련에 돌입한다.

동아대회에 참가하러 지방에서 올라 온 친구들과 전야제(?)를 하기로 한다. 오랫만에 다섯부부가 어울려 YS식 칼국수로 탄수화물 섭취를 충분히 한다. 칼국수의 탄수화물이 밤새 글리코겐으로 바뀌어 내일 달리기의 에너지원이 되리라는 믿음이다. 이번의 카보로딩은 30Km이후의 고비에서 효력을 발휘할까?

간밤에 잠을 설친다. 마라톤 대회를 앞두고 숙면을 못하기는 처음이다. 왜 일까? 대회에 대한 기대나 흥분 때문이 아니다. 동계훈련 부족으로 기록단축은 고사하고 완주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준비하지 않은 자의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기에, 잠을 설친 것은 미리 앓는 아픔쯤으로 치부해두자.

그러니 늦잠을 잘 수 밖에...... 갑자기 바빠진다. 부랴부랴 발가락 테이핑, 돌출부 반창고, 여기저기 바셀린.......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타이즈, 긴팔 셔츠, 장갑, 모자, 보온용 겉옷 ...... 영하 7도라니...... 왠 3월의 한파일까? 꽃샘추위치고는 제법 매섭다. 아휴, 아침부터 바쁘다 바뻐! 그래도 아내가 정성들여 차려준 찰밥은 빼놓을 수 없지?

클럽멤버들의 1차 집결지인 광화문 풍문여고 앞에는 벌써 많은 강마의 건각들이 모여 준비에 부산하다. 함께 스트레칭과 기념사진을 찍고 광화문으로 향한다. 싱그러운(?) 봄을 기다리며 겨우내 훈련해온 달림이들의 기대가 오늘 모두 이루어졌으면.......


(2) 42.195Km에 비친 서울

[출발 - 10Km]

광화문앞 세종로 거리에는 달림이들로 가득하다. 추운 날씨도 아랑곳 않고 모두 가볍게 러닝을 하기에 바쁘다. 눈에 익숙한 박대통령의 글씨,광화문 현판이 눈에 들어온다. 왜 모두들 그렇게 속이 좁은지? 역사를 부르짖으며 박대통령 18년과 그 이후의 세월은 역사가 아니란 말인가?

출발준비를 서두르는 배동성씨의 귀에 익은 목소리가 "광화문"에 빠져있는 나의 생각을 건져올려 달리기 현장으로 몰고온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 " 내 생애 이 보다 더 우렁차고 가슴이 메이도록 애국가를 불러 본 적이 있던가? 그것도 경복궁 광화문앞 세종로 거리에서........

8시를 조금 지난 시각, 마스터스 B그룹과 함께 출발한다. 동아일보 전광판에 비치는 달림이들의 활기찬 모습이 추위를 잊게한다. 서울시청 광장을 지난다. 오른쪽으로 덕수궁의 대한문이 눈에 들어 온다. 잔디광장의 촛불시위도 덕수궁의 돌담길도 잊은채 그저 달릴 뿐이다.

국보1호 남대문을 휘감듯 돌아 달린다. 숭례문(崇禮門)이라고 쓴 현판의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양녕대군의 글씨라고 배운 기억이 난다. 보통 현판의 글씨는 가로쓰기인데 숭례문(崇禮門)은 세로쓰기로 쓰여있다. 그 사연은 무었일까? 조상의 숨결이나 삶의 지혜를 느낄 틈도 없이 달리며 아쉬움을 뒤로한다.

좌우로 백화점, 호텔, 오피스빌딩이 즐비한 명동입구를 지나 을지로로 접어든다. 아침 8시를 조금지난 거리는 상업지역이라 그런지 아직 인적이 드물다. 을지로 중앙선에 늘어 선 자원봉사자들이 힘을 외쳐준다. 벌써 동대문 운동장을 돌아 을지로로 마주 달려오는 선두그룹들의 모습에서 동지애를 느낀다. (을지회관 5Km, 27분 41초)

을지로 입구를 돌아 종로로 향한다. 7,5Km지점을 지나도 영 몸이 풀리지 않는다. 추위 때문인지, 훈련부족인지 모르겠다. 늘 초반에 고생을 하는 편이지만 오늘은 좀 심하다는 생각이다. 머리 속에 중도포기를 생각한다. 늘 입버릇처럼 되뇌이는 "준비하지 않은 자의 고통"을 스스로 겪고 있는 셈이다.

마음 속으로 보신각 종소리를 들으며 종로통을 달린다. 언제 지나도 삼일운동의 함성이 들리는듯한 탑골공원, 조선왕조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사당인 종묘를 지나 넓은 종로통을 달린다. 종로하면 나는 늘 종로서적을 먼저 떠올렸었는데 이제 경쟁에 밀려 자취를 찾기어려우니 안타까울 뿐이다.

주선일미(走禪一味)를 등에 써붙이고 앞에서 달리는 불자(佛子)를 따라 달린다. 그래. 달리기와 참선이 둘이 아닌 하나의 맛이려니, 행선(行禪)을 하며 달려보자. 그 경지를 접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테지만...... 풀리지 않는 종아리 근육이 여전히 부담스럽다. 길게 복식호흡을 하며 몸을 가다듬는다. 마음속으로 반야심경을 외워본다.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 개공도 일체고액 ....."

동대문(興仁之門)이 시야에 들어온다. 조선의 4대문 4소문중 남대문과 함께 남아있는 2개의 대문중 하나요, 보물 1호다. 지금의 동대문 일대는 의류를 중심으로 새로운 패션몰들이 밀집해 있다. 밀레오레, 두타를 한바퀴 돌고나면 세상사는 맛을 새삼 느낄 수 있으니....... (동대문 지하철역 5번출구 10Km 55분 08초)


[10 Km - Half]

신설동이다. 서울에 25년을 살아도 이 지역은 영 지리에 어둡다. 하지만 낯설은 거리를 질주하는 재미도 있다. 다행히 몸이 슬슬 풀려 달리는 자세에 안정감을 찾는다. 초반의 포기를 생각했던 마음이 완주가 가능하다는 희망으로 바뀐다. 그렇다. 이 희망의 불씨를 믿고 천천히 완주에 도전하자.

몸과 마음이 편해지니 내면에 숨어있던 배설의 욕구가 꿈틀거리며 솓는다. 어쩌나? 주변을 둘러봐도 마땅한 곳이 없다. 가까운 주유소가 있으면 좋으련만...... 마침 길가의 공사장으로 몰려드는 달림이들을 보니 나와 동병상련의 동지들이다. 모두 서서 시원히 쫙....... (서울시장님 작은오물 수거료 내야하나요?)

답십리를 향해 뻗은 대로를 힘차게 달린다. 돌이켜보면 오늘 달린 42.195 Km 구간중 가장 신나게 질주한 구간이지 싶다. 답십리, 조선조 임금들이 농미들과 모내기를 했다는 곳, 그래서 논이 십리라고 이름이 붙여진 곳이다. 모내기 마치고 선농단(先農壇)에서 먹던 음식의 이름이 선농단에서 유래한 "설렁탕"이라 했던가? 그 답십리에는 10차선 대로에 높은 빌딩들만 늘어서 있다.(삼우주유소 앞 15Km 1시간 23분 34초)

답십리를 지나면 군자교가 목표로 다가온다. 군자교를 오르는 얕은 언덕길은 탄력이 붙어 쉽게 오를 수 있다. 중곡동에는 제법 많은 시민들이 나와 박수도 쳐주고 환성을 질러준다. 어린이 대공원 정문을 지나며 이제는 대학에 들어간 큰 딸을 생각한다. 그 애 어렸을 때 천진난만하게 여기를 아장아장 걷던 모습...... 봄날의 식물원 꽃단장은 어떻게 했을까?

달리는 오른쪽에는 세종대학교 정문이 보인다. 도시속의 작은 휴식공간이라 불릴만한 곳, 어린이 대공원을 가까이 둔 대학은 캠퍼스가 없어도 될것 같다. 저 대학에서 멀지 않은 곳에 캠퍼스의 연못이 커기로 소문난 대학이 하나있지. 아마 왠만한 대학의 캠퍼스는 그 연못에 빠질정도라 했던가? (양평으뜸해장국집 20Km 1시간 46분 58초)

이제 잠실대교가 멀지 않다. 서울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달리는 한강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가슴이 콩당거린다. 동아마라톤은 코스를 절묘하게 구성했다는 생각이 든다. 강북에서 Half인 21.0975Km를 달리고, 강남에서 나머지 21.0975Km를 달릴 수 있도록 잠실대교 중간이 Half가 되도록 했으니......

Half Line을 통과하며 유유히 흐르는 한강에 잠시 넋을 팔아본다. 한강, 거슬러 올라가면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난다. 북한강의 원류는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 춘천, 화천을 거쳐 북한땅 금강산까지 이어진다. 남한강은 이천, 충주, 영월의 동강을 거슬러 태백의 함백산 금룡소에 가서야 그 시원(始源)을 찾는다. 금룡소에서 한강하구까지 굽이굽이 512Km, 1300여리 물길이 이어진다. (잠실대교 Half 21.0975 Km 1시간 52분 50초)


[Half - 30Km]

시작이 반이라 했고, 이제 반을 달렸으니 전부 다 달린 것인가? 멀리 오른쪽으로 오늘의 Finish Line인 잠실운동장이 보인다. 70년대까지 뽕나무 밭이었던 잠실벌에는 이제 높고 낮은 아파트와 건물들로 채워져 벌판이라는 흔적을 찾을 길 없다. 롯데월드 사거리에는 성남방면에서 올라오는 차량들이 줄지어 서있다. 도심교통을 가로막고 달리는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올림픽 공원을 향해 좌회전을 한다. 많은 시민들의 환호에 손을 들어 답례하며 잠실 교통회관을 지난다. 올림픽공원은 언제 보아도 마음의 여유를 안겨준다. 공원안을 산책하는 맛도 좋고, 여기저기 체육관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이 된 아들은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 올림픽 공원 호수가에서 곧잘 노래를 흥얼거렸었지.

몽촌토성이 보인다. 단순히 흙으로 커다란 뚝방을 쌓아놓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오늘 이 길을 내 뒤에서 달려올 김해 박물관 김관장의 얘기를 들으면 상황은 사뭇 달라지리라. 기원전부터 백제의 도읍이던 하남 위례성(河南慰禮城)의 주성(主城)으로 3세기경에 축조된 의미있는 곳이니, 함부로 마라톤한다며 뛰어다니며 오두방정(?)을 할 곳이 아니랄것이다.

그럼 여기 몽촌토성을 지날 때는 스피드를 줄여야 하는 걸까? 천호대교를 향해 살금살금(?) 발걸음을 옮긴다. 아뭏든 김 관장이 그토록 열심히 훈련하며 이루고자하던 Sub4의 꿈을 오늘 이루어야 할텐데....... (극동아파트 마을버스 정류장앞 25km 2시간 13분 36초)

천호대로로 접어들며 응원나온 시민들을 살핀다. 작년에 낯익은 팻말을 든 고사리 손이 있었는데 금년에는 안보인다. 현대백화잠 앞을 지나 27.5Km 지점인 한촌 설렁탕집을 지나며 침을 꼴깍 삼킨다. 밤새도록 큰 가마솥에 우려낸 국물에 대파와 구운 굵은소금을 쳐서 한 그릇 마시면 남은 15Km가 문제 없을텐데....... 내년에는 여기서 강마의 자봉팀이 진을 쳐보자고 할까?

둔촌동 넓은 거리를 달리는 늘 힘들다. 오랜 친구 정산(正山)은 왕복 2차선도로에 구불구불한 길이 달리기에는 안성맞춤이라고 했지. 소양호를 달리는 춘천마라톤 코스처럼...... 한국체육대학을 끼고 달리면 이번에는 오른쪽에 올림픽 공원이 나타나고, 왼쪽에는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다. 서서히 종반의 고비가 시작되는 곳이다. (올림픽선수촌아파트30Km 2시간 40분 01초)


[30Km - Full]

30Km 지난 지점에서 고사리 손의 자원봉사자로부터 잘 익은 바나나 하나를 받아 입에 넣는다. 오늘 달리면서 한 모금씩 마신 물외에 처음 먹는 음식이다. 보통 30Km이후에서는 입안이 까끌해 목에 삼키기 힘들었는데 오늘은 입안에 사르르 녹는다. 좋은 징조일까? 식이요법을 통한 카보로딩이 효과가 있는 것일까?

올림픽공원 남2문을 향하는 오르막을 힘차게 오른다. 지금부터가 마라톤이다. 작년에는 여기서 3시간 45분 페이스메이커를 하던 김종복님이 뒤에서 힘을 외쳐 주었는데....... 오늘은 을지로이후 30Km내내 페메를 못만나니 나의 스피드가 일정하게 유지되나보다.

올림픽공원을 벗어나 송파대로를 향해 달리는 길목에는 멋쟁이 중년의 아저씨들이 갖가지 관악기를 들고나와 길거리 악단을 구성해 달림이들에게 힘을 보태준다. 행진곡풍의 씩씩한 음률이 달림이들에게 절로 힘을 솟게 한다. 송파대로를 달려 가락동 농수산물센타를 지나면 숨가쁜 오르막 위에 탄천교가 버티고 있다(탄천교 35Km 3시간 07분 09초)

탄천교위에서 마지막 남은 카보샷을 입에 삼키고는 입에 한모금 물을 적신다. 내리막이다. 그러나 곧바로 삼성서울 병원을 향하는 오르막이 시작된다. 누군가 보스톤의 Heartbreak Hill을 얘기했었지. 저기를 못오르면 38Km지점에 기다리는 아내가 얼마나 상심할까? 여기를 상심의 언덕으로 만들 수 없다. 진군이다.

대청역을 지나 37.5 Km 지점의 영동 6교까지는 개포동 주민들의 응원물결이 흘러 넘친다. 군데군데 인파를 뚫고 "강마, 힘!'이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아! 마라톤은 이 맛이야. 42.195Lm의 결승선보다 응원인파속에 종반을 질주하는 이 맛이야. 윤영옥님을 비롯한 강마의 38Km 자봉조들이 반겨준다. 김용수님이 건네는 파워젤을 들고는 영동 6교를 건넌다.

영동6교에서 학여울역으로 달리는 길은 편안한 내리막이다. 응원하고 있을 아내를 찾으려 가장 오른쪽 레인을 따라 달리며 손을 흔든다. 학여울 역에도 많은 사람들이 나와 응원을 해 준다. 아내가 달려나온다. 잽싸게 Bearhug를 하고는 가던 길을 질주한다. 김용수님이 건네준 파워젤을 입에 문다. 이제 파워젤이 없더라도 힘이 넘친다. (탄천2교 지나 우성아파트 40Km 3시간 34분 29초)

이제 마지막 스퍼트를 할 구간만 남았다. 잠실운동장을 향해 오르는 길 양옆에는 한마디로 인산인해다. 천천히 호흡하며 자세를 가다듬고 운동장을 향해 달린다. 여기저기서 클럽멤버들이 알아보고 힘을 외쳐준다. 잠실 운동장 트랙으로 접어드는 순간 42Km를 달려온 서울거리가 주마등처럼 오버랩된다. 드디어 Finish Line이다. 오늘 서울구경 참 잘했다. (Full 42.195Km 3시간 46분 29초)



(3) 동아마라톤이 남긴 잔상

돌아 온 강마텐트에는 시끌벅쩍한 웃음이 가득하다. 좋은 기록을 낸 분도 있고, 최선을 다했으나 아쉽게 목표를 이루지 못한 분도 있다. 그러나, 그들 모두 승자다. 또 하나의 진정한 승자는 매운 꽃샘 추위속에서 즐겁게 자봉하신 분들이다. 굴국에 말아먹는 밥맛도, 머릿고기에 걸치는 막걸리 한 사발도 모두모두 그들이 연출한 꿀맛이었다.

시험공부를 제대로 하지않고 치룬 시험치고는 개인적으로 좋은 성적을 거둔 셈이다. 작년 춘마이후 워낙 훈련량이 부족해 완주를 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앞섰는데, 무난히 완주를 하고 기록도 Best에 비해 4분정도밖에 늦지 않았으니....... 부지런히 훈련을 해야할 숙제는 남았지만.

몸이 풀리지 않아 고생한 초반 10Km의 고비를 잘 넘기고 완주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뛴다, 끝까지, 즐겁게"의 평소 좌우명이 안겨준 선물이라 생각한다. 더욱 마음이 흡족한 것은 서울 한복판을 관통하여 즐겁게 세상구경을 하면서 달릴 수 있었던 점이다. 달리는 길거리 주변 곳곳에 눈길을 주며 재미있게 달렸다. 서울구경 한 번 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