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여행/* 마라톤 완주기

2년만에 다시 쓰는 가을의 전설

月波 2005. 10. 24. 04:36

 

[2년만에 다시 쓰는 가을의 전설]

 

   - 2005 조선일보 춘천마라톤(2005.10.23) 완주기(기록 3시간 38분 57초)

 

 1. 춘천으로 향하는 마음

 

 달리기에 있어 춘천은 내 마음의 고향이다. 3년전 풀코스 완주의 첫 기쁨을 만끽했던 곳이려니와 그 이후 매년 호수와 단풍이 어우러진 의암호를 달리는 재미를 놓쳐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금년에는 아내가 앞장서 열심히 채비를 차려주고 춘천까지 동행하니 더욱 신이 난다.

 

 단지 걱정인 것은 훈련부족인 상태에서 무모한 도전이 아닌가하는 점이다. 지난 봄 동아대회이후 여름이 되도록 훈련을 접고 있다가 9월이 되어서야 훈련을 재개했다. 그것도 들쭉날쭉 달리다가 장거리는 고작 32Km LSD 한 번하고 춘천으로 향하는 마음이 가볍지는 못하다.

 

 그러나, 절친한 친구들과 클럽의 멤버들이 모이니 그들과 어울리는 재미를 기대하고 간다. 여름내 땀흘려 훈련한 결실로 가을의 전설을 만드는 그 자리에 하객이라도 된 양 참가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달리기는 정직한 운동이니 큰 욕심을 내기보다 즐거운 마음으로 달려보자.

 

 마음 한편으로는 별로 기댈 곳 없는 막 배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매월 백두대간과 청계산을 오르내리며 근력과 지구력은 어느 정도 키웠으니, 속도 욕심만 포기하면 그야말로 즐거운 마음으로 완주야 하지 않겠는가? 그 속도를 어느 정도로 해야할지가 고민이지만 ........

 

 춘마 하루 전 강촌에서 친구 부부들이 모여 춘마 전야제를 했다. 매년 30년 지기의 부부들이 춘마를 빌미로 전국에서 모여 우의를 다지고 의암호반을 함께 달린지 벌써 4년째다. 그런데 금년에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참가자가 줄었다. 게다가 절친한 친구 정산(正山)마져 배번을 반납하고 서울로 돌아갈 사정이 생기니 영 뛸 생각이 안난다. 

 

 애라 모르겠다. 금년에 훈련도 부족한데 밤새 소주나 한 잔하고 내일은 자원봉사겸 응원전으로 나가버려? 그런데 김해의 김관장이 근엄한 표정으로 음주를 사양하고 내일을 준비하니, 납작 엎드릴 수 밖에 ...... 자정이 가까워지도록 함께 얘기꽃을 피우며 게임을 즐기다가,  이른 아침 새벽안개 자욱한 강촌을 떠나 춘천으로 향한다.

 

 

  2.주로(走路)에서의 기억들

 

 (1) 출발에 앞서

 

 운동장 입구 강마텐트를 찾는다. 새벽바람을 거르며 달려온 클럽멤버들이 출발준비에 부산하다. 썬크림, 맨소래담, 바셀린 등 한바탕 바르기가 끝나고, 자기 목표에 맞춰 구간별 페이스 챠트가 적힌 링을 팔에 찬다. 즐달하려면 저 페이스 차트가 필요 없는데 ......

 

나는 어찌할까? 자봉하러 온 남대장이 거든다. Sub 4는 해야지. 그러면, 359? 아니야  349로는 해야하지 않을까? 아니야. 후반에 쳐지는 것을 생각하면 전반에 339 페이스는 달려야 Sub 4는 할거야. 아니야, 339는 한 번도 뛰어본 적이 없는 신기록이잖아. 제대로 훈련도 않고 감히 넘볼 것을 넘봐야지. 생각이 복잡하다.

 

 (2) 출발 - 10Km : 53분 42초(05분 22초/Km)

 

 즐달이라 생각하니 Stretching후 Warming Up도 게을리 한채 D그룹에서 천천히 출발한다. 초반의 4Km가 넘는 주로는 언덕을 지속적으로 오르는 마의 코스다. 초반이 약한 나로서는 초죽음의 코스다. 금년에는 유난히 더 힘들다. 처음부터 숨이 가쁘고 종아리가 뭉쳐온다. 도저히 속도를 낼 수 없다. 전부 나를 앞질러가고 나는 뒤로 쳐지기만 한다. 이러다가 완주는 커녕 하프는 뛸 수 있을까?

 

5Km지점 급수대를 그냥 통과한다. 굳이 물마실 필요가 없다. 얼마 더 못뛸것 같은데 ..... 새보다 자유로워질 수는 없는 것일까? 의암호가 시작되는 6 Km지점에 김유정 시인의 시비가 춘마참가 4번만에 처음으로 보인다. 삼악산 정상을 물들인 단풍이 의암호로 내려와 호수에는 마라토너와 단풍잎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그림을 연출한다.

 

7Km지점, 의암댐에는 아내를 비롯한 지인들이 나와 응원을 하며 힘을 실어준다. 뛴다, 끝까지, 즐겁게!!! 조금씩 몸이 풀려가며 스피드를 회복하기 시작한다. 다행이다. 하지만 여전히 호흡이 가쁘고, 종아리 근육은 묵직하지만...... 10Km지점을 53분 42초에 겨우 통과한다. 생각보다 3-4분은 늦은 셈이다. 초반의 이런 고생이 나중에 긴 레이스에서 고통이 될지, 전화위복으로 약이 될지?

 

 (3) 10 - 20 Km : 1시간 43분 51초(구간기록 50분 09초, 05분 01초/Km)

 

의암호를 오른쪽에 두고 올망졸망 난 주로를 달린다. 위도, 중도가 눈에 들어온다. 호수의 물풀(水草)까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춘천에서 터를 잡고 살아가는 소설가 이 외수님이  [해탈의 경지를 알고 싶으면 물풀을 보라]던 글이 생각난다. 이 정도면 컨디션이 많이 회복된 셈이다.  

 

물풀은 화사한 꽃으로 물벌레들을 유인하지도 않고 달콤한 열매로 물짐승들을 유인하지도 않는다. 물풀은 단지 물살에 자신의 전부를 내맡긴 채 살아가는 방법 하나로 일체의 갈등과 욕망에서 자유로워진 생명체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의지대로는 흔들리지 않는다. 오로지 물살과 합일된 상태로만 흔들린다.

 

그렇다. 이런저런 잡념과 욕심을 버리고 모든 것을 몸이 허락하는대로 맡기고 달리자. 서서히 속도를 회복한다. 뭉쳤던 종아리 근육이 풀리니 한결 달리기가 편한다. 15Km지점에서 나를 앞질러갔던 내 뒷그룹인 E그룹의 3시간 40분 페메를 추월한다. 희망이 보인다. 조금씩 가속도가 붙으며 앞서가던 주자들을 차례로 앞지른다. 20Km 지점에서는 내가 속한 D그룹의 3시간 40분 페메를 추월한다. 저 친구들 Finish Line까지 만나지 말아야지. 그러면 339인가?

 

   

 

 (4) 20 - 30 Km : 2시간 34초 33초(구간기록 50분 42초, 05분 04초/Km)

 

Half 지점을 1시간 49분 30초에 통과한다. 후반을 전반과 같은 페이스로 달릴 수 있다면 3시간 39분이면 완주다. 감히 그렇게 뛸 생각을 못할뿐더러 그렇게 달려본 적도 없다. 하지만 5분/Km 페이스를 계속 유지해보자. 어디까지 뛸 수 있는지, 그 때 가서 속도를 늦추던지 ......  

 

춘천댐을 향해 길고 긴 오르막이 시작된다. 24Km 지점에서 강마의 지용 님을 앞지른다. 힘내세요, 지용 ! 지용! 지용! 함께 백두대간을 줄곧 해오는데 오늘따라 그의 컨디션이 나빠보여 안타깝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는 반복되는 쥐덫에 걸려 죽을 고생을 하고도 완주를 했음)

 

서상교가 시작된다. 본격적인 오르막이다. 작년에도 여기서 숨을 헐떡이며 간신히 춘천댐을 올랐었지. 자세를 낮추고 짧은 보폭으로 언덕을 달린다. 스피드를 줄이지 않고 줄기차게 달려오른다. 심장이 터지던, 나중에 퍼지던 달려보자.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생각보다 쉽게 26Km지점인 춘천댐에 오른다. 한고비를 넘긴 셈이다.

 

춘천댐을 건너 북한강을 따라 이제 하류로 향한다. 강 건너편에는 형형색색의 유니폼을 입은 후미그룹들이 서상교 오르막을 오르고 있다. 사람의 물결이 단풍의 물결같다. 30Km 급수대에서 처음으로 잠시 서서 물을 마시고, 길가에 서서 체면불구 참아왔던 볼일을 본다. 등판에 이름을 달고고 부끄러운 줄 모르고 한강을 오염시키고 있으니, 나중에 용서가 될까?

 

 (5) 30 - 42.195 Km : 3시간 38분 57초(구간기록 64분 24초, 05분 17초/Km)

 

30Km 지점에서 다시 출발하며 다짐한다. 자, 다시 달려보자. 조금씩 힘이 들지만 아직 흐트러지지않는 5분5초 전후의 페이스로 계속  달려보자. 그래, 갈 수 있는데까지 이 속도로 달려보자. 훈련이 부족했으니 어디서든 탈이 나겠지 ....... 어찌되었던, 이제부터가 마라톤이다.

 

31Km, 102보충대 앞에는 군악대의 경쾌한 연주가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예년의 신병들이 만드는 인간터널 응원이 없어 아쉽다. 소양대교를 향하는 넓은 시내길이 시작된다. 달림이들에게 쉬 피로를 느끼게 하는 길이다. 길가에는 시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수지침 자원봉사를 하는 곳을 지나며, 오늘은 수지침 안맞고 결승점을 통과했으면 한다.

 

34Km, 용무 님이 보인다. 그를 오늘 주로에서 두번 째 만난다. 초반에 앞지르며 나에게 [힘!]을 외쳐주었지. 용무님, 힘! 이번에는 내가 외쳐준다. 35Km, 소양대교를 건너 길고 지루한 대로를 달린다. 오로지 발아래만보고 달린다. 딸아이를 위한 기도, 이루고자 하는 일에 대한 염원, 이웃을 위한 바램을 되뇌이며 ....... 달리는 참선(參禪)이 이러할까?

 

                           

 

40Km를 지나며 길가의 시민들이 뜨거운 응원을 보낸다. 달리는 걸음이 무거워지지만, 끝이 보인다. 42Km, 춘천 공설운동장 안으로 진입한다. 많은 사람들이 환호한다. 운동장 트랙 옆에서 아내가 여보를 외치며 환호한다. 힘을 내어 마지막 직선트랙을 질주한다.

 

42.195Km, 드디어 Finish Line을 밟는다. 3시간 38분 57초, 2년만에 세운 신기록이다. 마지막 결승점에서 힘이 남아있으면 진정 마라톤을 하지 않은 것이라고 했던가? 한 점 에너지를 남기지 않고, 즐겁게 끝까지 뛰어서 13번째 완주를 이루어 내었다.

 

 

 3. 달리고 나서

 

  (1) 기록에 대해

 

 첫째, 3시간 38분 57초는 종전의 개인 최고기록인 3시간 42분 19초(2003년 조선일보 춘천마라톤)를 2년만에 3분 22초를 단축한 것이다. 타고난 재주가 없는데다 훈련마져 게으르니 이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 그런데, 부족한 훈련에도 불구하고 기대하지 않았던 기록이 나온 원인이 무었일까?

 

 둘째, 전반 하프를 1시간 49분 30초, 후반 하프를 1시간 49분 27초로 달렸다. 전후반이 불과 3초차이니 완벽하게 같은 시간에 달린 셈이다. 종전에 후반에 6분-12분 늦어지던 페이스를 극복한 것일까? 그렇다면 그 까닭은 무엇일까?

 

 셋째, 구간별로 보면 처음 10Km를 5분 22초/km, 20Km까지를 5분 01초/Km, 30Km까지를 5분 04초/Km, 마지막 12.195Km를 5분 17초/Km로 달렸으니 초반 종아리가 뭉치는 고전을 감안할 때 구간운영도 잘된것 같다. 나름대로의 페이스 운영이 적절했던 것일까? 애당초 페이스 운영전략이 없었는데 .......

 

  (2) 주먹구구식 분석

 

 이구동성으로 말하듯이 달리기는 정직한 운동이니, 그동안 나름대로의 훈련 과정을 반추해본다.

지난 3월 동아일보 대회이후 8월까지 무릎도 아프고, 바쁘기도 하고, 이런저런 핑계로 달리기를 푹 쉬었다. 대신 매주 목요일 밤 청계산 야간산행을 하고, 매월 한 번씩 백두대간 종주산행만 지속적으로 했다. 산에서 숨가브게 크로스컨츄리한 것이 심폐기능을 상당히 보강시켜준 것같다.

 

 8월말 이후 달리기를 조금씩 다시 시작했다. 하지만 이틀에 한 번 정도로 10Km정도의 달리기를 겨우 한 달정도 했을 뿐이다. 다만 이 훈련과정에서 야외에서 달리기보다 트레드밀을 이용해 시속 12Km(5분/Km 페이스)의 지속주를 꾸준히 했다. 트레드밀을 통한 일정한 속도의 지속주, 내 실력보다 좀 빠른 페이스의 계속된 연습이 구간별로 고른 스피드를 유지시켜준 것 같다. 몇 차례의 강마 야달에서 권팀장과 탄천을 빡세게 달린 것도 ...... 결국 스피드훈련은 짧지만 강하게 인가?

 

 추석무렵 광교-청계산 산악달리기(22Km)와 9월 말의 강화도 32Km LSD로는 장거리 훈련이 충분하지 않았으리라. 이를 포함해 매월 20Km가 넘는 백두대간 종주산행이 지구력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되었으리라 본다. 특히 춘마를 1주일 앞두고 죽령에서 소백산을 넘어 고치령으로 이어지는 24Km의 환상같았던 육산(肉山)의 크로스컨츄리가 스피드를 잃지않고 끝까지 달릴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니었나 싶다.

 

 (3) 풀리지 않는 의문 - 엉뚱한 생각

 

 13번째 완주를 하며 아직까지 한 번도 주로에서 걸어본 적이 없다. 주로에 나서면 빠르던 느리던 달렸다. 무슨 일이 있어도 걷지 않았다. 걷기대회에서 달리면 반칙이듯이, 달리기대회에서 걸으면 반칙이라는 생각이 있었을거다. 원칙대로, 정도대로 살고픈 마음이리라.

 

또한, 스스로 배번을 신청하고 하프든, 풀코스든 출사표를 던지면 반드시 Finish Line을 밟고 완주했다. 중도에 포기한 일이 없다. 이는 한 번 마음을 먹으면 반드시 이루어내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탓인지 모른다. 아마 스스로에 대한 약속을 지키려는 의지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4시간에 천천히 달려 완주한 사람과, 죽기 살기로 달리다가 3시간만에 퍼져버린 사람중 누가 진정으로 성공하고, 누가 실패한 사람일까? 천천히 달려, 아니면 걸어서라도 완주를 한 사람은 자신에게 최선을 다한 것일까? 과연 그 사람이 성공한 달림이일까?  심장이 터지도록 달리고 퍼지도록 뛰다가 차라리 회수차를 탄 사람이 오히려 자신에게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닐까?

 

 달리기하다가 퍼지고 싶고, 달리기하다가 회수차를 한 번 타보고 싶다는 마음이 자꾸 드는 것은 잠시 술기운에서 떠오른 일시적 생각이일까? 어떤 달리기가 참 달리기일까? 다음에 출발선에 설 그날이 기다려진다. 정말 초반부터 죽기살기로 달리다가 한 번 퍼져봐? 그러면 마음은 새보다 더 자유로워질까?

 

                                           

                                     ♬ 새보다 자유로워라 / 유익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