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따라 길따라/* 백두대간

(24)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

月波 2005. 9. 11. 21:29
 

[백두대간 24차 종주기] :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

 

 

1. 산행개요

(1) 산행일시 : 2005년 9월 10일(토)-11일(일)  무박2일
(2) 산행구간 : 하늘재-포암산-부리기재-대미산-차갓재

(3) 산행거리 : 도상 18.5Km, 실측 19.02km(포항 셀파)
(4) 산행시간 : 8시간 23분

(5) 참가대원 : 권오언,김가연,김길원,김성호,남시탁,박희용,손영자,송영기,이성원,정제용,지용,홍명기

 

 

2. 산행후기

 

    : 이번 산행은 당초 하늘재에서 저수재까지 34Km의 산행을 계획했으나 예상하지 못했던 사정으로 하늘재에서 작은 차갓재까지 19Km의 대간종주로 산행을 마감했습니다.

 

    : 하지만, 이번 산행은 참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 번 산행으로 지리산에서 진부령까지 백두대간 남한구간의 절반을 걸었습니다. 이제 후반전인 셈입니다.

 

    : 산행기는 대간종주중에 머리속을 지배했던 여러가지 생각중에서 몇 개의 주제를 골라 쓰고자 합니다. 

 

 

(1) 첫번째 꼭지 : 들국화(1)

 

나에게 있어 가을은 들국화와 함께 시작합니다. [들국화]라 .......  [들국화]라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일까요? 산야에 피어있는 청초한 꽃모습인가요? 달리 떠오르는 것은 없나요? 혹시 사자머리 모습을 한 전인권을 기억하는지 ....... 이 땅의 40대가 그를 모르면 간첩이지요. 아니 간첩도 분수가 있지. 그를 모르고서야 간첩노릇이나 제대로 했을까요?

그가 최성원, 조덕환, 그리고 지금은 고인이 된 허성욱과 함께 그룹 [들국화]를 결성해 첫 앨범을 낸 것도 가을의 어느날이었지요. 1985년 9월 ........ 신중현을 이어갈 Rock의 지존(?)들이었지요. (최근 자살한 모 여배우와의 스캔들 진위는 잠시 접어두고 ...... )

 

그 앨범 [행진]이 30만장 넘게 팔렸으니, 당시로서는 센세이셔널한 일이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이런 음악들이었지요. 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 사랑일 뿐이야, 매일 그대와, 오후만 있던 일요일 .....  들국화와 함께, 그들의 음악에 빠져 가을날을 보내던 젊은 날이 이제는 아련한 추억의 한 자락으로 가슴에 자리합니다. 굳이 그들의 음악이 아니더라도, 가을날 길가의 들꽃만 보아도 그 시절이 더욱 진한 여운으로 되살아납니다. 

  

그래서 9월의 백두대간 산행은 산야에 흐드러지게 피어있을 들국화를 보러갑니다. 아니, 전인권을 만나러 갑니다. 그가 심어준 지난 세월의 Rock 향기를 맡으러 산으로 갑니다. 그 산에서 들꽃을 만나면 80년대 중후반의 젊음이 되살아나리라는 환상에 젖어서 ........

 

비록 어쩔수없는 이 땅의 보수골통 475이지만 이 땅의 386처럼 살고싶은 마음인지 모릅니다. [매일 그대와]를 콧노래처럼 흥얼거리면서, [들국화]를 보러 토요일 심야에 하늘재행 버스에 오릅니다.

 

          매일 그대와 아침 햇살 받으며
          매일 그대와 눈을 뜨고파
          매일 그대와 잠이 들고파
          매일 그대와 얘기 하고파

 

들국화 1집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1위 선정)

   들국화 1집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1위 선정)

         1985.9.10 동아기획

            LP/TAPE/CD

1 행진 <전인권 작사,작곡>
2 그것만이 내세상 <최성원 작사,작곡>
3 세계로 가는 기차 <조덕환 작사,작곡>
4 더 이상 내게 <최성원 작사,작곡>
5 축복합니다 <조덕환 작사,작곡>
6 사랑일뿐이야 <최성원 작사,작곡>
7 매일그대와 <최성원 작사,작곡>
8 오후만 있던 일요일 <이병우 작사,작곡>
9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조덕환 작사,작곡>
0 우리의 소원
 

Acoustic Guitar - 전인권, 최성원, 조덕환 Guitar - 조덕환, 최구희 Piano - 허성욱
Synthersizers - 허성욱, 최성원 Bass - 최성원 Drums - 주찬권 Glarinet - 이원재
Recording Engineer - 최세영 녹음 - 서울스튜디오 제작 - 김영 Cover Design - 이재락

 

 

(2) 두번째 꼭지 : 하늘재

 

산을 오르기 전, 하늘재를 찾아가는 길에서부터 알바를 한다. 오늘 산행은 이 알바로 액땜해야지하는 마음이다. 하늘재 찾아가는 길에는 사과서리 유혹이 나도록 사과가 빨갛게 익어 있다. 한가위를 1주일 앞둔 상현달이 서산에 떨어져버리고 없는 한밤중에, 15인승 작은차에 실었던 몸을 가까스로 하늘재에 내려놓는다. 밤 12시를 넘겼으니 9월 11일이다. 여명을 기다리기에는 너무나 긴 시간이 남았고, 오늘 갈 길 또한 산악 34Km이니 어두운 밤을 밝혀 갈길을 재촉해야한다. 하늘재의 하늘에는 별빛이 은하수가 되어  쏟아져 내리고 있다.

 

하늘재, 하늘과 맞닿은 고개라는 뜻인데 해발 525m에 불과하니 그리 높은 고개는 아니다. 해거름에 찾았던 지난 23차 산행의 날머리,  오늘은 24차 산행의 들머리로 심야의 하늘재를 찾는다. 엊그제 내린 비로 하늘이 맑아졌을까?  총총한 별빛이 금방이라도 하늘재를 덮을 것같다. 하늘재 산장은 산장지기의 잠결에 파묻혀있고, 지난 23차 날머리에서 보았던 조롱박, 해바라기, 노란 마타리도 어둠속에 몸을 숨기고 있다. 아득한 옛날 삼국이 각축하며 흘린 피의 영혼들도 세월속에 잊혀져 있고, 아래 마을의 미륵리와 관음리도 미래와 현세 사이에서 잠들어 있다.

 

       

                 새벽2시가 지난 시각, 하늘재 산장을 출발하려 한 자리에 모였다


" 영원한 제국은 없다 ! "  " 영원한 1등도 없다 ! " 

망하지 않는 제국, 허물어지지 않는 강자는 없다는 말이지. 삶의 현장에서 강자와의 싸움에 힘들어하는 후배, 동료들에게 자주 들려주는 말이다. 인류역사상 망하지 않은 나라가 있었던가? 영원한 1등기업이 있었던가? 혹시 가장 오랫동안 존속했던 왕조가 어느 나라인지 아시나요?  로마제국일까요? 중국역사에 그런 나라가 있었을까요? 모두 아닙니다. 가장 오랫동안 존속했던 나라는 바로 신라입니다. 하늘재, 천년동안 찬란하게 꽃피웠던 신라의 불교도 이 고개를 통해 전수되었으리라. 그런데, 신라도 영원하지 못하고 역사속으로 사라져 흙속에 묻혀있다.

 

그 역사 속에 하늘재에는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의 한이 숨어있다. 마의태자는 덕주공주와 함께 고려에 패망한 신라의 비운을 속으로 삼키며 여기 하늘재를 넘었으리라. 마의태자는 하늘재 아래 미륵사에 머무르고, 덕주공주는 월악산의 덕주사에 머무르며 아픔을 달랬으리라. 미륵사의 미륵불과 월악산 덕주사의 마애불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상이라니 떨어져 살아야 했던 신라의 마지막 태자와 공주의 넋을 위로하기 위함일까?

 

 

(3) 세번째 꼭지 : 포암산

 

새벽 2시를 조금 넘긴 시각, 야참을 끓여먹고 어둠속에 포암산을 향해 마루금을 밟는다. 시작부터 된비알과 너덜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 비오듯 쏟아지는 땀과의 싸움은 사람을 쉽게 지치게 한다. 낮에 이 길을 오르면 정말 멋있는 암봉에 어우러진 소나무들을 볼 수 있을텐데........ 그나마 지난 산행의 말미에 포함산을 원경이나마 찍어둔 것이 아쉬움을 덜어준다. 누군가 어둠속의 암봉을 오르는데 화생방 경보를 내린다. 심야의 대피소동이 일어난다.

 

포암산(布岩山), 순우리말로 하면 베바우산이다. 희게 우뚝 선 산이 마치 껍질을 벗겨 놓은 삼베대, 즉 지릅처럼 보인다 해서 지릅산 또는 마골산(麻骨山)이라고도 한다. 마골(麻骨), 삼베나무 뼈다귀란 말인가? 어린 시절 시골에서 삼나무 껍질을 벗기던 기억이 새롭다. 돌이켜 보면 그 때 그 삼나무 잎이 모두 대마초(大麻草)인데.......


대낮에 포암산을 오른 이들이 한결같이 포암산 오르는 길의 풍광에 찬탄을 금치 못했는데..... 바위와 노송이 어우러진 한 폭의 동양화에 매료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정상에서는 월악산의 영봉과 주흘산의 위용이  눈앞에 다가올테고 ......  그러나, 이 어둠을 어찌하랴? 이 어둠을 ......

그나마 바위틈에 간간이 피어 있는 들꽃이 생기를 불어넣어준다.

 

 

         

                      포암산 오르는  길의 바위 위에 자라는 소나무(낮에 찍은 사진)

 

 

(4) 네번째 꼭지 : 일출

 

포암산에서 1000m가 넘는 수없는 연봉들을 어둠속에 걷습니다. 어두운 밤길이라 위험해보이지만 한 곳에 몰입할 수있어 좋습니다. 한 생각에 집중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절절이 느끼며 살아가는 요즈음입니다. 산능선 구비구비 여명이 찾아듭니다.

 

부리미기재에서 대미산 오르는 길은 온통 갈참나무 숲입니다. 갈참나무라? 나중에 참나무 얘기는 다시 꺼낼 일이 있을것 같네요. 대미산에서 맞이하는  일출을 기대했지만 당초 예상보다 출발이 늦어 산상에서 맞이하는 일출을 놓친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비온 후의 맑은 하늘이라 기대가 컸었는데, 한 겨울의 일출은 더욱 선명하리라는 생각으로 아쉬움을 달랩니다.  

 

        

                                     1062봉 나무숲 너머로 아침햇살이 떠오른다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파고드는 시각, 1062봉에 오릅니다. 당초 일출을 맞으려던 대미산은 지척에 있는데 실제 걸어야하는 시간은 1시간이 더 걸립니다. 대미산에 오릅니다. 제철을 만난 억새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줍니다. 멀리 주흘산이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한동안 후미를 기다리며 정상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검은 눈썹의 산, 크게 아름다운 산, 문경의 어미 산 ....... 갖가지의 수식어를 가진 대미산입니다. 산 정상에는 억새가 한창 제 모습을 뽐내고 있습니다. 그제서야 디카를 꺼내듭니다. 일출을 놓쳤지만 억새풀 너머로 보이는 주흘산의 모습이 선명합니다. 후미를 기다리며 한동안 정상에 머무릅니다. 일출에 대한 아쉬움을 억새와 굽굽이 펼쳐진 산군에 피어오르는 아침 안개를 조망하면서 .....

 

          

                           대미산 정상에는 억새가 한창이다. 멀리 주흘산이 보인다

 

대미산 정상아래 숲속에서 대간돌이들이 모여 아침을 먹습니다. 모두들 가져온 도시락이 진수성찬입니다. 24차례의 백두대간길에서 가장 풍성한 아침상을 차린 것같아 보입니다. 생기를 찾아 갈길을 재촉합니다. 장시간의 야간산행으로 당초 예상시간보다 이미 상당히 늦어지고 있음을 이심전심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눈물샘, 대미산 정상을 조금 지나 마루금에서 심마니골 쪽으로 70m 아래에 반가운 샘터가 있다. 이름하여 검은 눈썹의 산이 만든 눈물샘이다. 이 샘에서 식수보충을 않고 직행한 것이 오늘 산행의 큰 아쉬움을 남기는 계기가 될줄이야........ 그 때는 몰랐었지요.  

 

                    70m왕복을 소홀히 하다가, 눈물샘이 정말 눈물을 안겨주었으니 .......

 

 

 

(5) 다섯번째 꼭지 : 들국화(2)

 

이제 들국화 얘기를 다시 꺼내볼까요? 그룹 [들국화] 말고요. 가을 산야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들꽃, 들국화 이야기 말입니다. 오늘 대간 길에서 바위틈에 피어있는 들국화가 유난히 눈에 뜁니다. 들국화, 우선 꽃 이름부터 시작하지요. 식물도감을 찾아보아도  들국화라는 이름의 꽃이 없습니다. 허허, 들국화는 없다? 참 황당한 일이지요. 아니, 들국화란 꽃이 식물도감에 없다니? 이게 말이나 됩니까? 곰곰 생각해보니 곰이 몇마리일까? 당근 세마리. 어릴 때 많이 들었죠? 그렇다면, 참나무 이야기는 기억나는지요?

 

작년 10월초 백두대간 13차(소사고개-부항령-삼도봉) 산행기를 쓰면서 참나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지요. 참나무 또한 식물도감에는 그 이름이 없습니다. 참나무가 하나의 식물종(種)이 아니라 신갈, 구갈, 떡갈, 굴참, 갈참, 졸참, 상수리 나무등을 총칭하듯이, 들국화도 구절초, 쑥부쟁이, 벌개미취, 금불초, 산솜방망이, 개미취, 감국 등을 통틀어 부르는 말인 것이지요.

 

잡념을 버리고 산길을 걷습니다. 산길에는 바위틈에 구절초가 심심치 않게 보입니다. 기대이상으로 자주 만나니 마음이 넉넉해집니다.  바위틈에 핀 산구절초 한 포기라도 만났으면 하는소박한 소망이 이루어지니 그저 행복합니다. 이 녀석은 바위비탈에 피어있는 자태가 고고하기가 이를데 없고, 효능 또한 다양하답니다. 5월 단오에 다섯마디, 9월이면 아홉마디로 자라 꽃대에 하얀색 꽃이 하나만 피지요. 그 흰 꽃잎이 신선보다 더 돋보인다했던가? 그래서 선모초(仙母草)라고도 불리지요.

 

꽃은  술을 담그거나, 말려서 베개 속에 넣으면 두통이나 탈모에 효과가 있고, 머리칼이 희게 되는 것을 방지한다니, 진작 이 녀석을 약으로 써 볼걸, 후회가 막급이다. 내 머리카락 빠질만큼 빠졌으니, 이 일을 어찌한다? 또 어린 싹은 나물로 무쳐 먹고, 잎은 떡을 찔 때 넣으면 향기를 내 준다니, 어린시절 할머님이 손수 만들어 주시던 그 향긋한 국화떡의 비법을 이제사 알것같다.

 

얼핏보면 쑥부쟁이, 벌개미취와 비슷해보이지만 사실 판이한 특징이 있다. 구절초는 대개 하얀색 꽃이 한 줄기에 하나씩 피지만, 쑥부쟁이나 벌개미취는 보라빛 꽃이 여러개 핀다. 벌개미취의 잎이 쑥부쟁이보다 갸름하고 긴 반면, 쑥부쟁이는 다소 잎이 넓고 잎에 솜털이 있어 까실까실한 것도 있다(까실 쑥부쟁이).

                                       산구절초(사진: 들꽃세상의 저녁노을)

 

 

(6) 여섯번째 꼭지 : 참나무

 

오늘 걷는 길에도 유난히 참나무가 많습니다. 대미산 주변에는 잘 생긴 갈참나무가 시야를 가릴정도로 무성합니다. 작년 10월 억새가 만발한 초점산, 대덕산을 넘고 부항령을 거쳐 삼도봉 가는 숲길에서 만났던 참나무 이야기를 다시 꺼내봅니다. 강원도 산골마을 뒷산의 졸참나무 얘기는 언제든지 곱씹어볼만 합니다. 졸참나무의 삶을 생각하며 산길을 달리다시피 걷습니다.  

 

삼도봉 가는 숲에는 온통 참나무 밭이다. 오늘 산길에는 유난히 참나무가 많다. 참나무중에는 봄에 새잎이 가장 먼저 나오는 신갈나무, 잎이 참외모습을 닮은 떡갈나무도 보이고, 어릴 때 도토리나무라고 불렀던 상수리 나무는 여기저기 숲속에 널려있다. 떡갈나무와 닮은 갈참나무는 내 짧은 실력으로는 분간하기 어렵다. 간혹 수피(껍질)가 두꺼운 굴참나무도 보인다. 다른 참나무류와 달리 이 굴참나무는 상수리나무와 함께 꽃이 핀 다음 해에 열매가 익는다. 특이한 녀석이다.

 

        

                         햇살이 참나무숲 사이로 스며들며 숲은 그늘을 만든다

참나무 숲길을 걸으며 참나무중 키가 가장 작고, 잎사귀도 가장 작은 졸참나무 얘기를 떠올린다. 나이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새삼스럽게 읽은 동화속의 얘기다. 동화속에 나오는 강원도 정선의 깊은 산속 졸참나무는 참 품성이 넉넉하다. 아랫마을에 흉년이 들면 졸참나무는 스스로 열매를 많이 영근다. 졸참나무의 도토리로 가난한 마을사람들을 배곯지 않게 할려고......

그래서 졸참나무는 부처님 나무라고도 불린다. 졸참나무는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보듬는 삶의 귀중함을 깨우쳐 준다. 삼도봉을 향해 걷는 이 참나무 숲길이 비록 힘들고 지치지만, 마음 한편에는 나보다 약한 자를 위해 마음을 베풀 수 있는 덕을 쌓게한다.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 작년 내가 썼던 백두대간 13차(2004. 10. 3) 산행기 "억새평원에서 행복했노라" 중 [졸참나무에서 삶을 배운다]의 일부를 다시 옮겨적었습니다

 

 

(7) 일곱번째 꼭지 : 들국화(3)

 

다시 들국화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지난 토요일 새벽에는 양재천을 출발해 청계산 일원(옥녀봉,매봉,석기봉,이수봉,옛골)을 거쳐 다시 양재천으로 되돌아오는 20Km의 크로스컨츄리를 했었지요. 이번의 백두대간길이 34Km나 되니 사전훈련을 한다는 명분이었지요. 옛골에서 양재천으로 되돌아오는 길, 원지동 마을 주변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들국화, 쑥부쟁이를 만났습니다.

 

보라빛 향기를 머금고 가을햇살에 속살을 팔랑이는 꽃잎이 애잔함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쑥부쟁이의 슬픈 전설이 생각나더군요. 쑥부쟁이는 쑥을 캐러 다니는 불쟁이네 딸이란 뜻이랍니다. 불쟁이는 대장장이를 말하는 것이겠지요? 쑥부쟁이는 불쟁이네 딸이 가을에야 돌아오는 사냥꾼을 기다리는 슬픈 전설이 깃들어 있는 꽃이랍니다. 그래서 쑥부쟁이는 가을에 애처로운 모습으로 피어난답니다. 정일근님의 시 [쑥부쟁이 사랑]에 그 사연이 잘 함축되어 담겨있지요.

이름 몰랐을 때 보이지도 않던 쑥부쟁이 꽃이
발길 옮길 때마다 눈 속으로 찾아와 인사를 한다
이름 알면 보이고 이름 부르다 보면 사랑하느니
사랑하는 눈길 감추지 않고 바라보면,

모든 꽃송이 꽃잎 낱낱이 셀 수 있을 것처럼 뜨겁게 선명해진다
어디에 꼭꼭 숨어 피어 있어도 너를 찾아가지 못하랴
사랑하면 보인다. 숨어 있어도 보인다


또 다른 들국화, 우리나라 특산 벌개미취가 눈앞에 아롱거리지만, 아무래도 벌개미취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어야 할 것 같네요. 아껴두기로 하지요.

 

 

(8) 여덟번째 꼭지 : 풀잎

 

밤새 걸은 산길에 아침이 찾아 오면서 이슬 머금은 풀잎들을 만납니다. 풀섶을 밟으니 초롱초롱하던 이슬방울들이 떨어져 발목을 적십니다.  풀잎이 내 발검음에 다치지 않았나 걱정이 앞섭니다. 풀잎을 좋아하기에, 꽃잎을 사랑하기에 그 느낌이 남다른지 모릅니다.

 

정호승 시인을 생각합니다.  풀잎에도 상처가 있고, 꽃잎에도 상처가 있다고 했지요?  들길을 걸으면 상처 많은 풀잎들이 손을 흔든댔지요? 상처 많은 꽃잎들이 오히려 향기롭다고도 했습니다. 어찌 풀잎과 꽃잎 뿐이겠습니까?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풀섶처럼 상처 투성이인 채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삶이 아닐까요? 그러나 상처 많은 꽃잎이 더 향기로운 것처럼, 상처받은 영혼이 더 그윽한 삶의 향기를 풍기리라 봅니다.

 

아침햇살에 사그라져가는 풀섶의 이슬방울을 안타까이 바라보면서 갈길을 재촉합니다. 풀섶을 지나고, 울창한 숲을 지나면 깍아지른듯한 벼랑, 험준한 바위 봉우리가 나타납니다. 오늘 걷는 대간길이 이러합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 인생은 어떤가요? 마참가지겠지요? 험한 바위능선을 타기 전에 나무 숲에서, 숲속의 그늘에서 잠시 쉬었다 가기로 하지요.

 

          

                      엉겅퀴가 활짝핀 숲길의 풀섶을 밟으며 이슬을 적신다

 

(9) 아홉번째 꼭지 : 그늘

 

땀흘리며 마루금을 걷다가 잠시 숲속의 나무그늘에서 숨을 돌립니다. 낙엽송이 군락을 이루며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습니다. 낙엽송은 통상의 침엽수와 달리 단풍이 들어 잎이 떨어지는 침엽수입니다. 낙엽송 사이로 가을햇살이 눈부십니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싱그럽습니다. 앉아서 쉬기에 딱(?)입니다. 작열했던 여름의 태양이 엊그제였는데 제법 맑고 따스한 햇살이 솔솔바람에 실려옵니다. 그늘이 있기에 가을햇살은 더욱 눈부시게 빛나는듯 합니다. 그늘이 없으면 햇살도 빛이 바래겠지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는 정호승님의 시가 생각납니다. 그늘이 있어 햇빛이 더욱 눈부신 것처럼, 사랑도 눈물이 있어야  더욱 빛난다는 그의 시가 가슴을 파고듭니다. 그 시를 노랫말로 만든 노래하는 시인 유종화님이 그립습니다. 콧노래를 부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어쩔수 없는 음치이기는 하지만 콧노래마져 포기하고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낙엽송이 군락을 이룬 숲에서 한참을 쉰다.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보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지금 흐르고 있는 배경음악 함께 따라해보실래요? 유종화시인이 작곡가가 되어 노래로 듣는 시를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이 많지만...... 너에게 가네(안도현 시), 새벽 네시(한보리 시), 보리밭(안상학 시) 등 ........ 오늘따라  정호승님의 시에 유종화님이 곡을 붙인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절절합니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보면 세상은,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아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아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사랑도 눈물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정호승 시/유종화 작곡/김현성 편곡/김원중 노래

 

 

 

(10) 열번째 꼭지 : 중간지점


대미산 지나 차갓재 가는 길목에서 백두대간 중간지점이라는 표지판을 만납니다. 포항셀파 실측기준으로 지리산에서 진부령까지 백두대간 남한구간의 중간지점이라는 의미인듯합니다. 3년여의 일정으로 구간종주를 하고 있으니 이제 하프라인을 통과한 셈입니다.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그러나, 진부령에 도착하는 날 통일의 길이 열려있지않더라도, 혹시 북쪽으로 가는 백두대간길 정도는 열려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 중간표지판은 별다른 의미가 없습니다. 또 다른 시작에 불과한 셈이지요. 지리산에서 백두산까지, 마루금을 따라 내생에 반드시 그 길을 걷고 싶습니다.

 

차갓재에도 백두대간 남한구간 중간이라는 표지석과 함께 장승이 버티고 있습니다. 잠시 쉬면서 신발끈을 졸라맵니다. 늘 그러했듯이 신발끈을 매는 것은 산에 마음과 몸을 붙인다는 다짐입니다. 마루금을 따라 즐겁게, 끝까지, 뛰어간다는 의미이지요.

 

            

                             981봉에서 차갓재 가는 길에서 만난 백두대간 중간지점 팻말

 

작은 차갓재, 많은 기대를 안고 도착한 고개입니다. 고개 양쪽으로 식수를 구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달려왔는데, 어디에서도 식수를 구하지 못하고 하산을 결정합니다. 아쉬움이 남지만, 밤새도록 걸어 지쳐있는 대원들이, 식수없이 황장산을 넘어 벌재까지 서너시간을 걷는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라는 판단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돌아와 생각해도 잘한 결정이었던 것같습니다. 오늘이 아니라도 황장산을 넘어 벌재, 저수재로 가는 길은 열려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생달마을로 내려와 산중 깊숙히 자리한 백두대간 마을의 정취를 즐기며 원두막에서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대간길만 걸었다면 언제 그런 모습을 접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깜짝쇼처럼 벌였던 그 일(?), 아시는 분은 다 아시죠? 비밀의 방에 오래도록 보관해야겠죠?

            

            

                차갓재의 장승앞에서, 설마 작은 차갓재에서 하산하리라 생각치 않았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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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22 :15 대치동 출발

 02 :12 하늘재 출발

 03 :03 포암산

 04 :12 만수봉 갈림길

 07 :00 부리기재(20분 휴식)

 07 :55 대미산(45분 휴식, 아침)

 10 :04 백두대간 남한구간 중간지점

 10 :35 차갓재(25분 휴식)

 11 :15 작은 차갓재(25분 휴식)

 12 :00 생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