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따라 길따라/* 백두대간

(23) 새재를 넘어, 하늘,하늘 ....

月波 2005. 8. 22. 23:34
 

[백두대간 23차 종주기] : 새재를 넘어 하늘, 하늘 .......

 

1. 산행개요

(1) 산행일시 : 2005년 8월 21일(일) 당일산행
(2) 산행구간 : 이화령-조령산-신선암봉-조령(새재)-마폐봉-부봉-평천재-탄항산-하늘재

(3) 산행거리 : 도상 16.6Km, 실측 18.36km(포항 셀파)
(4) 산행시간 : 9시간 10분(중간그룹 기준)

(5) 참가대원 : 강마클의 21명 대간돌이들

 

2. 산행후기

(1) 이화령, 새재, 하늘재, 이름만 다를 뿐

 

아침 6시를 앞둔 이른 시각, 개포동역에는 대간돌이들이 하나 둘 모인다. 그런데, 6시가 되어도 나타나야 될 사람이 안보인다. 출발지를 제대로 몰라 엉뚱한 곳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버스기사, 새벽잠에 푹 빠져 늦잠자다 달려나온 권팀장, 이 두사람은 서로가 약속이라도 한듯 당초 출발시간에 30분이나 늦게 동시에 나타난다. 서둘러 이화령으로 향해 시동을 건다.

 

이화령, 오늘 대간산행의 출발지이다. 새재(조령)를 거쳐 하늘재까지 대간 마루금을 걷는다. 이 세 고개는 시간을 바꿔가며 같은 역할을 해 온 곳이다. 이른바 영남에서 서울로 향하는 고개마루역을 번갈아가며 해왔다. 하늘재가 신라시대에, 새재가 조선시대에 열린 길이라면 이화령은 근세에 생긴 소위 신작로(新作路)다.  그러나 이제 이화령도 그 자리를 새로 뚫린 터널에 내주고 말았다.

 

3번 국도의 이 터널마져도 최근에 인근을 통과하는 중부내륙 고속도로에 통행량을 내주고 말았으니, 이화령도 하늘재나 새재처럼 등산객이나 찾게될 한적한 고개로 남을 날이 멀지 않아 보인다. 상시 통행차량이 넘지 않는 고개가 되어버린 이화령 정상에서 잘 뻗은 3번 국도와 중부 내륙고속도로를 쳐다보며, 누군가 "두산은 망했구먼!" 한다. 무슨 의미인지 아는 사람은 알지요? 

 

이화령에서 기념사진 한 컷하고 출발하는데 남대장의 아픔이 전해져 온다. 후미를 윤총무에게 맡기고 조령산을 향한다.

 

 

이화령 표지석 앞에서 출발을 앞두고, 역광으로 잡은 디카가 별로다

더구나 내 얼굴이 없다(내가 찍사였으니)

 

 

(2) 조령산을 오르며

 

고개마루에서 산 정상으로 향하는 첫 걸음은 언제나 가볍다. 그러나 이내 된비알을 만나 가쁜 숨을 몰아쉬고, 이마에서 배어난 땀이 목덜미를 거쳐 온 몸을 적실 때쯤이면 누구나 말소리가 적어진다. 이 때쯤이면 누구나 묵묵히 산길을 오르며 스스로를 자연의 섭리대로 맡기는 훈련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조령샘은 참 알맞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대간길에서 한 걸음 비켜서서 조금한 마음의 대간돌이들에게는 여유를  갖게하고, 된비알을 쉬지않고 올라온 목마른 산객에게는 정상을 앞두고 사시사철 감로수로 목을 축이게 한다.  물맛 또한 대간 길의 어느 샘에 못지 않으니 이를 두고 금상첨화라 하겠지?

 

조령샘물에서  목을 축이는 길손이여, 사랑 하나 풀어던진 샘물에는 바램으로 일렁이는 그대 넋두리가 한 가닥 그리움으로 솟아나고 ........ 한 모금의 샘물에서 우리를 구원함이 산이요, 여유로운 벗이 산임을 인식하게 하소서.

 

다시 산길을 오른다. 길가에 노란색 꽃잎을 늘어뜨린 야생화가 눈에 띈다. 그대 이름은? 나리 나리 말나리, 하늘 말나리 ...... 아니야, 아니야 ! 그대는 [원추리]니라. 부모를 여읜 형제중 형은 슬픔을 잊으려 원추리를 심고, 동생은 부모님을 잊지 않으려 난초를 심었다는 전설이 있는 망우초(忘憂草)가 원추리란 여름꽃이다. 작년 7월 말, 지리산 노고단 주변에 환상적으로 핀 원추리 군락에 넋을 잃고 시간가는 줄 몰랐던 기억이 엊그제인듯한데....... 조령산 정상이다.

 

조령산에서 바라보는 조망, 부봉의 위용도 신선암봉의 깍아지른듯한 절벽도 한눈에 들어온다. 스쳐가는 안개비 구름이 화강암봉을 덮었다, 풀었다, 감쌌다, 걷었다하면서 조화를 부리고 있다.

신선암봉을 지나 오른쪽으로 멀리 우뚝 솟은 부봉을 중심으로 펼쳐진 산군은 마치 화강석의 퍼레이드 같다. 지나온 희양산과 더불어 화강암괴가 땅에서 솟아있는 듯하다.

 

조령산 산신령이시여, 우리 모두 늘 이렇게 밝은 얼굴로 살게 하여주시옵소서 !

김치,치즈,LG ! 영제,영기,영자 !

 

 

(3) 천인단애, 신선암봉을 오르며

 

신선암봉, 그 이름만으로도 충분하다. 험준한 암봉이 앞을 가로막으며 화강암의 흰빛과 강인함을 유감없이 느끼게 한다. 이를 두고 장쾌하다고 해야할지,  근골을 드러낸 화강암의 본모습을 본다고 해야할지?  앞을 막아선 암릉에서 멈칫거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저기 천길아래 낭떠러지다. 곳곳에서 만나는 바위벼랑이 오금을 저리게 한다. 

 

그래도 암봉을 오르는 스릴은 로프를 잡아본 사람만이 안다. 강태공만이 릴낚시의 짜릿한 손끝을 느낄 수 있듯이..... 바위틈을 기어 오르고, 건너 뛰고, 유격훈련이다.  유격...... 따라 나서려는 아내를 만류하길 잘 한것일까? 암릉타기의 묘미를 절호의 기회를 놓친걸까? 아내와 함께 왔으면.....

 

 

 

로프를 잡고 오르내리는 암릉에서 한 순간 줄을 놓치면 어떻게 될까? 정산은 이렇게 말한다.

" 역시 인생은 줄을 잘 잡아야 하는거야. 줄을 잘 서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지."

" 그 줄 놓치거나 썩은 줄 잡으면 망하는 거야."

" 그래서 인생은 줄잡기 나름이야"

이러고는 씨익 웃는다. 그래, 농담 한 번 잘 한다.  산에서 잡는 줄과 인생의 줄은 그래서 동격인가? 글쎄다.  그러나 저러나 정산, 자네도 나도 이 줄 놓치면 저 아래 용소계곡 신세를 지는거야. 정신차려 암봉의 로프에 매달리자구 !

 

 

신선암봉에 올라 아래를 굽어본다. 암봉 주변에는 오래된 소나무들이 온 몸으로  풍상을 견디며 버텨온 모습을 하고 있다. 암반에서 발 하나 삐꺽하면 천인단애의 벼랑아래라 생각하니 현기증이 인다. 그래도 자꾸 산에 빠져들고 암봉에 매료되는 자신을 가눌 길없다. 주위를 둘러 본다. 조령 1,2관문이 있는 문경 용소골쪽에는 왕건 촬영지로 보이는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신선암 반석위에 앉아 상념에 젖는다. 그 옛날 저 아래 새재를 넘어 영남에서 한양땅을 오고간 우리 님들의 애환이 환등기처럼 펼쳐진다. 그 한편에는 신선암봉을 병풍삼아 계곡에 발담그고 동동주 한잔에 신선놀음을 즐기는 모습도 그려진다. 이렇듯 점점 산에 빠져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산에 빠져, 산에 갇혀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성부 시인은 그거야말로 "좋은 일이야"라고 읊으며 대간길을 걸었지 싶다.

 

 [좋은 일이야]

산에 빠져서 외롭게 된
그대를 보면
마치 그물에 갇힌 한마리 고기 같애

스스로 몸을 던져 자유를 움켜지고
스스로 몸을 던져 자유의 그물에 갇힌
그대 외로운 발버둥
아름답게 빛나는 노래
나에게도 아주 잘 보이지

산에 갇히는 것 좋은 일이야
사랑하는 사람에 빠져서
갇히는 것은 더더욱 좋은 일이야
평등의 넉넉한 들판이거나
고즈넉한 산비탈 저 위에서
나를 꼼꼼히 돌아보는 일 좋은 일이야
갇혀서 외로운 것 좋은 일이야

 

 

 

 

신선암봉, 그 천인단애의 벼랑에서

 

조령산을 지나 신선암봉을 오른다. 이름 그대로 천인단애의 바위벼랑 위에 한 목숨 붙여 용케도 목숨을 지키고 있는 소나무에 진한 애정이 간다. 사람이 저렇더라면 묻어나는 삶의 향기가 어떠할까?

 

 

 

(4) 치마바위와 깃대봉을 거쳐

 

신선암봉을 지나도 산뿌리채 암반인 화강암괴는 지속이다. 한성지기 계곡 안부에서 시작되는 깃대봉 가는 능선에는 왼쪽으로 치마바위가 산을 뒤덮고 있고, 멀리 오른쪽 앞으로는 부봉이 우뚝 솟아 그 위용을 한껏 뽐내고 있다. 부봉은 조령산 정상에서부터 시작해 신선암봉, 깃대봉을 거치고 주흘산 갈림길에 가도록 오늘 산행내내 그 웅장함을 자랑할 것이다.

 

깃대봉 오르는 능선에서 본 치마바위, 가까이서 보면 화강암으로 만든 치마같다

 

 

깃대봉 삼거리 가는 길에 치마바위의 넓은 자락에 파묻혀 넋을 잃는 것은 당연지사다. 화강암의 하얀 속살로 만든 치마폭에 감싸여보지 못하고서야 무슨 치마폭을 논하겠는가? 이래저래 오늘 산행은 암릉이 꾸며주는 근육질의 남성미로 인해 객기를 자꾸 부리게 한다. 하기사 도가 넘지 않으면 적당한 오버가 가끔씩은 생활의 활력소가 되리니......

 

깃대봉을 앞두고 선두조에서 연거푸 무전이 날아든다. 우리가 부봉의 장쾌함에 빠져있는 사이 그들은 벌써 새재에 도착해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 우리도 길을 서둘러야지. 허기도 지고, 새재의 동동주 생각도 나고 하니,  걸음은 절로 크로스컨츄리다. 무릎이야 어떨지 몰라도 내리막 달리기가 시작된 것이다. 천천하, 천천히 .......

 

 

 

깃대봉 오르는 암릉에서 본 부봉, 조령산 그 어느 능선에서도 부봉의 모습을 볼 수 있다

 

 

 

(5) 새재에는 새도, 억새도 없다

 

새재, 험한 암봉을 오르내리느라 흘린 땀만큼이나 편안함을 안겨준다. 하지만 그 이름이 주는 느낌보다 훨씬 호사스런 치장을 하고 있다. 얼굴에 곱게 분바른 모습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갑자기 허기가 엄습한다. 3시간 30분간의 암릉산행으로 꽤 지쳐있으니 조령 3관문이 눈에 제대로 들어올리 없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지? 새재의 쉼터로 달려간다. 동동주도, 파전도, 두부김치도 꿀맛이야. 어디 감히 대간길에서 맛볼 수 있는 음식인가? 김에 싸서 먹는 찰밥과 김치는 더할 나위없이 훌륭한 산행식이야. 이번에는 여러 명이 이 산행식을 준비했다. 아마 앞으로 더 늘어 날걸........

 

새재, 이름의 어원도 가지각색이다. 산이 험준해 새들도 날기 어렵다해서, 억새가 많아서, 새로 닦은 길이라 해서 ? 그러나 새재에는 새도 억새도 보이지 않는다. 숱하게 이 고개를 넘나들었을 영혼들의 사연도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옛날의 교통요지는 그 역사를 뒤로한채 관광명소로 탈바꿈하고 있을 뿐이다. 하기야 대간길에 여기만한 관광지가 있는가?

 

조령 3관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잠시 옛 역사를 더듬는다.  문경 새재라? 오늘 산행의 종착지인 하늘재의 영광을 이어받아 조선초부터는 새재가 영남에서 한양을 오가는 소위 영남대로 역할을 했었단다. 영남 선비들이 청운의 푸른 꿈을 안고 한양으로 과거보러 넘던 길인 셈이지.

 

조령3관문앞에 선 대간돌이들, 대간이 아니라 남강변 진주성의 성루같은 느낌이다.

백두대간이 세상속으로 내려왔나?

 

 

임진왜란 때는 고시니 유키나카가 부산포, 대구, 상주를 지나 여기 새재를 넘어 한양으로 갔다고 하니, 저 아래 새재협곡과 충주 탄금대를 놓고 고민한 신립장군의 선택에 가슴이 저밀 뿐이다. 숱한 영혼들의 피흘림이 새재든 탄금대든 있었으련만, 세월속에 모든 것을 묻고 8월의 푸른 녹음만이 새재를 지키고 있다.  

 

3관문 너머의 휴양림과 방갈로, 어느 여름 날의 효반회 부부모임, 김룡사, 대승사를 돌며 느꼈던 성철스님의 흔적들, 빗속에 찾아들었던 그 여승들의 선원 윤필암....... 이런 것들이 내 삶의 궤적에 묻어있는 문경 새재의 기억이다. 이런 기억들을 가슴에 다시 묻고 새재를 떠나 마패봉으로 향해 오르막을 타며 민요가락을 흥을거려 본다. 아! 나는 역시 음치야.

 

문경새재 물박달나무/
홍두깨 방맹이로 다 나간다/
홍두깨 방맹이 팔자 좋아/
큰 애기 손질에 놀아난다/
문경새재 넘어갈제/
구비야 구비야 눈물이 난다

 

문경 새재의 넉넉한 모습, 관광나온 사람들의 쉼터같지 않는가?

 

 

 ***** [새재]의 어원

나는 새조차도 넘기 힘들다 해서 '새재'(鳥嶺)이라 했다던가?
새재(조령,鳥嶺)란 말은 <동국여지승람>에는 초점(草岾)라 기록되어 있으니, 초점(草岾)이란 '풀초'에 '재(고개) 점'으로 '억새같은 풀이 우거진 고개(재)'란 뜻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억새재'란 말이 줄어서 '새재'가 된 것이라 생각되는데, 새재가 조령(鳥嶺)이 된 것은 음이 같다보니 사람들이 '새가 날아 넘기도 어려운 험준한 고개'란 의미로 유추 해석한 것이 굳어진 '민간어원'이 아닌가 한다.

 


 

(6) 부봉을 돌아 탄항산으로

 

마패냐, 마폐냐, 마역이냐? 뭐가 이름이 중요할까마는 정상에는 때깔나게 표지석을 만들어 놓았다. 마패도 마폐도 아니다. 마역봉이라 새겨져 있다. 산을 내려가면 그 사연을 알아 보아야겠다. 마역봉에서 걷는 마루금은 북문, 동문을 거쳐 부봉으로 가는 길이다. 끊임 없이 이어지는 석성(石城)의 잔재들...... 그런데, 이 석성은 북쪽에서 침공하는 적을 막기 위해 쌓은 형태다. 그렇다면 신라가 고구려를 막기위한 산성인가?

북문, 동문을 지나는 길은 제법 빠른 걸음이다. 오늘 산행이 어쩌면 어두워서야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모두 걸음이 빨라진다. 동문에서는 부봉을 거치지 않고 평천재로 바로 가는 길이 있다. 물론 그 길은 대간이 아니다. 그럼에도 누구나 그 길로 가고픈 유혹에 빠질것 같다. 부봉으로 향한다.

오늘 산행내내 부봉을 조망하면서 로프에 의지한채 암봉을 오르내리고 마루금을 밟아왔다. 막상 부봉이 가까워져 오니 오히려 부봉이 낮은 산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부봉으로 가는 길은 제법 된비알이다. 부봉에 오를까? 그기 발아래서는 부봉이 제대로 보일까? 다산 정약용은 겨우 일곱살에 소산폐대산(小山蔽大山 -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의 이치를 한시로 읊었다는데,  나이 오십이되도록  그 이치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산 길을 오래 걸으면 갈 길이 멀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부봉에서 탄항산 가는 길의 암벽을 돌며 로프에 매달린 모습

 

 

부봉에서 30분이나 다시 암벽을 타며 오르막을 올랐을까? 주흘산 갈림길이다. 평천재로 내려서는 길이니 어려운 고비를 거의 넘겼나 보다. 배낭의 남은 간식을 꺼내 먹으며 20여분 쉬었을까? 정산이 그제서야 올라온다. 정산을 후미조와 함께 오라고 남기고 평천재로 향하는 내리막길을 달린다. 탄항산을 지나니 끝이 보인다.

 

다음에 오를 포함산을 쳐다보며 하늘재로 내려서는데, "아 ! 심봤다"  길옆에 보라빛 향기가 가득하다. 왠지 기분이 좋다. 보라빛 꽃이 만개한 도라지 한 뿌리를 캐서 하늘재로 내려서니 서서히 해거름이 지고 있다. 곧 어둠이 찾아오리라. 하늘재 산장에서 후미조를 기다리며 마시는 옥수수로 만든 동동주와 두부맛, 그 하늘재 선녀의 웃음 ........ 미륵사지에서 애타게 기다리는 대장님, 성바기 형 두고 후미 기다린다는 핑계로 우리만 마셔 미안하외다.

 

하늘재 내려서기 직전에 만난 산도라지꽃, 보라빛 향기가 그윽하다

홍형, 그 도라지 혼자만 먹는 것 아니지요?

 

 

(7) 현세와 미래가 공존하는 하늘재

 

하늘재, 신라시대부터 열려있던 길이라지, 아마 가장 오래된 고갯길이지..... 계립령이라 불리웠다고 유허비에는 적혀있고 ...... 다음에 오를 포암산 자락, 하늘재 산장에는 조롱박도 익어가고 하늘향해 웃고있는 해바라기도 여물어 간다. 하늘재 산장의 선녀가 들려주는 하늘재 이야기는 더욱 솔깃하다.

 

하늘재의 북서쪽에는  미륵리 절터가 있고, 남동쪽에는 관음리 절터가 있다. 미륵(彌勒)과 관음(觀音), 불교에서 말하는 미래의 부처(彌勒)와 현세의 부처(觀音)가 아닌가?. 하늘재를 사이에 두고 미륵리와 관음리가 있다. 묘하게도 하늘재 정상에서 관음리쪽 도로는 잘 포장된 현세의 길이고,  미륵리쪽 도로는 전혀 포장이 되지 않은 숲길이니 미래의 길이다. 하늘재를 사이에 두고 미래와 현세가 이렇게 공존하다니.......

 

하늘재 산장에서 여물어가는 조롱박

 

 

하늘재 너른 터에 길손들이 가득하다

옛날에는 등짐지고 넘던 길, 이제 배낭 맨 산꾼들이 모인다

미륵리와 관음리, 미래 불(佛)과 현세 불(佛)이 함께 드러누운 고개,

시간의 경계이면서 모든 경계를 그 속에 깊숙히 파묻어버린 고개다

왼쪽은 옛길이어서 물기 머금은 땅 부드럽고,

오른쪽은 포장도로, 옛길의 사연을 모두 파묻어버렸다

 

하늘재에서 내 고향 진주에서 온 대간꾼들을 만난다. 대간길에서 동향의 산사나이들을 만나니 더욱 반갑다. 그들은 진부령에서 남하하고 있단다. 그들이 가져온 수박 한 입이 이마의 땀을 순식간에 씻어준다. 내 얼굴은 파안대소, 해바라기가 된다. 그들도 내게 노란 해바라기 꽃으로 느껴진다.

 

하늘재에 여물어가는 해바라기, 뒷쪽이 포암산이다

 

(8) 미륵사지로 내려서는 오솔길

 

하늘재에서 미륵사 절터를 향해 오솔길을 걷는다. 이 길을 걷기를 정말 잘했다. 이 길을 포장않길 정말 잘 했다. 현세에서 미지의 세계로 걷는다. 버스가 포장된 관음리로 오지 않고, 숲속의 흙길따라 미륵리로 오길 정말 잘 했다. 다음에 이 길을 아내와 함께 다시 걷고 싶다.

 

게다가 산행 말미에 만나는 야생화가 가슴을 설레게 한다. 하늘재 풀숲에서 만난 마타리 꽃, 키만 껑충하여 여리디 여려 보이는 노란 마타리. 짙푸른 수풀사이에 마타리꽃 자기들끼리 노랗게 피어있다

 

하늘재 풀섶에 핀 노란 마타리 꽃, 바람이 농을 걸듯 속살을 헤쳐도 자태를 뽐내기만 한다

 

 

미륵사지 가까운 길섶에 하얀 꽃들이 덩쿨을 이루고 있다. 마치 흰 눈이라도 소복히 내린 듯, 우유빛 꽃들이 탐스럽게 피어 있다. 사위질빵이라는 이름을 가진 덩쿨꽃이다. 그것도 쉽게 끊어지는 덩쿨이다. 그대는 사위질빵이란 꽃이름의 유래를 아는가?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 말도 있지요. 예전 일부 지방에서는 가을이 되어 곡식을 추수할 때가 되면 사위가 처가집에 가서 가을걷이를 돕는 풍속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한 사위에게 일을 시키는 장인과 장모의 마음이 오죽 했으랴.

 

사위질빵이란 풀은 질빵을 하기엔 너무나 연약해서 질빵으로 거의 쓸수 없을 정도이니 이 풀로 질빵을 엮었다는것은 사위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주지 않으려는 친정부모의 사위사랑이 숨어 있지요. 사위가 뭐 이뻐서 그랬겠습니까? 내 딸 자 봐주이소 하는 것이겠지요

 

미륵사지로 내려가는 길에 만난 사위질빵, 장모의 사위사랑이 이 덩쿨꽃에 담겨있으니 ......

 

들꽃 이야기는 끝이 없을 것 같다. 원추리, 망초꽃, 눈속에 얼어붙은 가슴아픈 동자승의 이야기가 묻어있는 동자꽃, 보라빛 도라지, 해바라기, 무궁화....... 이번 23차에서 만난 들꽃들이다. 꽃은 이야기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향기로 말하는 법이니 좀 아껴둘까?

 

그래도, 정산을 시켜 어두워지는 숲길에서 디카에 담은 솟대이야기는 다음이라도 쓰고 싶다.

미륵사지의 이야기는 정산에게 좀 더 들어야겠지?

알탕, 아 시원하다. 지금 생각해도........ 아마 금년 여름의 마지막 알탕이겠지? 역시 홀라당 껍질을 벗고 본질을 드러내놓는 것은 깔끔한(?) 일이야.

 

쓰고 싶은 얘기는 많지만 다음으로 미뤄, 아껴두고 오늘은 여기서 접자. 그래야 다음 백두대간이 기대되지 않겠는가?

 

하늘재에서 미륵사지로 내려가는 길목에서 만난 솟대,

오랫동안 우리 조상들의 의식속에서 [하늘]과 [인간]을 연결시키는 매개체 역할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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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산행 세부기록

(1) 운행 시간(중간그룹 기준)

...... 06:30 개포동역 출발
...... 09:06 이화령 출발
...... 09:45 조령샘
...... 10:10 조령산(1,026m)
...... 10:28 절골(상암사터) 안부
...... 11:10 신선암봉(937m)


...... 11:30 한성지기 계곡 안부
...... 11:37 923봉 전망대
...... 12:49 치마바위 전망대
...... 13:10 깃대봉 갈림길
...... 13:30 새재(조령 3관문), 중식 시작


...... 14:20 새재 출발
...... 14:46 마페봉(마역봉,927m)

...... 15:03 북문(714m)
...... 15:47 동문(735m)
...... 16:10 부봉(갈림길)
...... 16:40 주흘산 갈림길
...... 17:26 탄항산(856.7m)
...... 18:16 하늘재


...... 18:50 하늘재 산장 출발
...... 19:15 미륵사지 도착, 저녁식사
...... 19:40 미륵사지 출발
...... 20:15 개포동역 도착



(2) 참가대원 명단

...... 대간팀: 권오언,김성호,박희용,손영자,송영기,오영제,이성원,홍명기,장재업,지 용,변주희,정제용,신정호,김길원
...... 산행팀: 남시탁, 김영이, 진성박, 탁미선희, 윤재용, 이흥녀, 윤재용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