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따라 길따라/* 백두대간

(26) 낙엽송 잔해를 밟으며 도솔천으로

月波 2005. 11. 15. 01:52

 [백두대간 26차] 낙엽송 잔해를 밟으며 도솔천으로

 

 

 1. 산행개요

 

    (1) 산행일시 : 11월 13일(일) 당일산행            

    (2) 산행구간 : 저수령-묘적봉-도솔봉-죽령                

    (3) 산행거리 : 실측 - 20.18 Km (포항셀파 실측) 

                        도상 - 18.30 Km (저수령-7.2-뱀재-4.6-묘적봉-1.5-도솔봉-5.0-죽령)

 

    (4) 산행시간 : 총 7시간 10분 (산행 6시간 20분, 휴식 50분) 

    (5) 참가대원 : 강마클의 15명 대간돌이

          - 권오언, 김길원, 김성호, 김영이, 남시탁, 박희용, 손영자, 송영기, 신정호, 오영제, 이성원, 장재업, 정제용, 지용, 홍명기,

 

 

2. 산행후기

 

 (1) 산행 들머리에

 

새벽바람을 가르며 15명의 대간돌이들이 새벽 5시가 조금 지난 시각 서울을 출발한다. 면면을 보니 모두 진부령까지 함께할 대간돌이들만이 모였다. 그래서 오늘 B팀은 없다. 다만 산행대장인 남대장의 컨디션이 좋지않은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길을 일부러 동행하여 힘을 실어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단양 IC에서 장림, 사인암 가는 길을 따라가다 저수령으로 향한다. 워낙 가파른 고개마루라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는 저수령(低首嶺, 848m)에서 오늘의 대간 마루금 잇기를  시작한다(07:58). 녹음방초(綠陰芳草)를 지나 색깔바랜 잎들이 제몸을 썩혀 밑거름이 되고자 나딩구는 산길을 걷는 것이다.

 

가을 정취에 빠져 산길을 걷는 대간돌이들

 

산행들머리 촛대봉을 오르는데 아침햇살이 막 피어나고 있다. 산으로 햇살이 퍼져가는 모습을 보며 열심히 카메라에 담는다. 정산(正山)의 말대로 사진찍기는 햇살이 옆에서 비쳐주는, 즉 측광일 때가 제격인가 보다. 낙엽송과 떡갈나무 숲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을 가슴에 안으며 오르막을 걷는다.

 

초반부터 꽤 힘들다. 가끔 쥐가 나 애를 먹이는 오른쪽 종아리 근육이 시원찮다. 오늘은 몇 개의 산봉우리를 오르내려야 죽령(竹嶺)에 닿을 수 있을까? 오늘따라 걱정이 앞선다. 오르내릴 산봉우리를 헤아리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산을 오른다는 것은 무엇인가? 산을 오른다는 것은? 오른다는 것은 ..........

 

 

촛대봉에서 본 저수령 아랫마을, 소백산 목장에 아침햇살이 피어난다 

 

 (2) 가을의 잔해들

 

촛대봉을 오르니 전망이 제법 좋다. 저 아래 소백산 목장도 보이고 남서쪽으로 황장산도 보인다. 산아래 마을에는 아직도 샛노랗게 물든 낙엽송이 보인다. 산능선에는 이미 낙엽되어 발아래에 쌓였는데 ........

 

길가에 나딩구는 가을의 잔해인 낙엽위로 아침햇살이 퍼진다. 마치 양탄자를 깔아놓은듯한 포근함이 느껴진다. 봄에 다시 새롭게 피어날 잎들을 위해 제 몸을 썩혀 밑거름이 되는 나뭇잎의 삶은 마치 스스로를 태워 세상을 밝히는 양초의 화신과 흡사하다.

 

투구봉, 시루봉, 1084봉을 차례로 오르내린다. 오늘 산행은 이렇게 1,000m 전후의 능선을 계속 오르내린다. 물론 떡하니 앞을 가로막고 서있을 암봉, 도솔봉이 산행후반부에 그 고도를 수직상승시키겠지만 ......

 

배재를 지나며(09:10) 뒤를 돌아보니 1084봉 능선이 마치 바리깡(?)으로  오른쪽만 깍은놓은 듯하다. 왼쪽은 잣나무의 푸르름이 가득하고 오른쪽은 알몸을 드러낸 떡갈나무의 허허로움이 보인다. 상록과 활엽의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상록(경북 땅)과 활엽(충북 땅)의 조화, 1084봉

 

숲길을 홀로 걷는다. 앞뒤로 대간길을 함께하는 산친구들이 있지만, 대간길은 늘 혼자라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함께 보조를 맞추어 달리기도 하고, 어려운 고비에 마음을 합해 난관을 극복해가지만, 결국은 혼자서 걷는다. 산을 오르면서 느끼고 생각하는 것은 늘 혼자의 일이기 때문이다. 

 

낙엽이 쌓인 나무숲에 들어가 주위를 살피던 성호님이 "심봤다" 하며 만면에 미소를 짓는다. 그의 손에는 산삼처럼 귀한 더덕이 잡혀있다. 저 더덕이 다음 산행에서 약술로 바뀌겠지?  낙엽으로 쿠션좋은 내리막길을 무릎생각도 않고 달리니 싸리재다(09 :29)

 

심봤다, 성호 님 !  아직 더덕주가 가득 남았는데 .......

 

 (3) 산을 오른다는 것은?

 

싸리재를 지나 1033.5봉(흙목정상)을 힘겹게 오르기 시작한다. 앞뒤로 6-7명이 중간그룹을 형성해 흙목정상을 향해 온몸에 땀을 적시며 산을 오른다. 산행 들머리인 촛대봉을 오르며 했던 생각을 되뇌이며 산을 오른다. 산을 오른다는 것은 무엇인가? 산을 오른다는 것은 ..........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지리산 유람얘기를 주고받으며 제용님, 영자님, 정산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산을 오른다. 남명(南冥)은 지리산을 유람하고 쓴 글에서 "종선여등(從善如登) 종악여붕(從惡如崩)"이라고 했다. 선(善)을 따르기는 (산을) 오르는 것과 같고, 악(惡)을 따르기는 (무너져) 내리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산을 오를 때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어려운 길이요, 내려오는 일은 손쉬운 일이다.

 

참으로 적절한 비유다. 하나씩 선행을 쌓아 덕망을 갖추기란 산을 오르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요, 힘들게 쌓은 덕을 잃는 일은 잠시지간의 일일진대, 한발 한발 산길을 걸을 때마다 스스로 살아가는 모습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남명의 비유대로라면 한발한발이 종선(從善)의 과정이니, 산을 오른다는 것은 결국 차카게(?) 살기인가?

 

종선(從善)의 길, 산을 오르고 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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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豈非從善如登 從惡如崩者乎? (기비종선여등 종악여붕자호?) 

     -- 어찌 선(善)을 따르는 것이 (산을) 오르는 것과 같지않고,

                악(惡)을 따르는 것이 무너져 내리는 것과 같지않겠는가?

      [출처] - 남명 조식의 지리산 유람기(遊覽記)인 유두류록(遊頭流錄)

 

  *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

     퇴계 이황과 더불어 조선 중기를 대표하던 당대 최고의 유학자로, 퇴계와 달리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지리산 산림(山林)에서 평생토록 후학들을 가르치며 처사로 지냈다고 한다. 지금도 지리산 자락의 산청이나 내 고향 진주에는 그가 남긴 족적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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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감춰진 묘적봉(妙積峰)의 본모습

 

흙목  정상부 근처에는 키작은 주목(朱木)이 여기저기 심겨져 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월드컵을 기념해 영주시에서 주목을 심는 행사를 했다는 표찰이 붙어있다. 아직 2m도 안되는 저 어린 주목이 자라 언제쯤 고목이 될까? 아뭏든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의 나무를 복원시키려는 사람들의 정성이 대단하다.

 

뱀재를 지나 모시골 정상인 솔봉에 오른다(10:52). 잠시 선채로 휴식하며 간식을 먹고 낙엽천지인 산능선을 걷는다. 완만한 능선에서는 달리기도 하면서 1011봉, 1027봉을 오르내린다. 1000m 전후의 봉우리를 차례로 오르내리다 보니 어느새 묘적령이다. 묘적봉을 오르는 전망대 근처에 선두그룹이 보익길래 "강마"를 외쳐 부르고는 길을 재촉한다.

 

묘적령 직전의 낙엽벤치에서, 이 산중에 왠 벤치?

 

묘적봉(妙積峰. 1148m)에 오른다(11:53). 이름대로라면 묘적봉은 뭔가 기묘함이 쌓여 숨겨져 있을 것 같은데, 겉모습은 이름과 딴판이다. 그 본모습을 감추고 있는 것일가? 속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신비함을 감춘 채 꿋꿋이 서있는 것일까? 그 오묘함을 속으로 간직한 채 드러내지 않고, 세인들의 마음을 굽어보고 있는 것 같다. 

 

조금 전에 지나온 묘적령(妙積嶺)은 어떠한가? 죽령에 비하랴마는 서민의 애환에 얽힌 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고개다. 기쁨과 슬픔의 발자국을 아로새기며 이 땅의 역사를 만들어 온 고개이다. 그러기에 구한말 동학군이나 의병장들의 얘기가 그리 낯설지 않다. 묘적봉 골짜기의 깊고 아름다움이 주는 여운과도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묘적봉에 선 강마 제일의 대간녀(?)

 

 

(5) 서리맞은 단풍이 봄꽃보다 아름답다?

 

묘적봉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모두 모여 점심을 먹는다. 모든 대원이 함께 점심먹는 일이 쉽지 않다. 사실상 산악마라톤이니 자연히 선두, 중간, 후미그룹이 형성된다. 그런데, 오늘은 모두 모였다. 각자 준비한 점심메뉴를 내놓으니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게다가 막걸리까지 곁들이니 ......

 

도솔봉을 향해 다시 길을 걷는다(12:23). 고지로 오를수록 늦가을의 산에는 낙엽만이 딩굴고 있다. 스산하고 황량한 느낌마져 든다. 지난 달만해도 소백산 죽계구곡의 단풍은 이름 그대로 만산홍엽(滿山紅葉)이었는데 .......  �게 불타오르던 그 단풍의 모습이 그리워진다.

 

(상엽홍어이월화)라고 했던가?  서리맞은 단풍이 봄꽃보다 더 아름답다는 뜻이지요. 봄꽃보다 가을단풍이 더 멋있다? 사람의 삶에서도 마찬가지겠지요. 온갖 풍상을 이겨낸 백발의 황혼이 청춘의 젊음보다 더 멋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스스로를 둘러본다. 젊은 시절보다 나이가 들수록 더 아름다운 삶을 꾸려가야 할텐데 ....... 월파(月波), 자네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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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山行]    :      당(唐)나라 두목(杜牧 803-853)의 시(詩)
     遠上寒山石徑斜   (원상한산석경사)  멀리 비탈진 산 돌길을 오르다보니
     白雲生處有人家   (백운생처유인가)  흰구름 이는 곳에 인가가 두어 집
     停車坐愛楓林晩   (정거좌애풍림만)  가만히 수레를 멈춰 단풍 숲을 보니
        (상엽홍어이월화)  서리 물든 잎이 이월 봄꽃보다 붉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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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붉던 단풍을 다시 보고싶다
(사진 : 백두대간 26차 전날 청계산 산악마라톤 자봉하며, 양재 시민의 숲에서)

 

 

 (6) 구산선사(九山禪師)를 생각하며

 

송광사 九山스님도 열반송(涅槃頌)에서 萬山霜葉紅於二月花라 했었지요. 여보게, 정산(正山) ! 자네, 나와 함께 새벽이슬로 먹갈던 송광사 삼일암의 77년 여름을 기억하는가? 이제 선사(禪師)는 열반에 드시고, 우리 집 거실에는 님이 써주신 화두만 걸려있다. 그 때 그 뜻대로 살기가 여의치 않으니, 친구야 자네가 늘 나의 지킴이가 되어줄 수 있겠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타박타박 산능선을 걷는다. 뜀박질하는 크로스컨츄리가 아니다. 숨가쁘지 않게 차분히 걷는다. 이렇게 걸으면 둘이 있어도, 셋이 걸어도 혼자의 길이다. 이렇게 홀로 걷는다. 이 길은 내 자신을 찾아 내면(內面)의 세계로 걷는 길이다.

 
어린 잎에서 시작해 봄, 여름을 지나 가을에 한껏 그 화려함을 자랑하는 저 단풍처럼, 인생의 가을에 나의 삶도 과연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겨울이 오면 화려했던 단풍은 스스로 몸을 낮춰 흙으로 돌아가 자양분이 되는데, 때가되면 나의 삶도 자신을 버리고 이웃을 감싸는 넉넉함이 묻어날 수 있을까?
 
내면의 세계로 자꾸 빠져든다. 그러는 사이 거대한 암봉이 시야를 가려 정신을 차리니, 도솔봉 오르는 길이다.
 
도솔봉을 오르던 정산의 두팔벌린 모습, 지킴이 할거지?

 

 (7) 번뇌를 털고 오르는 도솔봉

 

도솔봉(兜率峰, 1314m)은 불교의 도솔천과 관련이 있지싶다. 석가모니 부처이후 새로이 중생을 제도하러 올 미래불(未來佛)인 미륵보살이 거처하는 곳이 도솔천이다. 도솔천에 왕생하거나, 미륵불이 현세에 와 설법하는 용화회상(龍華會上)을 기다리는 미륵신앙은 이 땅에 삼국시대이래 전래되어왔다.

 

백두대간 하늘재에도, 소백산 아래 영주 땅 곳곳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정산(正山)에게 새로운 숙제를 던진다. 우리 백두대간 끝나거든 제일 먼저 지리십경(智異十景)을 하고, 다음에는  미륵불을 만나러 도솔천을 찾아 전국의 미륵사(彌勒寺)와 도솔봉(兜率峰)을 뒤져서 찾아가보자고. 그 숫자는 얼마나 되든지  .......  

 

그 도솔봉을 오른다. 옛날에 로프에 의지해 암벽을 타던 도솔봉은 이제 계단이 놓여있다. 잡념을 떨치고 한발한발 계단을 오른다. 백팔번뇌를 계단에 내려놓고 저 도솔봉에 오르면 도솔천에서 중생제도를 위해 때를 기다리고 있는 미륵불을 만날 수 있을까? 그리하여 마침내 깨달음의 세계에 닿을 수 있을까?

 

도솔봉의 돌탑너머로 펼쳐진 산군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그저 세상사에 때묻은 마음을 하나씩 이 계단위에 털어놓고 빈마음으로 도솔봉에 올라보자. 그렇게 번뇌를 털고 얽매임에서 벗어나면 그기에 도솔천이 있으리니 ....... 시인같은 가수 정태춘이 부르는 [애고 도솔천아]를 흥얼거리면서 정상을 향한다.

 

      간다 간다 나는 간다 / 선말 고개 넘어 간다 / 자갈길에 비틀대며 간다
      도두리 뻘 뿌리치고 / 먼데 찾아 나는 간다 / 정든 고향 다시 또 보랴
      기차를 탈거나, 걸어나 갈거나  ..................... 

      

                                  

     간다 간다 나는 간다 / 도랑물에 풀잎처럼 / 인생행로 홀로 떠돌아 간다
      졸린 눈은 부벼 뜨고 / 지친 걸음 재촉하니 / 도솔천은 그 어드메냐

      ...................................

      도두리 뻘 바라보며 / 보리원의 들바람에 / 애고, 도솔천아 / 애고, 도솔천아

 

 

(8) 삭풍(朔風)과 설화(雪花)가 멀지 않다

 

도솔봉 정상(1,314m)이다(13:05). 제법 쌀쌀한 기운이 감돈다. 겨울이라 부르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가을은 이미 저만큼 멀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정상에는 수없는 사람의 기원이 쌓인 돌탑과 정상석(頂上石)이 사람을 반긴다.

 

그 흔한 정상석 하나없이 돌탑만 있던 도솔봉에 [부산 山사람들]이 국태안민(國泰安民)을 빌며 정상석을 세운 기록이 후면에 새겨져있다. 정상석을 받침대에 고정시킨 시멘트에 이끼하나 없으니 최근에 세운 모양이다. 국태안민, 부디 그들의 원(願)이 이루어지이다. 그리하여 이 나라 민초들이 그저 마음 편히 살게하여지이다.

 

 

죽령을 향해 도솔봉을 내려선다(13:15). 삼형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도 한눈에 들어오고, 소백산 연화봉의 중계탑도 아스라이 눈에 들어온다. 구름이 했빛을 가리니 한기(寒氣)가 온몸으로 파고든다. 판소리 [사철가]의 구절처럼 산에는 이제 한로삭풍(寒露朔風)과 낙목한천(落木寒天)이 찾아들고 있다. 달빛, 눈빛도 온 세상도 하얗다는 월백설백천지백(月白雪白天地白)의 눈꽃세상도 그리 멀지 않게 느껴진다. 

 

애당초 나의 산행은 나를 찾으러 떠난 길이었는데, 이제 떨어지는 낙엽처럼 나를 버리는 산행을 해야하나보다. 나무들이 나무가 속살을 드러내듯 나를 내려놓아야한다. 그런 벌거벗은 모습으로 산길을 걷고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나보다.

 

삭풍(朔風)도 낙목(落木)도 어찌보면 천지백(天地白)으로 맞이할 설화(雪花) 세상의 전주곡에 불과하거늘  ....... 태백산권으로 접어들 올 겨울 대간길에서 그 설국(雪國)을 맞이할 생각을 하니, 마음은 벌써 죽령에 가 있는데 몸은 아직도 도솔봉 자락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마음을 비우고, 털어도 도솔천 가는 길은 멀다

 

(9) 죽령주막에는 들러야지?

 

삼형제봉을 지나서(13:50), 마지막 고비라며 마고를 외치고 30분 가량을 걸었을까? 산죽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흰봉 삼거리가 나타난다(14:18). 이제 죽령이 발아래이지 싶다. 어느 산행객은 굴러서 가더라도 내려갈테니 걱정을 끊어란다. 하지만 아직도 1시간은 족히 가야하지 싶다.

 

빤히 내려다보이는 죽령을 향해 내리막 길을 걷는다. 통칭하는 영남(嶺南)이란 무슨 뜻인가? 고개(嶺)의 남(南)쪽이라는 뜻인걸 누가 모르랴?  그런데, 그 고개가 바로 죽령(竹嶺)이다. 즉 죽령의 이남을 영남이라 부른 것이다. 낙엽송과 잣나무가 땅따먹기 하듯 터를 나누어 군락을 이루는 언덕을 내려선다.

 

산죽군락에서 제용님의 환한 모습을 담다

 

문득 죽령에서 옛 나그네처럼 탁배기 한 사발 하고싶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죽령에는 옛 고개를 흉내낸 주막집 하나가 문을 열고 있으니 무었을 더 바라겠는가? 물론 구비구비 고갯길의 옛날 정취에 비하랴마는, 주막이라는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하룻밤을 쉬면서 짚신도 고쳐 신고, 말도 갈아타던 마방이 죽령에도 번창했으리라. 객고를 달래주던 주막거리가 눈앞에 아름아름하다.

 

오늘 산행의 종착지, 죽령에 도착하니 선두조의 성호님이 반겨준다(15:08). 7시간 남짓 걸렸으니 빨리 산행을 한 셈이다. 묘적봉에서 점심 먹고 함께 출발한 선두그룹은 1시간 이상 빨리 도착했다니, 아마 그들은 날라 다녔을거야. 죽령에는 남대장 부부가 준비한 김영이표 먹거리가 지친 우리를 반겨준다. 고마운 마음 뿐, 이 빚을 어떻게 갚을까? 

 

낙엽송과 잣나무가 대조를 이루며 군락을 이루고 있는 죽령 날머리(낙엽송 숲)

 

낙엽송과 잣나무가 대조를 이루며 군락을 이루고 있는 죽령 날머리(잣나무 숲)

 

얼큰한 김영이표 먹거리에 동동주, 더덕주를 곁들이니 알딸딸하다. 술기운에 죽령근처에 유명한 술얘기가 이어진다. 죽령 남쪽 풍기의 창락에는 인삼 막걸리가 유명하고, 죽령 북쪽 단양 장림(長林)에는 [소백산 술도가]라는 양조장이 있다. 오늘은 그 어디를 들러볼까? [소백산 술도가]는 700년 역사의 술도가이니 그 내력과 술맛은 보통을 넘겠지?  

 

어이, 여보, 형님, 삼촌, 운전하는 아저씨, 그리고 대장님, 우리 잠시 죽령주막이나 장림 술도가에서 한 잔 더하고 가면 안되유?  이래저래 취했으니 죽령에 얽힌 다자구 할미의 전설을 읊으면서 서울로 향한다.(16:20)

 

            다자구야 들자구야 / 언제가면 잡나이까 

            들자구야 들자구야 / 지금오면 안됩니다 

            다자구야 다자구야 / 소리칠 때 기다리다 

            다자구야 다자구야 / 그때와서 잡으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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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부 산행기록]

 

  - 05 : 10  영동5교 개포동역 출발

  - 07 : 45  저수령 도착

  - 07 : 58  저수령(850m) 출발

  - 08 : 20  촛대봉(1081봉)

  - 08 : 56  1084봉(온천삼거리)

  - 09 : 10  배재

  - 09 : 20  1053봉

  - 09 : 29  싸리재

  - 09 : 55  1033.5봉(흙목정상)

  - 10 : 26  뱀재(970m,헬기장,이정표)

  - 10 : 52  솔봉(1102.8m, 모시골정상) : 10분 휴식(간식)

  - 11 : 22  묘적령

  - 11 : 35  전망바위

  - 11 : 53  묘적봉(1148m) 도착 : 30분 휴식(점심)

  - 12 : 23  묘적봉 출발 

  - 13 : 05  도솔봉(1314.2m) :10분 휴식(간식)

  - 13 : 50  삼형제봉(1,286m)

  - 14 : 18  1286봉(흰봉산 삼거리), 산죽군락

  - 14 : 48  바위샘터(석간수)

  - 15 : 08  죽령(689m), 식사및 뒤풀이

  - 16 : 20  죽령 출발

  - 20 : 00  영동5교 개포동역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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