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여행/* 마라톤 완주기

준비하지않은 자의 아픔

月波 2006. 10. 30. 08:30

 

해마다 가을이면 춘천으로 향하는 걸음은 설레임을 안고 있다. 의암호에 내린 뿕은 단풍의 환영속으로 빠져드는 유혹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여름부터 가을의 전설을 쓸 준비를 하곤 해왔는데 ...... 금년 여름은 무었을 하면서 가을의 춘천을 기다려 왔는가? 스스로에게 부끄럽다. 그래도 춘천으로 가는 일을 접을 수 없다.

 

드디어 출발이다. 초반부터 시작되는 오르막을 지나, 의암댐에서 아내의 응원에 생기를 찾는다. 20Km지점, 몸이 힘들다. 예전에는 몸이 풀려 가속을 할 때인데, 벌써 체력에 한계를 느끼는 것일가? 5Km마다의 Lap을 보니 서서히 스피드가 떨어지고 있다. 아니, 그 훨씬 전에 숨소리는 여느 때보다 훨씬 거칠어져 있었다. 춘천댐을 향해 오르는 23-26Km 지점에서 더 이상 속도를 유지할 수 없다.

 

그 오르막에서 고통이 온몸으로 스며든다. 지난 동아대회이후 7개월을 훈련없이 쉬었으니 ...... 훈련을 게을리한 대가가 혹독하다. 소위 준비하지 않은 자의 아픔이다. 32Km지점, 예년과 달리 102보충대의 군인아저씨 응원도 안보인다. 아쉽다. 지금부터 남은 10Km가 진짜 마라톤인데 ...... 35Km지점에서 무수한 지인들을 만난다. 그들이 앞서간다. 고민이다. 걸을 수도, 회수차를 탈 수도 없다.

 

간신히 소양대교를 건너고 마지막 남은 5Km, 이 고비를 어떻게 넘길까하는 순간 오승희님과 남시탁님을 만난다. 함께 방울토마토 한 움큼을 입으로 삼킨다. 30분안에 들어가면 Sub 4는 하겠다는 계산이 선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믿기지않는 일이 벌어진다. 그 지루한 마지막 코스를 발 아래만 보고 전력질주, 5분30초 페이스로 달려낸다. 이거야말로 진정 마라톤이다. 그 순간 무엇이 나로하여금 그렇게 달리게 한 것일까? 

 

3시간 58분 34초 57, 지난 봄 동아대회보다 무려 30분이상 늦은 기록이지만 "걷지않고, 끝까지, 즐겁게" 달렸다. 비록 육체적으로 많은 고통이 따랐고, 기록도 형편없었지만 큰 아쉬움은 없다. 지난 동아대회에서 동반주를 한 친구, 박교수를 춘천운동장에서 우연히 만난다. 준비하지 않은 자의 아픔을 곱씹으면서, 이번 겨울훈련을 제대로 해보자고 함께 다짐하며 운동장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