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자리/* 심향(心香)

벌들의 법도(法度)

月波 2005. 10. 29. 00:28

 

10월이 마지막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엊그제 끝난 국회의원 보궐선거 결과를 두고 정치꾼들이 서로 밀고당기는 모습이 눈에 걸립니다. 나야 애시당초 정치에 관심이 별로 없는 사람이지만, 작금의 정치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불현듯 당파싸움에 밀려 귀양지에서 벌을 치고 지내면서 삶을 관조하던 옛 선비의 글이 생각납니다.

 

벌 한 통을 오동나무 그늘에 놓아두고 아침저녁으로 가서 살펴보니, 법도가 몹시 엄격합니다. 나라꼴이 벌만도 못하니 사람으로 하여금 풀이 꺽이게 합니다.

(蜂一桶置于梧陰 觀朝夕衛 法度甚嚴 國而不及蜂 令人短氣)

 - 허 균(1569-1618), 복남궁생(復南宮生)

 

허 균(許均)이 함열 땅에 유배가 있을 때 쓴 편지입니다. 속도 상하고 무료하기도 했겠지요. 늘 우리에게 정갈하면서도 속시원하게 옛 글을 들려주는 정민 선생의 해설을  한 번 들어볼까요? 

 

"오동나무 그늘 아래서는 하루종일 꿀벌이 잉잉거립니다.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잠시도 쉴새없이 연신 들락거립니다. 뜨락에 벌통 하나 들여다놓고, 아침에도 살펴보고 저녁에도 살펴보곤 하지요. 처음엔 제 멋대로 나고 드는 줄 알았지요. 가만 보니 그런 것이 아닙디다. 차례는 어찌 그리 정연하고, 질서는 얼마나 짜여 있던지요. 하나의 흐트러짐 없이 계획에 따라 모든 일이 진행되고  있더군요. 위계도 정연하구요.

 

자꾸 제 눈길이 그리로 갔던 것은 아마도 한심한 나라꼴 때문이었지 싶습니다. 도무지 손발이 안맞고, 자기들끼리 치고 받고 싸우느라 혈안이 되어 있는, 민생은 언제나 뒷전이고 달콤한 꿀만 보면 앞뒤 가리지 않고 파리떼처럼 달려드는 나라꼴 말씀입니다. 그 생각만 하면 입맛이 떨어지고, 한마디로 김이 팍 샙니다."

 

 

이 가을에 문득 허균의 편지가 생각난 것은 스스로 사물(事物)을 보는 눈이 아쉬워서입니다. 사물과 나 사이의 장벽을 허물어뜨리고 제대로 사물을 보는 눈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을 열고, 직관(直觀)으로 통찰할 수 있는 마음을 모아야합니다. 마음을 여는 일(開心)이나 마음을 모으는 일(會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사물을 관조(觀照)할 수 있으면, 즉 관물(觀物)하면 모든 장벽이 허물어지고 삼라만상이 스승이라고 했습니다.

 

사물(事物)은 쉽사리 제 속살을 드러내지 않지요. 한눈에 간파하기가 여의치 않은 것이지요. 그러나 화두를 단박에 깨치듯, 일견(一見)하여 핵심을 궤뚫는 안목이나 빠짐없이 행간을 읽어내는 눈을 가지면 삼라만상이 스승입니다. 관물(觀物)이라 ......  벌들의 질서에서 나라의 법도(法度)를 생각하듯이 ....... 허균의 시절이나 지금이나 나라꼴이 벌만도 못하니, 벌들의 세상이 오히려 부러워지는 것은 나만의 가을 상념이 아니겠지요?

 

 

                                     

        

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

 

                                 [10월을 보내며 - 가을에 듣는 노래] 

 

 

                           

 

                                   ♬ 잊혀진 계절 / 이용

                                   ♬ 마지막 편지 / 이승훈

                                   ♬ 가을비 우산속 / 최헌 

                                   ♬ 애모 / 서울훼밀리    

                                   ♬ 가을사랑 / 신계행

        

                                   ♬ 가버린 친구에게 바침 / 이명훈

                                   ♬ 사랑의 썰물 / 임지훈   

                                   ♬ 슬픈 계절에 만나요 / 백영규

                                   ♬ 사랑은 유리같은 것 / 이은미   

                                   ♬ 내 그리운 나라 / 임지훈

 

                                   ♬ 사랑의 슬픔 / 이치현

                                   ♬ 애수 / 진시몬

                                   ♬ 제가 먼저 사랑할래요 / 강인원

                                   ♬ 슬픈 노래는 부르지 않을거야 / 조덕배

                                   ♬ 아담과 이브처럼 / 나훈아

 

                                   ♬ 난 늘 혼자였죠 / 페이지    

                                   ♬ 너의 외로움이 날 부를 때 / 장필순         

                                   ♬ 겨울비는 내리고 / 이정봉

                                   ♬ 빗속의 여인 / 김목경

                                   ♬ 사랑하기 때문에 / 유재하 

 

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

 

                 

'편안한 자리 > * 심향(心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포 일출과 적멸보궁 가는 길  (0) 2006.01.03
눈 내리는 밤 옛글 뒤적이며  (0) 2005.12.24
좋은 일이야  (0) 2005.08.16
[Poemtopia] 우리들은 다 완벽하다  (0) 2005.08.13
[스크랩] 추락  (0) 2005.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