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1월 21일 제 15차 백두대간을 펑크내고 1년이 더 지나고서야 보충산행을 한다.
펑크난 추풍령 구간을 메꾸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던 것은 일상의 바쁨인지, 게으름인지 따지고 싶지 않다. 다만 휑하니 바람이 불고 이번에는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부랴부랴 길을 나선다. 돌아와 생각해도 참 잘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다.
[산행후기]
1. 산행거리
(1) 도상 : 17.50 Km
궤방령-4.0-가성산-2.8-눌의산-2.8-추풍령-3.7-435.7봉-1.5-사기점고개-2.7-작점고개
(2) 실측 : 19.78 Km (포항 셀파 실측)
궤방령-4.25-가성산-3.03-눌의산-3.61-추풍령-2.65-502봉-4.19-묘함산 갈림길-2.05-작점고개
2. 산행일시 - 2005년 12월 10일(토) 당일산행
06:00 서울 대치동(개포동역) 출발
07:55 선산휴게소(20분 휴식)
08:30 김천 IC
08:40 궤방령 도착
08:48 궤방령 출발
10:30 가성산(716m)
11:50 눌의산(743.3m)
12:48 추풍령(221m)
12:58 추풍령 연하식당(중식- 60분 휴식)
13:58 추풍령 연하식당 출발
14:00 추풍령 당마루
14:19 금산(370m, 전망대)
14:50 502봉
15:26 435.7봉
15:38 사기점고개(390m)
16:07 포장도로
16:16 묘함산 갈림길
16:48 작점고개(능치, 340m)
17:00 작점고개 출발
20:30 서울 대치동 도착
3. 동반자 : 김길원
4. 산행후기
(1) 겨울아침의 일상탈출
첫눈이 내린지 얼마 안되는 겨울아침이다. 어디로든 휑하니 떠나 산길을 걷고 싶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바람을 쐬고 싶다. 어디로 갈거나? 기왕이면 백설이 난무하는 산야를 누비고 싶다. 불현듯 지리산 만복대에 올라 서북능선을 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지리산 북부 관리사무소로 전화를 한다. 그 곳 상황이 어떠하냐고 ..... 성삼재에는 엊그제 내린 폭설로 아직 차량통행이 금지되어 있고, 이번 주말쯤 찻길이야 풀리겠지만, 경방기간이라 만복대로 가는 서북능선 길은 입산통제란다. 어이하랴?
차라리 180도 방향을 선회해 볼까? 눈도 없고. 산도 높지않은 곳을 찾아볼까? 어쩌면 이번 겨울에 눈구경은 지겹도록(?) 할지도 모른다. 백두대간이 태백산권으로 접어드니 태백, 함백을 넘어 대관령, 진부령에 이르기까지 설원을 걸을 것이다. 그렇다면 눈도 없고, 산도 낮은 곳을 찾아보자. 괜찮은 생각이다. 그렇지! 지난 15차 산행에서 펑크낸 백두대간 추풍령 구간을 넘어보자. 그기에는 올망졸망 낮은 산과 사람사는 정취를 느끼며 혼자서 걷기에 안성맞춤이리라.
그래도 혼자는 외롭다. 길벗을 구해야지. 한 두 곳에 전화를 하니 즐겁게 동행을 하겠단다. 그런데 서로 시간이 잘 안맞는다. 다행히 길원님이 묵묵히 느린 걸음으로 걷는 산길에 호응을 해준다. 함께 그 길을 걷는거야. 가성산도 있고, 눌의산도 있지. 추풍령을 넘어 금산도 있지. 작점고개까지 걸어보는거야. 보통 사람들의 상식에 어긋나는 곳이 추풍령이지 않는가?
뭐가 상식에 맞지 않느냐구요? 그럼, 질문 ........ 추풍령의 높이는 해발 몇 미터나 될까요? 이게 질문이다. 어렵다구요? 그럼 주관식이 아닌 객관식으로 할까요?
(1) 200m - 300m (2) 400m - 500m (3) 600m - 700m (4) 800 m- 1000m (5) 여기에 답 없음
정답은? 글쎄요? 나중에 말씀 드리죠. 아니 직접 인터넷 검색하여 답을 찾아 보시죠. 예상외일걸요, 아마 .......... 구름도 자고 가고 바람도 쉬어가는 추풍령의 해발고도를 맞추기가 쉽지 않을겁니다.
구름도 자고 가는 바람도 쉬어 가는 / 추풍령 구비마다 한 많은 사연
흘러간 그 세월을 뒤돌아보면 / 주름진 그 얼굴에 이슬이 맺혀
그 모습 흐렸구나 추풍령고개
흐르는곡: 추풍령 - 남상규
(2) 궤방령에서 잇는 대간길
게으른 사람의 잠자리처럼 겨울 햇살은 언제나 잠에서 늦게 깬다. 그래서,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을 가르고 길을 나선다는 것은 왠만한 부지런함으로는 감당이 안된다. 그럼에도, 길원님은 정시에 약속장소에 와서 기다린다. 자, 추풍령을 넘기전에 가성산, 눌의산을 올라야하니 황악산 아래 김천의 궤방령을 향해 달려보자. 경부고속도로 대신 시원히 뚫린 중부내륙 고속도로를 타고 선산을 거쳐 김천으로 향한다. 달리는 와중에 운 좋으면 차창너머로 일출을 한 컷하기로 하고 .....
아침 9시가 되기 전에 궤방령에 도착한다. 간간이 흩날리는 눈발이 먼길을 달려온 산행객을 반겨준다는 생각이 든다. 궤방령 안내판 앞에서서 찰칵(?) 한 컷하고 출발을 서두른다.
가성산을 오르는 궤방령 들머리는 여저기기 눈이 쌓여있다. 스패츠를 찰 정도는 아니지만 바람에 눈발이 흩날리면 나무 숲은 온통 은빛세상으로 바뀐다. 백색이 주는 순수함 때문인지 눈만 보면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은 나만이 아니리라. 마음이 즐거우니 산길을 오르는 발걸음 또한 가벼울 수 밖에 ......
1시간 남짓 오르막을 걸었을까? 탁트인 전망바위가 나타나 잠시 주변을 둘러본다. 산아래 영동 매곡면의 포도밭이 한눈에 들어온다. 뒤를 돌아보니 황악산이 흩날리는 눈속에 우� 서있다. 따뜻한 차를 꺼내 길원님과 나눠 마시며 취하는 휴식이 꿀맛이다. 산이 베푸는 이 즐거움을 어찌 쉽게 대하랴? 산을 걷는 즐거움은 책을 읽는 즐거움과도 비견되는 일이니까.
누군가 산과 책은 닮은 점이 많다고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산이나 책이나 다가오지 않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자신을 내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지극정성으로 다가서는 사람에게 산이나 책은 자신을 감추는 법이 없다. 오늘 걷는 산길은 백두대간의 여느 마루금에 비해 비록 낮은 산이지만 색다른 산의 맛을 느낄 수 있어 좋다. 일상의 책 속에서 찾아내는 진주알 같은 가르침이 있다.
(3) 사각사각 눈길을 걸어
가성산을 조금 앞둔 산마루에는 각양각색의 대간 리본과 백설이 바람에 흩날리며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다. 이제부터 가성산, 눌의산에 이르기까지 고도 700m 전후의 마루금을 밟는 즐거움만 남아있다. 능선에는 종아리까지 빠지도록 제법 눈이 쌓여있다. 스패츠와 아이젠을 준비했지만 그냥 걷는다. 내리막에서는 스키타는 자세로 눈썰매를 즐기며 ......
흐린 날씨가 하늘을 쳐다보기보다 자연히 산아래 마을의 세상사는 모습을 살펴보게 한다. 사람사는 모습이 저렇게 옹기종기 평화로운 것이거늘 ....... 한 발짝 물러서 산에서 보는 세상은 늘 아둥바둥, 아웅다웅 살아가는 자신에게 좋은 경책이 된다. 낮은 산은 이런 묘미가 있다. 높은 산에서 느낄 수 없었던 사람들의 세상살이 모습을 낮은 산에서 제대로 볼 수 있으니 ..... 그래서, 여성 산악인 남난희 님은 [낮은 산이 낫다]고 했던가?
가성산에는 예쁘고 작은 정상석이 있다. 길원님은 지금까지 산에서 본 정상석 중에서 가장 앙증맞닸다. 비록 작지만 여기가 가성산 정상임을 알려주기에는 전혀 손색이 없고, 초행길인 산행객에게는 훌륭한 길잡이 노릇을 한다. 길원님과 번갈아가며 정상석을 배경으로 한 컷하고 눌의산으로 향한다.
눌의산 가는 길에는 곳곳에 철지난 억새가 보인다. 제철에는 한 몫을 제대로 하지 싶다. 억새밭 사이로 눈덮힌 길을 걷는다. 사각사각 걷는다. 때로는 뽀드득, 뽀드득 소리가 난다. 비록 눈덮힌 길을 갈지라도 발걸음을 함부로 하지말라던 서산대사의 선시를 길원님과 주고받으며 걷는다. 오늘 우리가 걷는 이 길이 뒷날 후인들의 이정표가 되리니 ....... 그러니, 우리의 세상살이도 때로는 부모로서, 선배로서, 리더로서 한 점 부끄럼이 없이 당당히 살자고 .......
눌의산 정상에 올랐을 때는 제법 눈발이 거세진다. 이제는 추풍령까지는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미끄러운 길을 조심조심 하산을 서두른다. 간간이 보이는 추풍령 마을의 올망졸망한 모습이 사람을 한없이 편안하게 해준다.
(4) 구름도 자고가는, 바람도 쉬어가는
눌의산에서 1시간 가까이 미끄러운 눈길과 씨름하니 추풍령에 닿는다. 고속도로 아래 굴다리를 통과하고, 철길을 가로질러 포도밭 사이로 난 길을 걷는다. 추풍령 당마루로 가는 길가에 늘어선 몇 개의 식당이 눈에 띈다. 시간은 12시 30분을 지나 오후 1시를 향해 치닫고 있다. 준비한 도시락이 있지만, 날씨도 춥고 배도 고프고 ....... 식당에 들러 따뜻한 국물을 시켜놓고 도시락을 비우기로 한다. 대간길에서 왠 호사란 말인가?
대간돌이들이 많이 들러서 그런지 그 식당 벽에는 공룡능선, 봉정암등 설악의 영봉들을 담은 사진이 여러 장 걸려 있었다. 대간길에 호사로 시킨 해물탕 맛이 좀더 짜릿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우리가 애당초 얻고자한 것은 국물의 맛이 아니라 추위를 이길 수 있는 국물의 따뜻함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식당을 나서 당마루로 향한다. 장장 1시간에 걸친 대간길 호강이었던 셈이다.
몇 년전 여름 주말, 태풍 [루사]가 추풍령을 휩쓸고 지나던 밤에 나는 이 추풍령 마을에서 칠흑같이 어두운 밤을 뚫고 폭풍우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서울로 향하던 철로가 끊겨, 구미에서 갈아탄 버스마져 추풍령에서 막히고 ...... 그날 밤 반드시 서울로 가야했던 사정으로 추풍령 마을에서 타이탄 트럭을 빌려타고 영동 황간으로 가는 길을 따라 헤매고 있었지. 다음 날 알아차린 사실이지만, 그날 밤의 행적은 사선(死線)을 넘나든 무모한 일이었으니 ......
식당주인은 그날 밤 자기 식당도 무릎까지 물이 차올랐다고 하니 당시 태풍 [루사]의 위력을 과히 짐작할만 하다. 가장 높은 곳인 대간의 마루금, 당마루에서 불과 30m 떨어진 곳에 있는 식당 바닥에도 무릎까지 물이 차올랐으니 ....... 지금 생각해보면, 그날 밤 추풍령 천지가 황토빛 물살로 뒤덮혔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물살은 흔적도 없이 빠져버리고 오직 수마가 지나간 처절한 상처만 남아 있었으니 ......
아찔했던 당시 상황을 더듬으며 잠시 걸으니, 추풍령 표지석이 있는 당마루에 도착한다. 역시 추풍령은 남상규의 노래로 대변되어지나 보다. 그 표지석에도 구름도 자고가는 바람도 쉬어가는 추풍령 구비마다 한많은 사연이 새겨져 있다. 어김없이 여기서 한 컷하고 금산(370m)을 향해 대간길을 재촉한다.
[ 잠깐 !] 추풍령의 해발 높이는? 해발 221m 입니다. 서두에서 내었던 문제 맞히셨나요? 그렇다면 상식이 통하시는 분이구요. 아니면, 그것이(틀리는 것이) 지극히 정상입니다.
(5) 금산을 넘어 작점고개로
당마루에서 20분여 땀을 흘리니 금산(370m)의 정상부에 이르른다. 저 아래로 추풍령이 한 눈에 들어온다. 추풍령 협곡에는 온통 길로 뒤덮혀 있다. 경부고속도로, 영동과 김천을 잇는 국도와 지방도, 경부선 철도, 새롭게 확장하여 왕복 4차선으로 건설중인 국도가 추풍령 고갯마루를 가득 채우고 있다. 그 길들을 만드는 일에 동원되었는지 석산(石山)인 금산은 온통 채석장으로 바껴 이미 산의 반이상이 날아가버린 흉물로 변해 있다. 그저 안타까울 뿐 ......
금산에서 502봉, 435.7봉을 거쳐 사기점 고개로 가는 길은 산아래 작점마을과 작점 저수지를 굽어보면서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오솔길이다. 크로스컨츄리하듯 달리기도 안성맞춤이고, 사이사이 잔설이 남아있는 숲길을 사색에 빠져 걷기도 좋은 곳이다. 작년 이 길을 걸었을 강마의 대간돌이들은 그 좋은 체력에 얼마나 달렸을까? 성호님과 그의 본가에서 즐기던 포도주 맛을 생각하며 산길을 걷는다.
금산에 올라 채석으로 망가진 대간의 모습에 가슴 아프하다
사기점고개의 억새밭에서 잠시 휴식하고 계속 오르막 길을 걷는다. 길원님이 체력이 떨어지는지 조금씩 힘들어하는 눈치다. 앞장서 가다가 주요 고비마다 서서 기다렸다가 동행하길 반복하다보니 어느덧 묘함산 방송탑으로 가는 포장도로가 나타난다. 대간길을 놓치기 쉬운 곳이다. 제대로 대간길을 찾아 수직으로 마루금을 오른다. 여기가 마지막 고비이지 싶다.
묵묵히 땅만 보고 급경사를 오른다. 산세가 이 고비만 오르면 작점고개로 이어지는 하산길이라 판단된다. 아니나 다를까? 16시 16분, 묘함산으로 가는 길과 대간을 따라 작점고개로 하산하는 갈림길에 이르른다. 참으로 산 지형이 특이하다. 묘함산에서 뻗어내려온 산줄기가 두 갈래로 분화되며 두갈래길이 좌우로 대간 마루금을 만드는 양상이다. 묘함산 가는 길(묘함산에서 뻗어나온 산줄기)은 대간길이 아닌 것이다.
묘함산 갈림길에서 하산하며 포장도로와 숲길을 몇 차례 번갈아 가면서 걸었다. 참 특이한 형세를 걸었지만 그 구조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니, 이제 조금은 대간길에 눈이 틔어가는 것은 아닌지 ....... 16시 48분 작점고개에 도착한다. 작점고개에는 능치쉼터라고 적힌 정자 하나가 있다. 아마 작점고개를 상주쪽에서는 능치라 부르는 모양이다.
어찌보면 오늘 대간 길이 쉬울 것같았는데, 생각보다 먼 거리였고 눈길에 시간도 많이 걸렸다. 특히, 마지막 묘함산을 향해 오르는 길이 지루하고 힘들었다. 아마 거의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끊임없이 이어지는 길, 그것도 마지막 심한 오르막이 사람을 쉽게 지치게 만들었지 싶다. 이렇듯 세상사가 호락호락하지만 않으니, 한 순간도 방심해서는 안되리라.
...............................................................................................................................
'산따라 길따라 > * 백두대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9) 도래기재에는 호랑이가 ...... (0) | 2006.01.09 |
---|---|
(28) 태백산에서 부는 바람 (0) | 2005.12.19 |
(27) 황장산에서 보내는 편지 (0) | 2005.11.21 |
(26) 낙엽송 잔해를 밟으며 도솔천으로 (0) | 2005.11.15 |
(25) 소백산, 너에게로 가네 (0) | 2005.10.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