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28차] : 태백산에서 부는 바람
1. 산행 개요
(1) 산행일시 : 2005년 12월 18일(일) 당일산행
(2) 산행구간 : 도래기재-구룡산-신선봉-차돌배기-깃대배기봉-부소봉-태백산-화방재
(3) 산행거리 : 도상 23.6 Km, 실측 24.2 km(포항 셀파)
(4) 산행시간 : 총 7시간 50분
(5) 참가대원 : 강마 10명 대간돌이
- 권오언, 김성호, 박희용, 송영기, 오영제, 이성원, 장재업, 정제용, 홍명기, 김길원
2. 산행 후기 - 태백산에서 부는 바람
(1) 버스타고 하는 알바
허걱! 혹독한 추위 탓인가? 당초 함께 하기로 했던 몇몇이 새벽 출발에 안보인다. 게다가 남대장과 지용님이 급박한 사정이 생겨, 열혈 대간돌이 10명이 단촐하게 태백산으로 향한다. 버스속은 그 어느 때보다 널널하다. 시간의 여유도 좋지만, 공간의 여유는 사람을 늘 푸근하게 한다. 그래서 프레임을 꽉 채운 풍경화보다 화선지에 서너줄 날렵하게 쳐놓은 난이 더 정감이 가는 것이 아닐까?
옥녀금반의 명당터라는 단양휴게소에서 일행들이 아침을 먹는다. 옥녀가 받쳐든 금쟁반 모양의 명당에 자리한 휴게소의 음식맛은 그 자리값을 할까? 새벽에 집을 나서기 전에 아내가 챙겨주는 조반을 먹었기에, 나는 옥녀금반의 아침을 포기하고 휴게소에서 더운 차 한잔으로 만족한다.
풍기에서 부석사 방향으로 향하는 지방도로는 눈에 익다. 지난 10월 소백산행을 마치고 고치령에서 내려와 초암사 방향에서 하산하던 B팀을 만나러가던 기억도 새롭다. 소수서원, 청다리, 선비촌을 지난다. 허름하지만 맛으로 유명한 전통 묵밥집도 지나고 .......
어느 새 버스는 부석사 입구에 도착해 있다. 어 ! 이게 아닌데 ....... 버스가 길을 잘못든 것이다. 봉화 물야방향으로 가는 길을 놓치고 새로 잘 포장된 부석사로 직진한 것이다.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서볼까? 그러기엔 시간이 없다. 하늘의 별을 이불삼아 여름밤을 지새우던 부석사의 밤 얘기를 접어두고 길을 돌려, 다시 출발이다.
한참 길을 달리는데 마주 오는 차도, 지나가는 사람도 없다. 정말 한적한 오지의 산간마을을 지나가고 있다. 물야 삼거리에서 또다시 오른쪽, 왼쪽 방향을 더듬다가 버스를 돌려 오전약수 방향으로 향한다. 오전약수에서도 가던 길을 따라 직진해야하는데, 버스는 약수터로 들어간다. 도대체 오늘 이 넘의 버스가 산행출발지인 도래기재에 가기도 전에 몇 번이나 알바를 하는거야?
오전약수터에 핀 얼음천국
(2) 태백에서 만나는 나무들
여러차례 알바를 하는 버스 덕분에 주실령의 험한 고갯길을 넘어 당초예상보다 1시간이나 늦게 도래기재에 도착한다. 이러다가 오늘 해떨어지기 전에 화방재로 하산할 수 있을지? 백두대간 최고의 오지를 걷는 산길 24Km가 장난이 아닌데 ..... 게다가 중간 탈출로마져 없지 않는가? 무사히 산행을 마무리할 수 있을지 불안하다. 일단 선두와 후미가 함께 행동하자고 하고 대간 마루금을 오른다.
구룡산을 향해 오르는 길은 추운 날씨에 굳어있는 몸을 워밍업하기에 좋을만큼 충분히 가파르다. 추위에 노출된 얼굴이 금새 동상이라도 걸릴 것 같은데, 10여분 걸으니 체열로 온몸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이래서 혹한의 겨울산행이 가능한 것이지 싶다.
첫번째 임도에서 만나는 금강 소나무가 인상적이다. 흔히 춘양목이라 하는 고급 소나무인데 황장목과 더불어 소나무의 제왕이라 불린다. 무분별한 벌목으로 절대숫자가 줄어든데다, 최근에 솔잎 흑파리까지 번져 아름드리 노송을 찾아보기 힘드니 그저 아쉬울 뿐이다. 금강 소나무 앞에서 한 컷하려는데, 추위에 디카의 밧데리가 얼어 작동을 않는다. 아, 오늘의 대간 사진은 어떡하나?
능선을 걷는데 고목이된 신갈나무가 자주 눈에 띈다. 오늘의 백두대간이 오지산행이라 걱정했는데, 좀체 만나기 힘든 거목들을 만나게 되니 기분이 상쾌해진다. 저렇게 큰 신갈나무는 처음이다. 참나무중에서 새봄에 가장 일찍 잎이 핀다는 나무가 신갈나무다. 대간을 걷다보면 온통 참나무 밭이라해도 과언이 아닌데, 오늘 만나는 참나무, 저 신갈나무는 태백산 깊숙한 곳에서 쌓아온 세월의 연륜만큼이나 원숙해보인다.
산이 높아지고, 태백산에 가까워지면서 산죽(山竹) 군락을 만난다. 깃대배기봉 주변은 걸을수록 산죽에 흰눈이 쌓여가며 한폭의 동양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대나무의 푸르름과 백설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셈이다. 청춘의 푸르름을 고이 간직하려고, 오로지 머리 숙여 눈보라에 몸을 맡긴다(但守靑春色 低頭任風雪)고 하던 대나무의 본 모습을 보는 것같다.
산에서 만나는 나무들은 저렇게 자기의 본 모습대로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 부소봉과 태백산 정상 주변에서 만나게 될 자작나무와 천년 주목의 모습을 기대하며 갈수록 눈이 쌓여가는 산길을 걷는다.
(3) 대간능선에서 느끼는 행복
구룡산, 고직령, 1231봉, 곰넘이재, 신선봉, 차돌배기, 1174봉, 깃대배기봉을 차례로 오르내리며 태백산 천제단으로 향하는 길은 걸을수록 눈이 쌓여간다. 당초 많은 눈을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깃대배기봉을 지나 부소봉을 오르는 길에는 러셀을 해야할 정도로 눈이 쌓여 있으니, 힘들어도 설산을 오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당초 기대보다 많은 양의 눈이기에 더욱 즐겁다. 그렇다. 우리네 삶도 절대적 높이보다 각자가 갖는 상대적 기대치를 조금만 높게 충족시키면 늘 행복한 것이지 않던가?
구룡산에서 바라보이는 태백의 협곡에는 특이하게도 넓고 긴 활주로 형상의 공터가 있다. 심산계곡의 활주로, 고공폭격장, 난데없이 하늘을 날아지나가는 굉음, 여기에 정산이 던지는 화두 한 마디 - 매향리와 태백시민의 데모 ....... 이런 단어들이 오버랩되면서 오지협곡에 만들어진 여러 형상과 이미지의 조합이 갖는 의미를 나름대로 새기며 능선을 걷는다.
곰넘이재를 지나면서 오르는 완만한 능선길에서 태백산에서 내려걷기하는 한 무리의 산행객을 만난다. 그들은 새벽 4시 30분에 화방재를 출발했다는데, 7시간이나 걸려 이제 여기까지 왔다니 ...... 그렇다면 우리는 화방재에 해지기 전에 도착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덜컥 겁이난다.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는 발길에 서두름이 더해진다.
마음이 급해서인지 신선봉에서 후미를 기다릴 틈도없이 산행을 서두른다. 후미조에서 연거푸 무전이 날아든다. 적당한 곳에서 점심을 먹고 힘내어 걷자고 ...... 곳곳이 눈밭이요, 찬바람이 불어닥치니 마땅히 앉을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간신히 차돌배기를 오르는 양지바른 언덕에서 눈을 치우고 앉을 공간을 만드니, 곧 후미가 도착해 함께 식사를 한다.
도시락을 꺼내니 아직도 따뜻한 찰밥에서 김이 모락모락 난다. 소고기 장조림에 김과 김치를 곁들이니 산상의 진수성찬(?)이다. 혹한의 날씨를 염려해 보온도시락에 새벽에 갓지은 찰밥을 싸준 아내의 세심한 배려에 눈물이 날 지경이다. 평소 무덤덤한 아내가 영하의 날씨를 무릎쓰고 새벽길을 나서는 나에게 보이던 걱정스런 모습을 떠올리고 수십년 동고동락해온 깊은 정을 새삼 느낀다. 화방재에 도착하자마자 전화해 걱정을 덜어주어야지 ......
이런 것이 행복이지 싶다. 다시 힘을 내어 점점 설화가 짙게 피어가는 산길을 걷는다.
(4) 경상도여, 안녕 !
걸을수록 피어나는 설화가 그저 아름답다. 눈으로, 마음으로 담기에는 아쉽기만하다. 디카는 추위에 얼어붙었고, 정산은 그 큰 카메라를 배낭에서 꺼내길 주저한다. 가끔 발목까지 빠지는 눈길을 러셀하며 부소봉으로 향한다. 날리는 눈발사이로 아스라히 태백산 천제단이 눈에 들어오고, 살아서도, 죽어서도 천년을 산다는 주목(朱木)이 나타나니 부소봉이 멀지 않다.
부소봉은 천제단과 문수봉 사이의 갈림길에 산봉우리같지 않은 모습으로 늠늠하게 버티고 서있다. 작년 1월 천왕봉에서 시작해 2년간 걸어온 백두대간 길에서 부소봉은 하나의 큰 분기점이다. 지리산에서 덕유산, 속리산, 소백산을 거쳐 태백산에 이르기까지 대간능선을 오른발, 왼발을 번갈아가며 밟아왔는데, 그 오른발 아래는 항상 경상도 땅이었다. 이제 여기 부소봉에서 그 경상도 땅과 작별을 고하는 것이다.
부소봉에서 태백산 천제단으로 가는 길목에는 자작나무 군락지가 있다. 백화피라고도 불리는 자작나무의 흰 껍질이 흩날리는 눈발에 얼핏 구분이 잘 안되지만 자세히 보면 그리 크지않은 자작나무가 능선 양옆에 자생하고 있다. 목질이 단단한 자작나무는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만드는데 박달나무와 함께 쓰여졌다고 들었다. 언젠가 TV에서 본 백두산 원시림의 자작나무 숲, 그 흰색 수피가 그렇게 인상적이었는데 ...... 진부령까지 남한구간 끝내고 백두산으로 날아가야지.
자작나무 군락을 지나 조금 걸으니 천제단의 제일 남쪽 제단인 하단이 나타난다. 조금씩 태백산의 바람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일행들에게 여기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태백산 천왕단으로 오르자고 하고, 배낭에서 따뜻한 물을 꺼내 마신 후 얼굴에는 바라클라바로 완전복면을 한다. 자, 이제 그 유명한 태백산의 바람을 맞으러 태백산 천왕단으로 올라가보자.
(5) 태백산에 부는 바람
아니나 다를까? 태백산 천왕단에는 유명한 태백산 바람이 어김없이 눈보라와 함께 몰아치고 있다. 그 눈보라 속에 먼저온 산꾼들이 제를 지낼 준비를 하고 있다. 먼저 제를 지낸 나이든 아주머니들은 종종 걸음으로 하산을 서두르고 있고, 장군봉 쪽에서 이제 막 올라오는 사람도 보인다.
우리도 준비를 한다. 강추위속에 한배검 제단에 제주를 따르고, 일렬로 도열한다. 제용님이 준비해온 제문을 성호님이 읽고, 우리 모두 태백산신께 마음을 모아 기도한다. "유세차 2005년 12월 18일, 강마의 백두대간팀 일동은 머리 숙여 태백산신께 고하나이다. 지난 한 해동안 ........ "
한 해 동안의 무사산행에 대한 감사의 뜻을 태백산신께 고하고, 새해에도 무사산행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세 번 절한다.
작년과 금년 1월에 천제단에서 제를 올리고 부소봉과 문수봉을거쳐 당골로 하산하던 기억이 새롭다. 그 때의 기도가 효험이 있었으니, 내년 1월에 다시 태백산을 찾아볼까? 600만을 위한 기도가 800만으로 바뀌고, 내년에는 새로운 업의 새로운 목표를 위해 마음을 모아볼까? 지극정성으로 기도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열정을 다해 목표에 도전한다면 못이룰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눈보라 속에 더 이상 천왕단에 머무르기가 어렵다. 커다랗게 太白山이라고 새겨진 표지석 앞에서 눈보라속에 영제님의 디카로 한 컷하고는 장군봉을 거쳐 유일사 방향으로 갈길을 서두른다. 하산길에는 천년 주목(朱木)을 보호하려는 정성들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 인간의 노력이란 그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 ....... 매년 태백산을 찾지만 갈수록 주목 군락지는 줄어든다는 느낌이다.
유일사 쉼터 갈림길에서 사갈치를 향해 대간길을 잇는다. 화방재가 저 아래라 싶은데 내리막길이 여간 미끄러운 것이 아니다. 아이젠을 차고 내리막을 조심조심 걷는다. 천왕단에서 바쁜 걸음으로 1시간 이상 걸었을까? 울창한 잎갈나무 숲이 나타난다. 그 낙엽송의 잔해가 쌓인 눈과 뒤섞여 화방재를 향해 걷는 마무리 발걸음을 한결 편하게 해준다. 언제나 저 낙엽송처럼 곧게, 곧게 세상을 살았으면 ........
이런 바램속에 어둡기 일보직전에 화방재에 도착한다. 여름에 오면 이름 그대로 여기가 꽃의 천국, 꽃방석일까? 겨울에는 그 자리를 눈꽃이 대신하는 것일까?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여보, 무사히 화방재의 눈 꽃방석에 앉았으니 안심하세요" 아내 왈, "술 좀 ......" "응, 알았어. 기분좋게 마시라는 얘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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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에필로그] 청춘이란 ?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시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는 얘기를 새삼 느끼며 오늘 산행을 마감하고 싶다.
그 옛날 김창환이 노래 [청춘]을 발표했을 때 우리는 젊음을 발산하며 수없이 그 노래를 따라 부르곤 했었지요
나이 들면서 이따금씩 그 때를 생각하면 왠지 찡한 느낌이 들고, 새로움에 대한 무한한 도전과 불타오르던 정열로 가득찼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청춘이란 무엇일까요? 불혹을 넘어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이제 청춘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바쁘게 살아온 길에서 잠시 비켜서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산길이라도 걸으면서, 청춘이란 육신의 나이가 아닌 마음의 나이를 일컫는다는 것을 되새기며 새로운 도전을 꿈꾸고 싶어집니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시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강인한 의지,
뛰어난 상상력,
불타는 정열,
겁내지 않는 용맹심,
안이를 뿌리치는 모험심,
이러한 상태를 청춘이라 하는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 피부에 주름살이 지지만
정열를 잃을 때에는
영혼에 주름살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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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 산행기록]
05:03 서울 개포동역 출발
06:50 단양 휴게소(옥녀금반)
07:03 풍기 IC
08:30 오전약수
08:35 주실령(780m)
08:45 서벽
08:53 도래기재 도착
09:00 도래기재 출발
09:20 임도(1) - 금강소나무
10:00 임도(2) - 작은 금정골 갈림길
10:43 구룡산(1345.7m)
11:28 곰넘이재
12:00 신선봉(1300m)
13:00 차돌배기(1141m) 삼거리 - 석문동 갈림길
14:00 깃대배기봉(1371m) - 두리봉 갈림길
15:00 부소봉(1546.5m)
15:20 태백산 천왕단(1560.6m) - 송년산제(10분)
15:35 태백산 장군단(1566.7m)
16:10 유일사 쉼터 사거리
16:35 사갈치 신령각
16:50 화방재 도착
18:40 화방재 식당 출발
22:30 서울 대치동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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