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따라 길따라/* 백두대간

(29) 도래기재에는 호랑이가 ......

月波 2006. 1. 9. 23:21

 

[백두대간 29차] : 도래기재에는 호랑이가

 

 

1. 산행 개요

(1) 산행일시 : 2006년  1월  7일(토) -1월 8일(일) 무박 2일
(2) 산행구간 : 고치령-마구령-선달산-박달령-옥돌봉-도래기재

 

(3) 산행거리 : 도상 24.8Km, 실측 26.0 km(포항 셀파)

        도상: 고치령-8.0-마구령-5.9-늦은목이-1.9-선달산-9.0-도래기재 : 24.8 Km

        실측: 고치령-7.6-마구령-4.9-갈곶산-1.03-늦은목이-1.77-선달산

                         -5.1-박달령-3.0-옥돌봉-2.60-도래기재 : 26.0 Km (포항셀파 실측)


(4) 산행시간 : 총 9시간 50분

(5) 참가대원 : 강마 12명 대간돌이

     - 권오언,김성호,남시탁,박희용,송영기,신정호,오영제,이성원,장재업,정제용,홍명기,김길원

 

 

2. 산행 후기

 

 (1) 겨울 새벽의 고치령

 

겨울 속으로 깊숙히 빠져들고 싶은 소망을 안고 고치령으로 밤길을 떠난다. 지난 가을 낙엽송의 샛노란 침엽이 고치령을 물들이던 기억을 지우고, 달없는 밤의 어둠속에서 유난히 초롱초롱한 별빛을 가슴에 쓸어담으려 고치령으로 향한다. 사람의 왕래가 드문 산간오지의 고갯마루에서 한겨울의 밤빛깔을 느끼며 산길을 걷고 싶다. 그래서 고치령으로 간다.

 

영주 단산의 좌석리에서 연화동 입구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고치령을 오르는 숲길이 나타난다. 해발 770m의 고치령까지 가는 길은 포장과 비포장의 좁은도로를 번갈아가며 제법 어렵게 올라야 한다. 지난 가을, 소백산을 거쳐 고치령에서 하산하며 느꼈던 파스텔톤의 그 멋진 풍광은 찾을 수 없고  오르막 길에 쌓인 잔설과 빙판이 우리를 태운 봉고차를 힘들게 한다.

 

그 때는 이 길이 그렇게 정감적이었는데, 오늘은 참으로 어려운 길이다. 그 때는 가을의 느낌이 온통 우리를 감싸고 있었는데, 오늘은 겨울 추위가 우리를 움츠리게 한다. 그 때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어 날아갈듯이 숲길을 달려내려왔는데, 오늘은 차량이 못올라가면 어찌하나 하며 조마조마하게 고갯길을 오른다.

 

그러한 마음을 모아 고치령에 오르니 밤하늘의 별빛이 쏟아져내리고 있다. 지난 가을 하늘재 산장에서 보았던 바로 그 별빛이다. 저 별빛을 한 보자기 쓸어담아다가 내가 사는 아파트 베란다에 쏟아놓고 볼 수 없을까? 눈에, 머릿속에, 마음에 담아가 볼까? 이런 생각에 젖어있는데, 산행출발의 신호가 울린다. 고치령의 장승 앞에서 어둠 속에서 한 컷 !

 

단종과 금성대군의 슬픈 역사가 스며있는 산신각을 뒤로하고 도래기재까지의 26Km 대간길에 첫발을 딛는다.

 

 

고치령의 장승앞에서 출발을 앞두고

 

 

 (2) 마구령 가는 길

 

어둠속에 산길을 걷는다. 이마에 랜턴을 켯지만 어디 너른 숲을 다 밝힐 수 있으랴? 묵묵히 오르막을 치고, 능선을 걷는다. 오로지 걷는 일에만 몰두한다. 이 생각 저 생각을 버리고 걷기만 한다. 오로지 한 마음으로 걷는 일에만 매달린다.

 

아무 자취도 남기지 않는 발걸음으로 걸어야 한다고 했는데 ......  무엇을 구(求)하거나 버리거나 하는 마음이 아니라, 물 흐르듯이 인연대로 자신을 맡기고 걸어야 한다고 ........ 일체(一切)의 경계에 물들거나 집착(執着)에 빠지지 않고 ......

 

미내치를 지나 마구령(馬駒嶺, 820m)으로 이어지는 대간길은 소백산의 북쪽 끝자락으로 태백산으로 이어지는 허리역할을 한다. 소위 양백지간(兩白之間)인 셈이다. 적당히 남아 있는 눈이 어둠 속을 걷는 발걸음을 한결 편하게 한다. 거리표시목이 1Km마다 세워져 있어 어둠속을 걷는 불안을 씻어준다. 오직 걷는 일에만 몰입하면 된다.

 

"탐욕도 성냄도 내려놓고, 산처럼 물처럼 바람처럼 살라" 하던 나옹선사의 가르침(*)을 생각하며 걷는다. 이 세상에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데 무엇에 집착할 것인가?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쉬어라는 가르침이다. 산은 우뚝 서 있으면서도 쉬고, 물은 부지런히 흐르고 있으면서도 쉬는데 .......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때로는 깜깜하고 어두워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때가 많다. 깜깜한  산길에서  탐진치에 물든 마음을 내려놓고 오직 걷는 일에만 몰두하듯이, 세상살이하는 일도 한마음 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밝은 불빛을 찾을 수 있으리니 ...... 마음이 얽매임에서 벗어나고, 집착의 고리를 끊으면 .......

 

어느듯 마구령이다. 아직은 어두운 새벽이지만 곧 밝아올 아침이 기다려진다. 빨리 걸음을 재촉하면 갈곶산에서 황홀한 일출을 맞이할 수 있겠지? 오지여행을 하며 숲길 무성한 여름 마구령의 풍경을 노래했던 낭산 이기순(**) 선생님을 생각하며 마구령을 떠난다.

 

여름의 마구령 숲길

                           나뭇가지가 차량을 스치는 빽빽한 숲길,
                           가끔씩 수풀 사이로 내려다뵈는 까마득한 절벽,
                           저 아래 골짜기에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안개,
                           아침 햇살은 미처 숲을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는고나.

                                               --- [낭산 서재]에서 가져오다 ---

  (*) 청산은 나를 보고 - 고려 나옹선사

 

  청산은 나를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혜요아이무어)
  창공은 나를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혜요아이무구)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聊無愛而無惜兮    료무애이무석혜)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如水如風而終我    여수여풍이종아)

 

 (**) 낭산 이 기순 - 강마의 이 기순 님(박 재상님 부군)

 

 

(3) 갈곶산에서 맞는 아침

 

갈곶산(966m)은 영주 부석사 뒷산인 봉황산과 연결되는 산이다. 점점 밝아져오는 여명을 즐기며 갈곶산을 향해 가파른 길을오른다. 산이 구름을 탓하지 않고, 물이 그 흐름의 굴곡을 탓하지 않듯이 대간의 능선을 걷는 마음도 오르막의 높낮이를 가리지 앉는다. 발자국 하나하나에 마음의 점을 찍을 뿐이다.

 

갈수록 동쪽하늘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다. 새벽에 고치령의 하늘이 그렇게 맑더니만, 별빛이 눈부시도록 총총하더니만 아침 일출도 장관을 이룰 것같다. 아무리 버리고 털어도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는 것인가? 전망이 좋은 곳에서 아침의 첫 햇살을 가슴에 안아보려는 마음에 걸음이 빨라진다. 저기 저 능선 위에서 일출을 맞으러 ......

 

얼굴 피부가 노출되면 볼이 금새 얼어버릴듯한 강추위 속이지만 일출에 대한 기대로 마음은 달아오른다. 신갈나무 숲 사이로 타오르는 일출직전의 동쪽하늘은 먼 벌판에 들불이라도 붙은 것 같다. 저 불들의 향연에 내 마음도 태우고 싶다. 오랫만에 하는 무박산행의 즐거움이 여기에 있지 않던가?

 

갈곶산 직전에서  여명의 화려함을 맛보다

 

선두그룹이 갈곶산 직전의 봉우리(934봉) 정상에서 기다리고 있다. 이심전심, 무슨 뜻인지 서로가 잘 알고 있다. 후미그룹을 기다리면서 일출의 장관을 미리 그린다. 혹한에 얼어붙은 디카의 밧데리를 교체하고 동쪽하늘에 눈을 고정한다. 오랫동안 못만난 가족을 만나러 가는 마음이 이러했던가? 그리운 님을 만나러 먼 길을 달려가는 심정이 이러했던가?

 

일출은 순간이다. 많은 사람들의 기다림처럼 그리 오래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한 순간에 저 수평선 너머에서, 저 산 너머에서 본 모습을 불쑥 내민다. 영원히 변치않는 그 의연한 자태로 언제나 우리에게 성큼 다가온다. 그래서 그 모습은 알량한 카메라를 빌어 담아내기보다 마음에, 눈에 담아내는 것이 늘 생생한 것이 아닌가 싶다.

 

갈곶산에서 이어지는 봉황산 갈림길에서 부석사를 뒤로하고 북쪽으로 뻗은 내리막 대간길을 밟으면 늦은목이 고개가 나타난다. 지난 밤을 늦은 목이에서 보낸 산꾼들은 그제서야 텐트를 비집고 나와 아침을 맞는다. 그들은 새벽을 여는 사람들, 아침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기보다 숲속의 밤을 즐기는 사람들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햇살보다 별빛을 좋아하고, 밤새도록 숲의 향기를 맡는 일에 즐거움을 찾는지도 ........

 

갈곶산 너머로 아침해가 뜨오르고 있다

 

 

(4) 선달산(先達山)에서 생각하는 김삿갓

                   

늦은 목이(750m)에서 바라다보이는 선달산(1236m)의 위세는 제법이다. 밤새 산길을 걸어 이제 아침을 맞았는데, 몸상태나 의식은 이미 정오를 지나 오후로 달려가고 있는듯하다. 무박 산행의 즐거움이 별빛과 어둠속의 몰입과 찬란한 태양과 함께 맞는 일출에 있다면, 그 반대급부는 체력소모에 따르는 산행후반의 고통이다.

 

늦은목이와 선달산의 해발고도 차이가 480m에 이르니 어디에든지 재미를 붙이고, 그기에 몰입해야 즐겁고 쉽게 산 정상에 오를 수 있다. 가파른 산길에서 눈 앞의 오르막을 보기보다 바로 발밑만 보며 기를 모은다. 그러다가 눈길을 돌려 대간길 좌우의 계곡을 두루 살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선달산 오르는 왼쪽은 영월이요, 오른쪽은 영주 부석사다. 강원의 영월도, 영주의 부석사도 방랑시인 김 삿갓의 체취가 곳곳에 묻어있는 곳이다. 김 삿갓의 흔적을 마음 속으로 더듬으며 가파른 오르막을 오른다.

 

늦은목이에서 깨어나는 아침을 맞는다

 

강원도 영월의 깊은 두메산골인 선달산 기슭에 김삿갓이 한때 정착해 살기도 하고, 세상을 떠돌며 방랑시를 읊다가 마지막엔 주검으로 돌아와  영원히 잠든 그의 무덤이 있다. 작년 동강 마라톤후에 점심식사겸 잠시 들러 시간을 보냈던 김삿갓 계곡이 바로 그곳이다.

 

김삿갓은 그의 나이 6세때 홍경래의 난에 연루된 조부의 일로 폐족을 당하고 황해도,경기도,강원도 일원을 모친과 함께 전전하다가 영월에 정착했다고 한다. 조부의 행적을 모르고 살았던 김삿갓이 영월도호부 백일장에서 조부를 지탄한 글을 써 조부를 욕되게 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하늘도 용서치 못할 죄를 지었다는 참담한 심정으로 처자식도 버리고 평생을 떠돌며 살았다고 한다.

 

기구한 운명의 신분을 숨기고 전국을 두루 방랑하며 살다간 김삿갓이, 영월에서 지척인 백두대간 넘어 남쪽 기슭에 자리잡은 부석사를 백발이 다 되어서야 처음 찾아갔다 하니 예나 지금이나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사실인가 보다.(부석사에는 김삿갓의 시 한수가 나무현판에 새겨져 걸려있다) 은행잎이 노랗게 입구를 물들이는 어느 가을 날 배흘림기둥이 있어 한국의 미가 살아넘친다는 부석사를 다시 찾고 싶다.

 

선달산에는 제법 눈이 쌓여있다. 지난 12월에 전라도와 충청도 지방에 폭설이 내려 많은 피해가 있었지만 여기 소백과 태백의 산줄기에는 그리 많은 눈이 내리지 않아 눈에 덮힌 산속의 절경을 제대로 느낄 수 없어 아쉽다. 김 삿갓이 설경을 읊었던 한시 한 수가 생각난다.

 

    天皇崩乎人皇崩 (천황붕호인황붕) 옥황상제 죽었는가, 나라 임금 죽었는가

    萬樹靑山皆被服 (만수청산개피복) 천하의 산과 나무들이 상복을 입었구나

    明月若使陽來弔 (명월약사양래조) 햇님이 소식을 듣고 만약 문상을 오면

    家家첨前淚滴滴 (가가첨전루적적) 집집마다 처마끝에 눈물을 흘리리라

 

하얀 눈이 소리없이 소복히 쌓여 산천초목이 하얗게 변한 모습을 보고, 김삿갓은 마치  임금이 돌아가시어 흰 상복을 입은 것같다고 비유하고 있다. 눈이 온 후 햇살이 비치면 처마끝에 녹아내릴 눈의 모습을 마치 눈물이 흐르는 양 포근하게 표현하고 있다. 가파른 선달산의 정상도 김삿갓과 함께하니 어느듯 발아래다.

 

선달산 정상에서 햇살을 거스르며

 

 

(5) 양지바른 언덕의 아점심(?)

 

세상에 별식이란 따로없다는 생각을 산을 걸으면서 종종 한다. 오늘 산행길에도 훌륭한 별식을 만난다. 선달산을 지나 어느 양지바른 언덕에서 모두 배낭을 풀고 점심식사를 한다. 아니 아직 시간이 오전 10시도 안되었으니 아침이다. 그러나 아침을 새벽 1시 30분에 먹었으니 [아점]이라고 해두자.

 

지난 여름 언제부터인가 우리 대간돌이들은 한 사람, 두 사람씩 점심으로 도시락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김밥, 떡, 쏘세지, 빵 등 간이식품으로 해결하던 점심이 한 둘씩 김치와 김과 찰밥으로 바뀌어 갔다. 산에서 김치에 곁들여 김에 싸먹는 찰밥이 나로서는 최고다. 산길을 떠나는 나에게 아내가 챙겨주는 이 도시락은 나의 즐거움이자, 아내의 기쁨이다.

 

지난 12월 산행에는 날씨가 추우니 보온 도시락이 등장했다. 오늘 보니 대부분 보온 도시락을 준비해왔다. 갈수록 산에 익숙해질 뿐 아니라 먹는 일에도 요령이 생겨간다. 오늘은 무박 산행이니 도시락을 2개나 준비해 하나를 이미 새벽 출발에 앞서 휴게소에서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뚝딱 해치웠다.

 

그런데, 오늘 도시락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권팀장이다. 보온물통에 뜨거운 국물을 넣어와 훌훌 밥을 말아먹고 있으니 ....... 어느 님의 말씀, "아! 아내가 처음으로 도시락도 싸주고, 출발지(대치동)까지 데려다주기까지 했는데 ...... 권 팀장이 나를 또 좌절시켰어! " 님이시여, 좌절하지 마소서. 아내와 정분쌓기를 할 수 있는 길이, 그 길에 한 걸음 더 나아갈 방안이 생겼다고 생각하소서.

 

추위속에서도 즐거운 아점을 즐기고 박달령으로 하산을 서두르는데도 후미의 김 길원님이 오지 않아 애를 태우다가 선두그룹이 먼저 출발하고, 영원한 산친구 성호님이 남아 후미를 기다린다. 다행히 잠시 후에 후미의 무전이 날아드니, 박달령으로 내려서는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양지바른 선달산 능선에서의 아점, 먹는 것은 늘 즐겁다

 

 

(6) 박달령에서 옥돌봉으로

 

박달령(1000m)은 옛날 수없는 보부상들이 넘나들었던 고개답게 꽤 넓고, 쉬기에 편안함을 안겨준다. 선두그룹이 도착해 간식을 먹으면서 다음에 오를 옥돌봉을 바라보고 있다. 모두들 조금씩 지쳐가고 있나보다. 눈앞에 우뚝 가로막고 서있는 옥돌봉의 위세가 부담스러운 것을 보면 .....

 

박달령에는 푸른 하늘과 하얀 눈의 절묘한 대비를 이루는 언덕에 산신각 하나가 우뚝 서있다. 백두대간을 하면서, 산신각과 성황당을 종종 만나는데 소백산권과 태백산권에 유난히 많다. 소백과태백의 양백 고개마루에는 어김없이 산신각이 있다. 남 대장의 얘기대로 소백과 태백의 산세가 험하고 기도의 효험이 있어 그런 것인지 ......

 

박달령에 서 있는 산신각, 백설과 창공의 조화가 멋있다

 

이제 마지막 봉우리 하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 산행거리 26Km중에서 남은거리는 5.5Km 정도에 불과하지만, 마지막 옥돌봉은 그 높이가 1242m로 오늘 대간 마루금중 가장 높은 곳이다. 게다가 밤새워 8시간 이상 걸어왔으니 모두들 지칠만하다. 박달령에서 후미를 기다리며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옥돌봉으로 향한다.

 

산길은 생각보다 가파르지 않지만 끊임없이 오르막 길이다. 고개들어 앞을 쳐다보면 도저히 걸을 수가 없을 것같다. 선달산을 오를 때처럼 묵묵히 걷기로 한다. 오로지 발밑만 쳐다보면서 걷는다. 무념무상으로 걸으려고 애쓴다. 어렵고 쉽고의 구분이나 높고 낮음의 분간을 마음속에서 지우려하며 마루금을 걷는다.

 

어쩌면 오늘 걸은 산길의 대부분을 이런 마음으로 걸었지 싶다. 어둠속에서 몰입하고, 온몸으로 추위를 견뎌내고, 오로지 한 생각으로 가파른 오르막을 걷고, 그러면서 순간순간 나타나는 얽매임의 고리를 끊어가면서 .......  박달령에서 옥돌봉을 오르는 동안 한 발자국도 멈추지 않고 걸었다. 발아래만 쳐다보며 오로지 한 생각으로 쉬지않고 천천히 걸었다. 다음 산행도 이렇게 무념무상, 걷고싶다.

 

눈속에 옥돌봉 정상석만 외롭게 서있다

 

 

(7) 도래기재에는 호랑이가 .....

 

옥돌봉에서 전후좌우를 둘러본다. 지나온 박달령 남쪽의 오전약수 계곡이 눈에 들어오고, 주실령도 바로 눈아래다. 김 삿갓의 묘가 잇는 영월의 어둔마을 언저리도 가늠해본다. 저 북쪽으로 태백과 함백산으로 이어지는 대간 줄기가 도열하듯 자리하고 있다.

 

오늘 구간에 앞서 지난 12월에 미리 도래기재를 거쳐 태백산 천제단을 올랐고, 그 보다 앞서 작년 2월에는 화방재에서 함백산을 넘어 싸리재까지 심설산행을 미리 했었다. 그러니, 오늘 저 옥돌봉 아래 도래기재에 발걸음이 이르면, 우리 강마 백두대간 팀의 백두대간 종주가 지리산에서 함백산 싸리재까지 이어진 셈이된다. 물론 개인적으로 펑크낸 두 구간을 메꾸어야 하지만 .......

 

2년여동안 백두대간 길이 도래기재를 앞두고 새삼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 백두대간 길중에서 가장 험하고 오지인 곳이 도래기재 전후의 구간이 아닌가! 강희산 시인의 말처럼 도래기재에는 호랑이가 있을까? 아니 있었을까? 내 마음 속에는 백두대간 길을 지켜주는 호랑이가 여기 도래기재 내려서는 길에 이미 자리하고 있다.

 

도래기재 가는 길, (마음의) 호랑이 발자국이 가득하다

 

호랑이를 생각하며 도래기재(770m)로 내려서는 길에는 제법 눈이 쌓여있다. 그 길을 혼자 걷는다. 선두 그룹은 먼저 보내고, 후미그룹도 뒤로 따돌린채 적당한 거리를 두고 눈길을 혼자 걷는다. 혼자여서 생각하기도 좋고 걷기도 편하다.

 

삶은 늘 혼자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가족, 이웃, 동료와 몸을 맞대고 마음을 나누며 살아가지만, 결국은 혼자서 자기의 삶을 꾸려가고 혼자서 자기의 길을 개척해간다. 본인이외의 사람은 어디까지나 주변인에 불과하다. 그들과 나누는 마음이 자기의 길에 밑거름이 되지만, 결국은 자기의 삶은 자기가 책임지고 꾸려가는 것이다.

 

도래기재로 내려서는 눈길에서 혼자의 발자국을 만들어간다. 한걸음 한걸음 생각으로, 마음으로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며 눈길을 걷는다. 그 길에는 500년을 버텨온 철쭉의 삶도있고, 하늘 향해 쭉쭉 뻗은 춘양목의 삶도 있다. 그 나무들의 삶도 수십, 수백년동안 비바람을 겪으며 스스로의 삶을, 스스로가 가꾸어 왔으니 ......

 

도래기재 내려서는 숲길의 수령 500년이 넘었다는 철쭉나무

 

 

[에필로그]

 

서울로 상경하는 길에 소백산 아래 단양 장림의 소백산 술도가에 다시 들렀다. 7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술도가답게 그 동동주 맛은 꿀맛이다. 언제 그 곳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정산, 백두대간 끝나면, 백두대간 주변의 하이라이트 5를 골라 재탕해볼까? 그기에 장림 술도가와 문경 봉암사는 반드시 포함시켜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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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 산행기록]

 

  11:05  서울 개포동역 출발

  01:00   단양 휴게소(60분 야식및 휴식)

  02:30  풍기 IC

  03:05  고치령

  03:30 고치령 출발

 

  06:00  마구령

  07:35  일출(갈곶산 직전 봉우리)

  08:04  갈곶산(966m)

  08:19  늦은 목이(11분 휴식)

 

  09:19   선달산

  11:12   박달령(25분 휴식)

  12:40   옥돌봉(1242m)

 

  13:30   도래기재 도착(후미 도착 대기)

  14:30   도래기재 출발

 

  16:00   장림 소백산 술도가(식당, 식사및 뒷풀이)

  18:00   장림 출발

  20:20   서울 대치동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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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iling Together / Steve Barakatt의 Album "Love Affair" 중에서 

 


 


1973년 5월 17일 캐나다의 퀘벡에서 태어난 피아니스트 스티브 바라캇은 팝 인스트루멘탈 음악의 샛별로서 캐나다와  일본 에서는 90년대 초부터 많은 인기를 얻어온 아티스트이다.

 

그는 피아노를 좋아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네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10세때부터 작곡을 하기시작했다. 14세때에 데뷔앨범인 Double Joie 를 발표하였고, 두 번째 앨범에서부터 많은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2005년 봄에 우리나라에도 다녀갔지요. 3월 31일과 4월 1일에 이화여대 강당에서 있었던 내한공연이 성황을 이루었죠. 뉴에이지 피아니스트로서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발휘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