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37차] 쇠나드리 가는 들꽃세상에서
1. 산행개요
(1) 산행일시 : 2006년 4월 29일(토) - 4월 30일(일) 1박 2일 산행중 1일차
(2) 산행구간 : 구룡령-갈전곡봉-왕승골 사거리-옛조침령-조침령-(쇠나드리 민박)
(3) 산행거리 : 18.75Km(도상), 21.25km(실측)
-도상(18.75km) : 구룡령-3.5-갈전곡봉-4.25-968.1봉-5.0-1060봉-6.0-조침령
-실측(21.25Km) : 구룡령-4.2-갈전곡봉-12.4-쇠나드리-4.65-조침령
(4) 산행시간 : 7시간 35분(휴식및 식사 1시간 38분 포함)
(5) 참가대원 : 강마 대간돌이 14명
- 권오언,김길원,남시탁,문주섭,박희용,송영기,오영제,이상호,이성원,장재업,정제용,지용,진성박,홍명기
2. 산행후기
(1) 산속의 밤에 대한 기대
1박 2일의 일정으로 구룡령-조침령-한계령 구간의 45Km 백두대간 장정에 나선다. 그동안 36차례의 백두대간 산행을 하면서 지리산에서 구룡령까지 올라왔다. 이제 남은 구간은 4구간, 계획대로라면 6월이면 진부령에 도착한다.
그 동안 산속에서 하루 밤을 자면서 이틀에 걸친 산행을 한 번도 못했다. 진부령에 가기 전에 그 "하룻밤" 소망이 오늘 저녁 이루어지리라. 오늘 하루를 걸어 조침령까지 가고, 그 아래 쇠나드리에서 하루 밤 묵으면서 별을 헤아려 보리라. 그리고 내일은 다시 점봉산과 만물상 암릉을 넘어 한계령까지 걸어보리라.
2년 4개월에 걸쳐 동고동락해온 강마의 산친구들과 세간의 얽매임에서 벗어나 하늘과 산이 맞닿은 산골마을, 쇠나드리에서 밤새워가며 대간의 추억을 만들어 보리라. 그기에는 너도 없고 나도 없이 오직 [우리]만 있는 그런 시간이 되리라.
이런 기대를 안고 새벽 안개가 피어오르는 팔당의 양수리를 지나 구룡령으로 향한다. 이제 고속도로를 이용해온 구간은 끝인 셈이다. 홍천을 지나면서 길을 놓친 운전기사 덕분(?)에 굽이굽이 방태산 자락을 돌아넘고, 그 깊숙한 천연의 계곡을 맛보는 행운을 누린다. 버스가 하는 알바에 짜증이 날 법도 하지만, 예상하지 않았던 즐거움이 더 크기에 마음은 여유롭다. 삶이 원래 이런 것이겠지 ........
(2) 잠에서 깨어난 한계령풀
56번 국도를 따라가다가 소위 3재불입지처(三災不入之處)라는 3둔 4가리중 3둔(살둔, 달둔, 월둔)마을 입구를 지나면 구룡령으로 오르는 마지막 비탈이 나타난다. 이번에도 3둔은 아쉬운 마음으로 그냥 지나치고 ....... 다음에 다시 찾는 백두대간 Best 10에 기대를 걸어볼까? 아니더라도 다시 이 방태산 자락은 다시 찾아 봐야지.
굽이굽이를 돌아 드디어 구룡령에 도착한다(08:40). 빨간모자 아저씨 나타날까봐 걸음아 날 살려라 산길에 접어드는 남대장, 그러나 우리는 묵묵히 사진 한 장 남기고 여유를 부린다. 옛 구룡령으로 오르는 길에는 잠에서 막 깨어난 야생화가 반갑게 맞아준다. 그 중에는 희귀종인 한계령풀도 보인다. 이런 행운을 산행 들머리에서 만나다니, 오늘 산행의 예감이 좋다.
구룡령 산행 들머리에서 만난 한계령 풀
1121봉에서 구룡령에서 도망치듯 달려온 선두와 시작부터 들꽃에 빠진 후미가 모두 모여 기념사진을 찍는다(09:15). 이제 앞뒤로 나뉘어 달리면 조침령에 갈때까지 모두 모이기는 힘들겠지 ...... 치밭골령을 지나고, 갈전곡봉(葛田谷峰, 1204m)에 오른다(10:00). 오늘 산행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에 올랐으니 이제는 200m 전후의 고도를 오르내리며 걷고 달리는 일만 남았다.
갈전(葛田), 이름대로라면 칡나무 덩쿨이 즐비할텐데 봄을 준비하는신갈나무 숲만 무성하다. 그 숲길에는 얼레지, 노랑 제비꽃을 비롯한 들꽃들이 곳곳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다. 갈전곡봉 정상에서 남서쪽 가칠봉, 응복산, 구룡덕봉으로 뻗어가는 산능선을 뒤로하고 왕승골 삼거리로 내려선다(11:06).
왕승골 삼거리에서 먹는 이른 점심은 그 어느 때보다 맛있다. 산아래 계곡을 바라보며 따뜻한 양지녘에서 펼쳐든 도시락에 노란 물(?) 한 잔을 추가하니 신선이 따로없다. 왼쪽 아래로는 3둔 4가리 중의 아침가리골이 눈부시게 펼쳐진다.
선두,후미가 모여 찍은 1121봉의 모습, 좌우로 정렬 양호!
(3) 아침가리(朝耕)만 있어도
아침갈이 계곡을 내려다보며 산길을 다시 걷는다(11:56). 여기저기 야생화들이 줄을 서서 반겨준다. 산이 첩첩이 어깨를 맞대고, 그 사이로 맑은 물줄기가 실버들처럼 흐르는 곳이 아침가리골이다.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물안개가 자욱히 산허리를 감싸는 깊은 산간이다. 아침갈이, 아침갈이라 ...... 아침 나절이면 쟁기질이 끝날만한 계곡가의 작은 땅덩어리라는 뜻이 담겨있다.
아침가리골, 이 보다 더 멋진 우리 말이 있을까? 굳이 어려운 한자말을 써서 아침가리골을 조경동(朝耕洞)이라고 하니 왠지 귀에 서투르다. 이해는 가지만 그 상큼한 맛이 사라진다. 심산유곡(深山幽谷), 사람이 정(情) 붙이고 밥 굶지 않고 살만하면 이보다 더 편안한 곳이 있을까? 그러기엔 아침나절에 쟁기로 갈아엎고 농사지을만한 작은 땅이면 족하지 않겠는가? 그 곳이 아침가리(朝耕) 골이다.
아침가리 정도의 땅이면 욕심을 더 낼 수도 없거니와 그 속에서 안분지족(安分之足)하니 욕심을 더 낼일도 없다. 아침나절 쟁기질하여 씨뿌려놓고 계곡물에 발 담그면 한 해가 흡족하고, 오후나절 앞산이 정원인 양 바라보고 글 읽으면 맑은 계곡에 피어나는 연기속에 저녘을 맞으리라. 풀벌레 울음소리에 쏟아져 내리는 별빛이 밤새도록 가슴을 적시는 그 곳, 아침가리 .......
子曰(자왈) 飯疏食(반소사)에 飮水(음수)하고 曲肱而枕之(곡굉이침지)라도 樂亦在其中矣(낙역재기중)라 했거늘........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 베고 누웠어도 즐거움이 그 가운데 있다 "라는 공자님의 말씀이지요. font>아침가리기골이 바로 그런 곳이지 싶다.
아침갈이골로 이어지는 양지바른 안부에서
왼쪽으로 뻗어난 작은 능선의 갈림길을 지나니 이번에는 연가리골이 나타난다(12:58). 여기도 4가리중의 하나다. 방태산을 사이에 두고 스쳐지나온 적가리, 명지거리(가리)가 여기보다 어디에 비유한들 모자람이 있겠는가? 모두가 10승지요, 삼재불입지처이니 ....... 굳이 우열을 따지고 양극을 논하기 좋아하는 중생의 삶이 호(好), 불호(不好)를 가리길 좋아하는 것이거늘 ......
오늘은 뜻도 제대로 모르는 정겨운 우리 말 골짜기 이름을 되새김질하며 대간능선을 걷는다. 가르미골, 육노루골, 가리왕생이골, 골뱅이골, 버드나무골, 연가리골, 아침가리골 .......... 저 멀리 보이는 점봉산 앞의 곰배령은 또 무슨 의미를 담고 있을까?
이런저런 상념(想念)에 젖어 발길을 옮긴다. 그 길에도 수없는 들꽃들이 천상의 화원(花園)을 이루고 있다. 얼레지, 노루귀, 현호색, 노랑 제비꽃,괭이눈, 생강나무꽃이 그들이다. 아무래도 이번에 만난 야생화 이야기는 속편으로 따로 쓰야할까 보다. 정산(正山), 인생이란 한떨기 야생화와 같다고? 그래, 그래. 맞다, 맞아 !.
막 피어나는 노루귀의 해맑은 모습
(4) 새들도 자고가는 조침령
연가리골 샘터를 지나니 가을이면 단풍이 그 모습을 한껏 뽐내는 단풍나무 군락이 나타난다. 아직은 나뭇잎의 잎을 틔우려는 모습을 간신히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만당시인은 서리맞은 단풍이 봄꽃보다 멋있다고 했던가? 누구는 이 길을 가을에 걸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초가을 단풍이 �게 물드는 때에 이 능선을 걸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조금 더 길을 걸으니 저 아래 쇠나드리 마을이 보인다(15:03). 오늘 저녁 하루 밤을 보낼 곳이다. 옛 조침령에서 쇠나드리 산장에 전화를 걸어 저녁 식사를 준비시킨다. 쇠나드리의 밤을 준비하는 것이다. 옛날 인제에서 양양을 넘나들던 고개, 옛 조침령에는 옛길의 흔적이 뚜렷하다. 얼마가지 않아 나타난 신 조침령, 오늘 산행은 여기까지이다.(16:20)
쇠나드리(바람불이)로 가는 안부에서
조침령(鳥寢嶺), 새도 자고 넘는다는 고개다. 새 조침령에는 4륜구동의 차량이 오르내릴 정도로 길이 닦여있는데, 그 아래로는 터널 공사가 한창이다. 지난 겨울 지나온 건의령에도 대간을 관통하는 터널 굴착공사가 한창이었다. 건의령이나 조침령 모두 마지막 남아있는 오지 산골인데, 저 터널공사가 완공되면 방태산 자락의 3둔 4가리와 인제 내린천 깊숙한 곳의 천연경관은 하루 아침에 시골 장터로 바뀌지 않을까 걱정이다.
쇠나드리 산장의 조명호씨가 연락을 받고 4륜구동을 끌고 조침령까지 올라왔다. 산이 좋아 산을 다녔고, 그러다가 산을 좋아하던 아내를 산에서 만나, 아들딸 낳고 이제 도회를 떠나 산골에 살면서, 우리 같이 지나가는 산꾼들의 산친구가 되어주는 조명호, 장은경씨 부부, 오늘은 그들의 보금자리에서 하루밤을 신세지기로 한다.
조침령에서 산장까지 조명호씨의 차량으로 이동을 하는데 길가에 산버들이 이제 막 피어나고 있다. 다른 한편에는 지난 가을에 쇠나드리의 바람을 견딘 억새풀이 길가에서 쓸쓸한 웃음을 보내고 있다. 다가오는 봄기운에 사라져갈 자신의 처지를 안터까워 하면서 .......
쇠나드리 조명호씨의 황토벽돌집
(5) 쇠나드리에서 만난 산사람
쇠나드리, 바람부리라고도 불리는 곳이다. 소도 날려버리는 광풍(狂風)이 부는 곳이란다. 그 미친바람을 쓰다듬고 보듬으며 쇠나드리 사람들은 살아야했을 것이다. 때로는 세상살이에 얽힌 한을 그 바람에 날려보내며 자연에 순응하는 법을 배워왔는지도 모르겠다.
늦은 오후 우리가 찾은 쇠나드리는 옛날처럼 민가도 거의 없고, 조명호, 장은경 부부가 깊은 산의 초목과 이웃하며 대간돌이들의 휴식처를 만들어주고 있다. 쇠나드리의 그 미친 바람은 오늘따라 납작 엎드려 있고, 싱그러운 숲향만이 우리를 감싸준다.
쇠나드리로 부는 그 억새바람 속에 가난에 찌들어도 열목어처럼 순박하게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 또 억새꽃이 지고 눈꽃이 피면 창 들고 멧돼지 잡으러 다니던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밤새워 다시 들려줄 사람은 어디에도 안보인다. 억새가 절정을 이루는 10월의 어느 날 다시 그 사람들을 다시 찾아볼까? 정말 별빛이 모래처럼 흐르는 겨울 밤에 여기에 다시 들러 장작불 한 번 피워볼까?
대신에 대간돌이들의 2년 4개월에 걸친 지난 여정의 이야기, 미치도록 산을 좋아하며 그 품속에서 둥지 틀고 살아가는 부부의 이야기가 위스키와 소주에 어울려 노래가락으로 변한다. 지금껏 그렇게 많은 노래소리를 들어본 적도 불러본 적도 없을 정도로 ...... 오래도록 잊지못할 추억이지만 한편으로 아침에 일어나니 이미 잊어버린 기억이 더 많으니, 이거야 정말 아쉬운건지 다행인지 ......
다음날 아침 쇠나드리를 떠나기 전 조명호씨 부부와 함께
------------------------------------------------------------------------------------
[산행후기 부록] : 아름다운 것이 어디 꽃뿐이랴?
이번 산행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야생화를 만났습니다. 아침나절에 이슬을 머금고 피어나는 들꽃들의 청초하면서도 고혹적인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가슴을 촉촉히 적셔준 들꽃들의 모습을 정리해 봅니다.
(1) 아름다운 것이 꽃 뿐이랴?
이 봄에 아름다운 것이 어디 꽃 뿐이겠는가? 시샘하거나 견주는 마음없이 타고난 성품대로 자신의 모습을 가꿀 때, 사람의 마음도 꽃보다 더 아름다워질테니까.
꽃들은 자신을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돌배나무는 돌배나무로 서 있을 뿐 배나무를 닮으려고 하지 않는다. 산자두도 산자두로서 만족할 따름 자두의 흉내를 내려고 하지 않는다. 벼랑 위에 피어 있는 진달래 또한 산자락의 진달래를 시샘하거나 부러워하지 않는다. 견주지 않고 자신의 특성대로 제모습을 지닐 때 꽃은 그 꽃답게 순수하게 존재할 수 있다. - <법정스님>
한계령풀
현호색
괭이눈
얼레지
(2) 인생은 야생화와 같다?
인생은 한 떨기 야생화와 같다고 했던가? 그렇다. 거센 풍우(風雨)에 시달리면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들꽃처럼 우리네 삶도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라면...... 굳이 최재형 시인의 표현을 빌지 않더라도, 꽃은 아무리 외딴 산골에 홀로 피어 있어도 외로움을 타지 않고 늘 웃고 있다. 사람들은 모이면 수시로 다투고, 혼자 지내면 금방 외로워 못견디는데 .....
누구도 보아주는 이 없고 아무도 칭찬하는 이 없어도, 꽃은 이웃과 서로 웃으며 피고 진다. 외로움도, 시샘도, 마음 상함도 없이 이웃과 어울리며 산다. 산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저 꽃처럼 살도록 하라. 향기 가득히 담은 너 자신의 꽃을 피우도록 하라. 내가 그대를 늘 지켜보고, 감싸주고 있지않느냐?
노루귀(1)
노루귀(2)
노루귀(3)
꿩의 바람
(3) 순간순간을 꽃처럼
우리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기약할 수 없는 것이다. 내일 일을 누가 아는가. 이 다음 순간을 누가 아는가. 순간순간을 꽃처럼 새롭게 피어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매 순간을 자기 영혼을 가꾸는 일에, 자기 영혼을 맑히는 일에 쓸 수 있어야 한다.
- 법정스님,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중에서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자신의 과거가 되고, 현재가 되고, 미래가 되는 것이겠지요.
매 순간 꽃처럼 새롭게 피어나면, 우리의 영혼이 한없이 맑아지겠지요.
순간순간이 녹슬지 않으면, 삶 전체도 녹슬지 않을 테니까요.
노랑제비꽃
개별꽃
생강나무
괴불주머니
-------------------------------------------------------------------------------------
[세부 산행기록]
04:45 서울 대치동역 출발
05:45 하남 휴게소 출발
08:40 구룡령 도착
08:45 구룡령(1013m) 출발
09:04 1100봉
09:15 1121봉(6분 휴식, 단체사진)
09:33 1066봉
09:49 치밭골령
10:00 갈전곡봉(6분 휴식)
10:24 무명봉(3분 휴식, 표지기 많음)
11:06 왕승골 사거리(중식및 휴식 50분)
11:56 왕승골 사거리 출발
12:23 968봉
12:42 헬기장
12:58 연가리골 샘터 갈림길
13:22 얼레지 군락
13:46 1061봉
15:03 옛 조침령(진동리 쇠나드리 마을 보임)
15:13 쇠나드리(삼거리 이정표, 33분 휴식)
16:20 조침령 도착
16:40 쇠나드리 민박집 도착
------------------------------------------------------------------------------------
...........별...바람...햇살...그리고...사랑.............
김종국
-----------------------------------------------------------------------------------
'산따라 길따라 > * 백두대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39) 대청과 공룡을 넘어 미시령으로 (0) | 2006.05.22 |
---|---|
(38) 그리운 설악의 품으로 들다 (0) | 2006.05.06 |
(19) 꽃이 진들 무에 그리 슬퍼랴? (0) | 2006.04.24 |
(36) 靈氣어린 五臺聖地를 지나 (0) | 2006.04.16 |
(35)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 (0) | 2006.04.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