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39차] 대청과 공룡을 넘어 미시령으로
1. 산행개요
(1) 산행일시 : 2006년 5월 20일(토) - 5월 21일(일) 무박 2일
(2) 산행구간 : 한계령-끝청-중청-대청봉-희운각-공룡능선-마등령-저항령-황철봉-미시령
(3) 산행거리 : 22.0Km(도상), 23.73km(실측)
-도상(22.00km) : 한계령-7.5-대청봉-6.5-마등령-3.0-저항령-5.0-미시령
-실측(23.73Km) : 한계령-2.33-서북릉 삼거리-4.05-끝청-1.75-대청봉-1.90-희운각 :10.03Km
-3.10-1275봉-2.1-마등령-4.35-황철봉-1.65-1319봉-2.5-미시령 :13.70Km
(4) 산행시간 : 15시간 28분(휴식및 식사 3시간 13분 포함)
(5) 참가대원 : 40명(대간종주팀 11명, 공룡능선팀 12명, 천불동팀 17명)
-대간팀(11명):권오언,김길원,김성호,박희용,송영기,오영제,이상호,이성원,장재업,정제용,홍명기
2. 산행후기
(1) 아, 강마의 가족들이여!
새벽 2시를 조금 넘긴 시각, 어둠속에 한계령에 발을 내딛는다. 그믐을 앞둔 하현달이 하늘에 걸려 있지만 길을 밝히기에는 어림도 없다. 검은 밤의 가운데 서 있어 한치 앞도 보이질 않아 어디로 가야 하나 어디에 있을까 둘러봐도 소용없겠지 ....... 김광석이 부르는 "일어나"의 음률이 귓가를 스친다.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번 해보는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백두대간 39차는 이렇게 새벽을 깨우며 한계령에서 시작된다(02:27). 오늘은 마음이 포근하기 그지없다. 마지막 진부령 구간을 앞둔 산행, 백두대간의 심장부 설악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산행이다. 그기에다가, 우리 대간돌이들을 2년이 넘도록 성원해 온 강마의 달리기 가족들이 30여명 가까이 동참해 설악산행을 함께하니 가슴이 뭉클하다. 그저 감사하고 눈물이 난다.
한계령에서 함께 출발해 대청봉, 공룡능선, 마등령, 황철봉을 거쳐 미시령까지 가는 대간돌이들이 앞장을 서고, 30명 가까운 강마회원이 뒤따른다. 그들은 대청봉, 공룡능선을 거쳐 마등령에서 비선대로 하산할 팀과, 대청봉, 희운각, 천불동을 거쳐 비선대로 하산할 팀이 뭉쳐있다. 모쪼록 모두 설악의 진경(眞景)을 가슴에 깊이 담았으면........
한계령에서 서북능 갈림길까지 2.3Km는 숨이 멎을 정도의 된비알이다. 다행히 간간이 소슬바람이 불어와 이마에 젖은 땀을 씻어준다. 늘 그랬듯이 어둠속에 걷는 대간길은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할 수 있어 좋다. 그것도 가파른 길을 쉬지않고 오르니 더욱 집중이 된다. 1시간만에 귀떼기청봉(靑峰)으로 가는 갈림길에 오른다(03:27).
설악의 솜다리꽃, 흔히 에델바이스라 부르지요
가쁜 숨이 절로 나오는 된비알의 청봉(靑峰) 가는 길
땀에 젖은 몸이 산들바람을 원하는 그 곳
벼랑위 돌틈에 내린 흰 별 하나
그대는 솜다리
(2) 중청(中靑)에서 맞는 일출
서북능 삼거리에 오르니 길은 제법 편안해진다. 조금씩 밝아오는 설악의 새벽을 즐기며 끝청을 향해 걷는다. 길을 돌아보니 남설악의 만물상이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길가에는 눈에 익은 야생화들이 줄지어 반겨준다. 쇠나드리 가는 길에서 자주 만났던 꽃들이다. 그러나, 더 높은지대에서 바람을 견디며 피어난 이 꽃들이 더 작고 훨씬 앙증맞다.
끝청에 오르니(05:00), 사방으로 조망이 가능할 정도로 날이 밝아져오고, 키작은 진달래와 철쭉이 웃으며 반겨준다. 오늘 일출이 5시 19분이라 했으니, 대청(大靑)의 일출을 기대하며 길을 서두른다. 그러나, 하늘에 구름이 걷히지 않으니 ...... 지리산 천왕봉의 일출처럼 3대의 덕을 쌓아야 하는걸까?
중청 대피소로 내려서는데(05:25), 구름 사이로 한 줄기 �은 빛이 강렬하게 솟아오르고 있다. 이리저리 디카를 눌러대지만 신통한 사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 정도로 만족해야지. 대청봉(大靑峰)을 향해 오르는데, 정상에서 일출을 기다렸던 산행객들이 줄지어 하산하고 있다. 정상에서는 빨리 오라고 선두그룹의 무전이 날아들고 ........
중청대피소에서 만난 설악의 일출
대청봉(1708m)에 오르니 오색에서 올라오는 등산객들이 줄을 잇고 있다. 산불방지로 입산이 금지되었던 대청봉에, 길이 열린 첫번째 주말이라는 실감이 난다. 북쪽으로 공룡능선, 동북쪽 아래로 죽음의 계곡에서 시작하는 천불동 계곡, 서북쪽으로 용아장성이 한 눈에 들어온다.
좀 더 맑은 날씨에 구름바다라도 연출되었으면 더할나뉘 없겠지만, 이 아쉬움이 대청봉에 다시 오르는 초대장이 되리라 생각하고 마음을 다스린다. 남한에서 세번째 높은 봉우리에서 대간돌이들이 뭉쳐 사진 한 장 남기고 갈 길을 서두른다.
대청에서 저 아래 세상을 굽어보라, 그대 마음이 열리리니 ......
(3) 죽음의 계곡과 10동지들
대청을 내려서며 잠시 고민에 빠진다(05:55). 중청, 소청을 돌아 희운각으로 갈 것이냐, 바로 대간길을 따라 희운각으로 직할강 할것이냐? 직할강 코스가 대간길인데 출입금지 경고판이 길을 막고 있다. 소위 "죽음의 계곡"에 맞붙은 칼날능선을 따라걷는 길이다. 그래 그 대간길을 걷자.
대청봉 북동쪽 아래 천불동 계곡이 시작되는 최상류에 죽음의 계곡이 있다. 소위 10동지 조난사건의 슬픈 사연이 숨어있다. 이 설악에 영혼을 바친 젊음을 이루 헤아릴 수 없으니, 마음이 절로 숙연해진다. 그 계곡을 오른쪽에 두고 걷는 칼날같은 능선에서 영제님은 "형님들과 함께 대간을 하지 않았으면 감히 이 길의 비경(秘景)과 숨은 사연을 만날 수 있으랴?" 한다.
그기에 빠졌는지 선두는 계곡아래로 알바를 하고 .....
대청에서 희운각으로 내려서는 능선에서, 뒤로신선대가 펼쳐지고
희운각에 도착하여(07:10) 아침을 먹는다. 이른 아침인데도 많은 산행객들로 붐비고 있다. 희운각(喜雲閣), 80년대 초반의 어느 가을에 하룻밤을 야영하며 보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최태묵님이 10동지 조난사건 이후 지었던 옛 산장의 모습은 찾을 길 없고 .......
아침식사후 식수를 보충하러 계곡으로 내려간다. 얼음같이 차가운 석간수에 손이 시려온다. 세상에 이보다 시원한 샘물이 다시 있을까? 이 샘물이 공룡을 넘는 생명수가 되리라는 것을 그 때는 미처 몰랐지만 ...... 후미가 도착하자, 바톤 터치를 하고 공룡능선을 향해 길을 나선다(08:00)
무너미 고개를 넘어며 강마의 달리기 가족과 뒤에서 걷고 있을 아내가 은근히 걱정이다. 초보산행이니 공룡을 넘을 꿈을 버리고, 이 고개에서 곧바로 천불동으로 하산했으면 ...... 강마 가족을 가이드하고 있는 남대장에게 무전을 치니, 모두 소청봉에서 사진 찍으며 설악능선의 아름다움에 빠져있단다.
희운각에 서면, 죽음의 계곡과 10동지 조난사건이 떠오른다
(4) 공룡의 등뼈를 오르내리며
신선봉에 오르니(08:24), 눈앞에 펼쳐지는 공룡능선이 대간돌이들을 압도한다. 천화대(天花臺) 능선이 성벽처럼 북동쪽으로 펼쳐지고, 그기에 범봉과 왕관봉이 줄지어 서있다. 잦은바위골에서 설악동으로 이어지는 계곡은 연두색 빛깔이 점점 짙어지고 있다.
공룡능선의 암릉을 곡에하듯 오르내린다. 그 절경이야 부족한 필설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가 없다. 다만 그 능선길에서 세상의 일을 비춰본다. 바위 아래서는 습관대로 한쪽밖에 볼 수 없지만,
능선에 서면 툭 트인 양쪽 시야에서 세상사는 법을 배운다. 저렇게 생각을 열어야 마음이 기울지 않는다는 것을 가슴에 새긴다.
공룡능선에서 천화대 릿지가 가지친다
천화대(天花臺) 릿지가 공룡능선에서 분기(分岐)하는 지점을 향해 암릉을 걷는다. 그 길에 바위틈에 뿌리내리고 피어나는 돌단풍을 만난다. 잎의 모양이 단풍과 비슷하고 바위틈에 자란다고해서 돌단풍이라 부르는데, 뿌리줄기가 바위틈새로 뻗어간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조용히 자기의 모습을 가꾸고 있는 꽃들을 보면, 생명은 여건(與件)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意志)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1275봉 안부를 향해 오르는 길, 바위에 붙어 피어나는 솜다리꽃(에델바이스)에서도 그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
공룡능선에서 만난 돌단풍, 바위틈에 자라고 있다
천화대의 범봉을 바라보며 공룡의 바윗길을 오르내린다. 바위에 몸을 붙이고 암릉을 오르면 정말 내 몸의 무게를 느낀다. 마라톤에 취미를 붙여 날렵한(?) 몸매를 가꾸었음에도 릿지를 오르면 스스로의 무게가 힘겨워진다. 절벽에 서면 자꾸만 몸이 기운다.
우리네 삶의 여정도 어쩌면 이 바윗길과 닮았는지 모르겠다. 인생의 힘든 오르막에서 마음을 비우면서 열심히 살아가도, 고비에 서면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욕심의 무게로 늘 힘겨워하지 않는가? 그 욕심을 벗고 암장을 개척하다 젊은 영혼을 설악에 바친 송준호와 석주(엄홍석/신현주)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하며 암릉을 걷는다.
저 암봉너머에 석주의 길이 있다
샘터를 지나 잠시 쉬었다가, 1275봉을 향해 다시 공룡능선길을 이어간다. 왼쪽으로 가야동 계곡, 용아장성, 귀떼기청과 서북능이 원근법에 따라 도화지에 채색을 하고 있고, 오른쪽으로는 설악골, 천화대의 지능선인 "석주길"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내외설악이 손바닥 들여다보듯 한눈에 펼쳐진다. 그 속에 내가 있다.
용트림하듯 하늘로 솟구쳐있는 암봉과 파도처럼 일렁이는 능선의 너울에서 강한 생명력을 느끼며 1275봉 안부에 오른다(09:35). 살아있는 산의 모습을 느낀다. 뒤돌아보니, 무상한 세월속에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산의 본모습이 내 가슴으로 밀려든다. 그 앞에 나는 한 낱 작은 존재에 불과하다.
1275봉, 그 안부에 서면 인간은 작은 존재에 불과하다
*** 송준호와 석주 길 ***
천화대에서 가지치는 여러 지능선(支稜線)중 범봉과 왕관봉사이에 뻗어내린 성채같은 암릉을 '석주길'이라 부른다. 이 암릉을 초등(初登)한 송준호가 붙힌 이름이다. 송준호에게는 자일 파트너로 의형제처럼 지낸 엄홍석이 있었다. 1968년, 엄홍석은 연인 신현주와 설악산에서 불의의 등반사고로 함께 젊은 영혼을 산에 바친다. 송준호는 그들의 죽음을 애�아하며 설악을 오르내렸다.
그 해 여름, 송준호는 범봉 근처 천화대로 오르는 새로운 암릉을 초등(初登)하게되고(68년 7월), 그 암릉을 엄홍석과 신현주의 이름에서 '석'과 '주'를 따와 '석주길'이라 이름 붙인다. 또한 송준호는 '석주길'이 천화대와 만나는 바위봉우리에 '석주길'이라 새겨진 동판을 직접 새겨붙여 두 사람의 영전에 바쳤다. '석주길'의 신화는 이렇게 설악산에 태어났다.
1973년 1월 1일 송준호도 토왕폭에서 결국 석주의 품으로 갔다. 지금 그는 석주와 함께 설악산 노루목에 묻혀있다. 이들 세사람의 무덤앞에 세워진 추모비에는 "시간과 존재의 불협화음으로 공간을 활보하고 있는 악우 들이여! 철학적 경이로서 모둠된 그대들의 자취는 훗날 이 인자한 산정을 찾는 이들의 교훈일 것이다. 추억을 침묵으로 승화시킨 사람들 그 대담한 의지로 회생하리라"라고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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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미시령가는 길목에서
나한봉을 향해 오름이 시작되는 즈음에 귀에 익은 사투리가 들려온다. "저기 올라갈라모, 곡소리 좀 날깁니더!" 경상도 가시내의 목소리가 얄밉지 않다. "힘들어 봤자, 무슨 대수가 나겠능교? 시간이 말해주겠지!" 로프도 바위길도 이제 몸에 익숙해져 있다. 나한봉이 발아래다(10:40)
나한봉을 넘어 만나는 숲길에 접어들자, 마등령이 멀지않다는 사실을 직감한다. 마등령에 도착하니(10:40), 선두그룹이 돗자리를 펴놓고 기다리다가 자리를 내준다. 도시락에 "이미옥"표 족발이 곁들여지니 진수성찬이다. 성호님이 오세암 쪽 숲길에서 막 뜯어온 곰취와 시원한 샘물은 꿀맛이다. 다만 "처음처럼", "참眞 이슬露"가 없음이 아쉬울 뿐 .......
후미를 기다리며 잠시 마등령 숲길에서 드러누워 눈을 붙인다. 채 10분도 안되는 달콤한 시간, 원기가 살아난다. 아무리 기다려도 길원님, 지용님의 소식이 없다. 희각님에게 후미용 "이미옥"표 족발을 맡기고, 1시간이 넘는 휴식끝에 마등령을 출발한다(12:10)
마등령 이정표 앞에서
마등령에서 잠시 길을 오르면 1327.7봉이다. 조금 전 먼저 올라온 선두의 꼬리가 안보인다. 직감적으로 그들이 알바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 두번째 알바다. 그들을 불러 되돌아오게 하고는 나홀로 대간길을 앞장서 걷는다.
잠시 너덜길을 내려서니 자작나무 숲길이 나타난다. 하얀 나무껍질이 인상적이다. 그래서 백화피(白華皮)라고 불리는 나무다. 자작나무와 연관된 여러 단어들이 스쳐지나간다. 해인사 팔만대장경, 만병통치약, 자일리톨, 러시아의 국수(國樹), 시베리아 평원,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닥터 지바고, 라라를 보내던 그 절망적 눈빛 ...... 조금씩 피로가 쌓여가는 느낌이다.
1250봉을 향해 오르는 길목에서 뒤에서 쫓아온 대간꾼, 김상균님을 만난다. 통성명을 하고 얘기를 나누다보니 우리 클럽을 잘 알고 있다. 진 부회장과 절친한 친구이기도 하다. 1250봉 직전의 전망대에서 그를 먼저 보내고, 우리는 한동안 바위에 앉아 내설악의 곰골에 피어나는 봄의 정취를 즐기며 쉰다. 굳이 서둘러 미시령으로 가야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
1250봉 직전의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내설악의 곰골
다시 길을 나서니, 1250봉을 휘감고 돌아넘는 암릉과 너덜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너덜에서 길을 찾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몇 차례 시행착오 끝에 간신히 길을 찾아 1250봉을 넘어서니 우리를 반겨주는 귀한 산친구가 있다. 너덜에 피어나 꽃을 활짝 피운 진달래다(14:20).
이런 즐거움을 맛보게 하려고 1250봉은 우리를 그렇게 빙빙 돌리며 애를 먹였던 것인가? 손쉽게 범접할 수 있다면, 사람이나 꽃이나 아름답고 귀한 것이 아니겠지 ....... 1250봉 너머 너덜의 진달래밭에서 우리는 철어린 아이마냥 그저 순박하게 웃으며. 한동안 서로를 향해 즐거운 손사레를 펼치고 있었다.
너덜에 피어난 진달래 앞에 우리는 그저 어린아이 같았다
생각지도 않았던 즐거움도 잠시, 저항령으로 내려서는 길에 본격적으로 너덜지대가 나타난다. 저항령에는 먼저 온 김상균님이 하늘향해 누워서 뒤에 오는 친구를 기다리고 있다(14:48). 다시 황철봉을 향해 오르는 데 또 다시 너덜길이다. 연속되는 너덜에 갈수록 체력이 고갈되어 간다.
황철봉(1391m)에 오르니 잠시 숲길이 나타난다. 숲길에 잠시 드러눕는다. 간밤에 못잔 잠이 밀려온다. 길가에서 눈붙이고 5분의 선잠이 어느 정도 체력을 보강해 준다. 1318봉, 삼각점을 지나며 또 다시 지루한 내리막 너덜지대를 만나 씨름을 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너덜, 너덜, 너덜 ........ 모두 너덜에 지쳐버린다.
아, 너덜 너덜 ..... 내리막 너덜이 더 힘들다
15시간 30여분에 걸친 대장정 끝에, 24Km에 걸쳐있는 수없는 암릉과 너덜지대를 통과하여 미시령에 도착하니, 해거름이 내리기 시작한다(17:55). 미시령에는 터널이 개통되어 대간길에 있는 옛날의 휴게소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다.
이제 터널이 뚫렸으니, 세월이 흐르면 여기 미시령 고개마루는 옛고개의 모습으로 돌아가겠지? 이것이 고개의 윤회인가? 잠시 맥주 한 캔을 들이키고 있는데, 설악동으로 하산했던 강마의 가족을 태운 버스가 미시령에 도착한다.
미시령에서는 강마의 40명 달리기 가족이 모여 때아닌 스트레칭이 벌어지고, 2년 4개월간 이어온 백두대간 완주(?)를 기념하는 사진을 찍는다. 이제 마지막 한 구간이 남았다. 오늘 미시령의 세러모니는 졸업 예행연습? 아니면, 미리 찍는 기념사진......
설악을 함께 걸은 강마의 달리기 가족 40명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담고서, 용대리에서 뒷풀이를 마치고 서울로 향한다. "잘 있거라 설악아, 내 다시 오리니 ......" 서울에 도착하니 밤 12시가 다 되어간다. 어! 이러면 무박 3일인데 .......
[에피로그]
꽃, 나무, 바위, 계곡, 바람, 구름 그리고 동해바다 ...... 설악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데 거론되지 않는 것이 없다. 거기에다가, 설악은 서럽도록 아름다운 노래를 갖고 있다. 소위 설악가(雪岳歌)이다. 이 노래는 70년대에 설악의 암장을 개척하며 등반하던 젊은이들이 애닯게 부르던 노래이다.
"굽이져 흰띠두른 능선길 따라 , 달빛에 걸어가는 계곡의 여운." "저멀리 능선위에 철쭉꽃 필적에, 그녀의 손을잡고 걷던 계곡길." "저높은 봉우리에 백설이 필적에, 나는야 생각한다 친구의 모습." "험준한 계곡위에 낙엽이 질적에, 친구를 생각하며 나는 가리라."
설악가
설악에 젊은 영혼을 바친 친구를 생각하며 부르던 애절한 노래이다. "내어이 잊으리오 꿈같던 산행을, 잘있거라 설악아 내다시 오리니" 그들은 그렇게 설악의 암릉을 오르내렸고, 궁극에는 히말라야에 가는 길을 개척하면서 젊음을 산과 함께 했다.
오늘 산길을 되짚어본다. 우리네 삶이 아무리 어려운 길을 걸어도 마지막에 가져갈 수 있는 것이란 없다. 바윗길을 오르고 내리면서, 때로는 숲길을 걷고 달리는 이 백두대간 길에서도 우리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이란 아무 것도 없으리라. 다만 정(情)으로 맺은 산친구들의 마음만이 서로에게 진한 그리움으로 남을 뿐이리니 .......
39차례의 백두대간 산행중 시야에 펼쳐진 파노라마가 으뜸이었지만, 그 반대급부로 몸은 가장 힘들었던 구간이었다. 마등령, 황철봉, 두번씩이나 숲에 드러누워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할 정도로 .... 하지만, 마음 한 편으로 밀려드는 알 수 없는 평온함은 다음 산행에 나서는 원동력이 된다.
그래, 일어서야지.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봄의 새싹들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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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 산행기록]
22:25 서울 대치동역 출발
01:15 설악 휴게소 도착
01:50 설악 휴게소 출발
02:15 한계령 도착
02:27 한계령(920m) 출발
03:27 서북릉 삼거리
05:00 끝청 도착(4분 휴식)
05:25 중청 대피소(10분 휴식)
05:45 대청봉(1708m, 10분 휴식)
07:10 희운각 대피소(50분 식사및 휴식)
08:00 희운각(1050m) 출발
08:24 신선봉
09:12 샘터
09:35 1275봉 안부(8분 휴식)
10:40 나한봉(10분 휴식)
11:04 마등령(1240m, 식사및 휴식 66분)
12:10 마등령 출발
12:35 마등령 정상(1326.7m봉)
13:39 1250봉 앞 전망대(15분 휴식)
14:20 1250봉 너덜지대(진달래 꽃밭)
14:48 저항령
15:20 황철봉(1381m, 20분 휴식)
16:22 1319봉
17:02 마지막 너덜 아래
17:55 미시령(826m)
18:30 미시령 출발
18:40 용대리 식당 도착
19:58 용대리 식당 출발
23:57 서울 대치동 도착
[참가자 명단]
-대간종주팀(11명) :한계령-대청봉-희운각-공룡능선-마등령-저항령-황철봉-미시령
: 권오언,김길원,김성호,박희용,송영기,오영제,이상호,이성원,장재업,정제용,홍명기
-공룡능선팀(12명) :한계령-대청봉-소청봉-희운각-공룡능선-마등령-비선대-설악동
: 김용무,신성숙,진성박,탁미선희,오영명,이미옥,권오성,김희각,백호선,손영자,이수형,지용
-천불동 팀(17명) :한계령-대청봉-소청봉-희운각-천불동-비선대-설악동
: 남시탁,김영이,이규익,강은미,김석준,박재상,이영희,장춘희,정선자,조성희,최정미,노상기,김가연,문주섭,최호열,정우천,신순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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