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종주기 출간에 부쳐]
월파(月波, 달무리), 그는?
어느 해 여름 홀린듯이 5명의 친구가 지리산을 감개무량하게 종주하고 산행기를 남겼지. 이듬 해 겨울 시작된 백두대간 남쪽구간 종주. 천왕봉의 일출과 함께 홈페이지에 기록되던 산행기가 하나 하나 쌓여 한 권의 책이 되는구나. 월파(月波)야 축하한다.
내 앞에서 빨리 걷다가 언덕을 만나자 그가 속도를 줄이고 양손을 뒤로하고 천천히 오른다. 그만의 사색이 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나의 뒤에 따라오는 그의 거친 숨소리는 그가 곧 속도를 줄이고 자기의 페이스를 유지할 것이라는 생각을 정반대로 뒤집는다. 그는 더욱 속도를 높여서 데드포인트를 넘기고 레이스를 즐긴다. 대단한 체력과 정신력이다.
월파, 그는 산에서 유쾌한 악동이 된다. 적막한 숲에서 기분좋은 흥얼거림을 항상 듣게 된다. 새들과 미물들의 숙면을 방해하지 말라는 나의 핀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감성은 계속 고조된다. 그리고는 다음 날 어김없이 산에서 매료된 감흥을 산행기에 펼쳐놓는다.
그를 생각하면 대학 2학년때 "3인의 연서(戀書)"가 떠오른다. 등불이란 잡지에 3명이 쓴 연애편지인데 한 명은 승려가 된 백우(白牛), 다른 한 명은 정산(正山), 나머지 한 명이 월파(月波)였다. 등불에는 '백정월(白正月), 3인의 연서'라 하여 글이 실렸는데 우리는 그의 소녀같은 감성과 미려한 글솜씨를 그때 이미 알아차렸다. 감성과 논리가 아주 잘 교반된 편지였다고 기억된다.
벗으로 만난지 30년,
잠깐동안 같이 하숙을 한 적도 있지만 그와 나는 많이 다르고 많이 모른다. 그런데 산에서 새삼 다른 눈으로 그를 보게 된 것이다. 그의 시선은 자연에 대해 따뜻하고 열정은 충만하고 전문적인 글꾼에 버금갈 정도로 그의 글은 흡인력이 있다. 소설적인 이야기와 시인의 감성을 공히 느낀다.
백두대간 백운산(함양) 정상에 선 월파와 정산(2004. 4. 18)
물을 만난 고기마냥
업무의 스트레스를푸는 듯
그는 산에서 평소와는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산에서 그는 한가지씩 버리기를 소망한다.
어디에서나 교훈적인 테마에 열려있다.
우리는 함께 백두대간의 종주라는 성취를 이루었다. 보람있는 일이었다. 휴전선에 가로막혀 북녘 땅을 못가고 반쪽짜리라는 한계가 있었지만 안한 것보다는 훨씬 좋았다.마루금 밟기도 종국에는 나를 위한 산행이었다. 산을 타는 의미, 이유에 대해서도 매번 나를 대입해 본 것이었다.우리를 매료시키고 황홀경에 빠뜨렸던 것들도 이제는 기억속에 멀어져간다. 그리고는 다른 상실을 목도하는 것이다.
강원도의 폭우에 의해, 세월에 의해 대간은 끊임없이 훼손되고, 우리 인간도 이 마루금을 계속 괴롭히는 작업에 열중인 것이다. 산아래는 도로가 계속 뚫리고 산위로는 마루금이 더욱 선명해진다. 백두대간을 끝내며 우리는 이 모순되는 논리와 감정이 묘하게 동거하는 것이다.
그의 산행기에는 산에서의 이야기, 그의 감정, 교양, 지식과 함께 산행시간이 적혀있다. 일반산행에 비해 아주 빠른 스피드인데 이는 그의 달리기로 단련된 강철같은 체력 덕분이다. 산행을 통해 자신을 낮추고 버리면서 자연을 닮겠다는 일관된 생각이 행간에 녹아 있다.
책을 통해서라도 백두대간 구간종주를 같이 하면서 그의 여행에 공감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월파(月波)야,
바쁜 일상 속에서 산행기를 정리하여 책으로 출간을 하니 비로소 백두대간을 종결하는게 되는 것 같구나. 마음으로 축하한다.
2006년 9월 21일
가락골 정산헌(正山軒)에서
정산 송영기가 쓰다
---------------------------------------------------------------------------------------------
'산따라 길따라 > * 백두대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특별산행) 백두산 천지를 가슴에 담았으니 (0) | 2006.08.29 |
---|---|
(41) 진부령에서 하는 졸업식 (0) | 2006.06.20 |
(40) 향로봉이 백두대간의 끝이 아니거늘 (0) | 2006.06.05 |
(39) 대청과 공룡을 넘어 미시령으로 (0) | 2006.05.22 |
(38) 그리운 설악의 품으로 들다 (0) | 2006.05.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