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시인 권경업의 '억새' 시편
♧ 억새가 이삭을 피우고 공기가 서늘해졌다 싶더니, 드디어 억새 이삭이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아직은 연약하여 하얗게 머리를 풀고 바람 부는 대로 나부끼는 품새는 덜해도 분위기는 제법 그럴 듯합니다. 이제 본격적인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 거지요. 이 때쯤이면 나그네 병이 도지고 어디론가 멀리 여행을 떠나고 싶어지는 것은 나 혼자만의 감정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제 저녁 늘 다니는 별도봉과 사라봉으로 운동 겸 산책길에 나섰다가 이 녀석들과 조우했습니다. 바다가 있고, 한라산이 보이고, 산이 있고, 들꽃이 있고,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는 이 산책길을 그래서 좋아합니다. 어제만 해도 여기서 쑥부쟁이의 명멸함을 보았고, 솔새 사이로 피어나는 수크렁을 보았습니다. 늦은 저녁 시간에는 반딧불이와 조우할 수도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