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성으로 가는 마음
달리기를 하러 고성에 가면 언제나 기분이 좋다. 태어나서 20년을 자란 고향마을과 인접해 있다는 단순한 친근감을 넘어, 가슴 깊숙히 스며드는 나만의 포근함이 있다. 달리기를 처음 시작하던 때의 풋풋함과 애틋함이 배어나기 때문이리라.
달리기에 있어 고성은 춘천과 함께 내 마음의 고향이다. 달리기는 커녕 운동이라고는 걷기조차 하지않았던 2001년 10월의 어느 날, 문득 바람이 불어 트레드밀을 걷기 시작했었지. 미처 3개월도 되기 전인 2002년 1월, 마음좋은 친구 정산(正山)의 꾐(?)에 빠져 엉겁결에 고성에서 하프달리기로 소위 "머리"를 올렸었지.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겁없고 무모한 도전이었다. 아니 도전은 무슨 도전인가? 그저 무지했었지. 무식하면 용감하다 했던가? 마라톤은 직업 선수들이나 하는 것인 줄 알던 시절에 5Km도, 10Km도 아니고 하프코스를, 그것도 실내에서 트레드밀 몇 번 타고는 마라톤대회라는 곳을 갔으니 ..... 아마 옥외에서 달리기는 고등학교 졸업후 30년여년만이었을거야.
마음속의 생각은 달리기는 뒷전이고, 달리고 나서 통영 바닷가에 가서 싱싱한 생선회를 먹겠다는 욕심에 눈이 멀어 .....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달리기에 재미를 붙여 그 해 가을 춘천에서 풀코스 머리를 올렸으니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잿밥에 눈이 어두웠지 싶다.
오늘은 그때 그 시절의 바람잡던 친구(정산, 正山)와 함께 달리기의 출발선상에 다시 서는 기분으로 고성에 간다. 그 시절의 풋풋했던 마음을 되새김질하러 간다. 그때도 그랬지만 생선회 한 접시의 유혹에 넘어갈 마음의 준비를 하고서 .....
(2) 편안한 달리기, 즐거운 달리기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교통편이 여의치 못해 승용차를 직접 몰고 새벽 바람을 가르며 고성으로 간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문제이랴? 신발끈을 매면 그저 달리면 그만인걸. "빨리"라는 내면의 욕구를 다스리기만 하면 절로 몸과 마음이 편해지고 즐거워지는 걸 ......
출발 전부터 내가 바람을 슬슬 잡는다. 정산(正山)에게 동아마라톤 대비 LSD나 하자고. 혼자 치고 나가지 말고 내 페이스메이커나 하면서 서브4 정도로 달리자고. 선뜻 정산이 동의하고, 350 수준으로 달리자고 합의한다. 이 그룹에 람세스님도 흔쾌히 조인해주시고. 340에서 350으로 목표를 낮춘 조성희님도 페메를 자처한 김성호님의 리드하에 우리 뒤를 바짝 따라오고 .....
나에게 있어 달리기는 늘 나와의 외로운 싸움이었다. 누구와 페이스를 함께 한다는 것이 늘 어려웠기에, 언제나 달리기는 내 페이스대로 혼자 달릴 수 밖에 없었고, 그기에 익숙해져 왔다. 그런데, 오늘은 스스로 페이스를 늦추고, 그기에 정산과 람세스님이 흔쾌히 동반주해주겠다니 어찌 고맙지 않으랴?
편안한 스피드로 세사람의 동반주가 시작된다. 5Km, 10Km, 15Km, 20Km. 갈수록 페이스가 조금씩 빨라진다. 그러면, 서로가 빠르다고 외쳐주고. 속도에 대한 욕심을 줄이고, 도란도란 얘기를 하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쐬며 달리는 편안하고 즐거운 달리기이다.
18Km지점 근처에서는 반환점을 돌아 달려오는 Sub 3주자들을 만난다. 이상호님이 씩씩하게 Sub 3페메 앞에서 달려온다. 그의 훈련량이나 최근의 주력을 보면 능히 서브3를 해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간다. 이 상호님, 힘!!!!
25Km를 지나며 최상철님을 따라 잡으니, 나를 보자말자 "형님, 저 갑니다" 하고는 잽싸게 도망간다. 이때부터 랠리가 시작된다. 꾸준히 달려 따라 잡으면 또 도망가고, 반복되는 랠리다. 30Km, 35Km지점 근처에서 따라잡으면 그는 또 속도를 내어 저만치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40Km 지점을 눈앞에 두고 다시 따라잡으니, 그는 그제서야 나에게 거수경례를 하고, "형님 먼저가십시오! " 한다. 상철아우, 다음에 또 랠리 한 번 더하세.
그러는 사이 25Km지점까지 동반주했던 정산과 람세스님이 시야에서 멀어졌다. 정산은 뒤로 쳐지고, 뒤에 있는 줄 알았던 람세스님은 30Km 급수대에서 성큼성큼 달려 앞서가버렸고 ...... 당초 끝까지 동반주하기로 했던 약속이 최상철님과 랠리를 벌이는 사이에 허무러진 것이다.
41Km지점에서 박홍구님을 만나 도란도란 예기하며 Finish Line을 함께 밟는다. 장거리 훈련이 안되어 30Km이후 급격히 체력이 떨어지고 다소 힘들었졌지만 오랫만에 즐겁고 편안한 달리기였지 싶다.
25Km지점 이후 정산과 동반주하지 못한 아쉬움이 크지만, 그가 이해주리라 믿는다. 완주후 나중에 운동장에서 만나니 그는 씩 웃으며, "페메해달라고 해놓고서, 앞서 도망가는 사람이 어디있냐"고 하면서, 다음에는 내가 자기를 페메해달란다. 고수의 뼈있는 농담이다.
정산(正山), 다음에는 배신(?) 때리고 먼저 도망가는 일은 없을테니 다시 동반주하자구. 람세스님, 빨리 달리고 싶은 욕심을 꾹 참고 25Km지점까지 함께 달려주셔서 감솨 !!!!!
참 신나는 편안한 LSD였지 싶다. 당초 목표한 350에 잘 맞추어 달렸다.(최종기록 3:46'01") 정산, 2월에 속도 높혀 LSD 한 번 더하자구.
Sub 3의 위업을 달성한 이상호님, Sub 4를 이루어낸 조성희님, 모두 축하합니다. 두 분 모두 동아마라톤에서 다시 좋은 기록내시길 ......
(3) 구간별 기록 : 42.195Km 3:46'01"
0- 5 Km 27'04"
5-10 Km 25'35"
10-15 Km 24'59"
15-20 Km 24'55" 1:42'33"
(Half ) (1:47'03")
20-25 Km 25'49"
25-30 Km 25'53"
30-35 Km 29'00"
35-40 Km 30'32"
40-Finish 12:14
-
'마라톤 여행 > * 마라톤 완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11회 보스톤마라톤 - 기록은 모래 위에 쓰는 것이니 (0) | 2007.04.24 |
---|---|
선승(禪僧)의 겨울나기처럼 - 동아마라톤 후기 (0) | 2007.03.18 |
준비하지않은 자의 아픔 (0) | 2006.10.30 |
친구야, 반갑다 ! - 보스톤으로 간다 (0) | 2006.03.13 |
2년만에 다시 쓰는 가을의 전설 (0) | 2005.10.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