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자리/* 심향(心香)

경칩단상(驚蟄短想) - 칼바람아 불어라

月波 2007. 3. 6. 12:59

 

오늘은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驚蟄)이다. 그런데, 어제 오늘 제법 매서운 바람이 불며 기온이 뚝 떨어졌다. 연 이틀 불어닥친 꽃샘추위로 체감기온이 영하 10도 밑으로 떨어지니, 봄같이 따뜻한 날씨로 이미 옷장속에 넣어두었던 겨울옷을 다시 꺼내고, 27년만에 가장 추운 경칩이라며 사람들은 몸을 움츠린다.

 

겨울이 겨울답지 않게 지나가는가 했더니 갑자기 시베리아로부터 칼바람이 불어온 것이다. 그래도 이번 겨울에 한강물이 제대로 얼어붙었다는 얘기를 접하지 못했으니 예전의 겨울이 아니다. 예전의 겨울은 참으로 춥고 무서웠다. 귓볼에 바람이라도 스치면 귀가 떨어져나갈 듯한 추위였다.

 

그런 매서운 추위와 언젠가는 다시 한 번 부딪치고 싶었다. 스산하게 지난 겨울을 맞으며, 마음마져 꽁꽁 얼어붙는 그런 겨울과 한 판 붙어볼 요량이었다. 처절하게 한 번 그 추위와 싸우고 싶었다.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이, 휘날리는 눈가루처럼 몸을 날려 마음으로부터 싸우고 싶었다. 옹골차게 맞붙고 싶었다.

 

중년이 들면서 유난히 겨울을 많이 탄다. 아니, 그 동안 살아온 우리네 삶이 그런지도 모르겠다. 추위에 굴복당하며 지내온 세월의 연속이 아니었던가? 분연히 그 추위와 맞싸우지 못하고 엎드리며 살아온 시절이 얼마이던가? 양지를 쫓아 온 시대의 아픔이 그러하고, 편함을 추구해 온 생활의 타협이 그러했다.

 

그 추위를 만나러 쇠나드리, 설피마을을 거쳐 점봉산 곰배령을 찾았었다. 살을 에며 뼛속까지 스미는 추위와 맞싸우고 싶었다. 그러나, 그기에서도 시베리아의 칼바람은 없었다. 오히려 녹아내리는 봄눈 앞에 흐물흐물 감상에 젖어있을 수 밖에 없었다.

 

겨울이여, 이 정도로 떠나가면 안되나이다. 오늘 부는 저 바람이여, 좀 더 거세게 불어라. 숨죽이지 말고, 침묵하거나 타협하지 말고 더 강하게 몰아쳐라. 그리고는 내 몸속으로 파고들어라. 내 심장과 핏줄을 정조준하거라. 정신이 번쩍들어 솟구쳐 날게 하거라. 그렇게 비상(飛翔)할 수 있도록 내 삶의 채찍이 되거라.

 

아 ! 살을 에는 추위에 얼마나 몸을 날려야, 내 안의 나를 제대로 다스릴 수 있을까? 그리하여 훈풍이 가슴을 적시는 따뜻한 봄을 맞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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