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가는 친구에게
가능한 밤차로 떠나게.
옛처럼 새벽녘에 닿는 무궁화가 있는지 모르겠네만, 그렇게 하게나.
정거장마다 쉬었다가는 기차간에서 잠을 설쳐가며,
그 동안 무심했던 친구를 만날 준비를 하게나.
바람처럼 사라졌다가 돌아온 그를 넉넉히 맞이해야 하지 않겠느냐?
부산역에 내리거든 자갈치로 직행하게나.
꼼장어 한 마리에 참이슬도 좋지만 우선 재첩국으로 빈속을 풀게나.
아직도 동이에 이고 "재첩국 사이소"하는 아낙이 있는지 모르겠다.
나도 그 풍경 그리워 밤차를 타고 싶구나.
강강스키,
우리는 그를 그렇게 불렀지.
그와 만나 덥썩 끌어안고 진하게 한 잔하게나.
말없이 잔을 비우며 봉우리와 고개를 넘나든 얘기를 듣거라.
안주타령이 있을 수 있겠느냐?
꼼장어라도 좋고 고갈비라도 족하지 않느냐?
내 이름 적어놓고 세설집에서 걸쭉하게 한 잔 해도 좋고.
그 집 벽에 적어놓은 낙서가 하얗게 바랬거든, 이제는 푸른빛 잉크로 다시 적어보게나.
그렇게 할 수 있다면 30년이 하루에 불과한 것이겠지.
세상의 무게가 무거우면 그 얼마나 되며, 세월의 길이가 길면 그 얼마나 되겠는가?
무심함도 안타까움도 아리아리한 마음도
반가움으로 승화되어 한 순간에 모두 녹아내릴텐데 ......
그렇게 강강스키를 만나거라.
그리고, 해 뜨고 날 밝거든 바닷가로 나가보게나.
동백섬도 좋고 오륙도도 좋겠지만, 태종대라면 더욱 좋지 않겠느냐?
아득히 펼쳐진 수평선에 가슴을 풀어
부딪치는 파도에 그 간의 짐들을 벗어버려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
그와 함께 속 시원히 고함 한 번 질러보게나.
그래도 아쉽거든
태종대에서 가장 멀리 가는 시내버스를 타게.
아마 지금쯤은 그 버스 장전동지나 노포동까지 가겠지만
그 전에 청룡동에 내려 범어사 오르는 길을 터벅터벅 걸어보게나.
청련암에 아직도 양익노장이 계시거든
아직도 무거운 짐 짊어지고 살고 있노라고 고백하거라.
한결 삶의 무게가 가벼워지지 않겠느냐?
혹시라도 봄비가 촉촉히 내리거든
반바지 구해 입고 자전거로 다시 해운대로 가보거라.
강강스키와 함께 비를 맞으며 페달을 힘껏 밟아보거라.
해운대 너머 송정까지 봄비 맞으며 달려가거라.
감칠맛 나는 송정집 세꼬시 한 접시에 C1 한 병이라면
속이 다 시원하지 않겠느냐?
풀어라.
가슴을 풀어 제껴라.
고단한 길에서 잠시 비켜섰던 그를
그렇게 만나고 오거라.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는 신발끈 다시 동여매고.
잘 다녀 오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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