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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를 넘나드는 산길에서

月波 2007. 3. 11. 16:03

 

울타리를 넘나드는 산길에서 

 

 

(1) 심야에 친 번개

 

어제 토요장달에서 가볍게 몸을 풀었다. 동아마라톤을 대비한 훈련은 더 이상 강도높게 할 수 없으니 이젠 테이퍼링이다. 한강의 바람을 맞으며 10Km 정도를 LSD 페이스로 조총무와 동반주했다. 성희님의 주력이 좋다. 전 날 마신 참이슬 기운이 싹 가시고 몸이 가볍다. 이런 상태로 다음 주 동마를 달렸으면 했는데 ......

 

운영위원회에 갔다가 간단히 저녁을 먹고 귀가할 즈음 슬슬 바람이 잡힌다. 남대장이 전, 현직 산악팀장이 모여 한북과 낙동에 대한 얘기를 좀 하잔다. 성호님도 합류하고, 백덕산에 갔던 상승님이 호출받고 나온다. 정산의 [청요리+곡주] 제안이 곁들여지니, 한북을 빨리 끝내고 바로 낙동에 들잔다. 낙동 !!! ??? 허, 허, 제용 아우님 귀국할려면 아직 멀었는데 ......

 

틈내어 지리태극 종주까지 하자는 얘기까지 나온다. 그런데, 청요리 안주 좋다고 고량주잔이 계속 돈다. 이렇게 알콜로딩을 연거푸하면 다음 주 동아는?  에구, 에구, 나도 모르겠다. 그러지 말고, 내일 아침 모여 크로스컨츄리나 하자는 제안에 모두 동의, 옛골에서 인릉산, 대모산 종주를 하자는 번개가 이루어진다. 

 

어제 저녁의 과음탓이겠지. 번개를 쳤건만 정산과 성호, 은미님이 옛골에 안보인다. 대신에 오언, 성박, 미선희, 명기님이 아침에 번개소식을 접하고 옛골로 달려왔다. 7명이 길을 나선다. 서초구 신원동과 성남시 상적동이 경계를 이루는 옛골에서 청계산과 반대방향으로 인릉산을 향해 오른다. 산행객이 거의 없는 호젓한 길이다.

 

                                                                                                                       사진 : 오상승

 

 

(2) 인릉산에서 만나는 울타리

 

빨리 걷다가 오르막에서는 뛰어 올라가기도 하고, 평탄한 숲길에서는 쌓인 낙엽의 감촉을 느끼며 천천히 인릉산을 오른다. 빡센 크로스컨츄리가 아니라 도란도란 얘기가 있는 산행이다. 청계산에 밀려, 집 가까이 두고도 자주 못찾은 인릉산은 크로스컨츄리하기에 참 좋은 코스다. 5년 전이었지 싶다. 지리산 당일종주를 꿈꾸며 훈련했던 곳이다. 유성울트라 100을 앞두고 훈련주 코스로 적합할 것 같다.

 

275봉을 치고오르는데 주변에 참나무 숲이 무성하다. 신갈나무와 떡갈나무가 번갈아보인다. 요즘 산에서 소나무 구경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대신 신갈나무 군락이 갈수록 늘어난다. 신갈나무의 자생력과 번식력이 소나무를 앞지르니 오래지 않아 산에서 소나무보다 신갈나무 만나는 일이 다반사일테다.

 

275봉 지나 인릉산 정상을 향하는데 철조망이 왼쪽으로 이어진다. 사람의 접근을 막는 울타리요, 벽이다. 걷다보니 울타리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왔다하는 길이다. 스스로를 울타리에 가뒀다가 풀었다가 하는 기분이다. 사람의 심사란 참 묘한 것이다. 울타리 밖에서는 안으로 들고파서 몸이 닳다가도, 정작 안으로 들면 밖으로 뛰쳐나가고파 안달이니 ......

 

새삼 울타리, 벽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며 걷는다. 어디 눈에 보이는 것만 울타리이고 벽이겠는가? 눈으로 보는 사물에서 뿐 아니라 마음에서도 곳곳에 그 녀석은 존재한다. 그 울타리를 넘나들면서 자유자재로 벽을 허물고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리라. 

 

인릉산 정상에 서니 북쪽의 서울과 동남쪽의 성남 일원이 한 눈에 들어온다. 엊그제 흩뿌린 빗방울이 도시의 매연을 걷어내고 하늘을 한없이 맑게 만들었다. 눈을 가린 매연의 벽이 허물어지니 세상이 밝게 다가오는 것이다. 하얀 뭉게구름이 여기저기 떠가니 오늘 해질녘에는 카메라 둘러메고 한강변으로 나가 여의도쪽 석양을 디카에 담아봐야겠다.

 

인릉산 정상에서 간식을 먹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맛난 간식이 배낭에서 나오고, 맛깔스런 얘기가 소담스럽게 펼쳐지니, 당초의 산악달리기 계획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크로스컨츄리하면서 땀으로 범벅이되는 산행코스에서 이렇게 편안하게 걷고, 쉬는 맛도 일품이다. 줄기차게 뛰고 달리던 산행에 익숙했던 내 안의 울타리와 벽을 또 하나 허무는 것이다.

 

                                                                                                                      사진 : 박희용

 

 

(3) 벽을 허물며 사는 삶

 

인릉산 정상에서 대모산을 굽어보면서 능선을 걷는다. 세곡동 쪽 인릉산 날머리에 가까워지면서 어느새 숲은 소나무로 바뀌어 있다. 무성했던 참나무 밭이 쳐 놓았던 울타리가 소나무 울타리로 바뀐 것이다. 참나무 모여사는 곳에 소나무가 드물고, 소나무 숲 우거진 곳에 참나무 찾아보기가 여의치 않다.

 

[인간의 역사]를 쓴 러시아의 미하일 일런(Mikhail Il'in, 1895~1953)이 말했던가? "어느 숲, 어느 들이라도 보이지 않는 울타리로 둘러싸여 자신들의 세계를 이루며 존재한다"고. 그렇다. 그 숲은 또 눈에 보이지 않는 울타리에 의해 여러 숲으로 나뉘어 벽을 이루고 살아간다. 어디 숲과 들 뿐이겠는가?

 

그 숲의 나무에도 각기 울타리가 있어 저마다 깃들이는 새가 따로 정해져 있는 법이다.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는 새를 보면 누구나 그 새의 자유를 부러워하지만, 사실은 솔밭에서 우는 새와 참나무 숲에서 지저귀는 새는 다른 법이다. 숲에 사는 새, 들에 사는 새, 바닷가에만 사는 새가 구별되듯이, 숲속에서도 저마다의 벽이 있어 새들도 각자의 울타리 속에서 살아가는 법이다.

 

제비가 겨울을 하늘을 날 수 있는가? 민물고기가 바다속을 유영할 수 있는가? 모든 존재가 자신에게 주어진 좁은 세계에서만 오로지 자유를 구가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도 대개는 그렇게 정해진 울타리 속에서 살아간다. 다만 다른 존재와 달리 인간만이 그 벽을 뛰어넘어 어디서든지 둥지를 틀고,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시도를 하는 존재가 아닐까?  

 

때로는 우리 모두 저 마다의 울타리를 스스로 치고 살아간다. 그 울타리가 높든, 낮든, 튼튼하든, 허술하든. 그 속에서 자기만의 기쁨과 아픔을 느끼면서 살아간다. 눈에 보이는 울타리와 보이지 않는 마음의 벽을 갖고서 살아간다.

 

나는 어떤 울타리를 치면서 살아왔을까? 튼튼하고 높은 울타리보다 좀 더 부드럽고 넓은 울타리를 가꾸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인릉산 자락을 벗어나 대모산으로 향한다.

 

                                                                                                                        사진 : 오상승

 

 * 인릉산

   - 인릉산은 서울 강남구/서초구와 성남시의 경계를 이루며 대모산 남쪽에 동서로 뻗어있는 산이다.

   - 산의 북쪽 대모산 자락에 있는 조선조 23대 왕 순조와 그의 비 순원왕후가 합장되어 있는 인릉의 조산(朝山)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4) 대모산에서 느끼는 봄

  

세곡동의 인릉산 자락에서 길을 건너 대모산으로 접어든다. 못골마을을 감싸돌며 대모산을 오르는데 곳곳에 봄의 정취가 완연하다. 아침에 집을 나서며 아파트 주변에 막 피어오르는 노란 산수유꽃을 보았는데, 양지녘에는 완연한 봄이다. 꽃샘추위 속에서도 이제 여기저기 물오르고, 싹틔우는 소리가 들린다. 각자의 울타리에서 긴 겨울을 보내고 새로운 날개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모산에는 오고가는 산행객이 줄을 잇고 있다. 이름그대로 어머님의 품속같은 산이니 서울 강남의 사람들이 가벼운 운동삼아 포근한 마음으로 산책을 즐기고 있다. 능선을 걷다가 오르막이 나타나면 오언님과 함께 숨차게 뛰어 오른다. 언덕을 치고오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남들이 힘들게 걸어오르는 길을 뛰어다니니 남모르는 재미일거다.

 

대모산 정상에 서니 불암, 수락, 사패, 도봉, 북한(삼각)이 연봉처럼 줄지어 서있다. 5산종주에 대한 꿈에 잠시 젖었다가 손사레를 치고, 가까이 있는 구룡산을 쳐다본다. 그 길에 노부부가 내리막을 조심스레 걷는 뒷모습이 보인다. 넘어질까봐 서로를 염려하며 걷는 뒷모습에서 노부부의 아낌없는 배려심을 본다. 배려하는 마음이 곧 사랑이다. 그들의 뒷모습에서 또 하나의 얼굴을 본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그들이 진정 행복한 사람이다. 그러기에 그들에게 황혼은 가을이 아니라 봄일 것이다.

 

대모산에서 구룡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마져 걷고 싶었지만, 누군가 허기가 지는지 짜장면 얘기를 꺼내니 주저없이 구룡산 길을 접고 모두 개포동으로 하산한다. 늘 하는 고민, 짜장이냐? 짬뽕이냐? 그러면 짬짜로 하지. 거기에다가 또 고량주 몇 잔을 걸치니, 즐거운 봄나들이 끝. 어! 청계산장에 세워 둔 자동차 가지러 다시 옛골로 가야하는데 .......

 

                                                                                                                      사진 : 오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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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메모]

 

 1. 일시 : 2007년 3월 11일(일) 09:10-12:30(3시간 20분)

 2. 코스 : 옛골-인릉산(종주)-세곡동-대모산(종주)-개포동-영동5교 (약 9.5Km)

 3. 참가 : 권오언,남시탁,박희용,오상승,진성박,탁미선희,홍명기

 

   옛   골 - 인능산  2.8 km   
   인릉산 - 대모산  4.7 km 

   대모산 - 영동5교 1.0 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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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5 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