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03)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
1. 산행개요
(1) 산행일시 : 2007년 6월 10일(일) 당일산행
(2) 산행구간 : 석개재-묘봉 북동봉-삿갓재-임도삼거리-1136.3봉-한나무재-진조산-답운치
(3) 산행거리 : 24.0Km
(4) 산행시간 : 8시간 24분(중식 45분 포함)
(5) 참가대원 : 14명 - 권오언,김길원,김성호,남시탁,박종엽,박희용,백호선,손영자,송영기,신정호,
이규익,이상호,이창용,최순옥
2. 산행후기 -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
날마다 산을 바라보면서 (日日見山), 그 높이를 그리고 (慕其高), 그 무게를 배우며 (學其重),
그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愛其麗), 또 그 변하지 않음을 벗한다(友其舊) - 매월당 김시습
(1) 구절양장(九折羊腸)을 돌고돌아
밤 12시, 자정에 떠나는 낙동길이다. 눈을 감아도 뜬 눈, 이렇게 밤길을 달려 풍기 나들목을 나와(02:51), 다시 울진방향의 좁은 국도(36번)를 달린다. 석포로 가기위해 현동에서 태백방향으로 길을 갈아탄 시각이 새벽 3시 51분, 아마 오늘은 잠 한 숨 제대로 못자고 산으로 들어야 하나보다. 결국 무박산행을 하는 셈이지만, 낙동은 이런 과정의 반복일거다.
현동-분천-승부-석포, 태백의 오지에 자리잡은 기차역 이름이다. 이름만 들어도, 오지여행을 즐기는 사람은 가슴이 설레이는 곳이다. 오지의 협곡을 이어가는 기차길은 있어도, 자동차길은 제대로 없는 곳이다. 분천과 승부를 거쳐 석포로 이어지는 자동차길은 없다. 현동에서 태백으로 돌아가는 길, 이름그대로 구절양장(九折羊腸)이다. 31번과 35번 국도가 한몸으로 달리는 곳이다.
그 길에서 꼭두새벽부터 빨간 불자동차와 우리가 탄 미니버스가 서로 힘자랑을 한다. 모두 저렇게 서두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 각박하고 처절한 경쟁을 잠시 잊으려 했는데, 또 다른 승부의 현장을 보는 것이다. 잊는다고 잊어지고, 벗는다고 벗어지지 않는 것이다. 차라리 그 경쟁에 동참해보자.
구불구불한 길에서 멀미가 날 무렵, 석포로 가는 길은 역시 제천-영월-태백이 정답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단순비교 방식이다. 하지만 언제 다시 그 구절양장을 달리는 운치를 맛볼 수 있을 것인가? 하늘도 세 평이요, 꽃밭도 세 평이라던 승부역은 구절양장으로도 미치지 못하고, 기차로 가야하는데 .....
어슴푸레 밝아오는 미명속에 낙동의 원류를 만나고, 태백의 협곡에 놓인 철길을 다시 만난다. 석포역에 닿아서야 빨간 불자동차가 우리와 함께 현동에서 달려온 이유를 알게된다. 세상과 동떨어진 이 좁고 작은 광산도시에 새벽에 왠 화재일까? 나의 일이 아니면 그냥 스치는 무심한 버릇대로, 협곡 사이의 석포역을 지나(04:37) 석개재로 향한다.
그런데, 버스는 학교 운동장으로 들어 선다. 오늘 알바의 전주곡이다. 좁은 산골마을에 학교운동장은 넓기도 하고, 2층으로 된 학교 건물도 제법 크다. 광산이 성업을 이루던 시절의 석포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석개재에 도착하니(05:00) 날이 밝아오고 있다. 보름사이에 연두빛은 진초록으로 변해있고, 그 속에 온갖 생명체가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석개재에서 산으로 드는데 숲은 안개속에 진초록이다
(2)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
간밤에 산에는 이슬비가 뿌렸나 보다.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산으로 드는데(05:35) 풀섶에는 물기가 가득하다. 길도 미끄러워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그러나, 뺨에 부딪히는 새벽공기가 상큼하기 그지 없으니 갈수록 걸음은 빨라진다. 정맥길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묘봉, 이슬에 옷젖는다며 묘봉을 왕복하는 일은 생략하자는 산행대장의 지령이 아쉽기만 하다. 옷젖는 일이야 다반사인데 왜 그랬을까?
묘봉 갈림길을 지나 만난 전망바위를 얌전하게(?) 내려선다. 묘봉에 들리지 않았다고 산신령이 노했을까? 미끄러운 돌부리에 걸려 꽈다당 ! 부서져도 되는 카메라는 멀쩡한데, 내 얼굴과 손목에서는 핏빛이 스며난다. 챙겨야 할 몸은 팽개치고 카메라만 감싸 안았으니 ..... 다행히 오언님이 부축하고, 정산이 응급처치를 한다. 발목염좌로 고생하던 정산이 낙동에 합류하며 응급약을 제대로 준비하여 다행이다.
조심조심 다시 산길을 걷는다. 용인등봉에 오르니(06:58) 조릿대(山竹)의 찬기운이 온몸으로 퍼지며 생기를 북돋운다. 산죽(山竹)의 변하지 않는 푸르름은 오래된 친구의 마음이다. 새로움이 오래됨을 덮는 세상에서 온고지신(溫故知新)을 느끼게 한다. 계속 이어지는 조릿대 숲을 걷는데, 997.7봉이 길을 막는다. 주변에는 온통 싸리나무 군락이 감싸고, 싸릿잎에는 새벽이슬 머금은 영롱한 은빛 구슬이 가득하다.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 대롱대롱 거미줄에 옥구슬 ........ 어릴 때 즐겨 부르던 동요다. 요즘 아이들은 이 노래를 모르는 것 같다. 싸릿잎의 그 은구슬을 카메라에 제대로 담았는지 모르겠다. 미끄러져 다친 것도 잊고 기분은 마냥 상쾌하다. 조릿대와 싸리나무 군락에 이어 간간이 적송(赤松)이 나타나고, 숲속의 모든 나무는 모두 새옷을 갈아입었다.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 - 997.7봉에서
(3) 넓은 길에서 알바한 사람들
첫번째 만나는 임도, 삿갓재에 내려선다(07:58). 삿갓봉 가는 길은 관목과 교목이 뒤엉켜 있다. 그 길을 버리고 잠시 임도를 걷다가 숲으로 드는데, 선두그룹중 일부가 행방불명이라는 전화가 선두조에서 날아든다. 아마 임도를 신나게 달려 갔겠지. 산에서는 숲과 어울려 걸어야 하는데..... 무전기 가진 사람끼리 연락하게 하고 길을 걸으니 숲과 임도가 교차해 나타난다. 임도가 있으니 오히려 길이 헷갈린다.
대광천/소광천/전곡 임도 삼거리에서 팻말을 확인하고(08:38), 길을 재촉한다. 이제 갈 길을 선택해야 한다. 오른쪽 숲으로 들면 백병산 갈림길과 1136봉을 돌아가는 정맥의 마루금이고, 임도를 따라 계속내려가도 나중에 마루금을 만난다. 숲이냐, 임도냐? 지체없이 숲으로 든다. 오언님이 속도를 내지않고 함께 걸어주어 고맙다. 부상당한 내 몸이 신경쓰여 두고가지 못하는 그 마음이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다.
길도 흐릿한 백병산 갈림길을 지나고, 1136봉 아래 암릉을 우회하며 숲향에 빠져든다. 숲과 함께 호흡한다. 갈림길이 불분명해도,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막혔어도 숲에 몸을 맡기면 마음이 널널하다. 신갈나무가 숲을 가득 메우고 있다. 나뭇가지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이 싱그럽다. 아침안개가 짙은 날은 으례 더운 법인데 아직 시원하니, 모두 피톤치드 덕일거다.
다시 임도를 만나고 그 임도를 가로질러 숲으로 든다(09:40). 여기서부터는 임도를 버려야 한다. 후미는 여기까지 어느 길을 택하여 올지 궁금하다. 멀고 험한 숲길을 오르락내리락 않고 임도를 따라 오는 이는 없을까? 누구(길원)는 그 길을 알지만 그 길에 들지 않을 것이고, 다른 누구(규익)는 그 길을 들고 싶어도 그 길을 모르니 ..... 종국에 두 사람은 숲길을 택할 것이다.
그런데, 알바한 네 사람은 어느 길을 택한 것일까? 들어야 할 길을 찾느라, 들지 말아야 할 길에서 헤맨 사람들이다. 가끔씩 그렇게 사는 것도 삶의 여분이지 않을까, 여백이 있는 삶이야말로 진정 넉넉한 삶이지, 정산? 미안한 마음 털어버리고 종종 알바하고, " 시원한 생맥주 500" 으로 해결하라구. 알바하는 길에서, 수줍고 부끄러워 감히 하늘향해 꽃을 피우지 못하는 함박꽃(산목련)이라도 만나면 위안이 되지 않겠는가?
그 꽃잎이 감히 하늘을 향하지 못하는 함박꽃(산목련) - 삿갓재 지난 임도에서
(4) 신갈나무와의 대화
허기가 온 몸에 퍼져가는데 선두는 달리기만 하고, 후미는 소식이 없다. 오르내리는 산봉우리는 이름도 몰라, 성도 몰라 ...... 소위 무명봉의 연속이요, 나침반을 갖고오지 않았으니 자북, 도북, 방위각을 가릴 수가 없다. 지도상으로 위치파악도 안된다.
그래도 눈치는 있어 어림잡아 위치파악을 하고, 선두와 후미에 연락을 취한다. 각자 형편대로 걷고 있다. 아무래도 오늘 점심은 삼삼오오, 아니 5342인가 보다. 오래된 헬기장 터에서 도시락과 막걸리로 체력을 보충하고 다시 숲속으로 빠져든다(11:05). 이럴 때는 숲에 동화되어 걷는 길이 상책이다. 숲을 가득 메우고 있는 신갈나무에게 얘기를 걸어본다.
신갈나무야, 소나무가 주인인 숲의 틈새에서 용케도 자리잡고 뿌리를 내린 신갈아 ! 이제는소나무를 밀어내고 숲의 주인노릇을 하려하는 신갈나무야 ! 연두색 새 이파리가 제법 짙어져 가니, 더욱 믿음직스럽다. 이끼가 번져 있는 너의 등걸에서 네가 살아온 세월이 적지않음을 알 수 있지만, 그래도 너의 이파리는 어느 나무보다 싱싱하고 푸르구나.
소리소문없이 피운 너의 꽃은 이제 열매를 맺을 준비를 하고 있겠지? 이제 곧 여름이다. 너의 그 싱그러운 이파리로 강렬한 태양의 에너지를 받아들여, 가을에는 관이 향기로운 열매를 맺으려무나. 도토리라는 이름의 그 열매가 벌써 기다려진다. 나 어릴적에는 너의 열매를 "꿀밤"이라 불렀었는데 ......
그 도토리, 늦가을이면 어미 몸에서 떨어져나오는 아픔을 딛고 이 숲 어딘가에서 나딩굴며 자생(自生)에의 길을 걷겠지? 청솔모의 먹이가 되기도 하고, 알뜰한 다람쥐의 겨우살이용으로 생면부지의 곳에 숨겨지기도 하고, 운이 좋아 낙엽사이에 떨어져 적당한 습기를 만나면 이듬해 봄에 자리잡고 새싹을 피우기도 하겠지?
신갈아 신갈아, 너의 몸이 윤회에서 단 한 번 자유로운 시기를 아느냐? 가을에 어미 몸에서 툭 터져나온 도토리 시절이 아니겠느냐? 어미몸의 보호에서 떨어져 나딩굴다 운좋게 터잡으면 그 곳에서 새싹이 되고, 다시 신갈나무로 자라면서 평생을 한 곳에서 살아가는 것이 너의 운명이지 않더냐? 그럼에도, 토양의 척박함과 비바람의 강약을 따지지 않고 꿋꿋이 자리를 지키는 너의 모습이 대견하구나.
이렇게 중얼거리며 걷는 산길은 머릿속이 정리정돈이 되어 마음이 편안하다. 앞만 보고 달리는 산길은 삭막할 뿐 아니라 도대체 집중이 안된다. 산에서는 마음을 비우고 걸어야 한다. 욕심으로 여럿을 추구해서도, 그 중에서 취사선택 해서도, 강물에 돛단배 띄우기 어려운 법이다.
신갈아, 신갈아 오늘 못나눈 얘기는 다음에 하자구
(5) 산행말미에 부르는 콧노래
신갈, 낙엽송, 적송, 잣나무, 싸리가 번갈아 나타나고, 자작나무 조림지가 있는 오르막을 올랐다 내리면 한나무재가 나타난다(12:25). 산행이 마무리로 접어드는 셈이다. 그래도 아직 2시간은 넉넉히 걸어야 한다. 햇살은 중천에 떠서 따갑기만 한데 바람 한 점 없다. 숲이 만들어주는 그늘이 이끄는대로 진조산을 오르고(12:50), 그 길에서 진초록으로 물감을 들인 낙엽송 군락을 만난다.
송전철탑을 지나며(13:42), 이제 굴러가도 30분이라는 믿음에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후미에서 전화가 온다. 정산도 알바, 선두 달리기조 3명도 알바, 알바들의 합창이 휴대폰 속에서 들리고, 그래도, 서로 만났다니 다행이다. 우리보다 1시간 30분은 뒤에 있다. 그 시간만큼은 알바를 했으니 ......
답운치에 도착하여(13:59), 계곡에서 즐기는 알탕과 더덕주+목삼겹+수박, 그리고 그들의 알바이야기는 대치동 생맥주집까지 이어진다. 24km의 제법 긴 거리를 당일산행으로 해냈다는 뿌듯함은 다음 구간 30Km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하고, 잠시 흐트러졌던 분위기도 하나로 뭉친다.
그래, 낙동4차 30Km도 옹골차게 당일산행으로 걸어보자. 그 길에도 오늘처럼 적송(赤松)이 군락을 이루며 반겨줄까? 울진의 소광리 금강송(金剛松)을 마음껏 품어보지 못한 아쉬움을, 통고산에서는 달랠 수가 있을까? 통고산 가는 길이 벌써 머리속에 그려진다.
새옷을 갈아입은 낙엽송이 하늘 향해 뻗어있다 - 진조산 가는 길에서
(6) 에필로그
신갈나무 무성한 숲을 오래도록 걸었다.
숲 사이로 언뜻언뜻 열리는 하늘을 보며, 그 사이로 스치는 바람도 만났다.
피톤치드로 충전된 에너지가 새로운 갈망을 잉태시킨다.
햇살 가득한 산길에서는 나무 그늘이 그리웠다.
곧은 나무만 쓸모있는 줄 알았는데,
굽은 나무의 그림자가 더 넓고 크다는 사실이 가슴에 닿았다.
오르막을 박차며 흘렸던 땀, 헉헉거렸던 숨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산을 오르고 또 올랐지만 하늘은 조금도 낮아지지 않으니,
하늘 높은 줄 이제사 알겠다.
산을 오르고 오르고 나서야 하늘 높은 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산에 와서야 하늘이 높은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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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12:14 개포동역
02:20 단양 휴게소(10분 휴식)
02:51 풍기 나들목
03:51 현동
04:30 낙동의 원류, 협곡의 철길
04;37 석포역
05:00 석개재 도착(조식)
05:35 석개재 출발
06:26 묘봉 북동봉
06:49 전망바위
06:58 용인등봉
07:20 997.7봉
07:29 문지골 갈림길
07:58 삿갓재(첫 번째 임도)
08:16 삼거리(숲으로)
08:38 임도 - 대광천/소광천/전곡 삼거리
09:08 백병산 갈림길
09:18 1136봉
09:40 임도(바로 건너 숲으로, 조금 가다 헬기장)
09:40 무명봉
10:20 헬기장(임도 지나 두번째 헬기장)- 중식 45분
11:05 중식 후 출발
11:28 무명봉
11:35 무명봉(934봉 인듯)
11:43 무명봉
11:51 (시멘트) 헬기장
12:15 헬기장(승부터)
12:25 한나무재
12:50 진조산 갈림길
13:07 굴전고개
13:42 송전철탑
13:55 (마지막) 헬기장
13:59 답운치 도착
16:45 답운치 출발
17:40 분천 4리, 산 속에 떠 있는 산 속의 섬
17:15 노루치 터널
18:09 영주 톨게이트
21:20 개포동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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