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04) 빗소리가 교향악이 되는 숲길에서
1. 산행개요
(1) 산행일시 : 2007년 6월 23일(토) -6월 24일(일) 무박 2일산행
(2) 산행구간 : 답운치 - 통고산 - 애미랑재
(3) 산행거리 : 12.1Km
(4) 산행시간 : 3시간 55분(휴식 10분 포함)
(5) 참가대원 : 8명 - 권오언,김길원,남시탁,박희용,송영기,이상호,이창용,최민혁
2. 산행후기 - 빗소리가 교향악이 되는 숲길에서
토요일 초저녁, 장마전선이 북상해 내일은 폭우가 예상된다는 일기예보에 아내는 걱정스런 표정이다.
나는 별다른 대꾸를 못하고 물끄러미 천정을 바라본다.
숲길이 나를 깨우고 있다. 숲속의 짙은 녹음이 나를 부르고 있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이성부 시인이 그랬던 것처럼 주섬주섬 배낭을 꾸린다.
산만한 생각과 허둥대는 마음을 배낭속에 차곡차곡 포개어 넣는다.
이제 신 발 끈 조이면, 등짐 하나가 나를 밖으로 떠다밀겠지?
우중산행을 각오하고 길을 나선다.
낙동에서나 맛보는 오지산행, 점점 그 심장부로 향하고 있다.
답운치에서 애미랑재 12Km는 너무 짧아 성에 안차고, 한티재까지 30Km는 도전적이다.
게다가 장마비가 예보되어 있으니 긴장의 산길이다. 참여한 인원도 단촐하게 8명.
새벽 세시가 가까워지고 있는 답운치에는 조금씩 비가 내리고 있다.
아랑곳 않고 산길에 접어든다.
어둠속에서 싸리나무 우거진 숲길을 걷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순간순간 알바요, 잠시 방심하면 그 싸릿대가 사정없이 볼을 후려친다.
그래도 빗속에, 어둠속에 몰입되어가는 스스로가 좋다.
몇 차례의 짧은 알바가 있었지만 갈수록 길은 편해진다.
서서히 어둠이 걷히고, 빗속에 새벽이 찾아오고 있다.
새벽을 여는 산행, 그 신비감을 몸으로 느낀다. 그래서 무박산행이 �다.
새벽은 눈 뜬 자에게만 찾아온다. 새벽이 오는 줄 알아도 눈 감으면 한밤중이다.
눈 뜬 자만이 새벽 잠에서 깨어나는 대자연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새들의 옥구슬같은 지저귐도 새벽에는 유난히 맑다.
빗속에 늦게 찾아든 여명속에 통고산을 오른다. 처음으로 기념사진 한 컷 !
Photo by K. W. Kim
왕피리 갈림길에서 길을 찾아 비안개가 자욱한 새벽 숲길을 걷다가 달리기를 반복한다.
그래도 선두는 저만치 앞서 있고, 후미는 보이지 않는다.
혼자 걷는 새벽의 숲길,
안개비가 잦아들고, 후두둑 굵은 장마비가 숲속에 쏟아진다.
간혹 노란 나리꽃이 얼굴을 내밀다 도로 접는다.
볼에 스치는 찬 기운이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우의(雨衣)가 별무소용이 된지 오래되었다.
몸 구석구석 추위가 찾아든다.
멈추면 안된다. 계속 걸어야 한다.
그 길을 혼자 걷는다.
몸에 스미는 추위와 달리 마음은 따뜻해져 온다.
적송의 붉은 기운이 가슴에 와 닿고
숲길의 빗소리가 고운 음률로 다가오고 있다.
귀 기울여 숲의 소리를 듣는다.
나무들이 숨 쉬는 소리,
빗소리에 놀라 새벽잠에서 깬 새 소리를 듣는다.
신명난 흥얼거림이 콧노래가 되고, 그 음률이 숲속에 퍼져간다.
이런 나에게 미물의 수면을 방해말라고 늘 얘기하던 그, 오늘은 멀찍히 뒤로쳐져 보이지 않는다.
가녀린 풀잎에,
여린 나뭇잎에, 초록이 짙어진 나뭇잎에도
크고 작은 나뭇가지에, 이 나무 저나무에 장마비가 쏟아진다.
그 빗소리의 장단고저가 조화로운 음률로 변하고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된다.
더욱 빗소리에 귀기울이며 그렇게 진초록의 숲길에서 흠뻑 비에 젖는다.
한결 숲이 가깝게 다가온다.
빗소리가 숲속에서 교향악이 되는 산길은 애미랑재에서 막을 내린다.
미처 4시간도 걷기 전에 도착한 그 곳에는 열 길이 넘는 낭떠러지, 절개지가 앞을 막는다.
먼저 온 두 사람은 빗속에 불을 피우고,
한참 뒤에 도착한 다섯 명의 후미는 입을 맞추어 여기서 오늘 산행을 접자고 한다.
이제 겨우 아침 7시인데 ...... 당일 산행이면 아직 산행시작도 안했는데 ......
아쉬움 반, 부화뇌동 반으로 다수의견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
빗속에 라면에 소주 한 두잔 하니 온 몸에 온기가 돌고 오늘 산행은 끝.
아쉽다. 아쉬워라. 빗속의 숲길 30Km를 언제 다시 걸어보나?
그 때서야 한무리 산행객을 태운 버스가 도착한다. 대구에서 왔단다.
그 들은 우리가 중단한 정맥의 줄기(애미랑재-칠보산-한티재)로 들고, 우리는 불영계곡으로 간다.
불영계곡에서 탄성을 금치 못하고,
울진의 망양정에서 생선회에 매운탕을 겻들이니
오늘 못 간 애미랑재-칠보산-한티재가 전혀 아쉽지 않다.
낙동의 산줄기만 탈 것이 아니라,
더러는 이렇게 산아래 계곡과 마을을 살피는 재미가 더 있지 싶다.
사랑바위의 전설도, 왕피리와 왕피천의 모습도, 비안개에 잃어버린 망양(望洋)도,
모두 산줄기 아래동네 얘기인 것이다.
불영계곡(1)-사랑바위
불영계곡(2)
불영계곡(3)
불영계곡(4)-적송(금강송)
불영계곡(4)-원추천인국(루드베키아)
불영계곡(5)
짙은 안개비로 망양정에서 바다구경을 제대로 못했지만,
바닷가 소나무를 카메라에 담으며 젊은 그들과 나눈 얘기, 조금은 건조하지만 의미있는 일이다.
무엇을 찍고 있어요? 녜, 소나무의 꽃과 열매를 찍습니다.
그리고는, 주섬주섬 나무얘기.
모든 나무는 꽃이 피고 열매를 맺지요. 소나무, 원래 암수 한그루이구요.
수꽃은 새로운 가지의 밑부분에, 암꽃은 새로운 가지의 윗부분에 달리지요.
그런데, 암꽃이 위에 수꽃이 아래에 맺는 까닭은?
같은 가지의 수꽃이 암꽃에 날아가 동종교배되지 않도록 암꽃이 위에 달리는 것이라고 들었어요.
동종교배와 열성유전자의 상관관계를 소나무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불영(佛影)은 소나무 암꽃, 수꽃에도 비치고 있는 것이다.
해송의 암수꽃 열매 - 울진 망양정 앞에서
날마다 산을 바라보면서 (日日見山), 그 높이를 그리고 (慕其高), 그 무게를 배우며 (學其重),
그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愛其麗), 또 그 변하지 않음을 벗한다(友其舊) - 매월당 김시습
-------------------------------------------------------------------------------------------
[산행기록]
10:14 개포동역 출발
02:45 답운치 도착
02:55 답운치 출발
04:24 임도
05:01 통고산(10분 휴식)
05:55 937.7봉
06:50 애미랑재 도착
08:30 애미랑재 출발
불영계곡
10:00 울진 망양정 바닷가
12:00 울진 망양정 출발
-------------------------------------------------------------------------------------------
'산따라 길따라 > * 낙동정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낙동정맥 06 - 낙동에서 하는 태극종주 (0) | 2007.07.31 |
---|---|
낙동정맥 05 - 금강송(金剛松)의 기(氣)를 받으며 (0) | 2007.07.09 |
낙동정맥 03 -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 (0) | 2007.06.11 |
낙동정맥 02 - 연두빛 숲속으로 들다 (0) | 2007.05.21 |
낙동정맥 01 - 천 삼백리 낙동강의 시원(始原)에서 (0) | 2007.05.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