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다와 땅, 강화도에서
모처럼의 휴일입니다
장마비가 세차게 내릴 것이라는 일기예보에 지레 겁을 먹습니다
새벽녁에 양재천을 한바퀴하고, 아침을 들자마자 간단히 짐을 꾸려 길을 나섭니다
짐이래야 카메라 하나 손에 들면 되는 일입니다
머리를 가볍게 하려는 생각입니다
그리 멀지 않은 강화도를 한바퀴 돌기로 합니다
초지대교를 지나 정수사로 향하는데 먹거리 유혹에 빠집니다
아침을 걸렀는지 그가 감자떡을 사고, 덤으로 옥수수까지 맛봅니다
고구마순이 무성히 자라고 있습니다
순무처럼 저 고구마맛도 일품이리라는 믿음이 갑니다
토란잎에 아직 남은 물방울이 영롱합니다
다이아몬드이지요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감자떡이 사라집니다
적당히 부족함이 가장 좋은 약입니다
갯벌에는 여기저기 숨구멍이 보입니다
무슨 일이든 겉만 볼일이 아니라 속을 들여다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조수의 차가 심하니 갯벌도 넉넉합니다
갯벌에 의지하고 사는 미생물을 머릿속에 그려봅니다
부드럽고 미세한 흙이 만드는 갯벌과 .....
흙이 거칠고 굵은 갯벌에 살아가는 미생물은 ....
각각 다른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보이지 않아도 그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미생물이나 사람이나 환경에 더불어 살기는 특별히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맞은 편 논에는 벼가 키를 무럭무럭 키우고 있습니다
작열하는 7-8월의 태양이면 충분합니다
앵글을 조금 멀리 잡으니 또 다른 모습입니다
잠시 초봄의 보리밭을 떠올렸습니다
바닷가에서 바다보다 땅에 기대어 사는 모습을 봅니다
그 어디든 기댈 수 있다는 자체로 넉넉합니다
한 잎 깨물고 싶어집니다
역사를 바꿔버린 빨간색의 유혹은 언제나 강렬합니다
갯벌에도 빨간 해초가 자생하고 있습니다
흑적색의 톱밥을 뿌린듯 합니다
갑자기 어두운 빛이 바닷가를 엄습합니다
밀물이 되어야 가득 차니 길 잃은 배들입니다
하늘과 바다와 땅
그 3분법의 세상을 각각 다른 색깔로 만납니다
방향을 돌려도 3분법은 벗어나지 못합니다
나눌 것이 아니라 합치라는 메시지인지 모르겠습니다
어울려 더불어 사는 모습
그 곳에는 3분법이 있어도 서로가 다르지 아니하고
결국은 하나로 합쳐 상생의 길을 보여줍니다
보라빛 향기 넘치는 도라지를 만납니다
바람이 불어 이 녀석을 붙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 속살을 제대로 보았으니 넉넉합니다
왕원추리가 무성히 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녀석의 속살도 제대로 벗겨 보았습니다
비비추가 눈에 띕니다
장마비에 스스로를 제대로 뽐내지 못하는 아쉬움이 보입니다
좀 더 진한 빛깔로 유혹하는 녀석입니다
범부채를 만납니다
하이, 안녕?
반가워, 오랫만이야
너도 잘 있었니?
너도 잘 지냈니? 어, 너네 쌍둥이야?
범부채에 한동안 넋을 팔아도, 시간가는 줄 몰라도 .....
되레 이 녀석은 더 함께 하지않는다고 샘통입니다
그래도 이뻐보입니다
마음을 주면, 어디에 정을 붙이면
세상의 모든 일이 이뻐보이지 않을까요?
평범해 보이는 봉숭아도 우리를 반깁니다
나리, 나리, 하늘나리, 날개 하늘나리
하늘나리 그 요염한 자태에 반하지 않을 사람 있을까요?
다시 왕원추리를 만납니다
높은 산의 원추리에 비해 정이 덜 가는 것은
큰 것보다 작은 것을 좋아하는 내 습성이라고 살짝 귀띔해줍니다
다시 3분할 구도를 만나고
거리의 무법자 라이딩족을 추월하여
잘 포장된 숲길을 오르니
정수사의 숲이 햇살에 찬란합니다
먼저 근심 덩어리 털어버리고
따뜻한 차 한 잔 하면서
바람 스치는 숲속을 창너머로 살핍니다
정수법당이랍니다
법당에 들기 전에 연꽃을 생각합니다
진흙 속에서 맑게 피어나는 ....
돌에 그 이름 새겨도 천년을 가리오, 만년을 가리오?
겁을 살아가려거든 하찮은 것 버리시랍니다
돌에서 자라나는 이끼처럼
그 촘촘한 마음 씀씀이를 가지랍니다
그리고는 풍경소리 들어보랍니다
그 풍경소리 산 너머, 창공으로 울려 퍼지가든
정수법당으로 들라고 하십니다
하늘을 보고 푸른 그 마음을 닮고
연꽃을 찍으며 그 맑음을 가슴에 새기며
그러한 영혼을 꽃이 지더라도 간직하랍니다
그런 연후에라야 정수법당이 보인답니다
좌우 비대칭의 특이한 법당도 육신의 눈에 보인답니다
다른 절에 없는 법당앞의 툇마루도 보인답니다
앞뒤의 기둥 높이 서로 다른 모습도 눈에 들어온답니다
굳이 석탑에 탑돌이하지 않더라도
구름가린 하늘에 푸른 빛 볼 수 있다면
나뭇가지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볼 수 있다면
하늘도 바다도 땅도 하나라고 느낄 수 있답니다
여기 그 가르침이 함께하고 있고
그 모습 그대로 상존하고 있고
여기 어딘가에 그 뜻이 숨어있기도 합니다
비록 그 가르침이 흑백의 투영으로 묻어나거나
음영의 미묘한 조화일지라도
사실 행주좌와 어묵동정이 확연하다면
구름속에서도 풀섶에서도
진리의 푸르름은 변함없이 그대로라고 가르칩니다
이렇게 한 바퀴 돌아드니, 원래 자리로 돌아옵니다
진리의 목마름이 해갈되어도
육신의 허기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법이니
다시 아랫마을로 내려옵니다
골목길을 찾아들어 맛사냥을 합니다
바로 여기 입니다
식단이 단촐해도 맛은 제법입니다
병어조림이 입맛을 한껏 돋구니, 가마솥밥 추가요 !!!
바로 이 집입니다
서울로 접어드는데 갈매기 날개모양의 가로등이 반겨줍니다
이런 모양 가로등이 있는 곳을 보시거든
신고해주셨으면 ...... 달려갑니다
갈매기 날개 모양에 탁월한 예술적 감각 이 숨어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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