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자리/* 여백(餘白)

깨달음을 얻은 이가 사는 곳으로

月波 2007. 11. 4. 22:51

 

깨달음을 얻은 이가 사는 곳으로

 

  

 (1) 프롤로그 - 적멸보궁을 찾아서 

 

가을바람이 볼을 간지르고 있다. 쏴하고 대나무 잎에 스치는 바람이 그리워진다. 시인의 흉내라도 내며 길을 나서고 싶어진다. 비지땀 속에 된비알을 오르는 산길이 아니라, 일주문(一柱門)을 지나 정갈한 마음으로 산사(山寺)로 가는 길을 걷고 싶다. 둘이 아니라도 외롭거나 쓸쓸하지 않은 길이다. 스쳐도 흔적이 없는 길이다. 그렇게 그 길을 따라 가고 싶다.

 

그 깊숙한 곳에 적멸보궁 가는 길이 있다. 생각이 끊어진 청정한 마음자리, 자장법사가 터 닦은 길이다. 영월 법흥사에서 님 그림자를 쫓고, 태백 정암사에서 님 향기라도 맡고 싶다. 도처에 부처요 만물이 부처라지만, 멀고 가까움을 가리지 않고 뜻을 구하고 싶다. 그것이 일탈의 카타르시스를 주는 방편이라면, 그 길도 좋지 않을까?

 

"깨달음을 얻은 이가 사는 곳이라면 거기가 어디인들 즐겁지 않겠는가?" 라고 되뇌이면서 말없이, 채비없이, 마음이 동하는대로 길을 나선다.

 

고뇌하는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도 그 고뇌에서 벗어나라

마을이나 숲이나 골짜기나 평지나

깨달음을 얻은 이가 사는 곳이라면 거기가 어디인들 즐겁지 않겠는가

                                                                                                       - 법구경 -

 

정암사의 적멸궁

 

 (2) 3년도 30년도 찰나에 불과한 것을 - 사자산 법흥사에서

 

영월의 사자산 법흥사, 너에게 가는 길은 멀었다. 육안의 거리보다 마음의 거리가 더 멀었을까? 그 길로 향하던 마음이 30년이 지난 지금에야 너에게 이르는구나. 오랜 기다림 끝의 첫 발걸음은 언제나 설레는 법이다. 자동차로 3시간이면 닿는데, 30년이나 걸렸으니 시간의 길이와 장소의 길이는 그 치수가 다르구나. 하기야 영겁의 시간에서는 둘 다 찰나에 불과하지만.

 

자장율사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셔다 창건한 5대 적멸보궁 중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세운 적멸보궁, 여러 차례 참배했던 다른 네 곳과 달리 법흥사는 오늘이 초행길이다. 첫 만남은 설레임을 부르고, 오랜 기다림은 간절함을 낳는다. 약사전을 거쳐 적멸보궁 가는 숲에서 육안(肉眼)에 비치는 모습을 번갈아 담는다.

 

모양으로 있는 모든 상(相)이 모두 허망한 것이거늘, 심안(心眼)으로 그 비상(非相)을 직관(直觀)할 수 있다면 깨침이 따로 있겠는가? 적멸보궁에서 사자산을 향해 3배, 3배, 또 3배...... 108배를 하고 돌아서는데, 좌우로 신선봉과 구봉대산의 9봉(九峰)이 그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세계를 감싸는듯 실루엣이 되어 햇살에 비치고 있다.

  

  * 5대 적멸보궁

   영축산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태백산 정암사, 사자산 법흥사를 일컫는다. 적멸보궁은 신라의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가사, 발우를 모셔다 창건한 5곳의 성지이다. 적멸보궁에는 부처님의 진체(眞體)를 모셨기에, 법당에 석가모니 부처를 따로 모시지 않고 있다.

 

저 문에 들면 사자후라도 들을 수 있을까? 

 

연등의 그림자(影) 길을 덮어도, 그 흔적이 없고

 

저 안에 들지 않아도 속뜻은 보이더라

 

법은 저렇게 높고 청명한 것임을

 

약사전 너머 구봉의 그림자는 비법을 알고 있겠지 

 

만들고, 붙이고, 매달아도 법은 여여할진대

  

사자산 적멸보궁, 저 뚫린 벽 넘어 암봉에 감춰진 진리가 보이는가

 

보이지 않아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구봉대산의 아홉 봉우리가 실루엣으로 말한다

 

온 산이 부처의 몸이거늘, 만상이 부처이거늘

 

 

 (3) 그 곳에 가고 싶었다 - 한반도 지형

 

그 곳에 가고 싶었다. 영월의 법흥사에서 태백의 정암사로 가는 길에 잠시 그 곳으로 간다. 태백산 금룡소에서 솟아난 샘물이 굽이쳐 흐르다가 동강에서 너를 낳았구나. 너의 허리를 감싸돌고 먼 길을 달려 두물머리에서 북녘의 물을 만나 한강이 되어 강화 앞바다에 닿으면 굽이굽이 1,300Km가 되는구나.

 

크고 넓은 너를 작은 내 가슴에 잠시 품었으니, 나 또한 넓어지리라. 생각이 궁핍하여 마음이 옹졸해질 때마다, 내 그대를 생각하리니 ........ 가까이 너를 두고 자주 보지 못하더라도 한강을 건널 때마다, 팔당의 두물머리를 지날 때마다 내 그대의 품을 기억하리니 .......

 

동강이 한반도요, 한반도가 곧 동강이다 

 

 

 (4) 낮추어서 더욱 넓어지는 돌담 - 태백산 정암사에서

 

그 해 겨울 태백산에 몰아치던 눈보라 속에서도 정암사는 훈훈했었다. 일주문에서 탄허스님을 만나고 오래된 적멸보궁 앞 주목에서 자장율사를 만나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 때는 설화천국 영하40도의 아찔한 체험이 더욱 따뜻함을 부채질했을까? 오늘은 수마노탑 가는 돌계단, 그 182 계단을 묵은 것을 털어버리면서 한발한발 오르리라.

 

일주문을 들어서는데 낮은 돌담 너머로 살랑살랑 금대봉의 바람이 불어온다. 담장이 낮다는 것은 문턱이 낮은 것이요, 문턱을 낮추면 눈높이가 맞추어진다. 눈높이를 낮추면 마음의 폭이 넓어진다.  그래서 정암사는 언제 들러도 여유롭고 넉넉하다. 늘 여여함 속에 탈속의 기쁨을 일깨워 준다.

 

수마노탑과 적멸보궁을 오르내리며 간절한 마음을 모으는데 햇살은 어느새 산봉우리에 걸려있다. 해거름을 알리는 바람이 불어오지만 그 바람이 지나간 자취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수마노탑의 풍경소리만이 태백산 어느 곳에 있을 금탑과 은탑의 얘기를 들려주고 있는듯하다.

 

길 위에 흰 눈이 그리움처럼 차곡히 쌓이는 날, 태백을 다시 찾아 적조암에 묵고 싶다. 들꽃이 화려하게 금대봉을 뒤덮는 날, 태백에 숨겨진 금탑과 은탑의 비밀을 찾고 싶다. 그 날 밤, 만항재에는 님의 가르침인 양 하염없이 별빛이 가슴으로 쏟아지리라.

 

탄허선사의 법필(法筆)이 맞아주는 정암사 일주문

  

자장율사의 지팡이는 천년 주목(朱木)이 되어있고

  

 적멸궁 뒷 산에 수마노탑은 보이는데

 

금탑과 은탑은 어디에 숨겼을까?

 

금탑도 은탑도 그대로 있는데, 눈 어두워 보지 못할 뿐이리라

 

적멸궁은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라 (어렵게) 가르치고

   

낮은 돌담은 낮추어서 넓어지는 이치를 (쉽게) 보여주고 있다

 

 

 (5) 에필로그 - 대나무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정암사를 돌아나서며 오늘 하루를 되돌아본다. 그대, 님의 그림자를 보았는가? 스치는 바람에서, 붉게 타오르는 단풍에서 님의 자취를 찾았는가? 사자산의 바윗덩어리에서, 돌아서 쳐다 본 구봉산의 실루엣에서, 정암사 수마노탑에 비친 저녁노을에서 님의 흔적이라도 보았는가? 

 

     대나무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하나 움직이지 않고(竹影掃階塵不動)

     달빛이 연못바닥을 뚫어도 물에는 흔적조차 남지 않네(月穿潭底水無痕)

 

그 이치를 깨달으면 보이지 않아도 볼 수 있고, 들리지 않아도 들을 수 있으리라. 어둠이 찾아드는 정암사에는 낮은 돌담이 빙그레 웃고 있다. 그 돌담은 낮아서 넉넉하고, 그래서 그 웃음은 한없이 편안하다. 스치는 바람에 수마노탑의 풍경이 울린다.  저렇게 여운이 긴 풍경소리가 어디에 또 있을까? 님 그림자도 님 소리도 저 속에 있거늘. 하루 종일 무얼 그리 찾았는가?

 

일상으로 향하는 길에서 심신이 날아갈듯 가벼움을 느낀다. 참으로 잘 나선 길이었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다시 영축산 통도사를 다녀 와야겠다. 그 금강계단에 엎드려보고 싶다.

 

2007. 11. 4.

달무리 

 

 바람스쳐간 흔적도 없이 어제처럼 태백은 저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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