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 02) 남명 선생의 품에서 - 산천재(山天齋)
지리산 대원사(大源寺) 산문을 나서며 가까운 덕산(德山)의 산천재(山天齋)를 찾는다. 산천재(山天齋)는 조선 중기의 재야(在野) 유학자 남명 조식(南冥 曺植, 1501-1572)) 선생이 노년을 보낸 곳이다. 이순(耳順)을 넘긴 나이에 천왕봉이 바라보이는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영남의 유생들과 더불어 성리학을 논했던 곳이다.
德山卜居 (덕산에 살면서)
春山底處無芳草 只愛天王近帝居 白手歸來何物食 十里銀河喫有餘
춘산저처무방초 지애천왕근제거 백수귀래하물식 십리은하끽유여
봄 산 어딘들 향기로운 풀 없으련만, 하늘 가까운 천왕봉 마음에 들어 찾아왔다네
빈손으로 왔으니 무얼 먹을 건가? 십리 은하 같은 물만 먹고도 남으리.
題德山溪亭柱 (제덕산계정주) - 덕산 시냇가 정자 기둥에 쓰다
請看千石鐘 非大扣無聲 (청간천석종 비대구무성)
爭似頭流山 天鳴猶不鳴 (쟁사두류산 천명유불명)
천 섬 들어가는 큰 종을 보소서. 크게 치지 않으면 아무런 소리 없다오.
어떻게 해야만 저 두류산처럼,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을까?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이 지리산으로 옮겨와 산천재(山天齋)의 시냇가 정자에 써 붙힌 시로 남명의 정신세계가 잘 나타나 있다.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을 두류산같은 그의 넓고 큰 그릇을 본다.
산천재를 나서는데, 길 맞은 편에 남명 기념관이 현대식 건물로 꾸며져 있다. 시대와 외양이 그 사상을 폄훼할 수 있으리오만, 간편하게 지은 건축물의 질감이 그의 사상과 이질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겉을 보지 말고 속을 들여다 보자는 생각으로 안으로 든다.
조식(曺植)선생이 우연히 읊다(偶吟, 우음)라는 시에서 보여주는 정신세계 또한 확연한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高山如大柱 撑却一邊天 頃刻未嘗下 亦非不自然
고산여대주 탱각일변천 경각미상하 역비불자연
큰 기둥 같은 높은 산이 하늘 한쪽을 버티고 서서
잠시도 내려놓지 않나니 그 또한 절로 그렇지 않음이 없도다.
어린 시절 즐겨 외던 남명의 시조 한 수(두류산 양단수)를 다시 읊어 본다.
두류산(頭流山) 양단수(兩端水)를 예 듣고 이제 보니,
도화(桃花) 뜬 맑은 물에 산영(山影)조차 잠겼어라.
아희야 무릉(武陵)이 어디메뇨, 나는 옌가 하노라.
갈 길을 쫓아 남명 기념관을 돌아 나오는데, 뜰에는 그의 정신세계를 기리는 양 목백일홍이 붉게 피어 있다. 꽃이 핀들 그 얼마나 오래 가랴마는, 꽃 중의 꽃이니 너보다 더 오래도록 남명의 사상을 피워줄 꽃이 있겠느냐? 백일이 쌓여 천일이 되고 다시 쌓여 겁(劫)이 되리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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