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 04) 30년을 거슬러 홍류동으로 - 해인사
푸르름이 짙어 오히려 적막하다.
새와 벌레의 울음조차 그 푸르름에 파묻힌다.
30년을 거슬러 해인사로 들고, 홍류동에 심신을 맡긴다.
노각나무 껍질처럼 허물을 벗는다.
고로쇠 등걸, 날개달린 너의 열매를 보고 싶구나.
졸참나무야, 잎과 열매가 작아도 너는 진짜나무가 아니더냐?
해인(海印)의 숲에서 생긴대로 너희를 받아들일 수 있어 다행이다.
해인사 가는 길
꼭 서른 해 전의 기억을 더듬어서
성철과 혜암, 두 스님의 법문을 찾아가는 길이다.
그 길에 나무는 나무로, 숲은 숲으로 오롯이 다가오고
활짝 핀 능소화가 상큼한 얼굴로 옛 사람을 반겨주었다.
해인사 홍류동 계곡, 쉼도 그침도 없다
홍류동에 넋을 팔아도 업이 되지 않거늘
해인의 노각은 이슬을 먹고 그토록 오래 사는 것일까?
고로쇠는 그 등걸에 새 삶을 붙이고
졸참나무, 결코 너의 수족(手足)이 작지 않구나
백련암을 오르던 그 새벽의 홍류는 설흔 해를 변함없이 흐르고
짙은 푸르름을 따라 일주문을 향해 간다
새들의 울음도 적막함에 묻혔는데
세월의 껍질을 못버려 노각은 등신불이 못되었나?
고스란히 배어있는 선승들의 자취앞에
더부살이하더라도 능소화는 밝게 피어난다
30년을 그리던 님, 성철스님 사리탑에 머물다가
아쉬움을 손에 잡고 산문으로 향한다
그제서야 일주문이 반깁니다
세상에 이보다 아름다운 일주문이 있을까?
잠시 풍상의 차이가 보이겠지만
바스라지는 윤회의 길에 차이가 없으리라
살포시 해인총림의 문을 들여다 봅니다
한발한발 해탈문으로 오릅니다
고운(孤雲)의 지팡이, 학사대에 천년을 살아 있고
장경각 가는 길에는 법보의 꽃이 활짝 피어 반긴다
넓이와 촘촘함의 배합이 천년동안 법보를 지켰구나
팔만대장경, 그 가르침 하나하나 따르리라
팔만의 장경이 법보로 살아 숨쉬니
법보전의 뒷뜰은 층층이 꽃이다
고운 최치원, 그가 남긴 천년의 그늘은 중생의 쉼터가 되고
아랫 절을 굽어보니, 그대로 훈훈한 살림이다
잠시 멈춰 물 한 모금, 약수가 따로있더냐?
능소화 환히 피던 날, 깨침도 열렸으니
홍제암 가는 길, 설흔 해가 잠시였구나
약관의 청년은 지천명인데 사명대사 비는 옛 모습 그대로 반기니
꼭 서른 해를 기다렸구나, 저 계단위의 사진이 그립다
다시 오리니, 또 다른 설흔이 잠시이겠지?
오래된 탑의 새로난 이끼는
떠나야 돌아올 수 있음을 깨우치고
일상의 번잡함을 쫓아
빛이 사위어가는 홍류동과 작별한다
2007년 8월 6일 합천 해인사 홍류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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