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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月, 日出, 落照와 함께 한 온천여행

月波 2008. 2. 24. 22:07

 

明月, 日出, 落照와 함께 한 온천여행

 

 

나고야(名古屋) - 이세(伊勢) - 가츠우라(勝浦) - 시라하마(白浜) - 오사카(大阪)

2008년 2월 21일(목) ~ 2월 24일(일)

 

 

일본에서 나고야(名古屋)를 물산(物産)의 도시, 오사카(大阪)를 장사(商業)의 도시라고 부른다. 이번 여행은 나고야가 그 시점(始點)이요, 오사카가 그 종점(終點)이다. 그러나, 속마음은 그 곳, 물산(物産)이나 장사(Business)에 있지 않다. 나고야를 출발해 일본 혼슈(本州)의 최남단인 기이(紀伊) 반도의 해변가를 돌면서 명소(名所)와 명물(名物)을 살피고, 명주(名酒)와 명차(名茶)를 맛보면서 명천(名泉)에서 온천욕을 즐기는 일이다. 물론 그 중심에 아내의 자리가 있다. 여보, 아이들 대학보내느라 수고 많이 하셨소. 좀 쉬세요. 

 

 

(1) 이세시마(伊勢志摩)의 대보름 달

 

나고야(名古屋) 성(城)으로 간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성이다. 그는 지(智)나 용(勇)보다 덕(德)이 돋보이는 인물이다. 기다림의 미학(美學)을 알았던 쇼군(將軍)이다. 나고야 성의 하얀 벽과 청동 기와지붕의 조화가 아름답다. 번뜩이는 긴사치호코(金魚虎)가 에도막부(江戶幕府)를 연 도쿠가와 가문의 당당한 위풍을 말해준다. 겨울의 끝에서 봄기운이 스며들고 있다. 불타버린 혼마루전(本丸御殿) 뜰에 청매화(靑梅花)가 피고 있다.

 

 * 사치호코(金魚虎) - 머리는 호랑이, 등과 꼬리는 가시돋힌 물고기 형상의 상상의 동물상(動物像)으로,

    화재에방에 대한 기원으로 시작되었다고 하나 점점 성주(城主)의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물화 했음.

    임진왜란때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에 패한 두려움으로 거북선 앞머리를 본떠 만든 것이라는 설도 있음

 

 

 

 

 

 

사카에(榮え, さかえ) 거리에서 잠시 시간을 보낸다. 도요타(豊田, Toyota)를 견학하러 와서 며칠 머무르면서 매일 새벽 조깅을 즐기던 곳이다. 그 때 이정표 역할을 방송타워가 해주었었지. 잠시 시야에서 벗어난 아내는 혼자 로스엔젤리스 공원에서 해거름의 빛에 빠져있다. 보이는 대로 카메라에 담아내기가 여의치 않으니, 기량을 탓하지말고 눈으로 만족해야지.

 

 

 

이세(伊勢)로 향하는데 음녘 정월 대보름 달이 하늘에 떴다. 길원은 벽소령에서 명월을 탐하고, 나는 이세(伊勢)의 호젓한 바닷가 온천마을에서 정월 보름달을 취한다. "속세와 단절된 무념(無念)의 공간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천상의 달을 바라보고 싶다"던 아키모토 츄나곤(顯基 中納言), 그는 그 무념의 공간을 유배지라는 상징어로 표현했었지. 그런 유배지라면 머물만하지 않을까?

 

이세시마伊勢志摩)의 야외온천에는 보름달이 둘이다. 하늘에 하나, 온천에 하나 달이 떴다. 노곤함에 저절로 눈이 감긴다. 눈을 감으니 머리 속에는 벽소명월(碧宵明月)이 떠오른다.

 

 - 2008년 2월 21일, 이세시마(伊勢志摩)에서

 

 

 

(2) 우라시마(浦島)의 명월(明月)과 일출(日出) 

 

미키모도 고키찌(御木本 幸吉)의 우직함과 그 아내의 눈물겨운 정성을 본다. 1893년, 세계최초의 진주양식(眞珠樣殖) 성공에는 20년이 넘는 열정이 필요했다. 그의 혼을 쏟은 집념 앞에 누가 머리를 숙이지 않으랴. 5년을 시도하여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고 했는데..... 혼을 바친 1년은 보통 사람의 3년, 그래서 그의 20년은 60년이다. 그의 고집불통같은 얼굴을 본다. 그 아내가 쏟은 인고의 눈물을 본다. 그래서 진주(眞珠)는 눈물의 상징이라 하는가?

 

 

 

 

 

메오토이와(夫婦岩)는  오도코이와(男岩)와 온나이와(女岩)라고 불리는 두개의 바위가 굵은 동앗줄로 묶여져 있는데, 바로 일본 건국신화의 父神(이나자기)와 母神(이나자미)을 상징한다고 한다. 부부암(夫婦岩), 설사 떨어져 있어도 저렇게 금줄로 묶인 삶이 부부다. 묶여서 한 몸되어 행복한 삶을 본다. 아내와 나란히 그 삶을 느낀다. 

 

 

 

 

 

이세(伊勢) 신궁(神宮)으로 걸어가는 길은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곧고 울창하게 자란 숲길에 잔돌(細石)이 곱게 깔려 있다. 오랫동안 걸어도 피로를 느끼지 않을 것 같다. 일본인들은 신궁에서 지극정성으로 예를 표하고, 이방인(異邦人)의 머릿속에는 단군신화가 살아 숨쉰다. 그 옆에 삼나무도 하늘을 찌를듯이 곧게 자라 숨쉬고 있다.

 

신궁 옆에 옛 거리를 재현한 오카게요코쵸(おかげ橫丁)라는 상점가, 약 300년전의 오카게 모습을 옛멋을 살려 재현에 놓았다. 그 입구에 아카후쿠(赤福)을 파는 가게가 있다. 이세의 명물답게 사람들이 줄지어 섯다. 보통은 찹쌀 반죽 안에 빨간 팥(앙꼬)을 넣는데, 찹쌀 앙꼬에 빨간 팥반죽을 감싼 아까후꾸에 대한 일본인들의 애호는 대단하다. 맛을 보니 별미중의 별미다. 아뿔사, 그 사이 나홀로 외톨이다.

 

 

 

 

 

지진으로 융기한 거대한 암벽인 오니가죠(鬼ヶ城), 1 Km에 달하는 그 해안 암벽길을 아내는 신들린듯 뛰어간다. 암벽에는 강한 파도에 의한 풍화작용의 흔적이 새겨져있다. 일본 전설상의 괴물인 <오니>가 여기 울퉁불퉁한 바위절벽에 살았다고 하는데, 지금도 괴물들이 살고있는듯 하다. 절벽에는 '시시이와'(師子岩)로 알려진 25미터의 거대한 사자형상의 바위가 바다를 향해 포효하고 있다.

 

 

 

 

 

 

우라시마(浦島) 온천, 뭍인 가츠우라에서 불과 3분 정도 배를 타고 건너는 작은 섬의 멋진 온천이다.  탄성이 절로 나오는 특색있는 온천이다. 6개의 다양한 형태의 온천이 호텔안에 산재해 있는데 찾아가기 쉽도록 바닥에 색띠로 표시해 놓았다.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아내는 6개의 온천을 밤 늦도록 누비고 다니고, 나는 첫 번째 망귀동(忘歸洞) 온천에서 돌아가길 잊는다.

 

망귀동(忘歸洞), 그래 너의 이름이 허명(虛名)이 아니더구나. 누구인들 너에게 몸을 담그면 돌아가기를 잊지 않겠느냐?  해안에 접한 동굴 속의 온천으로 둥근 달이 찾아드니, 이태백이 이 멋을 알았으랴. 다른 온천탕에 가길 잊고 망귀동에 머물다가, 아사히 생맥주로 목을 축이니 더 바랄 것이 없다. 

 

 

 

망귀동(忘歸洞) 온천의 동굴 속에서 보름달을 벗하며 보낸 밤에 이어, 새벽에는 에스컬레이터를 30층이상 타고 올라가 산상관(山上館) 온천에서 태평양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바라보며 하루를 맞이한다. 조석으로 며칠을 머물러야 6개의 온천에 모두 몸을 담가볼 수 있을까? 그러나 망귀동의 보름달과 산상관의 일출을 보았으니 달리 아쉬움이야 있겠는가?

 

아침에 우라시마(浦島)를 떠나는데 바다위로 갈매기가 날며 환송한다. 다시 오라고. 그래, 다시 들리는 날 6개의 온천을 빠짐없이 돌며 반드시 스탬프 6개를 찍으리라. 그 때도 요시다 겐코(吉田兼好)의 도연초(徒然草) 몇 구절을 읽다가 잠이들고 싶구나.

 

 - 2008년 2월 22일, 가츠우라(勝浦) 우라시마(浦島)에서

 

 

 

 (3) 시라하마(白浜)의 낙조(落照)

 

구마노고도(熊野古道)에 있는 133m의 나치(那智) 폭포가 숲의 적막을 깨뜨리며 쏟아진다. 우주의 울음이다. 세상의 어리석음을 일깨우는 외침이다. 가슴을 시원하게 적셔주고 높고 낮음이 한 치 차이에 불과함을 보여주는 손짓이다. 아침 나절에 찾은 폭포는 그래서 더욱 위엄이 있다. 또한 맑은 기운에 정감(情感)이 넘친다. 부부에게 사랑의 넓이를 키우고 믿음의 높이를 끝없이 키운다. 달콤한 아이스크림처럼, 곧은 삼나무처럼.

 

 

 

 

 

 

쿠시모토 (串本)의 우아한 해안을 따라 차를 달린다. 그 해안에서 40개의 850m에 이르는 기형 석군(奇形 石群)을 만난다. 하시쿠이이와(橋杭岩)라 부른다. 다리(橋)를 만드는 말뚝(杭)같은 모양의 돌다리들이 바닷가에 늘어서 있다.

    

동행하여 길을 안내하는 하(河)과장이 홍법대사의 얘기를 꺼낸다. 옛날 대사가 기슈(紀州)를 여행하던 중 이 곳에서 맞은편의 섬으로 건너면서 천아귀(天邪鬼)의 도움을 받아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는데, 천아귀가 힘들어 닭우는 소리를 내자 대사도 날이 샌 줄 알고 멈춰 섰다나 어쨌대나 ..... 그 하시쿠이 (橋杭), 즉 다리를 만드는 말(馬) ?

 

 

 

  

 

 

북위 33도 26분 동경 135도 46분, 혼슈 최남단의 시오노미사키(潮岬) 등대, 봄 기운이 감도나 했더니 한 겨울처럼 찬바람이 몰아친다. 바다도 덩달아 춤을 춘다. 제 몸을 부수어 파장을 일으킨다. 그 부서짐에 파도는 스스로를 바친다.

 

그러나, 파도야 파도야. 슬퍼 말아라. 부서지고 또 바스라진들 어떠랴. 부서질수록 네 몸은 빛나고, 너의 포말은 더욱 맑고 깨끗해지나니, 스스로 안타까워할 일이 무엇이더냐.

컬러보다 흑백의 바다를 카메라에 담고 싶다. 하얀 포말을 더욱 하얗게 그려내고 싶다.

 

 

 

  

 

 

시라하마(白浜)로 접어들며 또 다른 해안 암벽인 삼단절벽을 만나지만 강풍에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다. 누가 먼저 날려가나 가위, 바위, 보 ! 아니, 다시 한 번 가위, 바위, 보 ! 진 사람이 오징어와 옥수수 사라. 다시 한 번 가위, 바위, 보 !  시라하마의 명성 그대로 하얀 모래가 쌓인 바닷가. 시라라하마 백사장. 그리고 바다를 바라보는 야외온천. 과연 도쿠가와 가문의 3대 영지답다.

 

차창으로 시라하마 해변의 작은 섬인 엔게츠도(円月島)를 바라보면서 시모아(Seamore) 호텔로 든다. 섬이 엔화의 동전모양으로 구멍이 뻥 뚫렸다구? 매사가 막힌 것보다 뚫린 것이 좋은 법. 너는 몸으로 그것을 실현하고 있구나.

 

 

 

 

 

시라하마(白浜,しらはま), 태평양이 보이는 바닷가의 하얀모래와 온천과 매실주를 생각해 보시라. 낮에는 햐얀, 정말 새하얀 바닷가에서 햇빛을 즐기고, 저녁에는 낙조를 보며 노천탕에서 온천욕을 하고 마시는 새콤달콤한 매실주 ...... 시라하마 온천에서 태평양으로 빠져드는 석양과 저녁노을을 보라. 더할 나위없는 환상이더라.

 

회석(懷石, 가이세끼), 돌을 달구어 몸에 품고 추위를 이기며 수련했던 선승들의 이야기와 함께 시라하마의 낙조(落照)가 태평양으로 붉은 빛을 숨기며 식욕을 돋군다. 18세기 초 8대 쇼군(將軍)이었던 도쿠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1684-1751)우메보시(干,うめぼし)를 담그는 나무통을 처음으로 욕조로 사용했단다. 그 우메다루(梅樽,うめたる)에 몸을 담그고 철썩이는 파도와 석양을 보며 시름을 잊는다. 

 

 

 

 

  

다음 날 구로시오(黑潮) 어시장에서 참치 해부쇼를 보고 매주(梅酒, うめさけ)를 곁들여 고래고기를 맛본다. 오사카로 향하는 차창에는 매화의 고장(梅の里, うめのさと)답게 시라하마의 산야에 매화꽃이 한창 피어나고 있다. 잠시 햇빛이 가려지더니 이내 진눈깨비가 휘날린다. 역시 매화는 눈속에 피어야 제 모습인듯. 서울로 돌아가면, 다음 주말에는 광양의 매화마을에 가볼까?  아니면 늦봄을 기다려 파란 매실을 따다가 매실주를 담가 가을에 맛을 볼까?

 

여보, 청매화 홍매화도 보고 매실주도 담그면 아니될까? 그러면 몸이 파도처럼 바스라질까? 그래도 옛 생각하면서 남도를 여행하고 매주(梅酒)도 맛보고 싶은데, 그대의 답을 기다리겠소. 당신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여기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를 덧붙이니, 소리내어 한 번 읽어 보구료. 예전에 그랬듯이 아직도 그 운율이 가슴에 쏙 닿으니 아직 마음은 20대에 못지않을 것이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                                                          - 즐거운 편지, 황동규 시인

 

 

 - 2008년 2월 23일, 시라하마(白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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