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 14차 - 낙동의 하프라인을 통과하며
(1) 가장 아름다운 숲, 덕동 섬솔밭(島松)
연휴를 맞아 이틀에 걸친 50Km 연속산행과 산아랫마을에서의 하룻밤을 꿈꾸며, 토요일 늦은 밤에 포항행 심야 고속버스에 몸을 싣는다. 길원이 새벽길 마다않고 부산에서 포항으로 마중을 나오고, 2년여 만에 제용 아우가 합류하니 절로 흥이 난다. 이른 새벽 포항역 근처의 해장국집에서 산으로 가는 준비 끝.
덕동 청소년 수련원을 지난다. 2주 전에 하얗게 피어나던 배꽃은 푸른 잎으로 바뀌고, 덕동마을의 오래된 숲도 푸르름이 완연하다. 기북에서 성법령 가는 길목에 있는 덕동은 가장 아름다운 숲으로 지정된 섬솔밭(島松)이 있는 마을로, 350년 간 맥을 이어 온 여강 이씨(驪江 李氏) 집성촌이다. 이른 아침이라 초입을 보며 지나가는 아쉬움이 크다.
포항 기북면 덕동마을
길원은 능숙한 운전 솜씨로 굽이굽이 성법령을 오른다. 바람이 매우 차다. 5월이라 하여도 이른 시각의 산에는 아직도 겨울의 흔적이 역력하다. 볼을 간지르는 미풍 대신에 싸늘한 냉풍이 볼때기를 때린다. 움츠려드는 몸을 풀며 순식간에 709.1봉을 오른다. 북동으로 내연지맥, 남동으로 비학지맥의 웅장한 산세가 아침햇살에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북서쪽으로 보현/팔공지맥이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2) 낙동의 중간, 배실재를 지나며
사관령 분기점을 지나고 1시간여를 쉼없이 걸었을까? 574봉에서 잠시 휴식. 구름이 끼어 북서쪽의 보현지맥이 흐릿하다. 잠시 내리막을 걸으니 배실재, 낙동의 중간지점이다. 제용 아우는 두번째 산행으로 낙동의 하프라인 통과했네, ㅎㅎㅎ. 우리는 1년여가 걸려 겨우 낙동의 중간지점이라 ...... 당초 계획대로라면 벌써 몰운대 앞바다에 풍덩했을텐데 .....
쉬엄쉬엄, 여건이 허락하는대로, 서두르지 말고 그러나 놓치지 말고 ........낙동길에서는 대간에서와 달리 마음을 여유롭게 갖는다. 한 때는 보다 높은 산을 오르는 일, 보다 빨리 산을 걷는 일에 더 높은 가치를 두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낙동에서는 스스로를 낮추고 비켜서면서 산으로 든다. 높은 산은 스스로를 낮춰 계곡이 되고, 계곡물 모여 더욱 낮은 곳으로 흐르며 강이 된다는 사실을 산을 오르고서야 깨닫는다. 버려서 가벼워지고, 그래서 도리어 얻는 도(道)가 이러할까?
낙동의 중간지점에서 설악산 지기 이성선 시인을 생각한다. 벽에 걸린 배낭을 함께 수행하는 도반(道伴)으로 바라보던 그의 그림자가 그립다. 산에서 시를 쓰며 도(道)를 갈구하던 그의 모습을 이 세상에서 다시 만날 수 없음이 안타깝다. 참다운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던 그가 떠난지 오래다.
벽에 걸어 놓은 배낭을 보면
소나무 위에 걸린 구름을 보는 것 같다
배낭을 곁에 두고 살면
삶의 길이 새의 길처럼 가벼워진다
지게 지고 가는 이의 모습이 멀리
노을진 석양 하늘 속에서 무거워도
구름을 배경으로 서 있는 혹은 걸어가는
저 삶이 진짜 아름다움인 줄
왜 이렇게 늦게 알게 되었을까
- 이성선, <도반(道伴) 중에서 -
염불을 하듯 입속으로 여러 단어의 나열을 해본다. 재빨리 날쌔게 얼른 금새 당장 냉큼 선뜻 후딱 싸게 잽싸게 속히 즉각 곧 곧장 바로 이내 퍼뜩 급히 ...... 머리속을 돌고 돌지만 습관처럼 쓰고, 행동하는 똑 같은 말이다. 이런 바쁜 말들과 적당히 거리를 두고, 남은 낙동의 반이라도 더욱 느릿느릿 걸는 시간을 가져보자.
낙동의 중간지점, 배실재에서
(3) 침곡산(針谷山)에서 바라보는 비학산(飛鶴山)
왜 침곡(針谷), 바늘계곡이라 부를까? 산아래 계곡과 봉우리 들이 바늘처럼 촘촘히 붙었다고 해서...... 정산은 글쎄란다. 지도를 보니 저 아래 죽장면에 침곡(針谷)이라는 마을이 있다. 그러나 산과 산으로 둘러 싸여 좁은 땅뙤기 하나 보이지 않으니 .......
고개를 돌려 본다. 針谷山 정동(正東)에 비학산(飛鶴山, 762.3m)이 당당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바라만 보아도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비학(飛鶴)은 그저 바라만 보아도 좋은 사람, 그런 사람과 같다.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그 산에 푸른 젊음이 있어 어서오라 손짓을 하고 있다. 점점 짙어가는 녹음이 그렇게 손짓하고 있다.
서당골재를 지나 1시간여만에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768봉에 도착한다. 포항의 죽장,기북,기계 3개면의 분기점이요, 최고의 전망대다. 서늘한 바람이 분다. 죽장에서 왔다는 초소지기 아저씨의 마음이 넉넉하다. 덕분에 전원이 모여 단체사진 한 장 남기고, 감시초소에 올라가 전후좌우를 조망한다. 지나온 길, 나아갈 능선, 비학지맥과 비학산, 보현/팔공지맥과 보현산 천문대가 확연히 보인다.
옛길의 흔적이 역력한 먹재를 지나 따사로운 햇살아래 숲길을 걷는다. 싸리를 비롯한 잡목들이 온몸을 할퀴지만 내버려둔다. 정오를 앞둔 햇살에 오르막에서 제법 땀을 흘리지만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기분은 상큼하다. 저 바람 없었으면, 오늘 더위 좀 먹었겠다.
오랫만에 합류해 뒤에서 걷고 있는 제용 아우가 걱정이다. 길원이 든든히 후미를 잘 지킬거야.
한티터널 상부를 지나는데 뒤에서 점심먹고 가자고 아우성이다. 때가 되었지.
한티재의 진수성찬. 막걸리 한 사발.
원기회복하여 다시 길을 나선다. 임도로의 알바. 원점 재출발.
침곡마을은 첩첩한 산중에
비학지맥, 비학산
산불감시 초소 아저씨와
(4) 운주산(雲柱山)의 산상 세러머니
545봉, 남하하는 마루금 오른쪽이 포항 죽장면에서 영천 자양면으로 바뀐다. 잠시 내려서니 블랫재, 盆城裵氏 묘가 치장을 제법 해놓았다. 盆城이라, 김해의 고려시대 명칭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그런데, 블랫은??? 이거 영어야, 한글이야, 한자어야 ??? 블랙잭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산에서 불냈다는 뜻 ??? 불래(不來) 또는 불래(佛來)의 음변형 ??? 엉뚱한 생각을 하며 빡세게 다시 오르막을 오른다.
산길은 운주산을 향해 점점 거칠게 오름을 계속한다. 발등만 보며 하나, 둘, 셋 ......오백 ..... 육백 ..... 천 이백 ..... 드디어 운주산(806.2m) 갈림길에 도착한다. 후미조가 도착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테고, 그 사이 운주산을 다녀와야지 ...... 운주산의 세러머니, 홀라당 ...... 운주산이 구름이 머무는 산(雲住山)인지, 구름을 받치는 기둥(雲柱山)인지는 별관심이 없다.
돌아오는 길에 운주산 넓은 공터의 산상파티, 울산에서 왔다는 아저씨/아줌마가 인심좋게 막걸리 한 사발에 안주까지 ...... 햇살아래 자리잡고 앉는다. 얻어마시는 막걸리가 더 맛있다. 후미가 도착할 때까지 햇살을 즐기며. 제용 아우와 길원이 도착하자 산상파티는 매듭을 짓는다.
운주산 정상의 세러머니
이리재로의 하산길, 끝이 보이니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일까? 저 아래 대구-포항간 고속도로가 빤히 보이건만 가도가도 끝이 없다. 빠른 걸음으로 1시간 20분의 하산길, 이리재에는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분다.
지나가는 마음씨 좋은 부부의 차에 몸을 싣고 포항 기계면의 왕비손짜장으로 긴다. 지난 번 마셨던 연태고량주는 빈병 그대로, 새 술은 채워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주종(酒種)을, 아니 브랜드를 바꿔야지.
[여담]
기계면은 새마을 운동의 발상지로 곳곳에 새마을 운동 깃발이 나부낀다.
돌발퀴즈! 다음 중 새마을 운동의 3대 정신이 아닌 것은? (1) 근면 (2) 성실 (3) 협동 (4) 자조 정답은 ?
이곳의 기계는 機械가 아니라 ‘杞溪’이고, 마을 가운데로 흐르는 하천주변에 구기자나무가 무성하여 杞溪라 부른단다. ‘杞’자는 소태나무 또는 杞나라 ‘기’자인데 쓸데없는 걱정을 뜻하는 ‘杞憂’도 여기서 나왔다.
이리재에서 바라본 포항 기계면
(5) 1일차 산행의 말미에
성법령에 차를 회수하러 간 성호는 다섯번을 히치 하이킹을 하여 덕동 청소년수련원까지 갔으나, 그 곳에서 지나는 차가 없어 성법령으로 걸어서 가고 있단다. 무슨 고생이람. 낙동 끝내고 세르파상은 영순위다. 박수, 짝짝짝.
낙동 하프라인 통과기념, 포항에서의 하룻 밤. 오언이 상경해야한단다. 포도청을 돌봐야 하니 .........
죽도시장, 사람사는 내음이 물씬 풍긴다. 싱싱한 횟감을 찾고, 흥정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광어 2Kg, 놀래미 2Kg, 덤으로 통통한 우럭 1마리에 게불, 멍게까지 .......게다가 포항 유일의 고래고기 집에서 사온 고래고기까지 .....
랜스랫이 아니어도 참이슬로도 목 축임에 모자람이 전혀 없다. 부득이 오언을 상경시키고 안강으로 옮겨 하룻밤. 길원아, 밤새 드러릉거리는 그 템포가 알레그로더냐, 안단테더냐, 아다지오더냐?
그래도 모두들 개운한 아침. 산행 2일차 출발 이상 무 !!!
산행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산행도 여행이다.
지나고 나면 그 여행은 머문 시간이 아니라 기억의 흐름이다.
흘러가고, 다시 몰려오고,
그러기를 반복하는 조류(潮流)와도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산행을 다녀오면 그런 포말(泡沫)의 흐름이 몸 안에 쌓인다.
맑고 투명한 빛
신선하고 경이로운 흐름,
그것이 곧 새로운 활력의 원천이 되고
혼자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지수의 높이가 아닌가 한다.
-----------------------------------------------------------------------------------------
[산행기록]
1. 산행참가 : 7명
권오언, 김길원, 김성호, 월파, 정산, 이성원, 정제용
2. 산행거리 : 27.0km
(성법령)-0.5Km-709.1m-2.8km-사관령-2.9km-배실재-3.9km-침곡산-5.6km-한티재-1.3km-545m-1.7km-불랫재-1.6km-421.2m-2.3km-운주산-4.4km-이리재
3. 산행일시 : 2008년 5월 11일(일)
4. 산행시간 : 11시간 50분(식사/휴식/알바 2시간 30분 포함)
0545 성법령
0600 709.1m(헬기장/삼각점 기계426)
0637 사관령 분기점
0733 574m
0750 배실재, 낙동정맥 중간지점, 10분 휴식
0822 628m
0834 쌍묘봉
0858 701.5m
0905 침곡산(725m)/삼각점(기계23, 2004재설, 20분 휴식
針谷山 正東에 비학산(762.3m) 조망
0925 침곡산 출발
0931 철탑
0940 서당골재/530m
1005 묘가 있는 분기봉
1020 676.8m/산불감시초소/최고의 전망대
포항 죽장,기북,기계 3개면의 분기점, 보현산 천문대와 보현지맥/비학산과 비학지맥 조망
1106 4거리 안부/먹재
1114 422m/삼각점(기계435, 2004재설)
1122 한티터널 상부 통과
1130 한티재(266m) 45분 중식 및 휴식
1215 중식 후 한티재 출발, 임도따라 알바 20분
1235 한티재 재출발
1310 545m, 포항 죽장면,기계면 과 영천 자양면 경계, 10분 휴식
1350 블랫재/盆城裵氏 묘, 10분 휴식
1430 삼각점(No.4)
1530 운주산 갈림봉(794.4m)
운주산(806.2m) 왕복 및 휴식및 후미조 기다림 45분
1615 운주산 갈림봉 출발
1707 621.4m, 돌무덤
1735 이리재, 대구-포항간 고속국도(터널)와 일반국도가 나란히 통과
---------------------------------------------------------------------------
'산따라 길따라 > * 낙동정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낙동정맥 - 산길따라 물길따라, 그 시작과 끝점에서 (0) | 2008.05.26 |
---|---|
낙동15 - 나뭇잎이 소곤거리는 숲길에서 (0) | 2008.05.13 |
낙동 13 - 다시 잇는 낙동, 할미꽃 수줍어하고 (0) | 2008.04.22 |
다시 찾은 태백 - 대간과 낙동, 그 분수령에서 (0) | 2008.02.17 |
낙동정맥 12 - 높은 정신은 추운 곳에서 빛나고 (0) | 2008.0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