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 15 - 나뭇잎이 소곤거리는 숲길에서
(1) 숲속 해우소(解憂所), 버린만큼 가벼워지고
아침 8시, 이리재는 바람이 차다. 비가오려나, 쌀쌀한 바람이 분다. 오르막에 더위를 식히고 내리막에 긴장하게 하는 바람이다. 지체없이 숲으로 든다. 급경사에 처음부터 숨이 차지만 발끝만 보고 뚜벅뚝벅 걷는다. 지난 밤 죽도시장의 이벤트가 너무 진했었나? 봉좌산 가는길에 번갈아가며 모두 숲속 해우소(解憂所)를 찾는다. 덜어버린 근심의 무게만큼 몸도 가벼운 법이다.
봉좌산 갈림길, 제용 아우를 기다린다. 오랫만에 합류해 어제의 27Km 장정이 부담스러웠을텐데 땀흘리며 뒤따라오는 모습이 밝아보여 다행이다. 다시 낮아진 산길과 봉우리를 걷는다. 표지판이 없어 도상위치의 확인이 어려워 혼란스럽다. 어려운 길도 아닌데, 마음이 몸을 앞서가는 모양이다. 어제에 이은 2일차 산행의 초반부터 서두르는 마음이 앞섰나 보다.
속도를 늦추고, 좁은 분지를 감싸고 있는 아늑한 지형에서 숲과 하나되어 걷는다. 지도를 접어 배낭에 넣는다. 어디쯤 가고 있는지 잠시 잊고 걷기로 한다. 다만 연두빛 숲이 발산하는 싱그러운 에너지를 마음껏 느끼기기로 한다. 임도에 이르러서야 몸과 마음이, 지도와 실물의 균형을 이룬다.
(2) 여린듯하면서 화려한 봄꽃
도덕산 갈림길에서의 잠시 지도를 탐색한다. 정산이 가진 지도에 좌측으로 직진하는 길을 안내하고 있다지만, 우측으로 90도 꺽어 내려서는 길이 낙동길임에 틀림없다. 그 길로 들자고 한다. "지도는 이 족인데 ....." "지도가 잘못되었을거야, 우측으로 가자고." 모두들 주춤하길래 배낭에서 지도를 꺼낸다. 아뿔사 이럴 수가?
정산이 가진 2002년판 지도와 내가 가진 2007년판 지도에는 낙동의 마루금이 달리 그어져 있다. 2002년 판에는 자옥산을 거쳐 삼성산으로 이어지는 길이고(오룡고개로 이어지지 않는), 2007년판은 도덕산 갈림길에서 우측 급경사 내리막과 오룡고개를 거쳐 삼성산으로 오르는 산자분수령을 제대로 보여준다. 오룡고개가 분수령인 것을.
험한 내리막에 옆으로는 너덜이 장난이 아니다. 오룡고개. 둘러봐도 후미조가 주문한 막걸리 파는 곳은 없고, 화사하게 핀 봄꽃만이 힘든 산객을 반긴다. 봄꽃의 싱거러움은 그 화려함 속에 깃든 여린 자태에서 연유함이니, 그 꽃 이름 몰라도 좋고 굳이 알려고 들지도 않는다. 다만 꽃 자체로 족하지 않는가? 꽃은 스스로 제 이름 모르더라도 본성대로 자라고 있질 않는가?
(3) 제용 아우는 펄펄 날고
오룡고개에서 도덕산을 되돌아보며 너덜을 살피다가 삼성산을 향해 숲으로 든다. 진달래와 철쭉의 꽃그늘이 드리웠던 자리는 어느새 짙은 녹음으로 채워져 있다. 겨우내 앙상하기만 하던 가지에서 님 향한 단심(丹心)인양 끝없이 붉은 빛을 토해 내던 봄산은 이제 낮은 곳부터 여름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홍엽(紅葉)에서 춘색(春色)을 보듯, 봄꽃에서 가을단풍을 그려야 하리라.
삼성산 갈림길을 지나 도착한 通政大夫 月城李公 墓, 전망은 좋지만 후손들의 성묘는 여의치 않을듯. 여기서 점심을 먹을까? 바람이 거세다. 결국 시티재까지 피신(?)한다. 안강 휴게소의 따끈한 육개장이 기다리고 있다. 아침에 찾아갓던 안강읍의 수더분하고 후덕한 밥집, 계산법이 단아(?)하고 깔끔했던 주인장이 싸준 도시락에 육개장을 곁들인다.
식사도중 심심풀이로 후미에서 오고있는 제용 아우의 반응을 점친다. 시티재에 도착하면 중도포기하고 차량회수하러 간다고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앗지만. 결국 모두 꽝 ! 마치재에서 산행을 모두 마치고 제용 아우 왈, "형님들, 저 시티재 내려설 때 몸이 펄펄 날았다고요 ......ㅎㅎㅎ" 갈수록 힘이 나니, 대간 끝무렴 선두대장했던 실력 어디 가나요? 길원은 울트라에 복귀하라고 제안하고.
지내고 보니 시티재의 늦은 점심, 안강휴게소의 육개장이 별미였더라. 시장이 반찬이었나? 넉넉히, 여유롭게, 아이스크림까지 먹고, 길을 가로질러, 바람 피해, 다시 어림산을 향해 숲으로.
(4) 어림산 가는 숲길에서
산 들머리의 이동전화 철탑을 지나면 바로 세속의 삶과 멀어진다. 호국봉과 돌탑을 지나 철조망을 따라 걷는다. 그 철조망이 인간세상과 숲속세상을 가르마 타듯 나누고 있다. 어림산을 향해가는 숲길은 나뭇잎의 소곤거림이 숨소리처럼 귓속을 파고드는 길이다. 시작과 끝만 있는 길을 거침없이 질주하며 살아온 행로에서 잠시 비켜설 수 있는 길이다.
어림산을 향해 오르기 전, 송전탑에서 선두와 후미가 모여 운기조식.
"자, 어림산으로 ! " "월파가 선두서라" 정산의 지령에 발끝만 보고, 하나 둘 ..... 25분만에 어림산 정상, 오늘 산행의 끝이 보인다. 마치재가 저 아래에 모습을 드러낸다.
어림산의 5,4,3,2,1. 다섯 봉우리는 그 숫자대로 차례로 허리를 낮춘다.
스스로 자세를 낮추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저 산 처럼.
마치재에서의 발가락 치료, 제용 아우의 세심한 배려에 코끝이 찡하다.
히치하이킹, 트럭타고 경주로. 얼음골 막걸리에 부추전, ......무침.
택시타고 다시 이리재 원점으로.
왕비손짜장, 세번째다. 맛도,멋도,서비스도 별로인데 어쩌다 세번씩이나 ......
대간길에 성호네 본가에 4번, 소백산 아래 단양 700년 전통의 술도가(대강 양조장)에 3번 뿐인데 ......
하루 먼저 포도청 챙기러 간 오언에게서 전화가 온다. 아쉬운 마음이 담겨져 있다.
"형님, 다음 땜빵할 때 함께 할거죠? "
"암 암만. 당근이지."
동대구로 가서 고속버스로 상경하니 새벽 1시가 가까워 온다.
3박2일(?)에 걸친 50시간의 낙동여행이었다.
법정스님의 山之山人을 읊으며 일상복귀.
우리가 산으로 가는 것은 / 단지 산이 그 곳에 있기 때문이 아니다 /
때 묻지 않은 사람과 / 때 묻지 않은 자연이 / 커다란 조화를 이루면서 /
끝없는 생명의 빛을 / 발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살고 싶다. / 그런 산에 돌아가 /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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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행일시/참가자
- 2008년 5월 12일(월) 부처님 오신날
- 김길원,김성호,월파,정산,이성원,정제용
2. 산행거리 : 21.0km
이리재-5.1km-도덕산 분기봉-3.4km-삼성산 분기봉-3.3km-시티재-7.6km-어림산-1.6km-마치재
3. 산행시간 : 9시간 45분(식사및 휴식 1시간 40분 포함)
0800 이리재(921번지방도)
0840 614.9m/鳳座山 갈림길 , 포항,경주,영천시의 경계, 10분 휴식
0940 임도
1010 천장산 갈림길
1010 도덕산 갈림길
1030 너덜지대
1042 쌍묘
1050 임도
1057 오룡고개/2차선 포장도로, 10분 휴식
1130 368.4m/삼각점(기계470)
1136 묘/골말안부
1157 삼성산(578.2m) 갈림길/532m
1200 521.5m/삼각점/通政大夫月城李公墓
1245 349.8m/옛 헬기장 공터
1257 시티재/안강휴게소
1407 시티재 출발, 1시간10분 중식 및 휴식
1423 안부/송신탑
1437 호국봉(340m) 표목
1440 382.9m/돌탑/삼각점
1457 안부/철문
1505 능선분기점
1512 우측 철망울타리 종료
1545 4거리 안부
1609 철탑(No.195), 10분휴식
1645 5봉/어림산(510.4m) 정상, 5분 휴식
1654 4봉/朝鮮孝節閣高金公之墓
1657 3봉
1700 2봉(너덜)
1705 1봉
1715 마치재(馬齒, 馬峴, 927번지방도)
4. 다음 산행계획
낙동 16차 : 마치재-숲재 23.7Km
낙동 17차 : 숲재-소호고개 22.5Km
낙동 18차 : 소호고개-석남터널 22.6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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