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따라 길따라/* 智異十景

[화엄사-대원사 종주] 운무(雲霧) 속에서 길을 묻다(1)

月波 2008. 8. 17. 15:55

 

[화엄사-대원사 종주] 운무(雲霧) 속에서 길을 묻다(1)

 

 

(1) 그대 무엇으로 지리산에 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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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밤 9 45분 용산역, 지리산 길목인 구례구역으로 떠나는 기적이 울린다. "멀리 기적이 우네. 나를 두고 ……" 가수 이은하의 '밤차', 다이아몬드 스텝에 손가락을 찔러대며 열정적으로 무대를 달구던 그녀의 춤, 그 격렬한 율동과 젊은 시절 내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차창에 비친다.

 

70년대 후반 대학 캠퍼스는 암울했다. 민주화의 길은 희미하고, 긴급조치, 야간통금, 장발단속으로 밤낮으로 숨이 막혔다. 지리산 종주는 그 탈출구였다. 소리없는 아우성이요, 내면의 의지를 불태우는 담금질이었다. 발 닿는 대로 지리의 품에서 세월을 낚다가 운무가 걷히면 돌아오곤 했다.

 

그 이후30여 년, 세상의 파도에 휩쓸리면서도 여러 차례 속도전으로 지리산 종주를 했다. 그러나, 문득 바람이 불어 업보처럼 안고 있는 세진(世塵)을 털어보려 화엄사-대원사 정통 종주의 길에 다시 나선다. 오로지 산을 대하는 지고지순(至高至順)한 마음으로 몇몇이 의기투합하여.

 

그대 무엇으로 지리산에 드는가? 산을 오르는 것(登山)이 아니라, 입산(入山)의 마음으로 간다. 운해(雲海)와 청류(淸流)), 낙조(落照)와 명월(明月), 연하(煙霞)와 일출(日出)을 탐하기보다, 오로지 산과 한 몸이 된다는 생각으로 산으로 간다. 지리산의 후덕한 품에 그냥 안기고 싶다.

 

그리고, 행선(行禪)하듯이 걸어 보자. 낮은 자세로 능선을 걸으며, 숲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풀꽃처럼 향기로운 시인(詩人)의 노래를 읊어보자. 그 곳에서 우리가 꿈꾸는 참된 삶의 모습을 만나지 않을까? 시집(詩集) 몇 권 챙겨 산으로 간다.

 

 

산행 일시 : 2008 8 15() ~ 8 16(), 벽소령 1

산행 시간 : 바람처럼 구름처럼, 해시계 물시계도 버리고

산행 코스 : (1일차) 화엄사-노고단-반야봉-화개재-연하천-벽소령(1박)

                 (2일차) 벽소령-세석-장터목-천왕봉-중봉-치밭목-대원사

산행 거리 : 46.2 Km(반야봉 왕복 2Km포함)

산행 날씨 : 이틀간 운무(雲霧)와 함께, 스치는 안개비에 젖기도 하며

산행 동참 : 성호,길원,정산,월파,오리,성원,시탁

 

 

 

 

 

(2)  종주의 들머리 화엄사(華嚴寺)에서

 

구례구(求禮口)

구례(求禮)역이 아니고 왜 구례구(求禮口)역인가구례로 들어가는 길목, 역사(驛舍)가 구례군이 아니라 순천시에 있어 혼동을 피하기 위함일 것이다. 구례읍의 동바리 해장국 한 그릇 먹고 화엄사로 향한다. 점심은 무엇으로 하나? 해장국 맛에 반해 산경(山景)보다 식탐(食貪)이 앞선다.

 

 

화엄사(華嚴寺)

화엄경(華嚴經)의 두 글자로 연기(緣起) 조사(祖師)가 창건한 천 년의 화엄성지다. 조사의 가르침대로 무언(無言), 무설(無說), 무문(無問), 무심(無心)으로 화엄(華嚴)에 닿아, 어둠 속에서 각황전(覺皇殿)을 향해 합장하고 산으로 든다.

    
      
無言智異山 無說亦七佛 無問是甚摩 無心親白雲

지리산은 말이 없고, 칠불도 또한 설함이 없네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을 것도 없으니, 무심이라야 백운과 함께 하리라

 

금강경의 말씀대로 應無所住而生其心(응무소주이생기심) 하리라. 머무름이 없고, 걸림이 없고, 집착함이 없는 그 마음으로 지리산으로 들어가리라.

 

     파아란 하늘을 마음에 든다고 말하지 마라

     하늘은 집착하지 않는다

  검은 먹구름을 싫다고 말하지 마라

  먹구름이 웃는다

  하늘도 분별을 떠나 있고

  먹구름도 분별을 떠나있기 때문이다.

- 無一 우학, <華嚴(화엄)> 중에서

 

  

 

연기암(緣起庵)

새벽 예불소리 들려온다. “물봉선 한 잎 지더라도 필연의 이유가 있고, 그 꽃잎에 내린 이슬 하나에도 긴 여정과 오랜 비밀이 스며있다.”고 했지요. 조사는 이렇게 연기(緣起)를 보이시는군요. 합장, 합장 또 합장. 화엄사 연기암에 이어 대원사도 일구셨으니, 화대종주는 조사께서 터놓으신 그 길입니다.

  

피어나는 연기암의 새벽안개, 담백하면서도 격조 높은 수묵담채가 가슴에 절절하다. 운무속에서 극소와 극대, 순간과 영원이 하나로 합일됨을 느낀다. 매화 향 흩날리는 봄날에 연기암의 뜰을 다시 거닐고 싶은 것은 나만의 바램일까?

 

 

참샘을 지나 국수등, 무냉기(코재) 가는 길에서, 숨은 턱에 차고 코는 하늘에 닿는다. 코재에도 저 아래 섬진강에도 짙은 비안개가 세상을 뒤덮고 있다.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속으로 겸허하게 섬진강 푸른 산그림자를 굽어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 마고할미를 만나러 노고단으로 향한다.

 

 

 

 

(3)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노고단

노고단의 돌탑에 농무(濃霧)가 드리워져 있다. 숲길에는 원추리가 노란 자태를 뽐내고 있다. “저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라고 이원규 시인은 노래했거늘. 그래야만 노고단 구름바다에 풍덩 빠질 수 있다고 했는데.

 

꽃이 피고 지는 것도, 구름의 생멸에도 나름대로 인과(因果)가 있다지만, 겁의 세월에는 스치는 바람이다. 꽃이 피고 지는 그 사이, 썰물이 왔다가는 그 사이도, 예순 갑자를 돌아나온 어버지의 그 홍역같은 삶조차 <한 호흡>이라 부르자던 문태준 시인의 관조적 사유(思惟)에 공감한다.

 

 

임걸령 샘터

물맛이 으뜸이다. 잠시 하늘이 열리고 비구름은 문바우등 너머 왕시루봉에 걸려 있다. 저 아래 지리산 시인 이원규가  살고 있다. 강화도의 함민복 시인이 북두칠성 모양으로 텃밭에 심었다던 해바라기, 그 해바라기는 북두칠성이 되어 오늘 밤 지리산 시인의 집 하늘에 뜰 것이다.

 

불무장등과 문바우등을 울타리 삼아 피아골이 있다. 피아골 산장의 함태식 옹, 그가 32년 전 노고단에서 살린 두 여대생, 그들은 지천명(知天命)을 넘어 이순(耳順)을 바라보고 여든을 넘긴 함태식 옹은 아직도 산장을 지키고 있다. 이번 가을에는 피아골로 들어야겠다.

 

 

 

= (산행기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