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따라 길따라/* 智異十景

지리산 자락의 3찰을 맴돌며

月波 2009. 1. 27. 18:57

 

설날을 앞두고 고향가는 길,

폭설은 숱한 사람의 길을 가로막고, 운좋게 눈길을 탈출한 사람에게는 여분의 시간을 안겨준다.

서울에서 눈 내린 새벽길을 4시간 가까이 달려 도착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덕유산 휴게소, 잘 탈출한 셈이다.

이제 육십령 터널만 지나면 고향집이 지척이요, 길도 뻥 뚫였으니 1시간이면 충분하리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휴게소에서 간단히 아침 요기를 하며 내다보는 덕유산은 그야말로 설화천국(雪花天國)이다.

아내와 아들이 의기투합(?)하여 지리산을 둘러보고 천천히 진주로 가자고 한다. 산청 금서의 약초밥도 맛보고 싶다고 ......

불감청 고소원(不敢請 顧所願)), 함양JC에서 길을 바꿔 남원 인월을 거쳐 지리산 백무동으로 향한다.

그 절집 마당에 서면, 천왕봉이 지척에서 바라다보이는 지리산 북부의 몇몇 사찰을 둘러보기로 한다.

고향집에서는 부모님이 애타게 기다리실텐데 .......

 

 

 (1) 실상사(實相寺) 8각석등과 3층석탑

 

구산선문의 실상사로 드는 길, 빗자루로 곱게 눈을 쓸어놓았다. 절로 마음이 정갈해진다. 사천왕문에서 고개돌려 뒤를 바라보니 천왕봉은 설천지국(雪天之國)이다. 오늘 저 천왕봉을 바라보며 북부 지리산 언저리를 맴돌다 고향의 품으로 돌아가리라. 아들녀석에게 슬금슬금 유혹의 단초를 던진다. 천왕봉은 아래서 올려다 보는 풍광도 좋지만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호연지기가 더할 나위 없다고. 금년 여름에는 함께 저 천왕봉에 올라보자고. 쉬엄쉬엄 2박3일 정도 날을 잡아, 지리산 주 능선을 함께 종주해보자고. 아빠의 너스레에 녀석이 99.9% 결심을 한 것 같다. 아내도 따라붙을 요량이다.

 

 

 

 

 

팔각 석등과 삼층 석탑, 통일신라시대 실상사 창건시에 세운 것이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여러 차례 실상사에 들렀지만 석등이나 석탑을 세밀히 살펴보지는 못했었다. 법당에 들어가 참배하는 것을 미루고 인적 드문 경내에서 유심히 석등과 석탑을 살핀다. 둥근 장고(長鼓)모양의 기둥 위에 받혀진 8각석등은 그 지붕이 둘이다. 주 지붕 위에 앙증맞은 작은 원형지붕이 하나 더 있다.

 

큼직한 사각창을 8면에 가진 석등, 저 등의 불빛은 부처님의 자비이리라. 그 자비의 불빛이 온누리를 환하게 비출 수 있도록 석등의 몸체 여덟면에 큼지막하게 창을 만들었으리라. 요즘처럼 모두가 움츠리는 때에, 저 8각등의 불빛이 보다 어둡고 후미진 곳에, 보다 낮고 어려운 사람에게 두루 비추어지길 기원해본다. 두 손 모아 탑돌이를 하고 있는 아내와 아들녀석은 어떤 생각일까? 화단의 돌 그림자가 하얀 눈에 내리며 세상을 비추고 있다.

 

   * 실상사 석등(보물 35호) 및, 실상사 삼층석탑(보물 37호)

      : 통일신라시대 석등과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을 갖추고 있으며, 두 개의 석탑은 좌우 대칭형으로 배치되어 있음.

      : 석탑은 층마다 별개의 돌로 몸체와 지붕을 만들었으며, 각 층 몸체의 모퉁이에는 기둥모양의 조각을 하였음.

      : 서탑의 꼭대기 일부가 훼손되어 균형미가 덜하나, 전체적으로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담백한 멋을 느낄 수 있음.

 

 

 

 (2) 고담사(古潭寺) 마애여래입상

 

 마애여래입상(磨崖如來立像), 거대한 화강암을 다듬어 6m 가까운 높이의 불상을 새긴 마애불(磨崖佛)이다. 백무동을 갈 때마다 고담사(古潭寺)에 들리는 일을 번번히 놓쳤는데, 오늘은 기어코 찾아가야지. 백무동 마을과 삼정(양정,음정,하정)마을에 차례로 들렀다가 내려오는 길에 다랑이 논을 따라 난 좁은 길을 따라 고담사를 찾아간다. 돌아나올 길을 걱정하며 적당한 지점에 차를 세운다. 멀리서 보아도 마애불은 눈에 훤히 들어온다. 세상을 두루 감싸고도 남을 광채가 아침햇살에 빛난다.

 

 

 

 

꼭 다문 입, 넓게 벌어진 양어깨, 두툼한 발 ....... 전신(全身)에 비해 비록 작은 손이지만 얼굴은 엄숙하면서도 온화하다. 마애불에 합장하고 돌아서니 이마 너머로 천왕봉이 우뚝하다. 하봉, 중봉을 오른쪽에 제석봉을 왼쪽에 거느리고 천왕봉이 아랫세상을 감싸고 있다. 천왕봉과 마애불이 마주보고 웃고 있다. 지나가는 구름사이로 햇살도 언뜻언뜻 얼굴을 내비추며 세상을 향해 웃고 있다.

 

길을 돌아 나서는데 수없는 조각상들이 한 몸이 되어 웃고 있다. 모습은 제 각각이지만 들려주는 메시지는 한결같다. 물처럼 살라 한다. 바람처럼 살라 한다. 바위에 붙들리지 않는 물처럼, 나무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 그래, 걸림이 없는, 얽매임이 없는, 그래서 집착함이 없이 자유자재로운 그런 삶을 살라 한다. 그 마음으로 벽송사를 향해 칠선계곡으로 간다.

 

 

  * 고담사(古潭寺) 마애여래입상(磨崖如來立像) - 경남 함양군 마천면

       : 전체 높이 6m, 불상 높이 5.8m나 되는 거대한 마애불(磨崖佛)로, 광배(光背)와 대좌(臺座)까지 갖춘 거불조각(巨佛彫刻)임.

       : 배 모양의 광배(光背)는 두광(頭光)과 신광(身光) 모두 볼록한 선으로 조각되었고, 불상을 받치는 대좌(臺座)는 연꽃 봉오리같은 상좌(上座)와 불탑의 기단(基壇)같은 하대(下臺)로 구성됨. 고려 초기(10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됨.

 

 

 

 (3) 벽송사(碧松寺)의 선승들

 

칠선계곡, 지리 10경의 하나다. 아름다운 풍광을 고이 간직한채 오래도록 비경(秘景)으로 숨겨져 있다. 최근 일부 개방을 했지만 그곳으로 들 수 있는 기회는 아직 아득하기만 하다. 그 초입에 출입이 가능한 벽송사를 둘러보기로 한다. 잎 떨어진 겨울나무가 허허롭게 산을 지키고 있지만 모든 것을 떨어버린 숲이 오히려 정감스럽게 다가선다. 멀리 천왕봉의 백설을 가슴에 안고 벽송사는 새 모습으로 치장을 하고 있다. 폐허의 그늘에 하나씩 건물을 채워가는 벽송사가 왠지 눈에 설익기만 하다.

 

벽송사, 조선 중종시대(1520년) 벽송지엄(碧松智嚴) 선사가 창건하여, 서산대사와 사명대사가 수행하여 도를 닦은 유서깊은 사찰이건만,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의 본거지로 완전 소실되어 폐허화되는 참화를 겪고, 이제 50여년이 흘러 조금씩 복원작업을 하고 있다. 비록 벽송사가 지리산의 천봉만학(千峰萬壑)이 동산과 정원이요, 부용만개(芙蓉滿開) 청학포란(靑鶴抱卵)의 형국에 자리잡았지만, 무상(無常)한 세월에 명당인들 영원할 수 있으리요?

 

"구름 머무는 하늘의 별천지, 연꽃피는 정토의 벽송사에 만대에 걸쳐 조사(祖師)가 이어지리라"(*)고 옛 사람은 말했지만, 만고의 수려한 풍광도 쌓였다가 허물어지는 세월 앞에, 모두 덧없음이여 !

(*)  古人 云 碧松寺 雲居天上 別有天地 芙蓉淨土 祖印萬代

 

 

 

 

 

 

고풍(古風)은 사라지고 겉으로만 깔끔하게 단장한 벽송사. 요즈음 표현으로 H/W만 있고 S/W와 Contents가 부족하다. 그 깔끔함이 오히려 발길을 성기게 한다. 옛절의 향기도, 옛 선사의 가르침도 느끼기 어렵다. 새로 쌓은 긴 담장, 이 산중에 왠 담장이 저리도 필요할까? 얼마나 세월이 흘러야 옛절의 향기와 도가 살아날지?  고목 등걸만이 옛일을 말해줄 뿐 뉘라서 옛소식 전하겠는가? 나만의 부질없는 생각일까?

 

벽송사 산문(山門)을 돌아나서는데, 고목등걸에 걸려있는 옛 선사(眞淨克文 禪師, 1025~1102)의 게송이 산객의 마음에 경종을 울린다.

 

          削髮因驚雪滿刀(삭발인경설만도)     삭발하다 칼날에 흰 눈이 가득함에 놀라,

          方知歲月不相饒(방지세월불상요)     세월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겠네

          逃生脫死勤成佛(도생탈사근성불)     생사를 벗어나 부처의 길 부지런히 닦아,

          莫待明朝與後朝(막대명조여후조)     내일 아침 모레 아침을 기다리지 말라

 

내일을 기다리지 말라. 모레도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남은 세월이 이제 얼마나 되는가! 부지런히 정진하여도 성불하기 어렵지 않은가? 삭발하다가 삭도(削刀)에 흰 머리가 수북히 쌓인 것을 보고 새삼 놀라 스스로를 경책하는 게송이다. 세상 사람들은 거울을 보다가 문득 머리털이 센 것을 보고 놀라 슬픔에 젖지만, 진정한 수행자는 머리를 깍다가도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고 자신의 수행을 채근할 줄 알았으니 ......

 

벽송사를 내려서는 길에 원응(元應)스님의 원(願)이 서린 서암정사(瑞岩精舍)에 잠시 들렀다가, 청매인오(靑梅 印悟) 선사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오도재(悟道峙)를 넘어 진주로 향한다. 벽송사 산문의 고목등걸에 매달려 있던 청매선사의 게송이 자꾸 머리에 맴돌지만 미혹한 중생에게는 그 화두가 난해하기만 하다. 희양산 봉암사 조사당이나 팔공산 동화사 조사전의 주련(柱聯)으로도 걸려있는 선사의 게송이니, 수행하는 운수납자라면 쉽게 깨칠 수 있을까?

 

 

 2009. 1. 25.

 월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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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벽송사와 조선시대 불교의 선맥(禪脈)

제1대 마하가섭 존자에게 이어진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이 인도에서 전해지다가, 제28대 달마대사에 의해 중국으로 건너와 제29대 혜가(慧可)대사로 법맥이 이어졌다. 이후 승찬(僧燦), 도신(道信), 홍인(弘忍), 혜능(慧能)으로 중국에서 이어지던 법맥은 57대에 이르러 중국에서 고려의 태고보우(太古普愚)화상에게 전수되고, 환암혼수(幻庵混修), 귀곡각운(龜谷覺雲) 조사를 거쳐 60대 벽계정심(碧溪正心) 조사에 이른다.

 

이후 부처님의 법은 벽송사를 창건한 61대 벽송지엄(碧松智嚴) 조사로 이어지고  62대 부용영관(芙蓉靈觀), 63대 청허휴정(淸虛休靜)으로 이어지며 벽송사 문중의 선맥이 활짝 핀다. 청허휴정(西山大師)의 가르침은 벽송사에서 부휴선수(浮休善修), 사명유정(四溟惟政), 청매인오(靑梅 印悟),환성지안(喚醒志安) 선사로 이어졌다. 벽송사는 기라성같은 정통조사들이 수행교화하여 조선 선불교 최고의 종가를 이루었다.

 

     * 오도재(悟道峙)의 비석에 새겨진 청매인오(靑梅印悟) 선사의 십이각시(十二覺詩)

           覺非覺非覺        깨달음은 깨닫는 것도 깨닫지 않는 것도 아니니

           覺無覺覺覺        깨달음 자체가 깨달음 없어 깨달음을 깨닫는 것이네

           覺覺非覺覺        깨달음을 깨닫는다는 것은 깨달음을 깨닫는 것이 아니니

           豈獨名眞覺        어찌 홀로 참깨달음이라 이름하리오

 

     * 벽송사 고목등걸에 걸려있던 청매인오(靑梅印悟) 선사의 게송

               - 唐代의 승려 향엄지한(香嚴智閑)의 일화에서 유래한 향엄격죽(香嚴擊竹) 화두를 소재로 한 청매선사의 絶詩임.

           龍吟枯木猶生喜 (용음고목유생희)      용이 고목에 울부짖을 때 오히려 기쁘더니

           髑髏生光識轉幽 (촉수생광식전유)      해골박에서 빛이 날 땐 알음알이가 오히려 그윽하다

           磊落一聲空粉碎 (뇌락일성공분쇄)      벼락치는 한 소리에 허공이 무너지고

           月波千里放孤舟 (월파천리방고주)      달빛 출렁이는 천리파도에 일엽편주를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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