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남정맥 01] 이 바람이 春風이냐 冬風이냐
1. 산행 개요
1) 일 시 : 2010년 3월 21일(일) 무박산행
2) 구 간 : 낙남정맥 제 1구간(고암 나루터-신어산-망천고개), 도상 거리 20.4Km
3) 시 간 : 9시간 30분(식사 및 휴식 포함)
4) 참 가 : 성원, 월파(달무리) 그리고 좋은 사람들 36인
2. 산행 후기
(1) 프롤로그(Prolog) - 왜 산으로 자꾸 오나요?
묵은 겨울을 보내고 새 봄을 맞는 축제가 세계 곳곳에 많다. 그중 인도(India) 북부지방에 '컬러(Color)축제'라는 특이한 봄맞이 축제가 있다. 오전에 주위 사람에게 온갖 색깔의 물감세례를 하며 다니고, 오후에는 이웃 어른에게 물감으로 '지혜의 눈'을 이마에 찍어주는 인사를 한다.
몸에 색색가지 물감을 적시면 자신을 짓누르는 그 무엇이 정화되고, 찾아온 봄의 색깔을 만끽할 수 있다고 믿는단다.
매년 인도를 찾아 명상 여행을 하는 류시화 시인이 그 축제에서 인도소녀 잔티 초베와 나눈 대화의 일부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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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 당신은 왜 해마다 인도로 오나요?
시인 : 그만큼 인도를 사랑하기 때문이지.
소녀 : 아녜요. 당신이 인도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인도가 당신을 사랑하는 거예요. 인도가 언제나 당신을 부르는 거죠.
당신은 왜 산으로 오나요? 대간과 낙동, 한북, 금호남의 산줄기에 이어 왜 낙남으로 드나요? 당신은 왜 자꾸 산으로 오나요?
음, 산을 사랑하기 때문이지. 아니 아니, 산이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지. 언제나 산이 나를 부르기 때문이지.
그렇다. 산의 부름을 따라 오늘 낙남의 산줄기에 그 첫발을 디딘다. 봄맞이 축제에 나서는 셈이다. 울긋불긋 펼쳐질 컬러(Color) 축제에 참가하는 것이다. 이 낙남의 축제를 통해 스스로의 마음을 정화하면서 마음껏 봄의 빛깔을 느껴보는 것이다.
낙남의 산야에 아침의 빛이 스미고 있다
(2) 삶에도 봄은 오는가?
이 바람이 봄 바람이냐, 겨울 바람이냐? 어둠이 짙은 망천고개에는 새벽바람이 거세다. 볼을 후비며 파고든다. 3월 하순이니 계절은 정녕 봄이건만 바람은 살을 엔다. 새벽 4시의 바람은 더욱 그러하다. 고어텍스 자켓의 깃을 세우며 어둠 속으로 빨려든다. 그렇게 낙남1차의 출발을 고암나루터가 아닌 망천고개에서 역방향으로 시작한다. 그 바람이 묻는다. 당신의 삶에도 봄이 왔나요?
오랜만의 야간 산행이다. 묵묵히 앞 사람의 뒤태만 살피며 산을 오른다. 가끔 헤드랜턴의 불빛이 신경을 거슬리지만, 갈수록 어둠이 주는 그 깊은 침묵 속으로 빠져든다. 몰입이다. 적막함이 가져다주는 평온과 편안을 느낀다. 고뇌의 깊은 나락에 떨어지지 않고도, 이런 정적(靜寂)에 빠질 수 있음이 행복이다. 야간 산행이 주는 선물이다.
채석(採石)으로 마루금이 사라진 나밭고개에서 새벽의 침묵을 깨는 도시의 불빛을 본다. 산에서 산을 보지 못하고 도시를 접한다. 가야CC 통과를 앞두고, 아침햇살을 맞으며 어서 오라 손짓하는 신어산의 영접을 받는다. 그런데, 미로와 같은 저 골프장을 어떻게 통과해야 하나? 고민은 잠시, 물 흐르듯 순리에 맡기기로 한다. 다행히 마루금을 따라 골프코스와 클럽하우스를 통과한다. 그 골퍼들도 '나이스 샷'이었겠지?
신어산 오르는 길, 여전히 바람이 쌀쌀하다. 그러나 이제 막 피기 시작하는 꽃들에서 제법 봄을 느낄 수 있다. 숲길에서 만난 생강나무가 노란 꽃술을 터뜨리고, 진달래가 수줍게 얼굴을 내밀고 있다. 완연한 봄이 멀지 않으리라. 긴 침잠의 터널을 지나, 우리 일상에도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왔으면 좋겠다.
낙남의 마루금을 가로지르는 가야CC
(3) 가락국의 흔적은?
신어산 서봉에 오르니 김해의 산야가 비로소 한눈에 들어온다. 전후좌우를 조망하고, 산에서 건너는 구름다리가 신기해 사진도 찍으며 여유롭게 신어산 능선을 걷는다. 정상 아래의 은하사와 영구암, 그 오래된 절의 효험 있는 약수를 떠올린다. 30여 년 전, 그 약수만 마시며 3주간 단식하여, 오랜 위장병을 고치고 건강을 되찾았던 선배의 얼굴이 떠오른다. 돌이켜 보면 꿈이 많던 시절이었다.
꿈 ! 인간의 삶은 잃어버린 꿈을 찾으려는 긴 여행이라 했다. "이번 낙남 여행도 그러한가?" 하고 누군가 묻는다. 돌아봐도 동행하는 성원 형 외에는 아무도 없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김해의 산야에서 흩어진 가락국의 꿈과 그 흔적을 찾는가? " "그 시대를 살았던 가야인의 정신은 무엇이며, 그들이 남긴 유훈은 무엇인가? " 김 관장, 산에서 찾다가 길을 잃으면 그대에게 달려가리니, 나에게 길을 열거라.
생명고개의 외딴집, 주인도 집을 비우고 고즈넉함만 남아 있다. 성원 형과 준비한 도시락을 먹으며 마치 주인처럼 마냥 쉰다. 그 집에 들르는 이 아무도 없으니 객이 주인이다. "정해진 시간보다 고암 나루터 도착이 늦으면, 버스가 먼저 출발한다."던 산행대장의 협박(?)도, 우리의 '여유로운 오찬'을 방해할 수 없다. 둘이서 오두막을 차지하고, 오랫동안 옛 가야의 숨결을 더듬으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낙남 길 곳곳에서 이런 곳을 찾을 수 있다면, 서슴치 않고 찾아가리라. 그리고 그 오래된 가야의 향기를 맡으리라.
생명고개의 외딴집 앞 물레방아
(4) '양초의 화신'은 어디에?
외딴집에서 얼마나 시간을 보냈을까? 아무도 그 외딴 곳을 찾지 않으니, 뒤에 오던 십여명의 일행들은 모두 앞서 갔으리라. 이런 예감은 불행히도 대개 적중한다. 서둘러야한다는 생각과 놀며 쉬며 산길을 걷자는 또 다른 생각이 갈등을 일으킨다. 산행팀의 입장과 개인의 입장이 벌이는 자아(自我)의 충돌이다. 어찌할까? 이 페이스로 가도 버스 마감시간은 맞출 수 있는데 .......
522봉, 481봉, 478봉, 499봉 ...... 이름 없는 봉우리의 연속이다. 이름조차 없으니 경관도 별것이 없다. 더구나 봉우리마다 고도차(高度差)가 심해 체력의 부담이 크다. 핑계는 더 있다. 무박 야간산행이 주는 피로감이 찾아오는 시간이다. 점점 체력의 부담을 느끼기 시작한다. 최근 2개월간 일체의 운동을 못한 여파를 체감하며 그 무명봉들을 차례로 오르내린다.
무명봉을 오르내리며, [-->백두산]이란 이정표를 자꾸 만난다. 무슨 뜻일까? 백두산은 반대 방향인데? 팻말을 누군가 돌려 세웠나? 그 의문은 478봉에서 풀린다. 김해에도 '백두산'이 있었다. 478봉에 낙남과 (김해) 백두산의 갈림길 이정표가 있는 게 아닌가! 지도를 펼쳐보니 과연 그렇다. 어, 산행대장 이름도 '백두산'인데, '그 백두산'은 왜 '이 백두산'이 있다는 설명을 빠뜨렸을까?
499봉을 거쳐 동신어산(459.6봉)으로 향한다. 배낭에 넣은 대형 카메라의 무게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체력이 이미 고갈된 상태라는 뜻이다. 성원 형이 내 배낭을 빼앗다시피 하며, 서로의 배낭을 바꿔 매자고 한다. 제 몸을 녹여 어둠을 밝히는 '양초의 화신'이 따로 없다. 그대 나처럼 급전직하로 어둠 속에 떨어져 본 일이 있는가? 그렇지 않고는 '양초'의 화신을 만나기 어려우리라.
동신어산에서 낙동강을 굽어보며 기력을 회복해 고암 나루터로 수직 낙하한다. 무릎의 통증이 더욱 심하게 느껴지지만 고행의 끝이 보인다. 그 길의 끝에서 수행승처럼 뒤에서 나타난 마지막 후미 '산좋아'님과 해후한다. 그녀는 초면으로, 버스 좌석의 내 옆지기였다. 새벽 출발점에서 헤어져 산행 종점에서 만난 것이다. 어쩌면 앞으로 후미대장을 놓고 다툴지 모르겠다.
제한시간 10분 전 도착, 뒤풀이로 삼계탕에 곁들이는 인삼주의 맛이 제법이다. "인삼주, 한 병 더"를 청하니, 피로가 눈 녹듯 풀린다.
동신어산에서 바라본 낙동강과 양산, 물금역 주변으로 개발이 한창이다
(5) 에필로그(Epilog) - 고통 속에 피어난 정(情)
체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산행의 후반은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이다. 사전 준비가 치밀해야 한다. 이번 산행 후반부의 고통은 그동안 소홀했던 체력관리 탓도 있지만, 평소와 달리 무릎 보호대와 스틱을 무심코 챙기지 않은 불찰도 한 몫을 더했다.
성원 형, 감사합니다. 산행 내내 저에 맞춰 속도를 조절하고, 무릎 통증으로 고통 받는 저를 격려해주셨습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형의 배낭은 훨씬 가벼웠습니다. 저도 몸무게 줄이든지 배낭무게라도 줄여야겠지요?
그래도 대형 카메라는 버릴 수 없으니, 제 배낭 종종 짊어지실 거죠? ㅎㅎㅎ
상경하여 집으로 가는 택시 속에서, "이번 첫 구간이 낙남 중에서 제일 힘든 구간이다"라는 얘기를 성원 형이 나에게 슬며시 건넨다.
"그래요? 그렇다면 저에게 조금 위안이 되지요." "그런데, 다음 구간은 28Km로 이번 구간(20Km)보다 훨씬 길던데 ....."
"그럼, 산이 낮을까요?" " 2구간 최고봉은 1구간 최고봉보다 100m나 더 높던데 ......"
"따지지 말고 그냥 가자고요?" "그러지요, 뭐. 언제라도 그러하듯이 ......"
어쨌든 이번 산행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우리들의 산행이 될 겁니다. 백두대간과 낙동정맥 등 여러 산행을 백여 차례 가까이 함께 해왔지만, 둘이서 앞뒤로 떨어지지 않고 풀타임 함께 걸은 일은 이번이 처음이지 싶습니다. 벌써 다음 산행이 기다려집니다.
사람 사는 정(情)이란 이런 것이겠지요?
'양초의 화신' - 신어산 정상근처에서
2010. 3. 21. 늦은 밤에
역삼동 펜타빌에서
월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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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시간] 2010년 3월 21일(일)
0420 망천고개 - 바람이 차다. 황사가 두렵다. 어둠속의 침묵으로.
0530 나밭고개
0630 402.9봉
0730 가야CC 통과 - 찬란한 아침햇살. 등산배낭 짊어지고 골프장 클럽하우스 통과 ~~~ ㅋㅋㅋㅋㅋ
0810 641봉(신어산 서봉)
0845 신어산(631.1m) - 저 아래 은하사와 영구암, 그 약수가 그립다.
0920 생명고개 도착(식수보충 및 식사 30분) - 외딴 집에서의 느긋한 오찬, 둘만의 세레나데
0950 생명고개 출발
1030 522.2봉 - 체력의 고갈, 무릎의 이상을 느끼다.
1100 481봉과 478봉 사이 안부 - 어느 이정표를 따르리까? 매리? 백두산? 여기서는 백두산이 정답.
1120 478봉 - 어느 길인가요? 여기서는 백두산이 오답.
1212 499봉
1245 동신어산(459.6m)
1350 고암 나루터(매리2교) - 삼계탕 맛있었지요. 10, 000원. 아줌마 성깔이 조금 ??? 그렇잖았으면, 시골에서 10,000원도 OK였는데.
1440 고암 나루터 출발
1940 서울 역삼동 도착 - 아내 왈, 정말 일찍 왔네요. (정말 일찍은 새벽 1시가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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