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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남정맥 05] 아라가야의 옛터에서

月波 2010. 5. 17. 05:58

 

[낙남정맥 05] 아라가야의 옛터에서

 

 

1. 산행 개요

 

  1) 일 시 : 2010년 5월 16일(일) 무박산행

  2) 구 간 : 낙남정맥 제 5구간(한티재-대부산-서북산-여항산-오곡재-발산재), 도상 거리 22.3 Km

  3) 시 간 : 8시간 25분(식사, 휴식 60분 포함)

  4) 참 가 : 좋은 사람들 36인 (9인의 동행자 : *리, *원, *파, *산, 길*, 지*,  *호, 은*, *옥)

 

2. 산행 후기

 

(1) 만절(晩節)에 봄이 한창이더라

 

출장에서 서둘러 귀국해 낙남행 배낭을 꾸린다. 경험상 1주일의 짧은 미국출장이 제일 힘들다. 밤낮이 정반대인 그곳의 시차가 극복될 쯤 귀국해 반대로 또 시차를 다스려야 한다. 낙남의 산과 고향의 봄이 그 정도 보상은 해주리라는 믿음으로 무박의 밤차를 탄다. "산에 숨겨둔 여인이라도 있어요?" 하며 슬쩍 옆구리를 찌르는 그 사람을 뒤로한 채.

 

잠시 눈붙인듯한데 함안 여항의 봉곡동에 이웃한 한티재에 이른다. 봉곡동의 옛 이름이 만절(晩節)이다. 만절, '늦게 오는 계절' 이랄까?  만절은 동남서(東南西)가 높은 산이다. 산에 가려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지니 봄이 늦게 찾아 왔으리라. 그래서 마을 이름을 그렇게 불렀으니, 이름 하나에도 선인들의 삶은 꾸밈이 없다. 만절(晩節)에 봄이 한창이니, 여름이 멀지 않다. 이른 새벽 대부산을 오른다.

 

낙남5차에 오랜 낙동 동지인 오리 형과 정산이 합류하니 마치 낙동의 졸업산행 때처럼 분위기가 뜬다. 이 분위기로 지리산 영신봉으로 가고, 8월 중순에는 일본 북알프스까지 함께 갑시다. 동의, 찬성, 옳소, 맞소, 좋소, 가요!, 나도! OK!, Me too!, Let's go!  어!, 열 표 확보했다.

 

 

 

(2) '별의 별천(別川)'은 어디인가?

 

서북산에서 간식을 먹으며 후미의 일행을 기다린다. 북동쪽 아래 계곡을 살핀다. 별천이다. 어릴 때 '별의 별천(別川)'에 대한 얘기를 자주 들었다. 경치 좋고 살기 좋은 곳을 이르는 감탄사에 가까운 말이었다. 저 아래 주주골 막다른 동네를 부르는 이름이 '별천(別川)'이다. 복사꽃이 실개천에 떠가는 곳, 그 별천지(別天地)에 꽃이 피고 나뭇잎이 햇살에 은빛으로 찰랑인다.

 

한강(寒岡) 정구(鄭逑) 선생이 한때 유유자적하던 그 별천(別川)은 이름도 예쁘다.  삐든, 상벌내, 하벌내 ..... 모두 유천(柳川)이다. '유천'(柳川)은 '버들내'다. '버들내'는 '버드내', '벌내', '삐든'으로 바뀐다. 윗마을은 '상벌내', 아랫마을은 '하벌내'하는 식이다. 골짜기의 경치 못지않게 우리말도 정겹다.

 

산꽃이 화사하게 피고 지는 저 계곡에 지금쯤 버드나무 가지에 물오르는 소리 들릴 것이다. 그러나 저 별천(別川)에도 아픔이 있었다. 6 25를 겪으며 전쟁의 참화에 휩싸였으니 별천이 피바다가 되었다. 서북산 전투 위령비가 말없이 그 사실을 일깨워준다. 별천지의 전투라 .....

 

별천지가 따로 있던가? 내 마음이 전쟁터이면 곧 지옥이요, 내 마음이 편안하면 곧 별천지가 아니던가? 마음속에 별천지가 있으니 누구든 그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할 일이다. 여항산을 향해 다시 길을 간다.

 

 

 

(3) 도리행화(桃李杏花)와 봄을 다투랴

 

여항산 가는 전망 좋은 곳에서 일행과 함께 별천을 내려다 본다. 한강(寒岡)이 저기 저쯤에서 머물렀을까? 그가 함안군수로 있을 때의 일화다. 그가 백 그루 매화를 가꾼 백매원(百梅園)에서 어느 봄 선비들이 모여 꽃놀이를 했다. 도리행화(桃李杏花, 복사꽃,오얏꽃,살구꽃)가 한창 피었는데 마침 늦게 핀 매화가 있었다. 거기 참석했던 최영경(崔永慶, 1529-1590)이 느닷없이 도끼로 그 매화나무를 찍어버리겠다고 하니 주변에서 말렸단다.

 

최영경의 변(辯)이 걸작이다. "설한(雪寒)에 피어나는 그 절조(節操)를 내 귀히 여겼지, 복사꽃 오얏꽃과 봄날을 다투는 매화는 베어 마땅하다" 고 했다. 그렇다. 북풍한설 속에 피는 꽃이 진정 매화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선비들이 그 절조(節操)를 따르지 않았던가!

그런데, 계절 따라 그냥 핀 매화에게 사실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도끼에 찍힐 팔자인 매화의 처지가 곤혹스러웠겠다.

 

한 꺼풀을 더 벗겨보자. 사실은 대쪽 같은 선비인 최영경이 던지는 경책(警策)이 따끔하다. 겉으로는 최영경의 도끼가 늦게 핀 매화를 향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백 그루가 넘는 매화를 심어놓고 꽃 잔치를 벌이는 한강(寒岡)을 나무라는 것이 아닐까? 민심을 먼저 살피라는 꼬장꼬장한 그 선비정신이 요즘에도 그립다. 도리행화(桃李杏花)와 봄을 다투지 않는 매화의 절조(節操), 그같은 시대정신이 아쉽다.

 

 

 

 

(4) 반역(反逆)의 지세(地勢)를 다스려라

 

밧줄에 의지해 암벽을 타고 여항산(艅航山)에 오른다. 산의 암봉은 그 형세가 제법 날카롭다. 부드러운 노년기의 산이 아니라 마치 장년기의 암봉을 보는 듯하다. 여항(艅航)이라! 배가 닿는 포구(浦口)라고! 아름다운 이름이다. 그러나 산 이름으로는 특별하다. 그 이름에 모두 배 주(舟)가 붙었으니 여항은 산(山)이 아니라 배(舟)에 비유된 셈이다. 산 꼭대기가 마치 돛단배같아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說)이 있다.

 

그러나 다른 설이 더 유력하다. 함안은 남고북저(南高北低)의 지형으로 남쪽의 여항산을 기준으로 물이 북류(北流)한다. 임금을 향해 물이 거슬러 오르는 형국이니 풍수지리상으로 배역(背逆)의 형세(形勢)에 해당한다. 이를 다스리고자 남쪽의 산이름에 바다를 상징하는 배(舟)를 붙여 그 형상(形像)을 낮추고 지세(地勢)를 다스리려 했다는 얘기가 더욱 솔깃하다.         (*) 艅航 - 艅(여) 배이름 여, 航(항) 배 항

 

여항산에서 북쪽의 함안 산야를 굽어본다. 함안은 아라가야의 옛터다. 가야의 옛터는 묵묵히 옛일을 간직한 채 초록빛 물감을 칠한 채 말이 없다. 역사적으로 삼한(마한, 변한, 진안) 이후 변한지역에 가야국이 형성되었다. 그 6가야 중 아라가야(阿羅伽倻)가 터 잡았던 곳이 함안인데, 요즘도 함안의 중심지를 가야읍이라 칭하고 있다.

 

여항산을 지나자 산은 스스로 높이를 낮춘다. 가야의 옛 향기를 마음속으로 그리며 자꾸 북쪽을 쳐다본다. 가야읍 도항리와 말산리에 있는 아라가야의 고분군에서 역사의 숨결을 생생히 느끼고 싶다. 그러나 낙동과 달리 낙남의 산행은 주변을 살피는 일보다 기마자세로 전진하는 속도 경쟁이 난무하니 따라가기도 바쁘다. 미봉산 바위절벽에 우뚝 선 의상(義湘) 대사가 그냥 길을 가라 한다. 오곡재로 내려선다.

 

 

 

(5) 산은 스스로를 낮추는데

 

오곡재에서 527봉에 올라 조금 가면 오봉산 갈림길이 나타난다. 여기서 마루금은 함안 땅을 벗어나 진주와 마산의 경계를 이루고, 그 방향을 90도로 바꾸어 남진(南進)하기 시작한다. 지리산을 향해 서진(西進)하다가 잠시 고성(固城)의 바닷가를 다녀와 다시 진주를 거쳐 지리산 청학동으로 들려는 것이다. 진주와 마산의 경계를 이루는 부드럽고 넉넉한 품새의 마루금을 걷는다.

 

지형도에는 산이름 하나 없는 낮은 봉우리의 연속이다. 옛길의 흔적이 남아 있는 큰정고개를 지나니 산허리로 고사리(월산마을)까지 임도가 병행한다. 산이 스스로를 낮추는 길에서 지리산 영신봉을 그려본다. 아마 이런 산 지형은 고성 사천, 진주를 지나고 하동에서 지리산 자락에 안길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동안 지리산을 향해 솟구칠 에너지를 축적함이리라.

 

      저를 낮추며 가는 길이 길면 길수록 / 솟구치는 힘 더 많이 쌓여진다는 것을 /

      먼발치로 보며  / 새삼 나도 고개 끄덕이며 간다.

 

이성부 시인처럼 스스로를 낮추다 언젠가 다시 솟구칠 산을 마음속에 그리며, 일행과 조금 떨어져 그 길을 걷는다.

 

 

 

(6) 마음에 무성한 풀을 제거하라

 

갈수록 산은 낮아진다. 산길도 제법 뚜렷해진다. 신작로처럼 반질반질한 임도가 낙남의 마루금과 나란히 동행한다. 오솔길을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길이 너그러워지니 마음도 여유로워진다. 옛글을 생각한다. 맹자(孟子)의 진심(盡心) 하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산에 난 조그만 오솔길도 사람이 이용하기 시작하면 큰 길로 변한다. (山徑之蹊間 介然用之而成路).

      그러나 잠시라도 이용하지 않으면 다시 풀로 덮여 길이 없어지고 만다.(爲間不用則茅塞之矣)’  

 

어디 숲속의 길 뿐이랴? 사람도 자주 만나야 정이 들고 소통의 큰 길이 생긴다. 왕래가 드물면 소원해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사람의 길, 소통의 길에 대해 생각한다. 맹자의 진심(盡心)편은 끝 구절까지 읽어야 한다. 어디 한 번 읽어보자. 쇠뭉치로 뒤통수를 때릴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대의 마음은 풀로 뒤덮여 무성하구나(今茅塞子之心矣)! 

 

풀로 뒤덮인 마음의 길을 신작로처럼 잘 닦으라는 가르침이다. 얼마나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가르침인가! 마음에 가득한 풀을 헤치고 진정 열린 자아를 찾으라는 소식이다. 지리산 영신봉까지 걸으며 놓지 말아야 할 화두가 아닌가! 성*와 은*을 앞세우고 숲길을 걷는다. 참으로 편안하고 느긋한 길이다. 나뭇잎 사이로 스미는 햇살이 눈부시다.

 

 

 

발산재에 내려선다. 알탕하고 옷 갈아입으니 날아갈 것 같다. 산행은 '알탕하는 맛'이라고, 정산?  정말 그렇지?

오늘 하루를 되돌아본다. 숲을 걸으며 자연에서 동심을 되찾고 해맑은 추억을 만나 새로운 활력을 얻은 하루였다.

봄은 이미 무르익었다. 마음도 활짝 열렸다. 한 발짝 내딛을 수 있겠다. 일상으로 회귀(回歸)하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

참 아름다운 산행이었다.

 

 

2010년 5월 17일 새벽에

낙남에서 돌아와

월파(달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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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록] 함안(咸安)과 여항(艅航)

 

함안(咸安)은 1읍(邑) 9면(面)으로 이루어진 군(郡)이다. 그중에서 여항면(艅航面)은 함안군의 최남단(最南端) 지역이다. 그곳에 함안군내 최고봉인 여항산(770m)을 비롯해 서북산(738.5m), 대부산(649.2m), 광려산(삿갓봉, 720.1m))이 높은 산군(山群)을 형성하며, 서에서 동으로 진(陣)을 치고 여항면을 에워싼 형세다. 이 산줄기 모두가 낙남정맥이다.

 

이와 반대로 함안의 북쪽인 대산, 법수, 칠원, 칠서, 칠북면과 가야읍은 대체로 넓고 낮은 평야지대다. 지리산에서 발원한 진주의 남강이 덕유산에서 발원한 합천의 황강을 만나 낙동강으로 합류하며 그 평야지대를 관통한다.  가야읍을 중심으로 그 평야지대에 옛 아라가야의 유물이 산재해 있다.

 

이처럼 남고북저(南高北低)의 지세를 가진 함안은 그 남쪽의 여항면이 낙남정맥의 마루금을 경계로 바닷가의 마산 땅과 분수령을 이루며, 높은 산을 병풍으로 해양성 기후와 대륙성 기후가 맞닿아 양질의 과일을 생산한다. 여항면은 4리(里) 10개 마을의 작은 면(面)이다. 446세대 912명(2009. 12. 31. 현재)에 초등학교 1개가 있는 산골의 작은 행정단위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산세가 함안에서 단연 으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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