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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남정맥 02] 봄바람에 나 취했으니

月波 2010. 4. 4. 21:22

 

[낙남정맥 02] 봄바람에 나 취했으니 

 

 

1. 산행 개요

 

  1) 일 시 : 2010년 4월 4일(일) 무박산행

  2) 구 간 : 낙남정맥 제 2구간(망천고개-용지봉-우곡사 갈림길), 도상 거리 27.4Km, 진출(우곡사) 0.7Km별도

  3) 시 간 : 9시간 30분(식사 및 휴식 포함)

  4) 참 가 : 좋은 사람들 41인,   (7인의 동행자 - *원, *파, *언, 길*, 지*, *호, 은*)

 

 

2. 산행 후기

 

 (1) 달을 탐하고 꽃에 입맞춤하며

 

망천고개, 2주 만에 다시 찾는다. 황사(黃沙)는 가고 훈풍이 제법이다. 이 바람이면 필시 꽃이 피었으리라.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꽃이 피니 봄이 오는 것이라 했다. 꽃이 피면 어둠 속에도 봄은 오고, 부르지 않아도 봄은 온다. 마흔 하나, 번호 끝 ! 곧바로 산으로 든다. 산길의 초입은 된비알이다. 그러나 거친 숨을 몰아쉬는 이는 없다. 달빛의 아우름인가, 꽃들의 향기 덕인가? 

 

고개 드니 이마에 달이 걸렸다. 음력 스무날의 달이니 반월(半月)에 가깝다. 길섶에선 어둠 속에서도 꽃술을 늘어뜨린 진달래가 은근히 눈짓한다. 마음으로 이마 위의 달을 탐하고, 입술로 진달래 붉은 꽃술을 훔친다. 구름도 달 허리를 살포시 감싸며 눈감으니, 뉘라서 그 모습 탓할까? 자연을 탐한 죄는 원래 무죄이려니.

 

첫 산 능선에 오르니 앞서간 이의 불빛이 줄줄이 산마루로 향한다. 왼쪽에는 임도인 듯한 길이 산허리로 이어진다. 누군가 산허리 길로 앞장선다. 길은 길에 연하여 있으니 굳이 마루금을 고집할 필요가 있는가? 봉우리와 능선을 버리고 그 길을 따른다. 대간과 낙동을 할 때와 달리 많이 너그러워진 셈이다. 엄격보다 융통을 택하는 것이다. 그것도 길이다.

 

진달래 붉은 꽃술에 입맞추고

 

 (2)  거북아 거북아 ...... 龜何  龜何 

 

미명(微明) 속에 공원묘지를 지난다. 낙원()이라 이름하였다. 그렇지, 망자(亡者)들의 영원한 쉼터, 그곳은 Paradise()이어야 한다. 어둠 속의 묘지가 주는 통상의 공포감이 느껴지지 않는 공원묘지, 그 최상부의 마루금을 걷는다. 높은 곳에서 잠든 영혼은 죽어서도 멀리 볼까?

 

쇠금산(금음산)에서 잠시 남동쪽 김해 시가지의 불빛을 살핀다. 가락국의 창건설화가 담긴 구지봉(龜地峰)도 그 불빛에서 멀지 않으리라. 35년 전 고문(古文) 시간으로 잠시 돌아간다. 산행은 그렇다. 걸어 온 산길도 돌아보고, 살아온 삶의 길도 돌아보게 한다.

 

       龜何龜何 (구하구하)         거북아, 거북아 

       首其現也 (수기현하)          머리를 내어라.

       若不現也 (약불현야)          만약 내어 놓지 않으면

       燔灼而喫也(번작이끽야)     구워서 먹으리 

 

가락국(금관가야) 수로왕의 탄강설화가 담겨 있다. 그 왕비인 인도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일곱 왕자가 모두 성불(成佛)했다는 지리산 칠불사(七佛寺)의 이야기가 오버랩 된다. 산 아랫마을의 역사를 살피지 못하고, 검은 밤의 산악행군처럼 급히 달리는 산행에는 늘 아쉬움이 남는다.

 

김해 추모공원을 지나 다시 산으로 든다. 고요한 아침의 숲길이다. 낙엽의 잔해가 양탄자처럼 푹신하다. 오르막이라도 두려울 게 없다. "허리는 수그리고 다리는 쭉 펴고 ....." 포도나무 님의 구령대로, 풋풋한 기운으로 황새봉에 올라 아침 햇살을 맞는다.

   

 

가야, 그 여섯 나라의 위치도

 

 

(3) 우공이산(愚公移山), 그들의 나라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 우공(愚公)이 산을 옮긴다(移山)는 중국의 고사다. 태형(太形)과 왕옥(王屋)이라는 두 개의 산이 있었는데, 7백리 둘레에 1만 길 높이의 큰 산이었다. 그 산(山)에 막혀 평생을 불편하게 살던 노인의 이야기다. 아흔이 넘은 그 노인(愚公)이 산을 돌아서 다니는 불편함에, 아예 그 산을 옮기기로 작정한다. 황당한 일이지요. 어느 세월에 그 산을 옮기나?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산은 늘어나지 않고 그대로지. 나는 아들이 있네. 아들의 아들은 없으랴?  또 그 아들도 있겠지. 누대로 하면 산을 옮길 수 있겠지. "
밤낮 우직하게 땅을 파대니 불안해진 산신령이 옥황상제에게 고해, 그 산을 옮겨주었다나, 어쨌대나? 그런 얘기다.
 

황새봉에서도, 냉정고개를 지나 용지봉(744m)을 오르는 길에서도, 자꾸 북서쪽의 산하를 살핀다. 여기 이 나라 이 땅에도 우공이산(愚公移山)이기를 자처하던 분이 있었다. 그를 따르는 사람은 그를 '바보' 라고 애칭 했다. 어쩌면 그러길 원했는지 모른다. 그가 저기 저 산, 부엉이 바위 아래 작은 비석 하나 벗 삼고 누워있다.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 그 쪽으로 향하는 마음을 어쩔 수 없다.

 

그해 여름은 길었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을 추모하는 행렬만큼 슬픔도 길었다.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조각에 불과하니, 모든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라 했지. 인간은 누구나 죽음 앞에 초탈해진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 각자 그들이 꿈꾸는 세상, 그들의 나라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이념이든 삶의 방식이든, 서로 대립각을 세우다가도 막상 죽음 앞에서 누구든 초탈해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우공이산(愚公移山) 우보만리(牛步萬里)라 했다, 어리석어 보여도 조금씩 흙을 옮기면 산을 옮길 수 있고, 소걸음이 느려도 만리를 가는 법이다. 그런 삶과는 다소 동떨어지게 살아왔다. 그 삶도 좋은 방편이지 싶다. 쉬엄쉬엄 후미에서 걷고 있는 오늘의 산행처럼 ......

 

쇠귀(신영복 교수)의 愚公移山

 

 

(4) 부귀공명(富貴功名)이 덧없음에

 

용지봉(龍池峰, 744m) 정상에 오른다. 높구나, 이 높은 곳에 용이 사는 연못이 있었단 말인가? 전후좌우를 아우른다. 지나온 김해의 산야와 새롭게 펼쳐지는 창원의 벌판, 그 벌판에 들어선 공장과 주택 단지들이 한 눈에 펼쳐진다. 다가갈 대암산과 비음산이 한줄기로 등뼈를 이루며 북쪽으로 뻗어 있다.

 

정상부 주위를 살핀다. 용제봉(龍蹄峰 723m)이라 적힌 정상석이 있다. 용의 발굽을 본 일이 있던가? 아니 마음속으로 그려보기라도 한 적이 있는가? 용지봉(龍池峰)이라 하든, 용제봉(龍蹄峰)이라 하든 실체야 변함이 없지 않은가? 744m이든 723m이든 그 실상이 어디 달라지는가? 그저 본성은 안보고 이름이라는 껍데기, 그 허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살핀다.

 

뒤돌아보니 걸어온 산야가 올망졸망하다. 그 언저리에 유난히 무덤이 많았다. 낙원공원묘지, 김해 추모공원(덕양공동묘지), 양동공동묘지에 수없는 봉분들이 포도송이처럼 매달렸으며, 멀리서 마음으로만 살핀 가락국의 시조 수로왕과 그 왕후의 무덤, 그리고 봉하마을의 작은 비석 하나에 이르기까지 ......

 

오고 감에 얽매임이 없거늘, 무덤 앞에 지위고하와 빈부격차가 있던가? 부귀공명(富貴功名)이 덧없음을 수없는 망자(亡者)의 쉼터가 말해주지 않던가? 산에 오르면 이렇게 비워지고 버려지는 것인가? 앞 다투어 달려간 이와 나보다 뒤에서 혼자 걷는 이는 무슨 생각일까? 갑자기 그 속이 궁금해진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해거름의 길, 만년(晩年)의 길에 대해.

 

바위에 뿌리내린 소나무(용지봉 가는 숲길)

 

 

(5) 길의 끝, 우곡사(牛谷寺)에서

 

용지봉부터 길은 좌 창원 우 김해다. 용지봉을 출발하려는데, 사진 찍느라 정상에 벗어둔 내 배낭이 사라졌다.  앗 !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집 나갔던 배낭은 단체로 산행 온 무리들 중 어느 학생이 일행의 배낭인양 짊어지고 앞서가고 있었다. 다행히 포도나무 *호님과 연락이 되어 간신히 찾았다. 고마워, 학생. 무거운 짐 대신 짊어줘서. 살면서 종종 무거운 짐은 나누어지게나.

 

대암산의 돌탑이 인상적이다. 어느 분의 공덕이 저렇게 쌓인 것일까?  잠시 서서 마이산의 탑사를 생각한다. 규모야 비하랴만, 쌓은 마음의 공덕이야 다름이 있겠는가? 비음산에서 용추고개로 내려선다. 길가의 철쭉은 아직 때가 이름을 알리며 다시 오라 유혹한다. 곧 이어 오른 408봉에선 맛난 음식으로 은영이 반긴다. It's delicious ! 샌드위치 추가요!

 

이제 산행은 종반이다. 누적된 피로가 서서히 드러나는 시간이다. 다행히 낙남 1차와 달리 무릎 컨디션이 썩 나쁘지 않다. 용추계곡 갈림길은 멀기만 하지만, 가슴까지 적셔주는 솔바람이 시원하다. 그 송운(松韻)이 상큼하다. 길의 끝이 멀지 않음을 직감한다. 그 곳에 우곡사(牛谷寺)가 있다. 신라 흥덕왕 때 창건한 고찰이다. 그 길의 끝에서 옛 선사(禪師)의 죽비소리가 따끔하게 울린다.

 

     한 번쯤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라.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던가?

     길의 끝에 머문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었으니,

     마음의 길, 당도하여야 할 그 길이 보이던가?

 

법당에 들러 삼배하고 석간수 한 조롱 입에 적시고 산문(山門)을 나선다. 향긋한 봄바람이 계곡을 휩쓸고 지나며 콧잔등을 두드린다.

아, 상큼하다. 아! 나 오늘, 봄바람에 취했거든, 날 건드리지 마. 이대로 좋거든. 그러니 나중에 보자고!

 

대암산의 돌탑

 

 

2010. 4. 4. 늦은 밤

봄바람에 취해

월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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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시간] 2010년 4월 4일(일)

 

0420  망천고개        

        낙원공원묘지

 

0530  금음산(쇠금산, 376.1m)

        김해 추모공원(덕양공원묘지)

 

0620  황새봉, 일출을 보다 

        양동산성, 양동공원묘지

 

0740  남해고속국도 통과, 막걸리 한 잔 

0800  냉정고개, 외딴집은 못찾고 그래서 식수보충도 불발

 

0840  471.3봉 -  아침식사 30분, 아니 점심인가?  아직은 날씨가 춥다. 보온도시락 마다한 내 불찰이 크다. 오묘한 맛?

0920  바위틈에 자라는 소나무

 

1010  용지봉(744m) - 20분 휴식

1030  용지봉 출발 - 앗! ! 내 배낭 누가 짊어지고 갔나? 

 

1100  704봉

1110  돌탑

1140  대암산(670m)

1215  남산치 

 

1240  비음산 청라봉 - 진례산성 시작

 

1305  408봉  

       

1336  용추계곡(좌) 우곡사(우) 갈림길(1)

1342  용추계곡(좌) 갈림길, 넓은 안부/운동시설, 우곡사 길 없음

1350  용추계곡(좌) 우곡사(우) 갈림길(2)

1410  우곡사 - 법당에 삼배.

 

1530  식당 출발

1940  서울 서초동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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